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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자 출세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당근파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3
최근연재일 :
2024.09.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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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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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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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83화 소소한 즐거움

DUMMY

뇌옥을 나온 현무 삼 조는 혹시라도 늦어 시운학이 다른 곳으로 향했을까 염려되어, 잠을 줄여 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금의위 통령의 붉은 관인이 선명한 통행증으로 들리는 역참마다 최고로 강해 보이는 말을 끌어냈고, 지나는 성문의 위사들도 감히 막아서는 자들은 없었기에, 경사를 나온 지 사흘도 되기 전에 무림맹으로 돌아왔다.


"진 사형,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오셨소이다."


"돌아올 줄 알았던 것이오?"


"뇌옥에 갇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서를 올리자마자 뇌옥에 들여졌었소이다."


"그러고도 이리 빨리 오신 것입니까?"


"열흘 안에 소문주님과 함께 들라는 금의위 통령 대인의 명을 받고 사흘 내내 밤낮으로 달렸소이다."


"열흘이라, 감숙에서 있었던 일들이 아직 조정 신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뇌옥에서도 금의위 통령께서 직접 꺼내 주셨으니, 그 말씀이 맞을 것이오."


"사흘 밤낮을 달리셨으면 피곤하실 것이니, 먼저 쉬도록 하십시오. 몇 가지 준비도 하고 상의도 해야 할 것 같으니 하루 이틀 시간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사문에 가문까지 겁박하며 시간에 맞추라 하셨소이다."


"서둘러 오신 덕분에 아직 여유가 있으니, 같이 오신 분들과 쉬시는 게 먼저입니다."


"소문주께서 아직 계시니 참으로 다행이외다. 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찌나 조급하던지,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소이다."


"소제를 믿으시면 마음 편히 하시고 푹 쉬십시오. 동료분들께도 그리 말씀드리시고요."


"그럼 가서 자야겠소이다."


섬도 진걸이 휑하니 들어간 눈으로 입을 딱 벌리고 하품을 하며 나가자, 은창 유성이 시운학에게 물었다.


"준비하실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면 찾아보겠소이다."


"물건이 아니니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도 이번 경사로 올라가는 길에 사형께서도 함께 가시지요?"


"훈련은 어찌하고요?"


"배운 걸 익히고 있으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가서 할 일이 있겠습니까?"


"믿고 움직일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소이다. 맹주님께 말씀드리지요."


"조금 길어질지 모르니 빠르면 석 달 늦어도 반년 안에 돌아온다 하시면 될 듯싶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오?"


"황실이 관여된 일 아닙니까? 조정 고관 얼굴 한 번 보려고 몇 년씩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하더이다."


"그리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오?"


"우리는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 리는 없지요."


"맹주님께는 뭐라 말씀드리면 되겠소이까?"


"소제가 뵙고 말씀드릴 것이니 소제와 함께하실 일이 있다고만 하시면 될 듯싶습니다."


"차라리 지금 함께 뵙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그게 편하시다면 그러시지요."




두 사람이 맹주 여시준을 찾아가자 맹주 여시준은 반기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바로 떠나시렵니까?"


"아닙니다. 사형께서 사흘 밤낮을 달려오셨다 하시니, 오늘은 쉬게 해 드리고 내일 느지막이 떠나렵니다."


"유 원장께서도 함께하시는 것이오?"


"예,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한 듯싶어 부탁드렸습니다."


"언제나 끝나리라 여기시오?"


"늦어도 반년 안에는 마칠 듯싶습니다."


"급하고 긴한 일인 듯하니 말리지도 못하겠소이다."


"잠시 다녀온다 여기시면 되실 것입니다."


"도울 일은 없겠소이까?"


"감사드립니다. 다만 통문을 돌리실 때, 감숙 숙왕부에 구음백골조를 쓰는 자가 있고, 그자의 무공이 절정에 달한다고만 알려 주십시오."


"그거면 되겠소이까?"


"금의위와 동창이 움직이는 일이니 나서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마교 무공을 쓰는 자가 나타날 것이라 여겨 알려 드리는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리하리다. 명색뿐이고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무림맹주의 이름으로 전하지요."


"맹주님,

저들 스스로 내려놓은 것 아닙니까? 누구보다 강호를 아끼시니 저들은 무림맹에 뭐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하,

어려운 시절이 지나고 이제 힘을 길렀으니 머지않아 내려오라 하겠지요. 그 시기가 빨리 오기만 기다리고 있소이다."


"강호 동도들의 식견이 그리 낮지 않을 것이니, 맹주님께서 지켜오신 것은 언제고 알아줄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관심 밖의 일이라 신경 쓰지 않소이다. 그보다 훈련은 어찌하라 이르면 되오이까?"


