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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판타

부부싸움은 칼과 총으로 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86미혼남
그림/삽화
호랑이띠 미혼남
작품등록일 :
2022.09.11 17:01
최근연재일 :
2022.10.23 13:52
연재수 :
6 회
조회수 :
286
추천수 :
1
글자수 :
35,478

작성
22.09.11 17:03
조회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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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 가족의 탄생

DUMMY

7선 의원 권두왕. 전직 당 대표는 물론, 장관과 국회 의장도 지냈다가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국가 권력을 뒤에서 조물조물 주무르는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실세. 그리고 그의 외동 아들 권사양. 표면적으로는 중견 포워딩 기업 B의 대표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정체는 바로 아시아를 뒤흔드는 마약왕이다. 코드명 적토마. 남미에서 생산되는 마약을 아시아 전역에 공급하는 글로벌 범죄 조직의 끝판 보스! 오늘 내가 처리해야 하는 타겟이 바로 마약왕 권사양이다.



그간 그의 그림자만 쫓아 허비한 시간이 4년. 실종되거나 죽어 나간 요원이 열명. 큰 희생을 치르고 서야 마침내 오늘, 인천공항으로 입국 후 바로 인천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첩보를 확보했다. 마약왕 적토마를 토벌할 천재일우의 기회!



단 한발, 그가 항구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순간. 단 한발로 그를 죽여야 한다. 나는 고독한 스나이퍼. 한발의 탄과 타겟이 노출되는 0.1초의 시간만 있다면 그 어떤 목표물도 처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나이퍼다. 대업을 위해, 지금 위치한 엄폐 장소에서 36시간째 타겟을 기다리는 중이다. 낡고 더러운 부두의 창고 건물 위 슬레이트 천장 속, 엎드려 쏴 자세로 소변도 그대로 흘리며 타겟을 기다린 지 벌써 36시간째.



물론 기계처럼 단련된 나 역시도 사람인지라 극한 상황으로 치닫다 보면 몰려오는 배고픔과 졸음을 이겨 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혹독한 훈련을 반복한다면 인간의 욕구 따위는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정신과 육체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생수 한통으로 일주일을 살아낼 수 있는 능력과, 짧은 눈 깜빡임 한번으로 충분한 수면 효과를 얻는 방법을 결국 체득해버렸다.



깜빡.



방금처럼 말이다. 이제 곧 타겟이 온다.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음? 그런데 이상하군. 분명히 낮이었는데 왜 갑자기 어두워진 것인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그러니까··· 깜빡 졸았다는 거네?”



나처럼 고도로 훈련된 특수요원은 살기를 느낄 수 있다. 생존 본능이 극에 달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자연스레 발현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살기와 적의. 온 몸의 세포가 내지르는 비명! 누군가 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존 본능의 신호!



“아니지. 깜빡 졸은 게 아니고, 그냥 처 잤네? 그치?”



나를 죽이고자 하는 강렬한 살기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국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야,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봐. 적토마가 항구에 도착한 게 14시 47분이었고, 항구를 떠난 시간이 16시 28분이었어. 너가 말한 그 ‘깜빡’하기 직전이 14시 41분 즈음이고, ‘깜빡’해서 깬 시간이 22시 20분이면··· 이건 그냥 꿀잠 아니냐? 너 뭐 어디 에이스 침대 위에서 저격하고 있었어? 어? 이 새끼야, 말해보라고.”



나에 대한 분명한 적의와 살기. 하지만 그 대상이 직장 상사라면 내가 취할 수 있는 생존 방법은 단 하나였다. 1) 시선을 내리깔아 발끝을 쳐다본다. 2) 입을 ㅂ자로 굳게 다문다. 3) 무릎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인다. 4) 최대한 처량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사죄한다.



“··· 죄송합니다.”



허름한 사무실, 낡은 책상, 요란스레 삐걱거리는 의자. 그 의자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국장. 국장의 얼굴은··· 미처 마주볼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시뻘개져서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알을 잔뜩 부라리고 있겠지.



