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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먹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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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다르
작품등록일 :
2023.11.13 23:03
최근연재일 :
2024.01.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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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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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변방 중의 변방.


야욕 넘치는 제국이야 본인들의 땅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제국민은 커녕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지역이나 다름 없는 곳.


그러나 땅은 얼어붙지 않았고, 강은 메마르지 않았다. 어딜 둘러봐도 초목이 붙어있고 생명이 살아 숨쉰다.


욕심 넘치는 제국이라면 입맛을 다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런 조건을 가진 땅이었지만, 이 곳을 거니는 고대 시대의 잔재들은 제국의 발걸음을 끊게 만들었다.


대수림.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의 삶을 사는 엘프들이 무리지어 사는 공간은 욕심 많은 인간들의 발걸음을 오랜 기간동안 차단해왔다.


다만 모든 것을 차단하진 않았다. 대수림의 초입에는 엘피렐이라 불리는 인간들의 마을이 있었으니.


엘프들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는 마을이자, 극도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도 몇 없는 이름 있는 마을이었다.


과거엔 제국의 요청을 받아 엘프들과 회담을 열었을 정도로 왕성했던 곳이지만, 폐쇄적인 엘프들의 성격 탓인지 최근에는 엘프들이 도통 나오는 일이 없어 점점 쇠락해져갔다.


루카는 그런 엘피렐에 몇 없는 젊은 피였다.


“루카! 오늘도 숲에 들어가는 거냐?”

“네, 그러려고요.”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고. 그러다 엘프들한테 잡혀간다.”

“그렇게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래. 너도 사냥꾼인데 어련히 잘 하겠지.”


루카는 사냥꾼의 자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냥꾼에게 주워져 길러진 자식.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최소한의 걸음마를 뗄 즈음에 주워졌고, 그게 벌써 12년 전의 일이었으니 어림잡아 13살에서 14살이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


제국의 기준에선 아직 성인이 채 못된 미성년자였지만, 엘피렐에선 한 명의 성인이나 다름 없었다. 인구 자체가 별로 없는 변방에선 굉장히 흔한 일이었고, 루카도 이에 큰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어차피 사냥꾼이 자신을 주워주지 않았다면 초목들 사이에서 엉엉 울다 죽었거나, 무서운 육식동물에게 물려가 잡아먹혔을테니.


그러니 루카 자신이 끝끝내 살아남아 숲 속을 누비는 것은 이 땅을 굽어살피는 여신의 은총이겠지. 정작 그는 신을 믿진 않았지만.


“어젠 이 쪽을 살펴봤으니까 오늘은 이쪽으로.”


루카는 마을 주변의 동태를 주기적으로 살폈다. 이 근처는 루카가 자기 안방처럼 드나들던 곳이라 위험이랄게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였다.


사냥을 위해 깔아둔 덫이 멀쩡히 있나 확인할 필요도 있었고.


다행히 루카 본인이 깔아둔 덫들은 멀쩡히 있었다. 사람이 걸린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애초에 이런 복잡한 길목으로 올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잘 나있는 길을 놔두고 괜히 위험한 길을 택할 멍청한 사람은 없을테니까. 어디서 죄를 짓고 도망친 부랑자가 아니라면.


생각해보면 엘피렐에는 제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부랑자 같은건 없었다. 같은 변방이라고 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엘프에 대한 소문이 접근을 막았는지.


어느 쪽이건간에 루카는 마을에 그런 부랑자가 오지 않기를 바랬다. 루카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죄인들이 이런 변방까지 도망치면 생기는 일에 대해 오고가며 들은게 있었기에.


“이쪽 상태는 괜찮고. 저기는··· 손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루카는 자신이 설치해둔 덫 하나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았다. 평소였다면 팽팽하게 곡선을 이뤘을 식물줄기들이 흐트러져 있었으니까.


조심스래 발을 움직인다. 혹시라도 덫을 건드린 상대가 아직 주변에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별다른 기척은 느끼지 못했지만, 대수림의 특성상 루카 정도의 사냥꾼을 속일만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마력의 농도가 높은 이 곳에선 동식물들도 마력에 따른 변화가 큰 편이었으니까.


그나마 대수림의 초입은 그런 경향이 덜했지만, 미리 조심한다고 해가 될건 없으니 루카는 사냥꾼에게서 배운 방법으로 소리와 숨을 동시에 죽인 채 다가갔다.


툭 끊어진 식물줄기와 그걸 이용해서 만든 덫. 대충 살펴보니 몸집이 좀 되는 생명체가 줄기를 끊고 움직였다.


줄기 근처에 찍힌 난잡한 발자국은 그 상태를 온전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루카가 추측하기론.


“···나보다 큰 성인 남성. 근데 몸집 자체는 그리 크진 않아.”


