퀵바

템페라 님의 서재입니다.

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템페라
작품등록일 :
2019.04.08 05:27
최근연재일 :
2019.06.01 22:46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646
추천수 :
66
글자수 :
174,507

작성
19.05.07 16:47
조회
41
추천
1
글자
11쪽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DUMMY

길리안의 말에 따라 다른 문으로 들어선 르네는 생각보다 안전하게 크로울리 공의 방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주변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안전해 보이는 길만을 고른 덕도 있었지만 무언가가 개입이라도 하듯 르네가 고른 길이 순탄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여자의 직감이란 것이 발동되기라도 한 것일까, 하고 르네는 생각했다. 동시에 쟝이나 성내의 다른 아군이라도 만났으면 좋았겠다 는 아쉬움 또한 떠올렸지만 애써 고개를 내저어 그 아쉬움을 떨쳐내었다.


마법사이기 이전에 르네 또한 길리안 조의 일원이었다. 혼자서 해내야할 임무가 생겼을 때 동료를 핑계 삼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크로울리 공의 서재의 문이 보이는 곳 바로 앞쪽이었다. 방 안쪽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병장기 소리에 르네는 자신이 지금 들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문 듯 발걸음이 느려졌다.


마법에는 항상 긴 시간이 걸렸다. 지난번의 마법대결은 상대가 함께 어울려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르네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 그런 명이라도 받지 않은 한 그런 형편 좋은 상황은 잘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휴이공의 단 하나뿐인 딸. 공작가의 영예이기에, 그 데니안 라스라고 하더라도 휴이 공의 친딸인 ‘르네 휴이 공녀’를 건드리는 것은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휴이공의 양자인 길리안은 멋대로 취급하면서.’


귀족의 피는 왕국에서 특히나 귀히 여겨졌다.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귀족과 같은 고귀한 피를 지닌 자 뿐. 그런 것이 사회의 통념이었다.


평민들이라 해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민 및 하층민 대다수는 그것을 모른다. 귀족들이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 탓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안다 한들, 마법을 배울 수는 없다. 마법을 가르치는 기관에선 귀족만을 선별해서 받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평민이나 하층민이 마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런 고귀한 피를 지는 자들의 은총이 내린 물건을 사거나 구하는 것 뿐이었다. 이미 이 나라에는 귀족의 고귀함이 고귀함이라 불릴 만큼 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계급이라는 장벽은 거대했다.


그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를 하는 선왕의 계획의 일원으로 길리안의 조에 참가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르네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 지도 모른 채 저택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만 감동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르네의 발이 문 앞에서 완전히 멈추었을 때, 문 듯 그녀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내려앉는 듯한 발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내려앉은 발소리는 아마도 다섯.


마법사인 그녀가 다섯명이나 되는 적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문고리를 붙잡은 채 르네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 안으로 적들을 들려 크로울리공의 부담을 더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르네는 허리춤의 단검으로 조용히 손을 얹으며 뒤로 돌아섰다.


여차하면 주머니에 들어있는 암기로라도 대응하는 수밖에.


결심을 굳히고 눈을 들어 정면을 똑바로 바라본 르네는 뜻밖의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전대놀이라도 하듯 검정, 노랑, 파랑, 흰색, 빨강. 다섯 가지 색의 복면을 쓴 사내 다섯이 각자 다른 포즈를 취한 채 르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몸은.. 복면 블랙!”


“소인은.. 복면 옐로!”


“본인은.. 복면 블루!”


“신은.. 복면 화이트!”


“어.. 저는 복면 레드..?입니다.”


마지막에 얼빠진 목소리에 네 복면이 흠칫 놀라 레드를 바라보았다. 선명한 붉은 색이 아닌 검은 색에 무언가 붉은 것을 잔뜩 묻힌 듯한, 붉은 색이라기 보단 검붉은 색에 가까운 복면에 네 복면인은 전부 의아한 표정으로 복면 레드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 다들 왜 그런 눈으로 보시죠?”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있던 복면 레드는 마치 적이라도 보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복면 레인져들의 모습에 당황한 눈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등 뒤에는 다른 복면인들과는 달리 기다란 대검이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르네에게 무척 낯익은 물건이었기에 르네는 ‘복면 레드’가 누구인지 금세 간파할 수 있었다. 복면의 눈구멍 사이로 흘러내린 몇 올의 금발 또한 단서가 되었다.