“죄송? 죄··· 하아···”



아닌가? 오늘은 어째 평소와 달리 국장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노발대발시발하며 소리를 치고 난동을 부리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 이건 혹시 국장으로 위장한 적국의 스파이가 아닐까? 하여 힐끗 고개를 들어 국장을 쳐다보았다.



힐끔.



고개를 들자마자 국장의 시뻘건 두 눈알과 내 눈이 마주쳤다.



‘아, 맞네. 우리 국장이네?’



시선을 마주친 나는 이 어색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최대한 공손히, 해맑게, 송구함을 담았으면서도 나의 죄를 사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살인 미소를 날려주었다.



빵긋.



“오? 살인 미소네? 살인 미소야. 그래 분명히 네가 먼저 살인 미소를 날렸다?”



그런 내 미소를 본 국장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조용히 손만 움직여 책상 아래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



그리고는 군에서 영관급이상 장교들에게 지급되는 k5 권총을 꺼내 장전했다.



철컥.



“코드명 마이쮸. 아니, 봉길아.”



“넵, 국장님! 아니, 일춘이 혀엉···”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지가 벌써 18년째다.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나 들었던가. 생사고락을 함께한, 가족보다, 피보다도 진한 관계. 그게 바로 국장과 나, 일춘이 형과 윤봉길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이정도 작전 실패는 조용히 타이르고 끝내줄 수도 있는 관계. 근데 총은 왜 꺼냈지?



“우리 그냥 명예롭게 순직하자.”



음, 권총에 안전 장치도 풀었네? 저거 위험한데? 어? 어어··· 잠깐만!



“명예롭게. 순직하자, 이 새끼야.”



탕! 탕! 타당! 탕탕!



“으아아악!”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국장을 피해 나는 당장 몸을 웅크려 바닥을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국장님! 살려주세요! 으가가각!”



“죽어! 죽어라! 명예롭게! 이 새끼야!”



탕! 타다당! 탕!



철컥- 철컥-



총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다가 탄환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정적이 감도는 국장실 안에는 매캐한 화약냄새만이 짙게 퍼지고 있었다. 그동안 소리를 지르며 볼품 사납게 바닥을 뒹굴던 나는 국장실이 잠잠해지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에서야 슬쩍 고개를 들어 국장을 살폈다.



무언가 거대한 고통을 감내하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의 팔은 천장을 향해 뻗어 있었다. 휴, 다행이다.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었구나··· 그는 내가 아닌 천장을 향해 발포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국장실 문을 똑똑 두드려 노크했다. 그리고는 곧 덤덤하고도 굵직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국장님. 죽이셨습니까?”



한솔이 목소리다! 이제야 진짜 구원자가 나타났다. 한솔이는 나와 함께 가장 오래 지낸 후임으로, 생사가 걸린 특수 임무를 수십번이나 함께해온 전우이자 동료이자 형제였다. 게다가 국장이 가장 좋아하고 신임하는 에이스 요원이기도 했으니, 나는 속으로 한솔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솔아, 나 진짜 죽게 생겼어! 국장님 좀 말려줘!’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한솔이의 질문에 국장은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아직까지도 천장을 향해 있던 총 쥔 팔을 천천히 내리며 대답했다.



“후우, 아니. 못 죽였다.”



“칫···”



국장의 말에 문밖에서 짧게 혀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한솔이가 당장 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구해주기를 다시한번 간절히 기도했다. 아니, 이번에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니까 텔레파시 정도는 우습게 통할 수 있을 거다!



‘도와줘, 한솔아! 국장님 좀 말려줘!’



“그렇다면··· 제가 할까요?”



잠깐의 텀을 두고 들려온 소리. 응? 뭘? 뭘 네가 해?



그제야 국장도 나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아니. 됐다.”



라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흠, 아쉽네···”



하는 소리가 문밖에서 멀어지며 들렸다.



한솔이 이 새끼! 내가 지 맞선임인데! 내가 지 목숨도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 나를 이렇게 취급하다니! 이따가 국장실 밖으로 나가기만 해봐! 특무단의 기강이 아주 당나라 군대가 되었잖아! 내가 나가기만 하면 내 아래로 전부다 집합이다, 이 새끼들!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국장이 말했다.



“마이쮸 기상.”



“기상!”



