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K : Born to Kill

웹소설 > 일반연재 > 드라마, 공포·미스테리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8.04.17 21:31
최근연재일 :
2018.05.09 19:35
연재수 :
7 회
조회수 :
995
추천수 :
0
글자수 :
33,226

작성
18.04.17 21:34
조회
305
추천
0
글자
10쪽

전율을 느끼다 1

DUMMY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의 짜릿했던 전율과 나를 휘감았던 무서울 정도로 섬뜩했던 소름을 기억한다. 그날 내 인생이 결정되었다. 나는 진정한 나를 찾았다. 그 느낌은 뭐랄까? 마치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아니,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순간의 짜릿했던 전율이 아직도 내 안에 감돌고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강력한 전류가 관통한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느꼈던 감동과 카타르시스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1


아비는 술주정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알코올중독자였다. 아비는 술에 의지해 살아갔다. 술은 아비에게 산삼보다 더 귀한 영약이었고,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비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매일같이 취해서 돌아와 어미와 나를 때렸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저 제 좆 꼴리는 대로 지랄 발광하는 것에 불과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하듯이 아비의 폭력은 오로지 그날그날의 기분에 달린 문제였다.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누군가와 싸워도,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그 책임은 온전히 어미와 나에게 있었고 우리는 그 대가를 치러야했다.

어미의 얼굴은 성할 날이 없었다. 눈두덩인 항상 퍼렇게 물들어있었고 입가는 부르터있었다. 그 때문인지 어미는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웬만해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어미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져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미가 마음 놓고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미의 얼굴엔 항상 음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었다.

어미는 바보였다. 아비의 그 모진 술주정을 다 받아주고, 매일같이 두들겨 맞고,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내뱉지 못했다. 대들어 보지도 못했다. 아비의 거친 주먹을 피해 달아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울어 보지도 못했다. 아비의 성화가 무서웠던지 그저 눈물만 찔끔찔끔 흘릴 뿐이었다. 가끔씩 부엌에서 눈물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는 장면을 목격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뿐이었다.

어미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지 반항 한 번 못하고 고통을 속으로만 감내했다. 그런 어미의 모습이 난 무척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그날도 아비는 어김없이 취해서 들어왔다. 잔뜩 취한 상태로 거칠게 문을 열어 제치고는 온갖 트집을 잡아 어미를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끄덩이를 잡아끌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두들겨 팼다. 솥뚜껑 같은 손으로 우악스럽게 머리채를 틀어쥐고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더러운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질을 했다. 어미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자 검게 때 묻은 더러운 발로 마구 짓밟았다. 어미의 입술이 터지고, 시뻘건 핏물이 뿌려졌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더 심했다. 아마 노름판에서 돈을 몽땅 잃은 모양이었다. 아비는 술을 좋아하는 만큼 노름도 좋아했지만 따는 법은 없었다.

아비는 그 분노를 어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어미의 입에선 비명이 터졌고 이내 신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모습에 아비는 더욱 성이 났던지 기절한 어미의 몸을 마구 짓밟았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아비에게 달려들었다.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온 건 거친 주먹세례와 발길질뿐이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몰랐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방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아비의 코고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어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미에게 다가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비에게 맞은 통증이 전신 구석구석에서 몰려왔다. 뼈마디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나는 어미를 흔들었다. 어미는 쉽사리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어미를 깨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아무리 흔들어도 어미는 깨어날 줄 몰랐다.

설마 죽은 것인가?

왈칵 두려움이 일었다. 나는 어미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다행히 어미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어미의 얼굴에 뿌렸다. 그러자 어미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픈 심정이었다.

정신이 든 어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온통 퉁퉁 불어터진데다 말라버린 핏물이 얼굴 전체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었고 흘러내린 핏물이 어미의 가슴 섶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던 어미가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렸다. 어미가 나를 쳐다보았다. 어미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듯 그렁그렁한 눈물과 처량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어미는 손을 들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곤 한숨인지 탄성인지를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 아비를 바라보았다. 어미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코를 골며 잠든 아비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비의 앞에 선 어미의 눈이 빛났다. 나는 어미가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장박동이 거세졌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설렘이기도 했고 바람이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어서 해! 망설일 필요 없어. 빨리! 지금이야. 지금이 기회야. 다시없을 아주 좋은 기회라고. 어서! 어서!’

