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청작약 님의 서재입니다.

백귀야행 (百鬼夜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청작약
작품등록일 :
2020.03.26 01:50
최근연재일 :
2021.06.06 16:39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15
추천수 :
72
글자수 :
143,770

작성
21.05.26 22:26
조회
25
추천
2
글자
12쪽

백귀야행(百鬼夜行) - 고목 첫째 장

DUMMY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걸어서야, 안개가 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이번엔 진짜 도착한 것 같습니다. ”


“ 정말 안개가 엄청나네요. 무슨 일일까요. ”


가까이 내려가자, 너무나도 자욱한 나머지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흐린 앞은 마치 명계에 발을 들인 것과 같았다. 저잣거리를 돌면서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단 하나의 개미도 보이지 않았다.


“ 시장인데도 사람이 없네요. 마을을 두고 떠난 것이려나. ”


시장같이 사람의 발걸음이 북적이는 곳이라면 사람이 한 명 정도는 보일만도 했지만, 남아있는 것은 조용한 정적뿐이었다.


“ 아닙니다. 단 순간에 사라졌군요. ”


“ 어떻게 아셨어요? ”


일화는 가판대에 놓인 과일을 들어 올리고 말하였다. 또한, 그의 말에 궁금을 품는 화련이었다.


“ 만약 사람이 한 명씩 마을을 버린 것이라면, 시장은 정리하고 갔겠죠. 단 순간에 사라졌기에, 전부 남아있는 겁니다. ”


그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가판대에 상품들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 대체 무슨 일인지 감이 안 잡혀요. ”


조금 더 마을을 둘러보자, 마을 중앙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그것은 오색 비단을 둘러놓은 것을 보아, 서낭당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 서낭신입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네요. 양기의 느낌이 나지가 않습니다. ”


“ 서낭당 옆 나무는 마을들을 오가면서 많이 봤는데, 이렇게 큰 나무는 또 처음이네요. ”


오래된 고목은 마을의 중앙을 장엄하게 지키면서, 마을을 수호하는 듯했다.


“ 그렇죠, 그만큼 힘이 강력하다는 겁니다. 백호의 말처럼 목(木)의 힘이 정말 강하군요. 하지만 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


“ 신은 늙거나, 쉽게 죽지 않잖아요. ”


“ 맞습니다. 단, 소멸하죠. 그들이 소멸할 때가 언제라고 보십니까? ”


“ 아무래도···. 사람들이 자신들을 잊고 숭배하지 않을 때가 아닐까요. ”


화련의 경쾌한 정답에 일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 맞습니다. 이제 정말 잘 아시네요. ”


“ 한 달 가까이 따라다녔는데, 그 정도는 기본이죠. 일화님 덕분이에요. ”


“ 제가 더 기쁠 정도입니다. ”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합이 잘 맞는 그들이었다.


“ 그건 그렇고 마을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했었는데, 과연 무슨 일일까요. 백호님이 말할 정도라면 아무래도 요귀겠죠? ”


“ 그럴 겁니다. 마을 전체가 사라질 정도의 요귀라니···.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긴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


“ 일화님. ”


사방을 둘러보던 일화를 화련이 나지막이 불렀다.


“ 네. ”


“ 나무에 뿌리가 이상해요. ”


“ 뿌리가 그냥 뿌리지 뭐가···. ”


그들이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보았던 나무의 뿌리가 어느새 발밑으로 다가와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때, 그것은 이미 늦은 후였다.


뿌리들이 동시에 솟아올라 그들을 묶었다. 그제야 나무가 웃으면서 이야기하였다.


“ 또 하나 잡았구나. 미천한 인간들이여 반갑구나. ”


거꾸로 매달린 채로 일화와 화련은 바동거리면서 풀려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일화가 불을 지펴보았지만, 그의 단단한 뿌리에는 피해는커녕, 그을린 자국만 새겨졌다.


“ 쓸모없는 반항은 하지 말거라. 어차피 흙으로 사라질 운명이거늘. ”


“ 목신의 탈을 쓴 요귀이냐. ”


일화가 목신을 흉내를 내는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리쳤다.


“ 요귀? 그래 지금의 내 모습을 요귀라고 부르겠지. 하나, 진정한 요귀는 너희 인간들이 아니겠느냐. ”


“ 여기 있던 사람들은 전부 어쨌지. ”


그의 말에 놈은 뿌리로 땅 밑을 가리켰다.


