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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위험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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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나무
그림/삽화
숲속의 나무
작품등록일 :
2024.05.07 15:09
최근연재일 :
2024.06.03 12:1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13
추천수 :
9
글자수 :
120,699

작성
24.05.17 09:22
조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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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7화-뜨거운 눈물

DUMMY

아마도, 나는 평생 저런 주인공이 되지 못하겠지.


괜스레 이유 없는 슬픔 같은 게 마음을 파고든다.


하지만, 괜찮아.


상상 속에서는 나도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스르륵 눈을 감아 본다.


그러자, 젊은 남녀가 많이 모여 있는 평화로운 파티장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눈부시게 예쁜 드레스를 입은 내가 보인다.


부끄러워 고개 숙이며 구석에 멀뚱히 서 있는 나에게, 한 남자가 정중히 다가와 손을 내밀며, 춤을 신청한다.


얼굴을 들어 살짝 바라 보니, 모든 여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동화 속 왕자처럼 멋있고 젠틀한 남자가 미소 짓고 있다.


이런 순간이 내게도 오다니.


내 얼굴은 기쁨으로 발그스레 해진다.


어느새 나는 여자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화려한 조명 아래 그 멋진 남자와 함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왈츠를 추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미로운 시간이다.


남자의 완벽한 리드를 받으며, 나는 가슴을 쭉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뱅글뱅글, 나풀나풀 우아하게 춤을 춘다.


"춤을 무척 잘 추시네요. 내일도, 모래도, 영원히 당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뜨거운 입김을 훅 불어 넣으며, 남자가 귓속말로 속삭인다.


달콤한 그 말에 관통당한 내 마음은 둥글게 둥글게 파문이 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빠른 템포로 흐르는 리듬에 맞춰 남자가 다시 안정감 있고 경쾌하게 나를 이끈다.


빙글빙글 돌던 남자가 파도타기 하듯, 가깝게 내게 다가오다가 다시 멀어지더니, 어느새 노련하게 내 등 뒤로 가서 백허그를 한다.


그 섬세한 터치에 내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다시 온몸으로 유연하게 리듬을 타고 춤을 추던 남자가 이번엔 번쩍 나를 돌려세운다.


수줍은 듯 살포시 벌어진 내 입술을 보던 남자의 입술이 점점 내 얼굴에 닿아오더니, 돌연 내 하얀 목덜미를 가볍게 깨문다.


앗, 황홀한 그 감촉,


너무 뜨거워.


맥박이 빨라지고 숨이 막힌다.


"...괜찮습니까?"


어렴풋이 들려오는 건조한 목소리.


이 목소리가 아닌데?


잠자다 깨어난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눈을 뜨고 보니, 흰 셔츠에 반짝이는 회색 조끼를 입은 웨이터 복장의 남자가 서 있다.


아, 상상 너머로 사라져 버린 멋진 남자여....


이제 남루한 현실로 되돌아왔구나.


그래.


그건, 나같은 사람에겐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꿈이었어.


허망하게 부서진 꿈에서 깨어나 어리둥절한 채로 앞에 있는 남자를 살핀다.


"저는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만,...손님께서는 왜 여기에 계시는지?... "


웨이터가 나의 차림새를 빠르게 스캔하더니, 먼저 물었다.


"...하도 추워서요...잠깐 피하려다...."


뒤늦게 현실 파악을 한 채,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이아린씨 사인을 받으려는 건 아닌 거죠?"


"네? 이아린씨가 누군데요?"


"요즘 떠오르는 핫한 국민 여배우를 모르시다니, 저 안에 계신 분이잖아요."


웨이터가 갸우뚱거리며, 눈짓으로 커다란 창 안을 가리킨다.


갑자기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며, 그제야 바짝 다가가 창 너머에 있는 여자를 본다.


아까 부러워하며 바라보던 여자구나.


그 배우 역시 빤히 내 쪽을 쳐다보고 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에서 바라본 여자의 눈빛은 무척이나 당돌하고 으스스했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이쪽을 보고 있는 건데?


지금 내가 너한테 구경거리가 된거야?


어디서 거지 같은 게 나타나서 행복한 이브날 내 기분을 더럽게 하고 있네.....


국민 여배우라고 했던가?


이아린은 커다란 눈으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앉아 있는 그곳은 안온하고 따뜻한 실내라서 모르시겠지만, 바깥인 이곳은 바람도 세차고, 몹시 몹시 춥거든요.


보시다시피, 눈도 그치지 않고 펑펑 내려서, 추위와 눈을 좀 피해 보려다, 여기까지 왔던 건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리도, 차림새가 거지같은 여자가 나타나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슬금슬금 훔쳐보는 게 기분 좋지는 않으셨군요.


그렇다면, 미안해요.


창 너머로 읽혀지는 그 눈빛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


'이제 그만 갈게요.'