“로크! 그게 무슨 꼴이에요?”


어이없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하는 르네의 말에 흠칫 놀란 레드는 눈을 깜빡이며 그녀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신호에 짐짓 모른 척 고개를 갸웃거리던 르네는 레드가 안절부절 못하며 양손을 기도하듯 모아올리고 나서야 키득거리며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복면 전대들은 그런 빤한 뒷공작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표정들이었다.


“누.. 누구냐.. 너는.. 원래의 레드는 어디 있지?”


“아, 전(前) 레드는..”


현(現) 레드는 아련한 눈빛으로 성의 석벽 사이로 뚫려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네 복면인들은 전부 전율한 듯한 표정으로 현(現) 레드를 바라보았다.


전대 중 가장 눈에 띄는 색을 차지할 만큼, 레드의 실력은 다섯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리더를 맡을 정도의 통솔력도 있었다. 그런 레드를 어느 사이에 처리 했으며, 또 어느 사이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단 말인가.


“어.. 다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는지.. 저어.. 우루루 몰려가시는 걸 쫓아와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레드 씨를 창밖으로 던졌단 건 농담이란 거, 아시죠?”


하하..어설프게 웃는 현(現) 레드의 모습에 남은 네 명의 전대가 등 뒤의 세검을 빼들었다. 원래의 임무는 르네를 자알 설득해 주군에게 데려가는 것이었지만, 이정도의 위협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여기서 후환의 싹을 제거하는 것도 충성의 한 방법이었다.


“모두, 공격하는 것이오!”


복면 블랙의 호령에 네 명의 세검이 일제히 거짓된 리더를 향해 내질러졌다. 어떤 지시도 없었음에도 각자가 현(現) 레드의 머리, 심장, 손목, 다리의 네 군데를 동시에 노린 것은 제법 뛰어난 판단이었다.


한 점으로 집중된 공격은 강력하지만, 여러 곳으로 분산된 공격은 처리하기가 골치가 아픈 법이다. 게다가 타이밍 또한 제각각 달리하여 현(現) 레드의 반격에 대비했다. 그 공격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노련한 팀인지 가늠이 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런 상황조차 즐기는 복면의 히어로였다. 순간 뽑아낸 칼날이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형상으로 네 명의 검을 동시에 쳐내었다.


“도, 동시에!”


“우리들의!”


“공격을!”


“쳐냈다고?!”


복면 전대들은 놀란 표정으로 쳐내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현(現) 레드는 그들의 놀란 표정과 관심에 기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곤 아직도 더 놀랄 것이 남았다는 듯 좌중을 훑어보며-그래봤자 르네를 포함해도 5명뿐이었지만-팔을 크게 뻗으며 말했다.


“후후.. 그렇습니다. 저는 사실!”


현(現) 레드는 잠시 주변의 반응을 살피듯 말을 끊었다. 르네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두근거린다는 표정이었고, 다른 이들 또한 르네와는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는 표정이었다.


레드는 그런 기대에 찬 눈빛들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언젠가는 이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 레드는 생각했다.


“레드가 아닙니다!”


이젠 레드가 아닌 레드의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레드가 의도했던 방향의 당혹은 아니었다.


“그걸..”


“왜..”


“이제 와서?”


“!”


당혹스런 시선이 이번에는 세 번째 발언을 한 복면 블루에게로 향했다. 대사의 분할이 잘 못되었음을 깨달은 복면 블루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레드의 배신이 그들의 팀워크를 서서히 붕괴시키고 있는 듯 했다.


복면 전대가 서로에 대한 무언의 힐난과 몸짓을 보내며 분열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르네에게, 레드가 눈짓을 보냈다.


“응?”


그 덕에 르네는 붕괴되어가는 팀워크만큼 붕괴되어가는 그들의 정신이 당초의 목적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음을 눈치 챘다. 네 복면 레인져의 시선이 온전히 레드에게 집중되어있는 지금이라면 크로울리 공의 서재 안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복면 레드가 르네에게 찡긋 윙크를 하며 신호를 보내는 것을 어색하게 받아들이며, 르네는 크로울리 공의 서재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평소 경첩에 기름칠을 잘 해둔 것인지 소리 없이 열리는 문에 르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갔다.