“ 저 아래다. ”


“ 땅속···? ”


“ 그래, 전부 묻혀있지. 어린 인간, 어른 인간, 모조리 묻어버렸다. ”


여태까지 다른 놈들에게서는 보지 못한, 차원이 다른 잔인함에 화련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신을 능욕하고 살아있는 하찮은 존재가 사람까지 모조리 죽였다는 것이냐! ”


놈을 요귀로 판단하자, 그것은 있는 힘껏 웃어주었다.


“ 하하하, 대체 누가 신을 능욕한단 말인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목신이었고 지금도 목신이다. 죄를 지은 자들에게 벌을 내렸을 뿐이지.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가지는 인간 도사가 어찌 나를 판단한단 말이냐. ”


“ 그렇다는 것은 미쳤다는 의미겠군. ”


“ 죽음을 앞두니,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 네놈도 똑같이 만들어주겠다! ”


일화는 놈과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자신을 잡고 있는 얕은 뿌리에 집중하여 옥죄임을 풀어내었다. 그 뒤, 곧바로 화련까지 풀어내어, 떨어지는 그녀를 잡아주었다.


“ 잔꾀를 부리는구나.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근방의 나무는 모두 내 명령을 듣고 있으니까. ”


그들은 달리 도망치는 방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이전 사람들과 같이 땅에 묻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쉼 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안개는 코앞의 화련 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욱 짙어졌다.


짙은 안개로 무엇도 분별이 되지 않을 즈음, 누군가 그들을 낚아채 빠른 속도로 고목에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을 낚은 존재를 보아하니, 그것은 거대한 몸과 뿔을 가진 수사슴이었다.


“ 사슴···? ”


마을에서 거의 벗어나자, 모두를 놓친 요마가 하늘에 닿도록 분노했다.


“ 또 나의 일을 방해하는구나! 옛벗이라 봐주었거늘, 더는 용납할 수 없다. 피해를 본 것도 마찬가지인데, 어찌 너는 인간을 돕느냐! ”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우렁차고 걸걸하게, 귓바퀴에 맴돌면서 울리는 목소리였다.


사슴은 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고 또 내달렸다. 산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야, 발굽을 멈추고 그들을 내려주었다.


“ 자네들, 괜찮은가. 발걸음을 막기 위해 안개를 거두지 않았는데, 왜 여기를 기어코 찾아오는 건가. ”


“ 당신은 누구십니까. ”


“ 여긴 어디죠? ”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둘은 안개에 둘러싸인 누군가에게 갖은 질문을 난발했다.


“ 하나씩만 물어보게. ”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천천히 다시 질문했다, 자신들을 구해준 이가 궁금했기에. 그들이 묻자 자신 주위에 걸쳐진 안개를 치우고 모습을 보였다.


“ 여기 산에 사는 노인이네. 청록이라고 부르게나. ”


노인이라는 말과 다르게, 건장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당하게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뒤로 묶은 사내였다. 그가 누군지 단숨에 알아챈 일화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화련은 무슨 경우인지 모르고 당황하다가 따라 무릎을 꿇었다.


“ 산신님을 뵙습니다. 살려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


“ 일어나게. 여기까지 온 걸 보아하니, 자네는 하늘의 사자인가. ”


“ 네! 백호의 명을 받고서, 여기까지 왔죠. ”


산신은 백호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 백호라면···, 서방백제 호령님이신가? 동쪽의 일을 신경 쓰시다니 보통 일은 아니라는 것이군. ”


“ 맞습니다. ”


그는 호령을 아는지, 기억이 난다면서 이야기해주었다.


“ 하늘의 얘기를 듣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네. 여기서 갇혀 살다 보니까 기억도 나지 않고 말이야. ”


즐거웠던 옛날을 회상하는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혹시 저 요귀는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일화의 말에 산신은 조금 꾸짖었다.


“ 말조심하게. 모습과 행동은 저래도 과거 목신이던 자니까. ”


“ 목신 말씀이십니까? ”


“ 그렇다네. 좋지 않은 일로 저렇게 타락했지만 말이야. 과거에는 친했던 옛벗이었지···. ”


청록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 그러기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안개를 둘렀네. 인간들이 매장당한 후, 다시 발을 들인 건 자네들이 처음이군.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가.”


