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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부란 님의 서재입니다.

사이버펑크의 당문문주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무협

불리부란
작품등록일 :
2021.05.16 23:45
최근연재일 :
2021.05.26 23:52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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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43,845

작성
21.05.1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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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7쪽

함정 (1)

DUMMY

사이버펑크.


그것이 이 시대의 이름이었다.





ㅇ ㅇ ㅇ





네온사인과 알록달록한 간판이 강렬한 불빛을 내뿜었다. 뒷골목의 건물 사이로는 전선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고, 이따금 합선된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거리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요란한 모터음을 내는 차가 빛의 잔상을 꼬리처럼 길게 남기며 텅 빈 도로를 질주했다.


짙은 어둠과 네온사인의 빛이 공존하는 거리.


건물의 옥상 난간에 선 유현은 각막에 부착한 증강현실 렌즈를 통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서울. 세계 최대의 할렘. 그 중에서도 사람의 왕래가 적은, 낡은 모텔과 폐건물들이 모여있는 구역이었다.


"준비는 문제 없겠지?"


옆에서 강민이 물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정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민의 제안은 의심스러웠다. 의뢰의 내용은 무언가를 찾아오는 것. 그 보수는 천 만원.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보통이라면 자신같은 말단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의뢰였다.


보통 이런 의뢰는 엿 같은 내용일 경우가 많았다. 그 누구도 하룻밤짜리 하찮은 일거리에 천만원의 보수를 걸지 않는다.


뭣보다, 유현은 강민을 신뢰하지 않았다. 브로커라는 족속들은 원래 신뢰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따금 자신에게 일거리를 물어오곤 했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뒤통수를 칠 놈들이다.


그 사실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유현은 물었다.


"물건이 뭔지는 아직도 얘기해줄 생각 없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도 모른다고."


강민이 답했다.


빌어먹을 놈.


강민은 집요할 정도로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했다. 그 사실이 계속해서 신경쓰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유현은 돈이 필요했다. 2050년이 되어 각국의 정부들이 통제력을 잃고, 온 세계가 난장판이 되는 와중에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었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자리에 서 있는 유현은 다시한번 AR렌즈를 통해 잠입대상을 확인했다. 낡은 모텔. 출입하는 사람은 없었다. 1층에 입구는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강민의 정보에 따르면 문은 굳게 잠겨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뒤쪽도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있다고 한다. 가짜 출입구라는 뜻이었다.


마찬가지로 창문 또한 대부분이 가짜인 탓에, AR렌즈를 통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사전에 내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리스크를 고스란히 진 채로 돌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유현은 강민에게 다른 의문에 대해서 질문했다.


"왜 하필 나지? 이렇게 좋은 보수의 의뢰라면 먼저 할 사람이 한트럭은 있었을텐데."


"그야 네가 풋풋한 버진이라 그렇지."


버진. 강화육체 시술을 받지 않은, 태어난 그대로의 순수한 육체를 뜻하는 말.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롱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아직 총각 딱지도 떼지 못한 풋내기라는 의미였으니.


"너도 알잖아? 신호차폐 처리가 되어있는 보안시설에서는 전자장비가 무력화될수 있다는거. 그런 곳에 싸구려 파츠를 잔뜩 몸에 붙인 놈들을 집어넣으면 그걸로 끝나는거야. 내가 기댈건 너 밖에 없다고."


그 말에 유현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민은 히죽거리는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AR단말기는 안에 들어가면 작동 안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대신 이걸 써."


강민이 내미는 것은 낡은 무전기였다. 유현은 그것을 낚아채듯이 챙겼다. 그리고 돌입 전, 마지막으로 장비를 체크했다. 몸을 감싸고 있는 라이더 수트의 버클도 다시한번 조였다. 그렇게 점검을 마친 유현은 옆에 놓아두었던 총을 들었다. 후크가 장전되어 있는 로프 건이었다.


옆 건물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자, 후크가 발사되며 로프가 그 뒤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멀리서 댕그랑, 하고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후크가 안테나 기둥에 감겼다.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강훈이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유현은 그대로 난간 너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로프를 타고 유현은 순식간에 건물 사이를 이동했다. 그리고 그대로 옥상 위로 뛰어내렸다. 착지는 안정적이었다. 콘크리트 바닥 위를 낙법으로 구른 후에 유현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옥상의 출입구는 단단히 잠겨있었다. 하지만 이미 방법은 준비해 두었다. 강민이 미리 건네주었던 해킹용 모듈을 연결하자 문은 간단히 열렸다.


외관은 낡은 건물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드러난 모습은 최신식으로 마감된 계단과 복도였다. 금속으로 마감된 벽과 천장의 백색광은 마치 연구소의 내부처럼 보였다. 새하얀 백색광은 복도에 그림자 하나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천장의 벤트를 통해서 우웅, 하고 공조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의뢰를 잘못 받았는지도 모르겠군.


