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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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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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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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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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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8화 감추는 재미

DUMMY

538화 감추는 재미


“음? 저기, 청나라 사람들이 아닙니까?”


제물포에서 이제 막 한양으로 들어온 좌의정 이성구가 이르는 말에 주청사 김류는 고개를 돌려서 그가 말하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과연 그가 말한 것처럼 일단의 무리가 철원 방향을 향하니, 청나라 사람들 특유의 복색을 한 이들이 말에 올라 달리고 있었다.


멀어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류는 이성구보다 한 가지 더 사실을 알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국이라는 두 글자가 보인 걸 보니 아무래도 보국친왕 전하가 돌아오신 모양입니다.”


그가 본 깃발에 적힌 두 글자를 입에 담은 김류는 그들과 함께 돌아온 명나라 함대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허허, 이렇게 보니 실감이 납니다그려.”

“무슨 실감 말씀입니까?”

“명과 청이 실로 역사에 남을 일을 경쟁하고 있다는 실감 말입니다.”


김류가 하는 말에 이성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그들과 함께 돌아온 명나라 선단이 대항해를 위한 선단이라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가 보다 할 뿐 딱히 실감은 없었고, 무슨 일이 있겠나 싶은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떠났던 보국친왕이 도로 왔다는 말에 이번 일이 작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느끼니 이성구는 저들이 출발한 제물포 방향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허참, 이거 초장부터 양측 기싸움이 상당하겠습니다.”

“그러게 말입, 응?”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하던 김류는 자신들 쪽을 향해 다가오는 큰 행렬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가 그것이 무슨 행렬인지 앞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알리니 그들은 당장에 가던 길을 멈추었다.


“세자 저하께서 행차하시는 중이오! 세인들은 길을 비키시오!”

“저하께서!?”

“아무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가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대항해를 갈 이들을 격려하는 일도 포함되겠지요.”


김류가 이르는 말에 이성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이 하면 좋은 일이나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리는 쉬이 움직여서야 곤란하니 저들이 한양에 와서 만남을 청한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굳이 나아가 맞이하는 건 곤란했다.


“저하께서 오신다! 다들 옆으로 비켜서라!”


자신들도 고관이며 어명을 받아 가는 길이나 상대는 더 높으며 마찬가지로 어명을 받았다.


더불어서 이쪽은 이미 일을 끝내어 보고하는 일만 남았으나 저쪽은 급히 가야 하는 쪽이니 길을 비키는 것이 도리에 맞으니 이성구의 말에 사람들은 재빨리 길옆으로 비켜 도열했다.


이들이 그렇게 비켜서니 상대 쪽에서도 알아보았는지 잠시 멈추니 곧 소현세자가 제 가마인 연(輦)에서 나와 그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두 분 대감, 오랜만입니다.”


본래는 영의정인 김류가 더 높은 품계이나 그는 사직한 사람이고 이성구는 현직이었다.


하여 이성구가 먼저 나서서 입을 떼니 김류 역시 말을 맞추었다.


“예, 저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강녕하셨습니까.”

“이 사람은 건강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소현세자는 이들이 누구와 함께 왔는지 알고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래, 명나라 선단 대표는 누굽니까?”

“전부터 조선에 여러 번 오간 태감 장화입니다.”

“장화라. 얼굴은 잘 모르지만 이름은 여러 번 들었지요.”


윤휴가 올린 보고는 한양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외조에도 닿곤 했다.


하여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들은 것이 아니라 보았다고 이름이 옳겠지만 소현세자는 물론이고 말을 듣는 두 사람 역시 그러한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다른 것을 물었다.


“저하, 청나라 사람들이 철원에 가는 것을 보았는데 예전에 가까이 계시던 분이 돌아오신 모양입니다.”

“명나라에서 알면 조금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할까요?”


이성구에 이어서 김류가 이르는 말에 소현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국친왕 전하가 이번 대표라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성왕 두 분이 함께할 것이라고 하나, 그분들은 심양에서 직접 선단을 이끌고 오느라 제물포에서 합류하실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보국친왕께서는 철원에 계신 예친왕께 인사를 올리러 먼저 들리셨지만 말입니다.”