하지만 어미는 아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이불을 꺼내 아비를 덮어주었다. 그리곤 나를 꼭 안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어미가 싫었다. 너무도 바보 같은 어미가 미웠다. 어쩌면 아비의 폭력은 이런 바보 같은 어미로 말미암아 나날이 더욱 더 심해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미는 나를 끌어안고 몸을 뉘였다. 나는 어미의 작고 여린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어미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어미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었다. 아비에게 맞는 꿈을 꾸었다. 아비는 꿈에서까지 나와 어미를 때렸다. 아비에게 쫓기다 뒷덜미가 잡히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깨었다.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밤은 깊었고, 밖은 고요했다. 보름달의 서늘한 푸른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어미의 얼굴은 괴기스러웠다. 어미는 악몽이라도 꾸는지 가끔씩 흠칫흠칫 놀라며 뒤척였다. 꿈속에서도 아비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지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살려달라고 빌면서 나직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아비의 코고는 소리는 여전했다. 가끔씩 숨이라도 넘어갈 듯 컥컥거렸다. 나는 이대로 숨이 멈추기를 빌었다. 하지만 내 바람은 그저 헛된 기대로 끝나고 말았다. 아비는 이내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았고 오뉴월 그늘아래서 늘어지게 잠든 개새끼마냥 신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방안은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잠들기 전에 어미가 깨끗하게 치웠을 테지만 오늘은 어미도 많이 고통스러웠었나 보다. 방안은 아비가 난장질을 한 상태 그대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난 아비가 방 꼴을 보고 어미를 질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쑤셨다.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책들과 필기구들을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필통 속에 잠자고 있어야할 칼이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연필을 깎는 지극히 평범한 칼이 어두운 방 안에서 왜 유독 선명하게 비쳐졌는지 모르지만 나는 칼을 들어 조심스레 칼날을 밀어 올렸다. 드르륵 소리가 나직하게 울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나는 손가락 끝을 칼날에 가져다대었다. 살짝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베이고 말았다. 날카로웠다. 새로 산 칼날이라 그런지 날이 제대로 서 있었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시뻘건 핏물이 달빛을 머금고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손가락을 빨았다. 핏물이 혀를 적시고 목젖을 할퀴며 침과 함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찝찌름한 맛과 비릿한 향이 싫지 않았다.

손가락을 빨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저편에 아비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비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누가 업어간다 해도 모를 정도로 세상모르게 깊이 잠들어있었다.

나는 어미를 돌아봤다. 어미의 숨결은 고르게 퍼지고 있었다. 어미가 잠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숨을 죽이며 천천히 무릎걸음으로 아비에게 다가갔다.

아비의 목울대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외국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에겐 관람이 허락되지 않는 폭력물이었지만 동네 형들 틈에 끼어서 본 적이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평이했지만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주인공이 적의 목울대를 날카로운 칼로 따버리고는 핏물을 뒤집어 쓴 채 미소 짓고 있는 잔인한 장면이었지만 내겐 신선한 자극제와 같았다. 경동맥이 잘린 적의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지던 핏물의 아름다운 번짐을 기억해냈다.

아비의 울대는 규칙적으로 울렁거렸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조심스럽게 칼끝을 아비의 목을 향해 뻗었다. 칼을 쥔 손이 가볍게 떨렸다.

‘떨 필요 없어. 긴장하지 마. 이미 한 번 해본 일이잖아.’

그랬다. 나는 이전에도 이런 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아비의 폭력은 나를 서서히 파괴하고 있었다. 내 속에서 분노와 광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K : Born to Kill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 소름이 돋다 2 18.05.09 90 0 10쪽
6 소름이 돋다 1 18.05.08 79 0 11쪽
5 살의가 꿈틀댄다 2 18.04.26 112 0 9쪽
4 살의가 꿈틀댄다 1 18.04.25 139 0 10쪽
3 전율을 느끼다 3 18.04.19 137 0 13쪽
2 전율을 느끼다 2 18.04.18 133 0 11쪽
» 전율을 느끼다 1 18.04.17 306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