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차백만잔의 서재

풀 메탈 레드후드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녹차백만잔
작품등록일 :
2022.12.25 22:26
최근연재일 :
2023.02.15 00:18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87
추천수 :
0
글자수 :
45,909

작성
23.01.30 00:03
조회
15
추천
0
글자
12쪽

vs 알로하 아메리카 (6)

DUMMY

12. 알로하 아메리카



의식이 돌아왔을 때 레드는 한기를 느끼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추워······. 그리고 난 지금 의자에 묶여있나 본데.’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로하 아메리카의 부하들과 싸우면서 건물 내부를 대강 파악했으니까.


‘이정도라면 엄지손톱에 아래 붙인 칼날로 끊을 수 있겠는걸.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가죽 자루에 담긴 무언가로 얻어맞고 기절. 묶인 채로 냉동창고에 끌려왔다. 거기까지가 레드가 당장 파악할 수 있는 정보였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알로하 아메리카는 눈을 감고 기절한 척하고 있던 레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와이어 팔찌도, 총기도, 나이프도 빼앗겼다.

강철 구두도 벗겨진 탓에 바닥으로부터 냉기가 그대로 올라왔다.

그나마 손톱 밑에 날이 달린 걸 들키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어난 거 알고 있으니 눈이나 뜨고 얘기하지. 남의 부하 다 죽여 놓은 채 잠이나 퍼자고, 아주 바쁜 여고생이네.”

“여고생은 한창 성장기라 잠이 많이 필요하거든.”


레드는 가볍게 혀를 차며 눈을 떴다.

그러자 얼어붙은 채 커튼처럼 늘어서 있는 냉동육과 공군 재킷을 걸친 알로하 아메리카의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상에. 영화에서 볼법한 구질구질한 재킷이다 싶더니, 진짜 독수리까지 붙어 있잖아.”

“독수리는 폭발 다음으로 멋지지. 자유의 상징이잖아.”

“응. 여고생치곤 최악의 선택인 거 같아. 잘도 70년대스러운 걸 입고 다니네. 혹시 배신한 이유가 돈이 아니라 사내 따돌림?”

“없었거든?”


알로하는 유독 강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공군 재킷하고 독수리는 최고의 조합이야. 너희도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되겠지.”

“그러는 그쪽도 별로 나이 든 거 같진 않은데. 동갑 정도?”

“역시 젊게 보이는 건가. 현역 여고생의 눈으로 확인된 거라면······.”

“아, 근데 역시 옷 센스는 별로야. 못해도 40대 같아.”

“씌잉······.”


알로하의 어깨가 눈에 띄게 처졌고, 레드는 거기에 말로 된 비수를 꽂아 넣었다.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촌티 나는 걸 입어?”

“너무해······. 아, 아니. 이게 아니라!”


눈물을 글썽거리나 싶던 알로하는 머리를 싸매 쥐며 괴로워했다.


“제길, 여고생 입자의 부작용인가. 감정조절이 안 되잖아.”

“여고생 입자? 깊게 개입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거 여자한테만 효과 있는 거 아니었어?”

“후후후, 알고 싶나?”

“아니. 딱히. 남자든 여자든 죽으면 다 같아. 말하자면 양성평등?”

“정말 비협조적인 애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래.”


여고생 입자의 영향으로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다는 알로하의 말은 진짜인 것처럼 보였다.

본래라면 더 심한 말과 욕설도 인사처럼 오가는 게 그녀들이 사는 세계다.

굳이 백 소사이어티까지 예로 삼을 필요도 없다. 길거리를 쏘다니는 불량 학생에게 말을 걸면 이보다 심한 대사는 얼마든지 나온다.

한밤중에 담배를 태우는 청소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교육적 이상과 일탈은 둘 다 현실이다.

그러니 장난스레 던진 시시한 말에 알로하의 감정이 상할 리가 없다.

하지만 정작 알로하는 3단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트린 아이처럼 울상을 지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로 슬픈 표정에 마음이 흔들린 레드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알았어. 질문해주길 원해? 그럼 다른 걸로 할게. 굳이 날 살려둔 이유가 뭐야? 아까 기절했을 때 숨통을 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하. 그래, 그게 궁금했다 그거지?”


언제 울었냐는 듯 거만하고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이는 알로하.

레드의 눈에는 자기보다 한두 살 어린 귀여운 동생처럼 보이는 모양새였지만, 이번엔 말을 아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유리 공주의 손녀에게 손을 대는 건 바보나 할 짓이지.”


