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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엔 님의 서재입니다.

제2 특무분과 과장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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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엔
작품등록일 :
2022.05.30 21:50
최근연재일 :
2022.06.03 23:15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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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25,733

작성
22.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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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조금 과격한 첫 인사

DUMMY

우리가 이동하는 와중에도, 형형색색한 불빛들은 계속해서 숲을 수놓았다. 전투가 격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소리가 커질수록, 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져갔다. 핸들에 바짝 붙어 몸을 떨고 있는 유리카가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저...저는 여기 남아있겠습니다!"


비탈길의 한가운데. 특무분과의 본부가 있는 저택은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유리카가 차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자기는 아직 죽기 싫다 이거지.


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유리카는 내 눈을 피하며 중얼중얼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아니. 혹, 혹시나. 불상사에 말려들어 차가 파손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동 수단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군사학 강의에서도, 어떤 전투이든지 확실한 퇴로 및 출구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그러니까 저, 절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이런 인간은 끌고 가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 명의 유능한 적보다, 한 명의 무능한 아군이 더 무섭다. 아군과 적군이라는, 기본 전제 조건 아래 세운 작전이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


"해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그냥 죽었다고 치고 차 돌려서 보안국에 보고하세요."


"네, 네? 아르카 과장님?"


나는 재킷을 의자에 두고, 차에서 내려서 굉음이 들리는 장소로 뛰었다.


보안국의 제복은 디자인을 너무 중시해서 그런지, 격렬한 움직임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아리아드네 같은 인간은 그걸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마나 활용으로 보충했지만, 내게는 그 정도까지의 역량은 없었다.


뛰어서 20여 분, 거리상으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숲 속인데다 가까이 갈수록 가시 거리가 불투명해졌다. 아직 낮이 한참 남았는데도, 안쪽으로 나아갈수록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시야를 차단하는 광역 마법이 넓은 영역에 걸려 있는 듯 했다. 제도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평범한 숲인데도 어딘가 분위기가 음산했다. 이윽고 겨우 발밑만 보일 정도로 시야가 좁아졌을 때, 나는 자세를 낮추고 걸음을 약간 늦췄다.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르카 님. 마침 적당할 때 와주셨네요."


순간, 오른쪽에 있던 나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몸을 돌린 뒤 품 속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낸 뒤 소리가 들린 곳을 경계했다.


잠시 후, 실눈의 남자가 나오더니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나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나머지 한 쪽 팔은 팔꿈치 아래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 좋은 느낌이 들지는 않은 남자였다. 내가 만나본 실눈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전부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름은 지침상 밝힐 수 없습니다만, 저도 보안국 소속입니다.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하하하. 역시, 강하네요. 자랑은 아니지만, 보안국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 져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상대를 많이 잘못 만났습니다. 아무리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국장님도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15분을 버틴 뒤, 살아서 귀환하라니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시체가 되었을 겁니다."


제2 특무분과의 건물이 가까이 위치한 숲 속. 내가 도착하기 직전이라는, 수상할 정도로 딱 들어맞는 타이밍.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시작된 전투. 아리아드네의 명령.


이 놈이 그 집행관인지 하는 놈한테 싸움을 걸어놓고는 나한테 차례를 떠넘기려 하는군. 굳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고, 기다리고 있던 분도 만났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사실은 이미 한계거든요."


말로는 한계라고 할 뿐, 남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한쪽 팔을 살짝 들어올렸다. 약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팔은 괜찮은가요."


"뭐, 대성당의 주교 님에게 부탁해봐야지요. 비용은 어차피 경비로 처리될테니 상관 없는데, 문제는 역시 시간이겠죠. 요즘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요."


하긴, 대성당에 내야되는 헌금이 비싸기는 하지. 거기다, 치료비만 받으면 그나마 나은데 그 놈의 신앙심을 시험한답시고 또 돈을 뜯어가니.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니까 나도 몇 번 아는 사람을 통해서 그 쪽 신세를 진 경험이 있었다.