루카는 본인의 추적술을 크게 믿진 않았다. 애초에 그를 가르쳐준 사냥꾼부터가 자신은 추적술 같은건 잘 모르고 대충 감 잡히는 대로 체득했다고 했으니, 루카 본인도 사냥꾼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그나마 사람의 발자국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큰 특징이 있었으니 눈치를 챘을 뿐.


그래도 바닥의 눌린 자국이나 자국의 굳음 정도, 숲의 상태를 고려해보면 언제쯤 여길 벗어났는지를 대강 알 수는 있었다.


오래 전에 찍힌 발자국은 아니었다. 아무리 멀어도 하루 전이었고, 가깝다면 2시간 정도. 새벽 이슬이 땅을 온전히 적시고 굳기 시작한 시간 즈음에 찍힌 발자국으로 보였으니, 가도 멀리 가진 못했을거다.


대수림은 외부인에게 그리 친절한 곳은 아니니까.


다만 루카는 발자국의 행선지가 조금 걱정됐다. 어째 엘프들의 서식지로 가는 방향과 똑 맞아떨어져서 괜히 활이나 맞고 엘피렐로 오는건 아닐까 싶어서.


근데 어쩌겠는가. 활 맞고 싶지 않으면 잘 나있는 길을 통해 마을에 먼저 왔어야지.


그래도 발자국의 보폭이 심각할 정도로 어지럽진 않은걸 보니 도망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됐지.


루카는 의문의 남성 때문에 지저분해진 덫을 다시 정비하고, 남아있던 진한 흔적을 자연스래 지웠다. 이래야 덫에 걸릴 동물들이 덫 근처에 다가왔을때 의심하지 않을테니까.


다만 흔적을 지우고 덫을 다시 정비하는덴 시간이 꽤 걸렸다. 덫을 꾸미는데 사용하는 식물이 워낙 억세기도 했고, 하필 가벼운 몸으로 나온터라 장비가 별로 없었으니까.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덫이 잘 작동할진 모르겠지만, 작동하면 좋은거고 아니면 마는거다.


어차피 몸집 큰 녀석들이 힘으로 밀어 붙이면 박살날 덫이니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다.


사냥꾼으로써 할 일은 대충 끝냈다. 사냥꾼이라고 매일 같이 동물 잡아다가 고기를 구워먹진 못하니, 아쉽게도 오늘은 미리 비축해둔 것을 대충 구워다 먹는 수 밖에.


그마저도 엘프들 때문에 눈치 보면서 불을 피워야하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물론 엘프들이 마을까지 직접 찾아와서 루카를 감시하는건 아니지만, 사냥꾼이 얘기하길 엘프들은 대수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고 있으니 과한 욕심은 부리지 말라고 했었다.


아마도 그건 동물을 과하게 잡으면 엘프들이 루카를 점찍어두고 확인한다는 뜻이겠지. 대수림에서 편안히 살아가려면 그럴 일은 없어야했다.


“슬슬 돌아가자.”


머리 위에 떠있던 해도 점점 기울고 있었다. 숲의 밤은 지나치게 빨리 찾아오니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어두운 숲 속 사이를 거닐어야했다.


루카는 대수림의 사냥꾼이었지만, 밤의 숲은 그조차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없는 마경에 가까워서 그는 빨리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다만 그에게도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할 고민이 있었는데, 그건 오두막으로 돌아갈지 마을에 마련된 집으로 돌아갈지였다.


보통 사냥꾼은 마을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숲 한가운데에 따로 마련한 오두막에서 먹고 지내며 동물을 사냥하는 편이었는데, 하필 루카를 거둬준 사냥꾼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최근 루카는 오두막에 있는 일보다 마을에 있는 일이 더 많았다. 사냥꾼을 간병할 사람이 없는건 아니었지만, 숲의 동태를 얘기해줄 사람은 루카 밖에 없었으니까.


평소 같았으면 별다른 고민도 없이 마을로 돌아갔겠지만, 루카는 아까 덫을 헤집어 놓고 간 발자국이 자꾸 머리 속에 아른거렸다.


혹시 그 자가 엘프의 영역까지 들어가 그들의 화를 사는건 아닐까 해서.


그랬다간 엘피렐의 입장도 조금 난처해진다. 사냥꾼인 루카가 가장 먼저 나서서 그 남자의 행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엘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건 촌장이겠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건 사냥꾼의 일이었다. 엘피렐의 사냥꾼들은 오래 전부터 그런 역할을 맡아왔다.


고민이 길어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가 정적을 흐트렸고, 루카는 한가지 선택을 내렸다.


“···오두막으로 가야겠네, 오늘은.”


겁도 없이 대수림에 들어온 남자를 찾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를 해친다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감시만 하다 길을 잃었을때 길을 안내할 뿐.