맹주 여시준이 은창 유성에게 묻자 은창 유성은 바로 대답했다.


"가르친 것을 아직 모두 익히지 못하고 있으니, 배운 것을 반복해 익히게 하시면 될 듯싶습니다."


"그 말씀은 진정 돌아오신다는 말씀이시구려?"


"소생은 무림맹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되었다. 시운학과 은창 유성이 인사를 하고 나갔어도, 은창 유성이 돌아온다는 약조를 받았으니 맹주 여시준은 그것이면 충분하다 여기고 다녀올 것을 허락했다.


시운학이 맹주의 집무실을 나오며 물었다.


"유 사형,

하북은 이곳과 다르니 조금 이른 듯싶지만 옷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은창 유성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옳았다. 하남은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어 얇은 옷으로도 충분했지만, 경사로 올라가면 지금쯤 찬 바람이 불 것 같았다.


"다녀오시지요."


"같이 안 가시렵니까?"


"돌아보며 이를 것이 있을 듯싶으니 우형은 경사에 가서 마련하면 될 것이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시운학은 시운화와 설호를 데리고 정주성으로 들어갔다. 시운화와 설호는 오랜만에 시전에 들자, 성도 정주의 크고 화려한 상점들의 모습에, 연신 고개를 돌려가며 구경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전을 지나다 하남 전장이라 현판을 내건 전장이 보이자 시운학은 마차를 멈추게 했다.


"잠시 기다리거라."


시운학이 하남 전장으로 들어가자 회계가 인사하며 맞았다.


"공자님,

어찌 오셨습니까?"


"전표를 바꾸러 왔소이다."


전표를 바꾸러 왔다는 말에 회계는 시운학을 훑듯이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안쪽 점원을 보며 말했다.


"공자께서 전표를 바꾸러 오셨단다. 잘 모시거라."


입고 있는 옷이 무복이었고 그나마 산문을 나온 지 오래였기에 허름하게 보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시운학은 전표만 바꾸면 될 일이었으니, 회계의 무성의한 태도를 탓할 마음은 없었다.


점원이 다가와 말했다.


"바꾸실 전표를 내주십시오."


시운학은 품에서 전표를 넣어 두었던 주머니를 꺼내 주머니 안에 든 전표를 꺼내 그중 십만 냥 전표를 내주며 말했다.


"오만 냥은 만 냥 전표로 내주고, 오만 냥은 백 냥 전표로 바꾸려 하오."


회계는 시운학을 보고 있었는지 시운학이 내놓은 전표를 힐긋거리다, 오만 냥은 만 냥 전표로 남은 오만 냥을 백 냥 전표로 바꿔 내 달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달려와 말했다.


"공자님,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시운학은 누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시운학이 회계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회계가 얼른 시운학이 내준 전표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공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인장을 확인하고 바꿔 오겠습니다."


"그리하시오."


전표는 전장에서 은자를 맡아 두고 내주는 것이다. 전표에 금액을 적고 전장의 수결과 인장을 찍어 전표에 적힌 금액을 보증하는 것이었으니, 천하 각 전장에는 관에서 전장을 허락하며 받아 둔 인장 대장이 비치돼 있었고, 전표를 갖고 가면 그 전표가 발행한 전장의 인장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남 전장은 하남의 성도 정주에 있는 규모가 큰 전장이었으니, 천하에 산재한 전장 대부분의 인장 대장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잠시 전표를 확인했는지 회계와 함께 화복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나왔다.


"공자님,

소생은 하남 전장의 총관 왕보인입니다. 전표의 확인을 마쳤고 혹시나 해서 여쭙니다. 전표를 받으신 곳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시운학은 자신의 차림이 허술해 의심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묻는 말에 답을 주었다.


"악양 천하전장의 전표가 아니오? 악양 정왕부 삼 왕자께서 내주신 것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이까?"


하남 전장의 총관이지만 은자의 흐름 정도는 익히 꿰고 있었다. 그러니 천하전장이 정왕부와 거래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총관 왕보인은 회계가 하는 말이 시운학이 십만 냥 전표를 꺼낼 때 보니 한 장이 아니라 몇 장이 더 있다고 들었기에 허리를 굽히며 다시 물었다.


"더 필요하시거나 바꾸실 전표는 없으십니까?"


"당장은 그것이면 되니 확인되었으면 내주시오, 그리고 이백 냥은 은자로 내주시면 좋겠소이다."


"은자로 바꾸시면 수수료가 두 냥입니다."


다른 전장의 전표를 하남 전장의 전표로 바꾸는 것은 갖고 온 전장이 받아 둔 은자가 하남 전장으로 옮겨지는 것과 같았기에 전표와 전표로 바꾸는 것에는 수수료가 없었고, 전표를 은자로 바꾸는 것에는 수수료를 받았기에 이백 냥에 대한 수수료로 두 냥을 말한 것이었다.