"만나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당신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히 있었습니다만....뭐, 괜찮을 것 같네요. 딱히 걱정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제 처음 만났는데, 뜬금없이 나를 띄워주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불쾌했다.


"방금 만나서, 몇 마디 대화했을 뿐인데요."


"상대는 저 쪽에 있는데, 굳이 제가 숨어있는 이 쪽으로 접근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도 이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말입니다. 이래뵈어도, 위장을 하고 있을 때는 국장님을 제외하곤 들킨 적이 없는데, 솔직히, 놀랐습니다."


놀랄 것 없다. 이 정도 능력조차 없었으면, 나는 그 괴물같았던 아카데미 놈들한테, 아니면 끔찍했던 길드원들한테 진작에 죽었을 거다. 그 인간들한테 비하면 이 남자의 위장은 숨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지난 6년간 내 인생은 찾느냐 들키느냐, 숨바꼭질의 연속이었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자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딱 맞추어서, 사방에 드리워져 있던 어둠이 걷혔다.


주변이 환히 트였다. 숲 바깥쪽에 자그마한 호수가 있고, 멀리는 유리카가 말한 저택이 보였다. 뾰족한 지붕에, 백색의 돌로 만들어진 2층짜리 집이었다.


저택의 앞에는 딱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 것 같은 정원이 꾸며져 있어, 가지각색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채를 뽐냈다. 방금까지 근처에서 전투가 있었음에도, 정원은 파인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보안국과 관련있는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형적인 귀족의 별장 같은 풍광. 3층으로 만들어진 허름한 가정집의 꼭대기, 좁아터진 방에 갇혀 있었던 나로서는 적응하기가 힘든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꽃밭의 한 가운데에는.


"겨우, 이 정도인가? 실망이로군. 인간들이란, 정말로 귀찮기 짝이 없구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소첩의 심기를 건드리는 저의는 대체 무엇인지.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으나, 여전히, 인간들의 사고는 헤아리기가 심히 곤란하느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고운 흑발을 가볍게 쓸어올리며 고개를 젓는, 한 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가슴께에 프릴이 달려있는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고,단추가 달린 털 달린 케이프 코트를 어깨에 살짝 걸친 옷차림. 굽이 지나치게 높아 보이는 구두를 신고, 귀에는 물방울만한 붉은색 귀걸이를 두 개 달고 있다.


익숙한 복장이었다. 몇 년 전에, 나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어떤 여자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고풍스러움과 품위가 엿보이는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게, 잡티 하나 없이 하얀 얼굴은 많이 앳되어 보였다. 최대한 높게 쳐줘봐야, 아카데미 4학년 정도. 아리아드네는 물론, 유리카보다도 확실히 어려보였다.


"뭐, 도망친 쥐새끼를 굳이 쫓아갈 만큼 이 몸은 한가하지 않으니. 그 일은 차후에 따로 죄를 묻도록 하지. 그보다."


순간, 내가 숨어있던 나무만을 남겨 놓은 채 숲 전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나오거라. 소녀의 용모를 훔쳐 보는 것은 품위있는 신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무례이니. 조금이라도 예절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나와서 정식으로 인사를 올려야 될 것 아닌가."


들킨 이상, 꾸물거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여자가 있는 화원 쪽으로 걸어가자, 여자도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서로의 거리가 좁혀져 갔다.


"여전히 무례하구나. 소첩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감인가, 자존심인가, 그것도 아니면 객기인가?"


여자가 나를 보고, 비웃는 것처럼 차가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빛은 차가웠고, 동시에 남을 자신의 발밑으로 깔보는 것 같은 오만함이 배어있었다.


"원래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나...불행하게도 지금 소첩은 아까 그 쥐새끼 때문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목숨을 거둬들여야 할 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 잘 생각해서 입을 여는 것이 좋을게다."


나에게 있어 예절의 기준은 명확하다. 내게 존대를 하면, 나도 존대를 하고. 내게 말을 낮추면, 나도 말을 낮춘다.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 나도 따라 고개를 숙이고, 내게 칼을 들이밀면 나도 따라서 칼을 녀석의 숨통에 겨눈다.