간단히 상황을 이른 소현세자는 이어서 김류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명나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건 생각지 않는다고 하여도 한 가지, 이성왕들이 얼굴을 보일 것이니 말입니다. 그들 한때 명을 섬겼던 이들이며 지금은 청에 돌아선 자들이니 말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김류가 다시금 물으니 소현세자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구려. 잘 풀릴 것이니, 그들이 서로 불쾌할 일은 아마도 없을 거외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한데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니 이성구와 김류는 든든한 마음이 드는 한편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기서 더 무어라고 해도 과한 참견일 따름이니 두 사람은 그저 고개 숙이며 응원할 따름이었다.


“살펴가십쇼. 저하께서 훌륭하게 하실 거라고 의심치 않습니다.”

“저하라면 부족한 저희보다 훨씬 현명하고 지혜롭게 처신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에 소현세자는 무안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두 분 대감이 이리 내게 금칠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그려.”


그러나 그도 잠시 슬쩍 다가온 내관이 무어라 속삭이니 소현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허면 두 분 대감, 나중에 다시 뵙지요. 말하고 싶은 건 산더미나 시간이 허락지 않으니 부득불 나중으로 미뤄야겠습니다.”

“나랏일에 어찌 사감으로 말하겠습니까.”

“저희는 언제고 찾으셔도 괜찮으니 저하께서는 개의치 않고 국사를 우선하십쇼.”


각각 최대한 예의와 진심을 담아서 이르는 말에 소현세자는 다시 연에 올라서 갈 길을 재촉했다.


“출발하라!”


호령과 함께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니 이윽고 행렬은 이성구와 김류 일행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성구는 돌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허, 그런데 저하께서 쓰시는 연이 전에 보던 것보다 좀 큰 거 같습니다.”

“그래요?”


이성구가 이르는 말에 이미 멀어져 잘 보이지 않게 된 연을 다시금 살폈다.


그러나 이미 멀어진 탓인가, 김류에게는 잘 구별이 되지 않았으니 그는 이내에 대수로지 않다는 투로 말을 덧붙였다.


“뭐, 근래 조선 팔도에서 사정 나아진 이들이 한둘입니다. 왕실도 그러하니 연 하나나 둘 정도는 조금 바꿀 수도 있겠지요.”



***



“하하, 이거 상당히 재밌습니다.”


바깥이 보이는 구조라고 하나 온전히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니 사람 하나가 몸을 깊이 누이고 천을 슬쩍 덮으면 바깥에서는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몸을 숨긴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가 싱글거리며 말하니 소현세자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게 여기시니 실로 다행입니다.”

“여기다니, 그 정도가 아닙니다. 진짜로 재밌다니까요. 제가 철원에 거하면서 그래도 귀가 어느 정도 트였으니 오가는 조선말 한두마디는 주어들을 정도는 됩니다.”


두어 마디를 이른 예부슈는 이어서 그것보다는 더 안다고 하듯 말을 이었다.


“들으니 저들은 내가 철원에 간다고 여기나 실상은 제물포로 가고 있으니, 사람들 눈을 피하는 재미가 생각보다 좋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말이니 소현세자는 웃음만 지을 뿐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예부슈 역시 그러한 사정에 아는지, 아니면 그저 한때의 기분인지 그 일은 더 말하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적어도 일 하나는 제대로 되고 있음을 알았으니, 조선의 세자께서 말씀하시는 게 좀 그럴듯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참으로 다행이군요. 이러한 일은 본디 관련자 모두가 함께 달갑게 여길 때에나 유효한 법이니, 전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제가 보기에 일이 반절은 이미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럼 남은 반절은 명나라 사람에게 달렸다?”

“그렇습니다.”


예부슈의 말을 부정하지 않은 소현세자는 가만히 눈을 들어서 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이 느린 행렬이며 기다림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겁니다.”



***



“대인, 소인 사가법입니다.”

“들어오게.”


허락과 함께 안으로 들어선 사가법이 안으로 들어왔으나 태감 장화는 하던 일에 매진하여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미 장화가 어떠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 아는 사가법은 기분 상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는 물었다.


“차이가 여전히 크신 모양입니다.”

“그렇게 크진 않아. 세월이 세월이니 작은 차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어서 그렇지.”


사가법이 묻는 말에 대답한 장화는 제가 살피던 두 해도, 오래된 명나라의 해도와 만든 지 오래지 않은 마카오의 해도를 내려놓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조선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조선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에 장화는 몸을 단정히 하고 다시 물었다.


“외조 정랑이냐?”

“아닙니다. 그가 보내긴 했으나, 직접 오진 않았습니다.”