그 여배우에게 짧게 눈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계속 등을 보이며 앉아 있던 남자가 흘끗 내 쪽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기웃기웃거리던 나도 멍하니 남자를 쳐다보았다.


쌍커풀 없는 가느다란 눈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슈트 차림의 남자는 전형적인 조각 미남은 아니었지만, 얼굴선이 단정하고 뭔가 서늘한 매력을 풍겼다.


그런데, 돌연 나를 보던 남자의 동공이 커졌다.


그러다가, 점점 눈빛이 매서워지면서 냉혹하게 변했다.


'왜 저래?..... 살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눈빛이야.'


그러면서도, 초라한 모습으로 나는 비굴하게 애써 웃음을 보였다.


이런 내 반응이 남자의 그 무엇을 건드렸는지, 남자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경멸을 드러내며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


저 눈썹!


저 얼굴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누구지?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길 가다 스쳤던 얼굴인가?


아니면,


근무 중 만난 고객?


아닌데.


아니야.


하아!


그래!


생각났어.


지난여름 공원에서 만난 백수!


맞다.


맞아.


그때 참으로 무더운 여름밤이었어.


더위를 피해 늦은 저녁.


별생각 없이 집을 나와 동네 뒷 산에 갔다가, 아무도 없는 캄캄한 숲에서 술 취한 사람을 만나 크게 봉변당할 뻔했는데....


나를 구해줬던 그 사람.


그 백수.


그러고 보니, 그날.


집 열쇠도 잊어버려 다시 미친 듯 뛰어가서 오만 원도 빌렸었는데.


아직까지 갚지 못했구나.


근데, 그 사람 확실히 백수 맞아?


자기 입으로 백수라고는 말 하지 않았잖아.


말은 안 했어도, 아마도 그럴걸.


그러니, 내가 자주 산책할 때, 할 일 없이 아무 때나 자주 만났잖아.


한창 일할 남자가 백수 아니고는 평일 낮에 동네 공원을 그렇게 어슬렁거리지는 않겠지.


그러고 보니, 돈 오만 원이면 백수한테 엄청 큰돈일 텐데.


지금쯤 나를 무척 원망하고 미워하겠지?!


전화번호라도 물어보고, 계좌번호라도 적어둘걸.


그땐 그럴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보니, 저 사람. 그 백수와는 닮았을 뿐.


전혀 아닌데.


저기 봐.


저 사람 얼굴 선이 더 갸름하고, 헤어스타일도 다르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백수가 무슨 돈이 있어서, 저 비싼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겠어?


백수 주제에 저렇게 예쁜 국민 여배우와 데이트 할리도 없고 말이야.


순간,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요.' 손짓하더니, 성큼성큼 걸어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엄청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얼른 다른 데로 가십시요."


그때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웨이터가 걱정스러운 듯 말해주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전, 그냥 안을 구경했을 뿐인데요."


"알아요. 저도 봤으니까요. 하지만, 손님 같은 분들은 저런 분과 부딪혀서 좋을 것하나 없으니, 빨리 피하세요."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부류!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진짜 거지 같은 기분이군.'


여전히 머뭇거리는 내게 웨이터가 어서요. 등을 떠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 밤에 도망가야 하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무작정 달아나는 수밖에.


나는 곧바로 거리를 향해 내달렸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갔다.


축복처럼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데, 나는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한 채, 지금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누가 보면, 아주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달렸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인적 없는 거리엔, 화려한 크리스마스 등불들이 작은 별처럼 반짝반짝 장식돼있었지만, 그 거리에서 나는 막막했다.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


하얀 눈의 세상에서, 아차 하는 순간에 그만 미끄러져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지고 말았다.


금방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양쪽 무릎과 손목이 너무 아파 일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대로 잠시 누워 있자.


차디찬 눈위에 등을 두고 누워 밤하늘을 본다


하얀 눈송이들이 내 눈, 코, 입, 뺨을, 금방 적시더니 눈물 젖은 얼굴로 만들었다.


그 순간,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싸늘한 추위속에서 가만히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보고 싶어. 아주 많이...."


"....."


"나, 세상 살아나가기가 너무 힘이 들고 두려운데, 엄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더욱더 무서운 기세로 부는 칼바람과 어스름 속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앉아 본다.


'온몸이 꽁꽁 얼어붙겠어.'


얼핏 보니, 얇은 면바지에 구멍이 크게 뚫렸다.


'이러고 어떻게 집으로 간담...'


손이 곱은 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누구에게든, 온기 있는 말을 듣고 싶어.


그러면 힘이 좀 날 것 같아.


"나, 지금 얼어붙은 눈길에서 넘어져 바지에 구멍이 났어.


무릎이랑 손목도 너무 아프거든.


누가 여기로 와서 나 좀 일으켜 세워 줄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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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뜨거운 눈물 24.05.17 1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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