나는 벌떡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국장도 자리에 앉아 양팔을 세워 깍지를 끼고는 그 위로 턱을 괴고 있었다.



“일단, 우리 작전은 실패다. 적토마 포획 작전은 폐기하고 설계부터 다시 시작한다. 원인은 너 때문이다. 그래서 근신이다. 우리 쪽에서 다시 연락 줄때까지 방구석에서 얌전히 대기해. 용산에 기웃거리지 마라. 혹시라도 근신 기간동안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조준사격을 할 테니까.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서 너의 보직이 변경될 수도 있고 해임될 수도 있다. 그건 나라도 카바 못쳐. 윗선에서 통보가 올테니까. 어떤 일이든 달게 받도록.”



“늬에···”



내가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국장 관자놀이 부근에 있던 혈관이 다시금 굵어졌다.



“대답 똑바로 안 해?!”



“넵!”



“나가.”



“넵!”



나는 대답을 한 뒤, 슬쩍 경례도 붙이고는 뒤로 돌아 국장실을 나가려 했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어쩐 일인지 국장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야, 봉길아.”



“넵!”



나는 나서다 말고 몸을 돌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국장을 바라보았다.



“봉길아, 너··· 전역할 생각 없냐? 진지하게 말이야.”



윽! 국장의 말에 발끈해서는 이 아저씨가 또 전역을 입밖으로 낸다며 역정을 내려던 순간, 국장의 표정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안이 가득한 저 표정. 하아···



“국장님. 아시겠지만 제가 특무대 훈련병으로 선별되었을 때가 여섯 살이었습니다. 훈련 마치고 정식 요원으로 전입 왔을 때가 열 여섯이었고요. 그때, 심층 면접하면서 국장님이 저에게 하셨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인터폴도 아니고 CIA도 아니고 국정원도 아니다. 친인척도 형제도 없이 버려진 아이들이며,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아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죽는다 해도 아무도 모를 그림자들이라고요. 그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각오가 되었냐고 물어보셨었죠? 저 그렇게 지금까지 의심없이 시키는 일들 다 하면서, 동료들 먼저 보내고 개똥밭을 구르면서도 살아남다 보니 이제 벌써 서른 여섯입니다. 이런 제가 용산을 나가면 어디서 무얼 하고 살겠습니까?”



내 말에 국장은 뭐라 대꾸가 없었다.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나는 국장실을 나오려 문을 열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집에서 얌전히 훈련하고 단련하며 근신하겠습니다. 제가 고안해낸 특수 훈련은 인간의 기본 욕구인 배고픔과 졸음을 극복해낼 수 있는 정신 재무장의 훈련으로···”



“나가.”



“넵.”




*




홀로 남겨진 국장이 인상을 썼다. 그의 이마에도 이미 진하게 자리잡은 주름이 여러 개였다. 왼쪽 가슴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방금 문을 열고 나간 후줄근한 등판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코드명 마이쮸, 현재 이름은 윤봉길. ID는 KBB860117YS4578. 국장은 애써 떠올리지 않았던 <그 사건>이 떠올랐다.



‘국장님! 이게 맞아요? 그 어린애가 죽으면 진짜로 세상이 좀더 살기 좋아지는 거라는 거! 예? 말 좀 해보세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의미 없는 살인이 아니라고! 최고 권력자 입맛에 맞는 사냥감을 물어오는 사냥개가 아니라고 말하라고요! 우리가 하는 일이 진짜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짓이라고 말해주세요!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말 좀 해달라니까! 제발! 일춘이 형!’



그날 봉길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꼴로 울고 있었다. 아니, 절규를 하고 있었다. 평소 절대 입에 대지 않던 술에 잔뜩 취해서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자신을 붙잡고 오열했다.



<그 사건>이후로 봉길이는 망가졌다. 더 이상 사냥을 하지 못하는 사냥개로.



작전은 실패했어도 저격에는 실패한 적 없던 그였다. 100%라는 믿기지 않는 실력. 세계 최강의 스나이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스나이퍼가 저격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면···



“후우.”



국장은 짙은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국장실 안에는 이미 화약냄새와 담배냄새가 가득 뒤섞여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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