"제하고 내주면 될 것이오."


"예, 공자님,

잠시만 기다리시면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총관 왕보인은 회계가 내온 바꾼 전표와 은자를, 전표는 전표 주머니에 은자는 전낭에 넣어 내주며 말했다.


"언제든 들러 주시면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시운학은 문밖까지 따라 나온 총관과 회계의 인사를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시운화는 전장 사람들이 나와 인사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먼저 먹으려느냐 아니면 옷 구경을 하겠느냐?"


시운화는 먹는다는 말에 얼른 대답하려다 옷 구경이라 하자 먹을 것 생각이 저만치 달아났다.


"옷 구경이 먼저지요."


"그래 그럼 옷점으로 가자꾸나."


전장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화려한 등롱을 밝힌 포목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차가 포목점 앞에 서자 마치 보고 있었다는 듯 점소이가 나오더니 서둘러 내린 시운화를 포목점 안으로 끌어들였다.


시운학이 마차에서 내리자 다른 점소이가 나오더니 시운학에게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낭자님과 함께 오셨습니까?"


시운학은 어좌석에 앉아 내릴 생각을 안 하는 설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차는 점소이에게 맡기고 너도 들어가자."


설호는 불과 얼마 전 합비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었기에, 한눈에 봐도 화려한 옷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망설였다. 시운학이 미소 지으며 다시 말했다.


"경사로 갈 것인데 그런 꼴을 하고 가려느냐?"


설호는 경사로 간다는 말과 그런 꼴이라는 말에 경사에 가려면 허술히 입으면 안 되는 줄 알고 훌쩍 내리며 말했다.


"경사에서는 이런 옷을 입으면 안 되나요?"


"네놈이 허술히 입으면 주인을 욕하지 않겠느냐?"


설호는 자신이 허술히 입으면 주인이 욕을 먹는다는 말에, 어찌 새 옷을 입어야 하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시운학이 설호와 안으로 들자, 시운화는 벌써 줄줄이 걸려 있는 화려한 옷들에 눈이 돌아간 듯,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운화야,

여기와 달리 경사로 가면 날씨가 추울 것이니 두툼한 옷으로 고르거라."


"예, 오라버니."


시운화는 입으로는 대답하면서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에 있는 얇고 화려한 옷만 들썩이고 있었다. 시운학은 잠시 바라보다 다가선 점원에게 말했다.


"내가 입을 유생복 몇 벌하고 이 아이가 입을 만한 옷 몇 벌을 골라주게. 아이 옷은 솜을 누빈 것으로 조금 두툼해도 상관없네."


"예, 공자님."


점원은 가까이 있던 다른 점원에게 설호의 옷을 골라 주라 지시하고, 시운학을 유복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점원은 시운학의 차림을 살피더니 경장 차림이니, 무인인 것을 알아보고서도 시운학이 유생복을 말했으니 그대로 따랐다.


시운학이 점원이 보여 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점원은 요대며 허리끈이며 몇몇 장신구들을 권했지만, 시운학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중한 물건이었기에 거절하자, 점원은 다시 시운학에게 혁화를 권했고, 시운학은 자신의 신을 살피고는 새로 산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많이 움직였을 뿐 아니라 앞으로 만나 볼 사람들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이 눈썰미 있게 가져온 혁화는 잘 맞았고 발도 편했다. 시운학은 입고 있던 옷과 색이 다른 옷 몇 벌을 더 내라 했고, 점원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지런히 움직여 시운학의 옷들을 챙겨 바구니에 담았다.


그사이 설호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는데, 그동안 입고 있던 무복들은 얼마나 수련을 해 대는지 견뎌 내질 못했다. 설호가 점원이 권해 준 새 옷으로 갈아입자 훤칠하니 대갓집 공자처럼 보였다. 시운학은 설호의 옷도 몇 벌 더 내오라 이르고, 시운화를 보니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운화야,

마음에 들면 모두 꺼내거라. 그래서야 언제 볼일을 마치겠느냐?"


시운화는 다른 말은 들을 필요 없다는 듯 모두에 집중했다. 곁에 붙어 있던 점원에게 손짓을 하는데 순식간에 일곱이나 여덟 벌은 되지 싶었다.


"운화야,

경사는 추우니 두툼한 옷도 챙겨야 한다."


시운학이 거듭 두툼한 옷을 말하자, 시운화는 어이없다는 듯 시운학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소매를 어찌 보시고 그리 말씀하시오?"


자신의 내공이면 추위 따윈 아랑곳없다는 말이었지만, 경사로 가면 이곳저곳 다닐 곳이 많을 듯싶으니 달래듯 말했다.