정부도 성가신 짓을 했다. 알로하는 그렇게 말하며 뒷목을 긁었다.


“넌 이번 거래가 끝나면 유리 이바노프와의 거래재료로 쓴다. 이왕 잡았으니 써먹어야겠지. 큭큭. 유리 공주와 앨리스를 맞붙게 하는 것도 좋겠어.”

“할머니하고, 거래?”


알로하는 겁을 줘보겠다고 악랄한 미소를 지었지만, 정작 레드는 미친 듯이 폭소를 터트렸다.


“뭐, 뭐야? 유리 공주라고 무적일 거 같아? 무장 국가의 앨리스는 백 소사이어티에서도 손꼽히는 갱단귀족이라고?”

“아니, 아니. 상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레드는 눈물까지 조금 나올 정도로 시원하게 웃고는 알로하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꿈이 야무지다 싶어서. 할머니 상대로 거래가 잘도 성사되겠다.”

“가봐야 알지.”

“알고 있어? 동화 속 노인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게 일이야.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늑대를 찢어 죽이는 괴물이지.”


반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로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뿐이었다.

유리 공주. 유리 이바노프.

백 소사이어티의 살아있는 악몽으로, 밴시나 사신 같은 설화 같은 존재로 취급되기도 하는 괴인.

일단 유리 이바노프와 협상하겠다고 말은 호탕하게 한 알로하였지만, 그 이름에 두려움을 안 느끼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한테 협상 같은 건 통하지 않아. 진지하게 추천하는 건데, 오래 살고 싶으면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알로하에게 죽음을 예고하는 레드의 눈은 할머니를 향한 광신에 가까운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 참. 너 하나 까먹었더라?”

“까먹었다니?”


알로하가 감이 잡히는 게 없다는 얼굴을 하자, 레드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난 네가 두려워하는 괴물의 손녀야. 죽일 기회를 놓친 걸 후회하게 해줄게.”



***


13. 라운드 2



“허, 참. 기세 탔다고 당돌하게 말하네. 근데 얘야.”


알로하는 엄지로 중지를 모으더니, 그걸로 레드의 코를 튕겼다.

스파이로 훈련된 요원의 근력과 여고생의 유연성이 합쳐진 일격은 채찍과 같았고, 레드의 코에서는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얏!”

“후회했으면 애초에 여자가 됐을 때 후회했을 거란다.”

“성별에 되고 안 되고가 어딨······. 당신 설마?”

“호, 머리는 나쁘게 생겼으면서 눈치는 빠르구나. 그래! 나는······.”

“알고 보니 자기가 40대 아저씨라고 착각하는 미친 여고생이었던 거야? 세상에. 일상생활 괜찮아?”

“그런 상또라이가 부하들 데리고 영국부터 한국까지 와서 물건 팔아먹고 앉았겠냐 이 빡대가리야!”


질 낮은 도발이었지만 효과적이었다. 핏대가 솟구칠 정도로 격노한 알로하는 옆에 걸린 냉동육에 가죽 주머니를 휘둘렀다.

레드는 알로하가 모래주머니를 쥐고 장난치는 것 정도라고 판단했지만, 곧바로 평가를 수정했다.

소리가 달랐다.

평범한 여고생이 모래주머니를 들고 휘둘러선 절대 나올 수 없는 굉음.

갈고리에 걸린 냉동육은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결국 반으로 찢어져 냉동창고 구석까지 날아갔다.

레드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가물가물했지만, 자료에 있던 알로하는 괴력을 앞세우는 타입이 아니다.

장기로 내세우는 건 폭파. 부비트랩 따위를 활용한 심리전.

힘보다는 머리를 쓰며, 폭약으로 부족한 힘을 보충하는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알로하는 자기 부하를 몰살시킨 레드를 부비트랩으로 유인해 포획하지 않았던가.

그런 폭약의 엑스퍼트가 감정이 격해지자 진정할 기미도 없이 마구잡이로 힘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백히 이상 사태였고, 조금 전 대화를 되짚어 보면 새로운 정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고생 입자는 단순한 회춘약이 아니다. 사람을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만들며, 통제를 잃게 만든다’라는 정보에 말이다.

섬세한 사전 작업이 필요한 폭약 전문가가 이성을 잃는다는 건 명백히 디메리트.

언변을 조금만 구사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알로하의 자멸로 유도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 아이는 레드.

전설의 슈퍼 용병의 손녀답게 상식의 궤에서 벗어난 전투력을 가졌지만, 머리는 유감스럽다. 몹시 유감스럽다.