“흐음.”


직접 오지 않았다는 말에 장화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충 대답했다.


“무슨 용무더냐? 대단치 않은 일이라면 그냥 그대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그것이 잘 판단이 서지 않아 찾아뵈었습니다.”

“판단이 되지 않아?”


사가법은 이번에 대항해를 기획하며 대학사 양사창이 천거한 이였다.


본디 경력도 적지 않은 그가 환관의 부관으로 오는 일을 달가이 여기지 않을 거라고 여겼건만 그는 기이하게도 개의치 않고 수락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부관으로서 훌륭하게 일을 해내곤 했다.


맡기었다면 굳이 장화가 되돌아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말이다.


또한 나이도 있고 본래 지위가 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보기에는 단박에 벼락출세한 것으로 보이는 장화를 대함에도 절제하며 대하여 썩 마음에 들게 구는 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판단이 되지 않는다며 찾아왔다고 하니 장화는 심드렁함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자세히 말하게.”

“말은 대단치 않았습니다. 그저 ‘대인께서 바라시는 일에 만남이 필요할 거 같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만남, 만남이 필요하다고.”


사가법이 이른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던 장화는 이내에 눈을 빛내며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대인?”

“나가야겠다. 그대도 함께하겠나?”

“제가 말입니까?”


조선 관리와 만나는 일에 자신만 보내거나 장화 홀로 가는 일은 있어도 함께 하는 일은 없던지라 사가법은 살짝 당황했다.


그에 장화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싫으면 거절해도 상관없네. 하지만 당금 명나라 고관직을 맡으려면 조선과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는지, 그들과 어떻게 대할지는 반드시 익혀야 할 소양이 될 걸세.”

“실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겠지요.”


이미 나라가 많이 기울어서 단숨에 회복하는 일은 꿈속의 꿈이라는 걸 사가법은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이 그러한 것을 굳이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여긴 사가법은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니 지금 이 자리에서는 드러내도 된다고 여기며 아쉬움이며 언짢음을 얼굴에 가득 비쳤는데, 그걸 본 장화는 피식 웃었다.


“뭐, 마음에 차지 않는 건 알겠네. 하지만 오늘은 참는 게 좋을 거야. 아무래도 오늘 보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은 그대보다 열 배는 귀한 이일 터이니 말이네.”


자신보다 열 배는 귀한 이를 보게 될 거라는 말에 사가법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더욱 크게 드니, 그는 과연 그런 이가 누가 있겠는가는 생각을 품으며 대답했다.


“허락하여 주신다면 이 사가법, 감히 동행하고 싶습니다.”

“좋군. 그럼 갈까.”


장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걸으니 그는 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객이 주인을 기다리게 하면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려운 법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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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7 14 12쪽
564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115 15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106 10 12쪽
562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119 12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114 11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114 13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113 13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131 14 12쪽
557 556화 죽은 말 +2 24.04.17 129 14 13쪽
556 555화 없으면 만든다 +1 24.04.16 121 14 13쪽
555 554화 경쟁은 예정을 뒤튼다 +1 24.04.15 128 14 12쪽
554 553화 선택할 자유 +2 24.04.14 118 14 12쪽
553 552화 진위는 때때로 필요에 따라 정해진다 +2 24.04.13 125 12 13쪽
552 551화 사성 +2 24.04.12 122 15 13쪽
551 550화 무엇을 잇고자 하는가 +1 24.04.11 118 13 12쪽
550 549화 그들은 가지고 있다 +2 24.04.10 125 15 14쪽
549 548화 사람을 보는 순서 +1 24.04.09 130 16 13쪽
548 547화 알아서 골치 아픈 일 +3 24.04.08 125 15 11쪽
547 546화 부탁하는 방식은 가지가지다 +2 24.04.07 126 13 12쪽
546 545화 끝없는 궁리 +1 24.04.06 136 14 13쪽
545 544화 족적을 남기는 것은 대의만이 아니다 +2 24.04.05 138 13 14쪽
544 543화 꾸며낸 형상 +2 24.04.04 126 13 12쪽
543 542화 후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3 24.04.03 127 14 11쪽
542 541화 원로 +1 24.04.02 132 14 12쪽
541 540화 세 경쟁자 +2 24.04.01 139 13 14쪽
540 539화 목패 협약 +4 24.03.31 129 13 16쪽
»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34 14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25 13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24 13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2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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