르네가 방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보며, 레드는 이제 사분오열하여 서로의 탓을 시작한 복면 전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블루 공의 잘못이 아니란 게요?”


“그러니까 블랙 공의 연인이 없는 게 왜..”


서로의 실책을 탓하던 자리가 어느 사이에 개인사에 대한 힐난으로 까지 변화한 모양이었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레드가 순간 그들의 힐난에 가세했다.


“잘 못이라면 대부분 얼굴이 잘못이겠죠! 하하! 눈만 봐도 그런 걸요!”


레드의 말에 서로를 힐난하던 네 명의 입이 움찔, 하고 멈추었다. 이어서 싸늘하게 식은 네 명의 시선이 레드에게로 향했다. 본디 자기 친구를 자기가 욕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욕하는 건 못 들어주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인 법이었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외모를 폄하하다니. 서로 찔리는 구석이 있는 네 명의 시선이 한 군데로 모였다. 괜히 복면을 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라고 네 명의 시선이 말하는 듯했다. 한 순간에 네 명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순간이었다.


“블루 공은 잘못이 없소..”


“그래..”


“그래!”


“잘못이 있는 자는..”


레드는 분노의 눈길이 자신을 향해 새로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곤 흠칫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고작 한마디를 거들었을 뿐인데. 레드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공공의 적을 만들고 새로이 결심을 다진 네 레인저의 우정의 불꽃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직 네놈뿐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아무래도 주군의 명 또한 함께 불태워버린 모양이었다. 르네에 대한 것을 까맣게 잊고 순수한 분노의 불꽃을 태우며 달려드는 네 레인저의 기세는 안하무인으로 굴던 레드조차도 찔끔하고 겁에 질릴 정도였다.


“자, 잠, 잠깐만! 눈이 못생겼다고 다른 부분도 못생기리란 법은!”


레드의 끊임없는 입방정에 네 명의 세검이 레드의 몸을 꿰뚫었다.


“그만 둬!”


“외모에 대한!”


“평가를!”


“그만 두란 말이다!”


촉촉이 젖은 눈을 들어 햇빛이 쏟아지는 창을 바라보는 네 레인저의 뒤로 레드가 천천히 허물어졌다.


“크윽.. 후.. 훌륭한 일격이었다..”


허물어지는 레드를 뒤로 한 채 네 레인저는 서로의 검을 겹쳐 들었다. 검 끝으로 모인 빛처럼, 그들의 우정 또한 하나가 되어 오랫동안 이어져 가겠지. 레드는 풀썩 쓰러지며 생각했다.




많은 비평, 쓴소리 환영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수정 현황 공지 19.05.23 50 0 -
공지 연재 주기 및 수정에 관한 공지(19.5.15) 19.05.15 34 0 -
공지 현재 전체적인 수정 중 입니다.(수정 작업 끝.) 19.04.20 53 0 -
43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6.01 40 1 8쪽
42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5.29 32 1 12쪽
41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5.28 35 1 7쪽
40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5.19 41 1 7쪽
39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5.15 70 1 8쪽
38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5.14 56 1 10쪽
37 6. 황금의 기사와 사교의 동굴 19.05.10 56 1 11쪽
36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10 52 1 8쪽
35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10 47 1 10쪽
34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9 54 1 10쪽
33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9 72 1 9쪽
32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9 49 1 8쪽
31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9 43 1 8쪽
30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9 43 1 7쪽
29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8 87 1 10쪽
28 5. 황금의 기사와 금빛의 용 19.05.08 38 1 8쪽
27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19.05.07 36 1 8쪽
»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19.05.07 42 1 11쪽
25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19.05.06 27 1 8쪽
24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19.05.05 19 1 9쪽
23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19.05.05 18 1 9쪽
22 4. 황금의 기사와 복면 뒤의 비겁자 19.05.05 48 1 8쪽
21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5.04 25 1 8쪽
20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5.03 25 1 11쪽
19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5.02 46 1 8쪽
18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5.01 35 1 11쪽
17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9 44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