그리고 그런 머리로 도달한 결론은······. 현장에 있지도 않은 정보 담당을 향한 불평이었다.


‘렉스웰, 일 너무 대충 했네! 돌아가서 두고 보자!’


그렇게 알로하의 심리를 파고들 절호의 찬스를 놓친 사이, 알로하는 심호흡을 반복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후후···호호호. 오호호호호. 위험했네. 위험했어.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건물째로 날려버릴 뻔했지 뭐야.”

“아.”


그제야 절호의 찬스였다는 걸 깨달은 레드. 물론, 기회는 이미 지나간 뒤였다.



“후후후, 그래. 성별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지? 그래. 여고생 입자는 여성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그래서 나는······.”

“···뗀 거야?”


레드가 ‘답’에 도달하자 알로하 아메리카는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YES! I AM!”

“미쳤네···. 의뢰주 쪽에서 못 찾았던 게 이유가 있었어. 그야 대뜸 성전환을 해버렸으면 흔적을 추적하기 어려웠겠지.”


레드는 어처구니없단 걸 봤다는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묶여있었을 손으로 말이다.

그리고 침착함을 되찾은 알로하가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뭐? 너, 밧줄은 어떻게 푼 거야?”

“아차.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손이 멋대로 나와 버렸어.”

“이익, 와이어도 나이프도 총도 구두도 빼앗았는데 아직도 무기가 있었다고?”

“온몸이 무기인 건 남자만이 아니거든.”


더 숨길 것도 없었다. 레드는 손목 스냅을 더해 발을 묶은 밧줄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손톱 아래에 칼날을 숨겼던 거로군······.”

“아는 네일샵 언니가 해줬어. 놀랐으려나? 나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아마추어는 없거든.”

“헤, 그래봤자 임시방편에 불과하겠지.”

“후회하게 해준다 했지?”


용수철처럼 튀어 나간 레드는 맨발로 서리 위를 달렸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고, 엄지 끝으로 알로하의 경동맥을 노렸다.

하지만 그건 눈속임.

날붙이를 경계한 알로하의 심리를 손가락에 집중시키려고 일부러 내민 손이다.


“크윽?”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충격이 알로하의 명치에서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무릎이다.

얇지만 하드하게 단련된 다리가 알로하의 명치에 쐐기처럼 박힌 것이다.

진동이 전신으로 퍼진다. 호흡을 방해하고, 안으로부터 출혈을 유발한다.


“FUCKING MORON BITCH!”

“I’m fine. thank you.”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영어 회화 후, 레드는 내밀었던 손으로 갈고리에 붙든 고기를 붙잡았다.

얼어붙은 냉동육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꽉 쥔 손을 중심축 삼아 공중에서 반 바퀴 회전.


“···and fuck you!”


이번에 구사한 건 팔꿈치. 백스핀 엘보우.

노리는 건 알로하의 관자놀이!

그대로 적중했다면 치명상이 확정되는 그때, 알로하는 피를 토하며 포효했다!


“까불지 마 썅년아!”


콰앙! 망치로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이 레드의 전신을 흔들었다.

호흡조차 어려웠을 상황에서 힘을 쥐어 짜낸 알로하의 강권이 레드의 갈빗대에 직격한 것이다!

공격은 알로하의 것이 먼저 적중했고, 레드의 백스핀 엘보우는 뇌를 흔드는 게 아니라 피부를 조금 찢은 걸로 그쳤다.

냉동육과 함께 2미터가량 뒤로 날아간 레드는 고기를 파고들었던 손가락을 빼내며 자세를 다잡았다.

들고 왔던 무기는 모두 빼앗겼다. 갈빗대에 직격한 부상도 심상치 않다.


“라운드 2.”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여고생의 활력을 빼앗지는 못했다.


“이번엔 죽여줄게.”




[고정후기]
카카오페이지 완결작
'도시괴담: 이름짓는 신의 마을'과
'iD off-마인드 게임'도 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풀 메탈 레드후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vs 알로하 아메리카 (8) 23.02.15 12 0 15쪽
7 vs 알로하 아메리카 (7) 23.02.15 10 0 13쪽
» vs 알로하 아메리카 (6) 23.01.30 16 0 12쪽
5 vs 알로하 아메리카 (5) 23.01.22 19 0 13쪽
4 vs 알로하 아메리카 (4) 23.01.16 24 0 12쪽
3 vs 알로하 아메리카 (3) 23.01.08 28 0 12쪽
2 vs 알로하 아메리카 (2) 23.01.01 31 0 13쪽
1 vs 알로하 아메리카 (1) +1 22.12.25 48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