엘피렐의 사람들 말고도 대수림에 출입하는 사람은 종종 있어왔고, 루카도 몇 번 감시를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은 미궁과도 같은 숲 속에서 길을 잃다가 루카와 사냥꾼의 도움으로 빠져나가기 마련이었지만, 글쎄.


사람 일이라는게 매번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루카는 그걸 몹시 잘 아는 소년이었으므로, 일단은 평소와 같이 사냥꾼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남자가 위험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도망쳐 마을에 알려야겠지만, 루카는 부디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랬다. 애초에 대수림은 위험한 사람이 찾아올 만큼 매력적인 장소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루카는 오두막에 잠시 들러 장비를 챙겼다. 어쩐지 상황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모아둔 물품도 조금 챙겼다.


남자의 행방을 빨리 찾는다면 쓸 일이 없겠지만, 밤이 어둑해지면 분명 필요한 일이 있으리라.


금방 돌아올진 모르겠지만, 돌아왔을때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해 오두막 한켠에 비치된 화구에 작게 불을 올렸다.


길면 삼일까지도 불씨가 유지된 채로 안을 따뜻하게 뎁혀준다는 사냥꾼의 말이 잠시 떠올랐지만, 아무리 일이 복잡해져도 그 전엔 돌아올 것 같았다.




*




아쉽게도 루카의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아까 봐뒀던 발자국의 행선지로 천천히 걸어갔지만, 발자국은 어느 구간에서 툭 끊겨있었다.


혹시 근처에서 쓰러진걸 누군가 발견해서 데려간건 아닐까 싶었지만, 발자국 이외엔 땅이 짓눌린 흔적 같은건 없었다. 엘프들이야 자기들 안방이나 다름 없는 대수림이니 굳이 흔적을 지우지도 않을테니 흔적이 끊겨버린건 루카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일이었다.


“뭔가 이상해.”


쫓아야 할 상대가 사라지다니.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루카는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우선 생각했다.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보통 외부에서 대수림을 찾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엘프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찾아오거나, 혹은 개인적인 연구나 지적 호기심을 위해 찾아오는 경우.


둘 다 썩 반기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루카는 제발 숲에 찾아온 남자가 후자가 아니길 바랬다.


엘프들은 자신들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단순히 내쫓는다. 하지만 숲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에 대해서 파헤치려는 자들은 쉽사리 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엘프가 살생을 하지 않으며 긴 세월을 자연에서 거니는 요정이라 생각하겠지만, 정작 대수림에서 살아가는 루카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엘프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살생을 피하는 편이지만,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살생을 최대한 피하는건 인간도 딱히 다를게 없었다.


그러니 어느 면에서 본다면 인간보다 더한게 엘프겠지.


루카는 어릴 적에 숲 속에서 만났던 엘프를 떠올렸다. 감정이 풍부하고 웃는게 예쁜 엘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만나본 적이 없었다.


대신 인간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긴 세월을 숲 속에 유폐당할거란 짧디 짧은 소문만 들었을 뿐.


그래서 루카는 제발 숲에 들어온 사람이 평범했으면 했다. 어둠 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길 바랬고, 자신이 찾았을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공포에 휩싸여있었으면 했다.


바깥의 사람을 쫓다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숲의 밤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어도 이런저런 식물과 커다란 나무들이 먼 거리를 볼 수 없게한다.


주로 낮에 움직이는 동물들은 몇몇을 빼곤 위험성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밤에 움직이는 동물들은 대부분 위험하다. 루카조차도 마주치면 곧장 도망가야할 사냥꾼들이 많았다.


그래도 주머니에 챙겨온게 있어서 시야 문제는 큰 문제가 안됐다.


루카는 푸른 빛이 옅게 감도는 꽃잎을 뜯어 질겅질겅 씹었다. 씁쓸한 맛이 입 안을 가득 메워서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침으로 억지로 삼켰다.


그러자 루카는 눈이 조금 따끔거리는걸 느꼈다. 야명화의 효과가 금세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복용하면 실명에 이르지만, 약간을 복용했을땐 눈 앞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숲의 밤을 거닐땐 반드시 들고다니는 것이었다.


대신 안좋은 점도 있었다. 야행성 동물들의 눈이 으레 그렇듯, 루카의 눈도 어둠 속에서 조금씩 빛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빛이 없는 상태에선 사람의 흔적을 찾는다는건 불가능했으니까.


다행히 루카는 끊겼던 흔적을 다시금 찾았다. 발길이 향하는 방향은 엘프의 영역.


좋지 않았다. 이 이상 들어가도 정말 괜찮은건지 알 수 없었지만, 엘프들도 남자가 무작정 숲을 헤집는 것보단 루카가 데려가는걸 더 반길거다.


하아-

루카는 옅게 한숨을 내뱉곤 숲 깊숙한 곳으로 점차 발을 옮겼다. 한편으론 마을에 있는 사냥꾼의 생각을 하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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