이 정도로 공을 들인 건물이라면 그만큼 보안도 철저할 것이 분명했다. 강민 녀석이 어떻게 옥상문의 해킹 코드를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만날 보안 시설도 전부 파훼법을 준비해 두었을 거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공들인 건물에 보관하고 있는 것 또한, 보통의 물건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유현은 신경을 날카롭게 다잡으며 무전기를 켜고 말했다.


"들어왔어."


[그래. 예상대로 AR렌즈의 송신 기능이 차단됐군. 영상 전송이 끊겼다.]


"그러면 진행은?"


[내게 지도가 있어.]


그렇게 말한 강민은 방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따라 유현은 움직였다. 복도를 몇 개 지나고, 또 몇 개의 코너를 돌고, 또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적막함과 동시에, 뭔지 알 수 없는 설비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왔다.


그리고 안쪽으로 향할수록 머릿속의 의문은 깊어져갔다. 대체 이곳의 정체는 뭐지? 복도는 미로같았고, 바닥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돈은 꽤 많이 들인 시설이었으나, 진입은 예상보다 쉬웠다. 지금까지 순찰대 한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뭣보다 궁금한 것은, 대체 이 시설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그런 유현의 의문의 일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1층으로 내려오자, 홀 중앙의 벽에 커다란 로고가 붙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SOLOMON CORP.]


"이런 씨발......."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개새끼야, 솔로몬 코퍼레이션?"


[이봐. 계집애처럼 징징대지 말고 진정해. 일단 물건만 갖고 나오면 끝나.]


물건만 갖고 나오면 끝난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상대가 솔로몬 코퍼레이션이라는게 문제였지.


솔로몬 코퍼레이션. 글로벌 무기개발회사.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블래스터, 강화신체같은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바이러스같은 소프트웨어 형태의 무기까지 개발하고 있는 회사다. 각국의 정부나 군대와도 깊은 커넥션을 갖고 있었다.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것 하나 없는 곳이었다.


그 사실에 유현은 이를 갈았다.


심지어 더 좆같은 것은, 이곳이 솔로몬 코퍼레이션의 숨겨진 연구실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나서도 침착한 강민의 태도였다. 역시 그 개자식은 먼저 알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당장이라도 강민에게 나가면 뒈질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유현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았다. 지금 상황에서 놈과 마찰을 일으키는건 좋은 생각은 아니다. 이미 들어와버린 이상, 여기서 일을 마치고 나가기 위해서는 놈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가면 기필코 갈비뼈 한두개 정도는 꺾어놓을 거라고 다짐하며, 유현은 소리없이 지하 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코너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현은 곧바로 벽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두 개. 무거운 군홧발 소리인걸로 보아, 2인 1조의 순찰자들이었다.


모퉁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유현은, 상대의 발걸음이 가까워지자 잽싸게 튀어나와 한 명의 목줄기를 손끝으로 찔렀다. 컥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순찰자가 무릎을 꿇었다. 유현은 놈의 목을 잡아 꺾었다. 곧바로 나머지 한명이 기계식 팔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휘둘렀다. 유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피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허공에 나풀거렸다.


젠장, 어쩔 수 없군.


조용히 해결하려던 유현은 어쩔 수 없이 허벅지의 홀스터에 꽂아두었던 총을 꺼냈다.


위잉, 하는 충전음과 함께 이온 블래스터가 빛을 뿜어냈다. 쾅, 하고 가속된 빛의 덩어리가 발사되며 충격파로 유현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쏘아져나간 빛이 남은 순찰자의 가슴팍을 때렸다.


쾅 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나간 순찰자의 몸뚱아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복도가 다시 침묵으로 물들었다. 두 순찰자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한 명은 목이 꺾인 채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이온 블래스터를 가슴팍에 맞고 새카맣게 타들어간 채로.


심박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AR렌즈를 빼놓고 왔음에도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유현은 참지 못하고 무전기를 향해 말했다.


"이 씨발놈아, 나가면 넌 뒤졌다."


[알겠으니까 물건이나 챙겨. 거기서 왼편으로 가면 있는 끝 방이다. 카드키는 갖고 있지?]


강민의 말대로 왼편 복도 끝은 문으로 막혀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문과는 달랐다. 한 눈에 봐도 두꺼워 보였고, 옆에는 보안장치가 붙어있었다.


그 앞에 선 유현은 품 안에서 카드를 꺼내 인식기에 댔다. 곧바로 인식기가 IC칩을 읽고 메시지를 띄웠다.


[코드명 : 바알]


[인증 완료.]


그렇게 메마른 목소리의 안내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느낀건 추위였다.


방 안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거쳐온 복도도 충분히 시원했지만, 방 안은 마치 얼어붙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추웠다.


그 안을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은 유현은 한 가운데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무언가를 보관하고 있는 기계장치였다. 원형의 받침대 위에는 원통형의 유리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 장치에 시선을 고정하며 유현은 무전기를 켜고 말했다.


"물건을 찾은 것 같은데, 가져갈 방법을 모르겠어. 어떻게 하면 되지?"


하지만 무전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빌어먹을.


