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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도

너에게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완결

hakdo
작품등록일 :
2015.10.24 10:09
최근연재일 :
2016.06.10 12:00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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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6
추천수 :
176
글자수 :
174,992

작성
16.04.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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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보이더(1)

너에게, 더




DUMMY


디르 · 데라벨 식물 연구소는 분홍색 돔 안에 있는 지상낙원이었다.



카르텔 성의 하늘은 막 구겨진 종이처럼 칙칙하고 하늘색이라고는 코빼기하나 안 보였지만, 그 분홍색의 아늑한 연구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돔의 천장에 펼쳐져 있는ㅡ비록 인공으로 만든 것이지만ㅡ예전 모습 그대로의 쨍한 하늘색을 볼 수가 있었다. 어릴 적의 나는 연구소 방문객이 없으면 그 쨍하고 밝은 하늘만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연구소에 들어가면 바로 펼쳐지던 초록의 향연. 이름 모를 풀꽃들, 나무들, 졸졸 흐르던 시냇물. 그 속에서 날 부르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걱정스런 목소리. 지금은 내 마음속에서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영상들, 지금은 잃어버린 영상들.


디르 · 데라벨 식물 연구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자기들은 보지 못한 별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함이겠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은 보기 힘든 카르텔의 희귀한 식물들을 가르쳐 주었다. 어릴 적의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얼굴 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연구소 깊숙이 있는 침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혹시나 이곳에도 사람이 올까봐 떨고 있었다.



난, 특정범위 내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지구에 도착한 지금은 이런 능력에 익숙해져서 내가 필요한 생각만 내 머릿속에 남기고, 나에게 해가 될, 이른바 찌꺼기 생각들은 그냥 넘겨버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그게 되지 않았다.

그땐 나에게 오는 나쁜 생각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헤엥~ 연구소가 의외로 작네. 이래가지고 식물 연구가 제대로 되려나? 저 지식은 나도 아는 건데. 왜 자기들만이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거야? 저 식물 좀 징그러! 별거 없잖아? 왜 우리가 식물을 잘 돌보아야 되는 거지? 지금도 살기가 편한데. 이런 연구소 왜 세웠을까? 우리가 이런 걸 알 필요가 있는 거야?

여과 없이 들리던 나의 가족들과 연구소에 대한 험담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그 칙칙한 하늘 아래 있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겨져서 자라온 나에게는 그 험담들을 듣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겨우 8살 밖에 되지 못한 내가 그 사람들과 싸울 수도 없었기에, 그 사람들이 가고 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괜히 분풀이를 했다.

“왜 그 사람들에게 화 내지 않았어? 바보들이야? 그 사람들이 우리 연구소를 얕보고 있었어. 그걸 왜 잠자코 바라봐. 왜 당하고만 있냐고! 이러다가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더 욕먹을 지도 모른다니까?”

그땐 내가 철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의 말을 들으며 할아버지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곤 돈가스 향 향수를 뿌리며 말했다.

“보이더, 네 말이 맞을 수 있어.”

창문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엔 말야.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 이 식물 연구를 후원해주는 사람들도 많단다. 안 그러면 이 연구소를 여기에 세울 수도 없고, 국가에서 지원 받는 연구가 될 수가 있었겠니? 없지. 그러니까 보이더. 세상에는 물론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많아.”

할머니가 옳았다.



그 후 난 조금씩 조금씩 침실을 나와서 사람들에게 나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연구소에 오는 사람들은 갑자기 연구소에서 나타난 조그마한 인간을 보고 호기심을 비쳐왔다. 물론 내 머릿속에 나에 대한 험담이 올 땐 어찌할 줄 모르고 울어버렸지만 그때는 할아버지가 나를 안아서 사랑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넣어주시곤 했다. 그런 일이 쌓이고 싸여 난 점점 그런 일에 익숙해져 갔다.

내 나이 20살. 겨우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를 술술 나눌 수 있게 됐다.

역시 할머니의 말씀은 옳아서, 뭐, 식물 연구에 별 관심 없고 필요성조차 못 느끼는 사람도 많았지만, 대개는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연구소가 있는 돔에만 펼쳐진 초록의 향연을 연구소 바깥에도 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를 돕고 싶어서 난 식물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만으로 식물의 공부를 했었는데, 어떤 책에서 지구라는 먼 행성에서는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있단 것에 흥미를 느꼈다. 대개 카르텔 성에서 식물이라 하면 관상용이나 산소 공급용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다니. 나로서도 깜짝 놀랐다. 우리들은 향기로 배를 채우는데, 지구인들은 입으로 그걸 먹으면서 배를 채우네? 죽기 전에 그 식물들을 보고 싶어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그런 식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두 분은 우리도 그 식물들에 대해서는 연구 중이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카르텔 성 전체에 그 식물들을 심을 수 있을 거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나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더 공부하겠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웃어보였다.



그로부터 3년 후에, 디스트럭션 쿰바가 일어났다.






작가의말


카르텔 인은(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 있지만) 평균 수명이 150세, 엄청 길게 산 사람이 210세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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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X. 집착의 버건디 16.05.20 289 2 7쪽
53 구출 준비 16.05.14 260 2 7쪽
52 침투(3) 16.05.13 347 2 8쪽
51 침투(2) +4 16.04.30 326 3 9쪽
50 침투(1) +2 16.04.29 42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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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잔혹한 데이트(1) +2 16.04.23 316 3 12쪽
47 안녕, 마음아(3) 16.04.22 262 3 7쪽
46 안녕, 마음아(2) +2 16.04.16 306 3 8쪽
45 안녕, 마음아(1) +2 16.04.15 260 3 7쪽
44 보이더(3) 16.04.09 257 3 5쪽
43 보이더(2) 16.04.08 349 4 11쪽
» 보이더(1) 16.04.01 273 4 6쪽
41 습격(3) +4 16.03.26 353 4 6쪽
40 습격(2) +2 16.03.25 266 3 12쪽
39 습격(1) 16.03.19 229 3 5쪽
38 구경(2) +2 16.03.18 320 3 7쪽
37 구경(1) 16.03.12 289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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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겨울 방학의 어느 날(2) 16.03.05 48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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