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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광 님의 서재입니다.

광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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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광
작품등록일 :
2021.05.31 02:57
최근연재일 :
2021.06.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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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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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995

DUMMY

1. 한강공원 (1995년 10월 말 늦은 밤)


‘삐빅삐빅’


어두운 한밤중 삐삐의 수신음이 들린다.

검은색 모토로라 삐삐를 들어 확인하는 손과 불이 켜진 액정.

‘093000’ 이라는 수신번호가 찍혀 있다.

번호를 확인하더니 삐삐를 다시 뒷주머니에 채우는 흉터투성이 손.


‘팍’ 하고 불꽃을 튕기는 지포라이터.

담배 끝을 태우는 라이터 불꽃.

연기를 쭉 빨아 담배에 불을 피우는 입술.

지포라이터를 탁 닫고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며 들이마셨던 연기를 훅 내뱉는다.


멀리 도시의 불빛들을 뒤로 하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도준의 모습이 번지듯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다.

오른쪽 눈가에 날카로운 상처가 있고, 매서운 눈매에 강단 있어 보이는 분위기.

외모는 곱상하고 선해 보이지만 곁으로 다가가기 어려울 만큼 가시가 돋아 있는 느낌이다.


그 뒤로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덜컹 소리와 함께 거치대에 걸리는 공중전화 수화기.

낡은 공중전화부스에서 나오는 창익의 모습.

큰 키에 조금 마르고 날카로운 느낌의 외모.

왼쪽 귀밑으로부터 턱선 위로 길게 흉터가 그어져 있다.


창익은 멀리 오토바이에 기대어 담배 연기를 피우고 있는 도준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도준 앞에 서서 담배를 한 개비 툭 꺼내 문다.

도준은 한 손으로 지포라이터를 튕겨 불을 붙여 준다.

고개를 숙여 라이터에 담배를 대고 불을 빨아들이는 창익.

곧 거칠게 훅 연기를 뱉어낸다.


창익 - 전달됐어. 내일 밤 아홉 시 반. 사당역 공영주차장.

도준 - 몇 명이나 온대?

창익 - 네가 오라는데, 당연히 다 오는 거지.


피식 웃는 도준.

표정이 왠지 밝지만은 않다.

창익은 오토바이에 오르며 시동을 건다.


창익 - 내일 보자.


도준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담배를 쥔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한다.


해골 모양의 엠블럼이 새겨져 있는 창익의 오토바이, 야마하 TZR250.

적막을 깨고 굉음을 울리며 멀리 도시의 불빛을 향해 사라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는 담배를 털어 버리는 도준.

자신의 가와사키 ZX-7R 라임그린 닌자에 올라 시동을 건다.

연료탱크 옆면에 새겨진 같은 해골 모양 엠블럼.

액셀을 잡아당기는 도준의 손에는 많은 상처와 화상 자국이 있고, 정권 부위에 단단히 굳은살이 잡혀 있다.


출발하는 라임그린 닌자의 거친 굉음.


2. 대만의 방 (심야)


‘지이이잉’


부서질 듯 요란한 진동을 울리며 책상 위를 방황하는 납작한 파나소닉 삐삐.

불이 켜져 번쩍이는 녹색 액정을 우악스러운 손이 덥석 붙잡는다.

그리고 이어 잠이 덜 깬 눈으로 겨우 삐삐를 확인하는 대만의 얼굴이 액정 불빛에 흐릿하게 비친다.


삐삐에는 음성 메시지 수신번호가 찍혀 있고 그 뒤로 ‘8282’ 가 붙어 있다.

다시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하는 대만.


대만 - (갈라진 목소리로) 세 시 반...


삐삐를 탁 놓고는 다시 잠이 든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액정에 불이 들어오며 시끄럽게 진동을 울려대는 삐삐.

대만은 벌떡 일어나 또다시 확인한다.

액정에는 ‘82828282’ 가 찍혀 있다.

그리고 계속 울려대는 삐삐의 수신진동.

연이어 쉬지 않고 연속으로 몇 개의 숫자 메시지가 들어온다.


대만 - 으으...


대만은 힘겹게 일어나 침대 옆에 구겨진 추리닝을 집는다.