유현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 보관실 안은 무전기 신호마저도 차단하는 모양이었다. 더이상의 코치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한 유현은 조심스레 유리관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살짝 닿은 것 만으로도, 유리관은 자동으로 위쪽으로 움직이며 안에 보관하고 있던 물건을 드러냈다.


주먹만한 크기의 검은색 구. 그렇게 생긴 물건이 허공에 뜬 채 계속해서 회전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한 구가 아니었다. 무언가 미세한 입자들이 모여서 구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구의 형태를 유지하며 입자들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맞을텐데...... 대체 어떻게 옮기라는 거야?"


맨손으로 만지고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모양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폭탄일수도 있었다. 솔로몬 코퍼레이션이 비밀리에 보관하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 때, 보관실의 출입구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우물쭈물할 여유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물건도 못 챙기고 놈들에게 억류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현은 반사적으로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구를 손에 쥔 순간,


검은색 구에서 푸른색 전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런 젠장!"


유현은 욕설을 내뱉었다. 분출하기 시작한 푸른색 전기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보관실의 벽이, 천장이, 그리고 구를 보관하고 있던 보관함이 전기에 닿아 바스러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사태에, 보관실 안으로 뛰어들어온 또다른 순찰자가 전기에 감전되었다. 순찰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재가 되어 무너졌다.


이건 가져갈 수 없다. 당장 버리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손에 쥔 검은 구체는 마치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내던지고 떼어내려 해도 단단하게 손바닥에 붙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구체가 뿜어내던 전기가, 마침내 유현의 몸을 지지기 시작했다.


순간 뿜어져나온 한 줄기의 푸른색 전기가 유현의 왼쪽 눈을 꿰뚫었다. 유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유현이 고통스러워 하는 동안에도,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전기는 계속해서 보관실을 파괴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뿜어져나오던 전기가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제서야 유현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전신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얼굴은 피와 흉터로 물들어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었다.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유현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리를 절뚝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로비로. 로비에서 이층, 삼층으로. 그럴 때마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것이 들려왔다. 순찰자들이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처음 이곳으로 들어올때 통과했던 옥상문으로 나왔다. 뒤로는 순찰자들이 자신을 쫓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는 지척이었다.


유현은 생각할 틈도 없이 옥상에 던져두었던 로프 건을 쥐어들었다. 그리고 맞은편 건물을 향해 발사했다. 그리고 제대로 로프가 감겼는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뒤쪽에서 발사된 이온 블래스터가 유현의 어깨를 강타했다.


눈앞이 캄캄하게 물들었다.


손에서 로프 건을 놓친 유현은 그대로 아래를 향해 추락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쓰레기 수거차 안으로 털썩 하고 떨어졌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갔다.


희미한 시야로 도시의 밤하늘이 보였다. 우중충하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이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유현은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ㅇ ㅇ ㅇ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중장비가 움직이며 무언가를 쓸어담는 소리와, 그르렁거리는 땅울림. 그리고 악취가 느껴졌다. 그 한가운데에서 유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부셨다. 어느새 해가 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도시에서 보기 드문 평원이었다. 주변에 건물이라고는 없었다. 대신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군데군데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도시 외곽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쓰레기 언덕 사이 저 멀리, 도심의 빌딩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대체 내가 왜 여기에......?


그렇게 생각하던 유현의 몸이 덜컹 하며 흔들렸다.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유현은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있는 곳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 그리고 눈 앞에서는 거대한 압착기가 쓰레기들을 빨아들이며 납작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젠장!"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유현은 몸을 일으켜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뻐근했다. 출혈 탓에 눈앞도 빙빙 돌았다. 하지만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저 압착기가 아래에서 뱉어내는 네모 반듯한 쓰레기처럼 납작하게 짓눌릴 것이다.


젖먹던 힘까지 내어 달린 유현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마자, 그대로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동시에 거대한 압착기가 바로 옆에 있던 쓰레기를 빨아들였다.


플라스틱 덩어리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유현은 쓰레기 더미 위를 굴러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뒹군 끝에 바닥에 퍽 하고 쓰러졌다.


유현은 기침을 쿨럭였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방금 굴러 떨어진 탓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젯밤 입은 데미지의 영향이 컸다. 뭔지 모를 검은색 구체에서 뿜어져나온 전기에 감전됐고, 이온 블래스터에도 맞았다. 그 탓인지 모르겠지만 눈앞이 어질거렸다. 마치 감기에 걸린 듯한 오한도 함께였다.


그리고 시야가 좁았다. AR렌즈를 끼고 있던 왼눈. 그곳에는 더이상 아무런 정보도 표시되지 않았다. 대신 새카만 암흑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은 구체가 뿌린 전기로 인하여 눈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망가진 왼쪽 눈으로 한 글씨가 떠올랐다.


마치 AR 렌즈가 띄운 듯한 흰 글자. 처음 보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글자였다.


['독을 보는 눈' 활성화 중.]

[■□□□□□□□□□]

[진행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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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함정 (2) 21.05.17 80 6 13쪽
» 함정 (1) 21.05.16 179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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