"집행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너는 직책상으로 내 밑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왜 내가 네게 머리를 숙여야 하지?"


씨익, 여자가 입꼬리를 찢으며 웃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세상이 돌연 어두워졌다.


정확히는, 사방에서 검은 구체들이 내게 탄환처럼 쏟아져 날아왔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구체들은 숲과 화원 사이에 놓여있는 구릉에 깊은 구멍을 내며 폭발했다. 앞으로 3보, 그 다음은 바로 몸을 왼쪽으로 날린다. 그리고, 다시 뒤로 4보. 까다롭기는 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공격은 아니었다. 대상을 잃은 구체가 땅에 처박혔다.


"흐음, 그래도 입만 산 것은 아닌 모양이었나 보구나."


수십 개의 구체가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확인하자, 의자라도 놓인 것마냥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여자는 살짝 미소를 흘리며 나를 칭찬했다.


"맞지 않는 것은, 환영 마법을 써서 분신을 방패로 삼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환각 마법을 써서 나의 공격을 빗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단순히 신체 능력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인가? 재밌구나. 어느 쪽이든 이 몸에게 통할 정도로 제법 괜찮은 잔재주이기는 하나."


한 줄기의 검은 선이 내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들어왔다. 선은 허공을 가르며 회피를 계속하는 나를 쫓았다. 공간조차 찢어질 것만 같은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인간이 구사하는 마법은, 필연적으로 지속 시간이 생기기 마련."


아직까지는, 내가 여기저기로 굴러다니는 꼴을 여유만만하게 지켜보고 있던 여자였다.


검은 선은 한 줄기에서, 두 줄기가 되었다가, 네 줄기가 되었고 곧이어 여덟 줄기가 되었다. 그 중에 하나라도 맞으면 바로 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 뻔했지만, 다행히도 분리된 내 신체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꼴은 보지 않을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내 뒤를 쫓던 선은, 모양을 바꿔 큼지막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이내 수 백개의 뾰족한 바늘 모양으로 변했다. 아예 전략을 바꿔, 내 주위를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먹구름이 가득 낀 것마냥, 하늘이 온통 끝에서 끝까지 검은 색으로 물들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공간 이동 마법이라도 쓰지 않는 한 어차피 뛰어서 피할 수는 없었다. 아니, 웬만한 마법사라도 지평선까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죽지 않는다는 계산 정도는 있었다.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 어느 쪽이든 100%라고 단언할 수는 없긴 하지만.


뭐. 지금까지 나는 이런 식으로, 운에 맡겨 살아남아 왔으니까.


******


"흐음, 대단한데.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그 여자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이유가 없지는 않았군."


가시의 비를 멀쩡하게 빠져나온 나를 보자, 여자가 작게 박수를 치며 나를 보고 중얼거리고는 살짝 발을 굴렀다.


치맛자락이 흔들리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자가 사뿐히 한 쪽 발을 짚으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오른손에는, 못 보던 칼을 하나 들고 있었다.


"본래 소첩은, 근접전이 특기다. 영광으로 알도록. 검을 꺼내드는 상대는, 네가 두 번째다."


자기 키만한 칼을 겨누며 자세를 잡는 여자를 보고, 나는 가당찮다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일렀다.


"말해두겠는데, 그 칼로는 나를 찔러봤자 죽일 수 없다."


"뭐어?"


처음으로 여자가 여유를 잃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거세게 노려보았다.


그랬다.


이제야 겨우 떠올렸다.


몇 년 전에 내가 누구와 만났고, 무얼 했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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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전의 악연 22.06.03 23 0 13쪽
» 조금 과격한 첫 인사 22.06.02 25 0 13쪽
2 생각이 많으면 머리만 아파진다 +1 22.05.31 33 2 15쪽
1 이런 낙하산은 싫다 +1 22.05.31 4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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