간신히 주섬주섬 챙겨 입고 삐삐와 동전 몇 개를 챙겨서 살그머니 방을 나서는 대만.


방을 나서자 펼쳐지는 낡은 주택 마루의 컴컴한 풍경.

한쪽 벽 작은 나무 탁자 위에 다이얼을 돌리는 검은색 구형 전화기가 놓여 있다.


대만 - (혼잣말로) 아, 좀 바꾸자니까 전화기.


소리가 안 나게 조심조심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대만의 뒷모습.


3. 대만의 집 앞


슬리퍼에 추리닝 차림으로 대문을 나서는 대만.

잠기지 않게 문을 살짝만 닫아 놓는다.

그리고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추리닝 지퍼를 올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뛰어간다.


4. 대만의 동네


‘대한수퍼’를 지나고 ‘금성세탁소’를 지나서 다시 주택가 골목을 돌아 ‘쌍둥이비디오대여점’을 지나 뛰어가는 대만의 모습.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 골목.

슬리퍼 끄는 소리를 어수선하게 울리며 대만의 뒷모습이 멀어져간다.


5. 파출소 앞


현판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보광 파출소.’

그 앞에는 버스 정류소 표지판 하나가 삐죽 서 있고 그 옆으로 허름한 공중전화부스가 있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슬리퍼 끄는 소리.

그리고 쫄래쫄래 걸어오는 대만의 모습.

파출소 앞을 지나 공중전화부스로 들어간다.


수화기를 들고 삐삐를 확인하며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는 대만.

번호를 누르자 곧 신호가 간다.


대만 - (몸을 움츠리며) 어우, 추워.


전화를 받지 않자 다시 끊고 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소리샘으로 들어가 비밀번호를 누르자


‘사서함에 한 개의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 삐-’


메시지 - 너 지금 파출소지? 히히히. ‘딸칵’


잠깐의 정적.

상황 파악이 안 된 얼떨떨한 대만.

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대만 - 이 미친 빠가사리 같은 새끼들이. (수화기에 대고)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오밤중 고함 소리에 파출소 문이 쾅 열리며 파출소장이 나온다.

나오더니 공중전화부스 쪽을 바로 돌아본다.


대만은 얌전히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파출소장에게 연신 굽실거린다.


대만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볼록 튀어나온 배에다 흰 양말 위로 갈색 슬리퍼를 신고 있는 모습의 파출소장.


파출소장 – 어이, 거기 학생. 오밤중에 뭐 하는 거야?

대만 – (잔뜩 쫄아서) 네? 아... 그게... 급하게 삐삐가 와서요...

파출소장 – 삐삐? 뭔 급한 일이길래 소리까지 지르고 그래?

대만 – 그게... 지금 파출소냐고...

파출소장 – 뭔 소리야? 술 마셨어?

대만 -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아뇨! 저 술 마셨어요!

파출소장 – 마셨다고?

대만 – (허둥지둥) 힉! 그게 아니라 마셨다고요. 아니, 안 마셨다고요!

파출소장 – 자네! 이리 와봐.


대만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우물쭈물한다.

멀리서 봐도 이대로 달아날까 말까 갈등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


파출소장 – 어허, 이리 오라니까!


그때 멀리서부터 한 무리의 낯선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금세 그 광경 앞으로 여러 대의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울리며 쏜살같이 지나간다.

요란한 머플러의 소음과 자욱한 매연.

시끄러운 소리에 돌아보는 대만과 파출소장.


끊이지 않고 지나가는 폭주 패거리의 오토바이들.

그리고 그 폭주 패거리 중 한 명이 파출소 문에다 주먹만 한 돌을 집어 던진다.

‘퍽’ 하고 와장창 깨지는 파출소 문짝의 유리.


그에 대만도 파출소장도 깜짝 놀란다.


파출소장 - (큰소리로) 야 이 미친놈들아!


파출소장은 순간 흥분해서 신고 있던 슬리퍼 한 짝을 집어던진다.

그런데 하필 그 슬리퍼가 폭주 행렬의 맨 끝에 달려 막 경찰서를 지나던 폭주 패거리1의 머리에 탁 맞고 만다.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멈춰서는 폭주 패거리1.