"그럼 다른 낭자들은 모두 두툼하게 입고 있을 때 너 혼자 얇은 옷을 입겠다는 말이더냐?"


그제서야 시운화도 시운학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른 옷 몇 벌을 내려놓고 겨울옷 몇 벌을 새로 챙겼다. 산문을 내려온 지 벌써 오래지만, 옷을 넉넉히 마련해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 시운학이, 시운화가 내려놓은 옷까지 모두 챙기라 하니, 시운화의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다.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바리바리 담은 옷상자까지 마차에 싣자, 시운화는 새로 산 옷들을 입어보고 싶어 얼른 돌아가고 싶었지만, 시운학이 마차를 만물상 앞에 세우라 하자, 시운화는 시전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맵시 있게 제비처럼 날아내렸다.


시운학은 만물상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운화에게 말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음껏 고르거라, 나는 필방에 들렀다 오마."


서점이고 필방이고 글이라는 것을 싫어한 시운화는 두말없이 안으로 들어갔고, 설호도 따라가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 역시 글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얼른 시운화의 뒤를 쫓았다.


시운학은 안으로 들어서는 설호를 부르려다 그대로 두고 필방을 찾았다. 붓과 먹, 벼루, 종이를 사고 나니, 책방에서 사려던 천자문과 소학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문방사우를 사러 오는 사람들 중에 자식들이 익힐 천자문과 소학을 많이 찾으니 구비해 놓은 듯싶었다.


만물상으로 돌아가니 벌써 골라 놓은 물건들이 탁자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보아하니 시운화가 이것저것 놓고 갈등하고 있으면, 설호가 시운화의 눈치를 살피다 둘 모두를 재빨리 옮겨 놓곤 했다.


장식 비녀와 목걸이, 귀걸이에 팔찌까지, 손거울도 올려져 있었고, 화장도 하려는지 분첩도 올려져 있었다. 흰여우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써 보는 것이 아무래도 탐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모자에 달린 여우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뺨을 간질이니, 그게 싫은 듯 갈등하고 있으면서도 몇 번을 써 보면서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꼬리가 마음에 안 들면 자르면 되지 않느냐?"


시운화가 꼬리를 자르라는 시운학의 말에 놀라며 바라보더니 말했다.


"꼬리가 움직이는 게 얼마나 귀여운데 꼬리를 자르라 하시오?"


시운학은 자신이 잘못 판단해 한 소리 듣자 모자를 잡아 탁자 위로 던져 놓았다. 시운화는 여우 모자가 탁자 위로 올려지자 만족한 듯 씩 웃어 보였다. 시운학은 둘러보다 손가락이 없는 양피 장갑을 집어 설호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손가락은 조금 시릴 것이나 검을 파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설호는 다시금 감격한 듯 장갑을 품에 안고 허리를 숙여 감사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익히겠습니다."


만물상 점주는 워낙 많이 올려진 물건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는, 안에서 모양 좋은 장신구 함 두 개를 들고나와 시운화의 장신구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넣었다. 상자 두 개를 비단 보자기로 싸 주자 설호가 얼른 받아 마차에 실으러 나갔고, 점주는 생각 외로 많은 금액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더니, 몇 냥을 제했는지 자신 있게 은자 백오십 냥이라 했다.


시운학은 전장에서 바꿔 온 전표 주머니에서 백 냥 전표 두 장을 꺼내 주며 말했다.


"모자와 어울릴 만한 피풍이 있는가?"


점주는 시운화가 고른 흰여우 털가죽 모자를 떠올리고는 얼른 말했다.


"흰색과 붉은색이 잘 어울리니 붉은 공단으로 만든 물건이 있습니다."


시운학은 점주가 받아 들고 있는 전표를 보며 말했다.


"그것이면 되는가?"


점주는 공단으로 만든 피풍 값이 비싸다 할 줄 알았는데, 남은 오십 냥으로 충분하냐 물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나마 양심 있는 점주였는지 말한 것처럼 붉은 피풍과 함께, 노숙에 쓰는 말안장에 올리는 두꺼운 모포도 함께 내주었다.


"마음이 바른 상인이로군, 다음에 다시 들릴 것이오."


점주는 그야말로 허리가 부러져라 연신 굽신거리며, 시운학이 탄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감사하다 소리치며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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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도하 23.08.02 3,266 27 15쪽
85 85화 욕망의 시발점 23.08.01 3,360 24 17쪽
84 84화 소림을 찾다 +1 23.07.31 3,365 28 15쪽
» 83화 소소한 즐거움 23.07.30 3,373 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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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1화 개방 (2) 23.07.28 3,414 3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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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화 다시 만난 사형제들 (1) +1 23.07.25 3,478 2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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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밀명 (4) +1 23.07.22 3,478 3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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