그러자 앞서 달리던 폭주 패거리들이 뒤를 돌아보더니 서로 클랙슨을 울려대기 시작한다.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시끄럽게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들.

그러자 일제히 멈춰서 경찰서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폭주 패거리의 오토바이들.


‘우르르릉’


오토바이들의 낮은 엔진음들이 마치 늑대 무리의 으르렁거림처럼 들려온다.

시커먼 밤거리를 가득 메운 채 수십 대의 오토바이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그런데 폭주 패거리들은 파출소장이 아닌 대만에게로 몰려든다.


그리고 시동을 끄지도 않은 채 오토바이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폭주 패거리들.

길바닥에 떨어진 갈색 슬리퍼를 주워들고는 다가와 대만 주위를 에워싼다.

그중 눈매가 매서운 폭주패1이 대만의 코앞까지 바싹 다가와서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폭주패1 – (슬리퍼를 대만의 얼굴에 들이밀며) 이거 네가 던졌냐?


대만은 억울한 표정으로 파출소 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파출소장은 어느새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없다.


한숨을 푹 내쉬는 대만. 그리고는


대만 – (차분한 목소리로) 어. 그러게 왜 경찰서에다 돌을 던지고 그래?


대만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음을 짓는 폭주 패거리들.

그리고 그 패거리 중, 뒤쪽에 서서 혼자 심각한 얼굴로 그런 대만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폭주 패거리 리더.

매섭게 생긴 인상에 키가 크고 덩치가 다부져 보인다.


폭주패1 – 이 새끼가 미쳤나? 야, 뒤지고 싶냐?

대만 – 왜? 경찰서 앞에서 사람 치게?

폭주패1 – 허! 아가, 니가 어려서 세상 물정 잘 모르는구나?

대만 – 지랄하네, 민증도 안 나온 새끼들이.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죄다 욕을 먹는 거야, 이 양아치 폭주족 새끼들아.


‘착’


대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위치블레이드를 꺼내 칼날을 펴는 폭주패1.

바로 대만을 쑤시려 팔을 내려 뻗으며 칼날 끝을 비스듬히 세워 올린다.


폭주패1 – 한 마디만 더 해봐, 새끼야.


그러자 분위기가 더욱 차분해지는 대만.


대만 – (폭주패1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감당할 자신 있냐? 먹여 봐 한 번.


곧바로 대만을 찌르려 확 올라가는 폭주패1의 스위치블레이드.


그 순간 뒤에서 폭주패 리더의 커다란 손이 폭주패1의 어깨를 턱 붙잡는다.

그에 휙 뒤를 돌아보는 폭주패1.

폭주패 리더는 폭주패1의 귀에 뭔가를 조용히 속닥인다.

그러자 휘둥그런 눈으로 휙 대만을 돌아보는 폭주패1.


그러더니 폭주 패거리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잠시 숙덕거리기 시작한다.

대만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곧 갈색 슬리퍼를 던지듯 툭 내려놓고 말없이 돌아서 가 버리는 폭주 패거리들.

폭주패 리더는 대만을 한 번 더 유심히 바라보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 자신의 오토바이에 오른다.


‘부르르릉’

‘부아아앙’


각자의 오토바이에 올라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는 폭주 패거리들.

요란한 굉음들이 컴컴한 밤거리를 가득 채운다.

그 소음들과 함께 테일램프의 잔영만을 남긴 채 멀어지는 폭주 패거리의 오토바이들.


잠시 후, 파출소의 깨진 유리문 뒤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파출소장.

그 뒤로 두 명의 파출소 대원들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텅 빈 새벽 거리의 고요한 풍경.

아무도 없다.

대만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파출소 문 앞을 내려다보는 파출소장.

아까 집어던진 갈색 슬리퍼가 깨진 유리 파편 사이에 얌전히 놓여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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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9 쏘말
    작성일
    21.06.16 02:57
    No. 1

    파사 너무 재밌게 봐서 와봤는데 드라마 대본보는거 같아 제 취향은 아니네요. 파사 좋은글 부탁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화광
    작성일
    21.06.16 10:58
    No. 2

    감사합니다.
    끝까지 잘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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