“ 목(木)의 옥석을 챙기기 위해 왔습니다. 인계에 수라가 풀려난 상태라 옥석이 꼭 필요합니다. ”


“ 수라가 풀려나? ”


“ 그렇습니다. 얼마 전의 일이더군요. ”


수라가 다시 발을 옮겼다는 말에 청록은 놀라기만 했다. 그 또한 과거의 소문을 들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 것 참 큰일이로구나. 놈을 막으려면 하늘에서 도움을 줘야 할 텐데···. 그러지는 않을 테고. ”


그 또한 천계에 반응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러기에 옥석이 필요한 거에요. 오행의 옥석을 모아서, 놈을 꼭 막아야 해요. ”


화련이 옥석의 행방을 재차 물어보면서, 산신에게 조언을 구했다.


“ 잘 들어라, 옥석은 각 오행에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소지할 수 있지. 생각해보게 이 근처에 목의 옥석이 있다면 어디겠나? ”


“ 목신이겠네요. ”


청록의 당연한 질문에 화련은 곧장 대답해주었다.


“ 과연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이미 그는 정신을 잃었어. ”


“ 해야 합니다. 옥석뿐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목신의 존재는 인계에도 피해가 막심합니다. 천계에서는 목신을 그냥 두고 있는 겁니까? 그는 신이기에 천계에서도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


“ 안개 때문이겠지. 그의 마음을 돌리고 천계에는 비밀로 하기 위하여, 내가 안개를 짙게 뿌린 거란다. 그들이 눈치를 챈다면 금방 뚫리겠지만, 닿을 수 있는 곳까지는 닿아보고 싶구나. ”


안개를 깐 존재는 다름 아닌 그였고, 사실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화는 달리 옥석까지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곧장 주어진 길을 달려가도록 결정하였다.


“ 내가 안개를 다시 거둘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군. 나도 최대한 힘닿는 곳까지 도와주겠네. ”


산신은 그들에게 도움을 약속했다. 화련은 땅에서 인간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할 목신이 왜 저렇게 됐는지 산신에게 물어보았다.


“ 서낭당 근처에 있는 괴목들은 수도 없이 봤어요. 하지만 저렇게 인간에게 부정적인 것은 처음 보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


“ 그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단다. 아무래도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겠지···. ”


어떻게든 다시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화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산신에게 양해를 구했다.


“ 혹시 모릅니다. 노력한다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겁니다. ”


일화의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저 아래에서 자네들이 말했었지, 신이 언제 죽느냐고. ”


나무 앞에서 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는가, 그들에게 되물었다.


“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잊고 외면할 때라고 했었어요. ”


“ 그래, 역시 하늘의 전령이라, 잘 아는구나. 신은 병들거나 늙어 죽지 않아. 불멸자라 그렇지. ”


그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화도 익숙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 그 불멸자들도 천계, 인계, 명계인 삼계에서 전쟁이 일어나 죽거나, 모든 이들에게 잊히면 죽는단다. ”


“ 그들도 전쟁을 겪나요? ”


화목하게 지낼 줄만 알았던 신들이 서로 죽인다니, 다른 곳은 그렇다 쳐도 천계에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 예전의 일이었단다. 명계와 인계는 물론 천계에서까지 전쟁이 일어났었어. 뜻이 맞지 않는 이들이 전쟁을 일으켜, 옥제님께서 직접 나셔서 중재했지. ”


잠시 옛날이야기에 빠진 그들이었다.


“ 이야기가 새어갔구나. 지금부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잊힌 신과 그에 분노한 신, 둘의 이야기란다. ”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앞이 보이지 않는 산 깊은 곳. 신령이 옛날이야기라는 이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귀야행 (百鬼夜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주기가 일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1.05.26 28 0 -
28 백귀야행(百鬼夜行) - 고목 다섯째 장 21.06.06 14 0 12쪽
27 백귀야행(百鬼夜行) - 고목 넷째 장 21.05.30 21 0 13쪽
26 백귀야행(百鬼夜行) - 고목 셋째 장 21.05.29 21 2 13쪽
25 백귀야행(百鬼夜行) - 고목 둘째 장 21.05.27 25 2 13쪽
» 백귀야행(百鬼夜行) - 고목 첫째 장 21.05.26 26 2 12쪽
23 백귀야행(百鬼夜行) - 망각 마지막 장 21.05.22 25 2 13쪽
22 백귀야행(百鬼夜行) - 망각 첫째 장 21.05.22 26 2 12쪽
21 백귀야행(百鬼夜行) - 범 마지막 장 21.05.16 28 2 11쪽
20 백귀야행(百鬼夜行) - 범 넷째 장 21.05.15 27 2 11쪽
19 백귀야행(百鬼夜行) - 범 셋째 장 21.05.13 26 2 12쪽
18 백귀야행(百鬼夜行) - 범 둘째 장 21.05.09 28 3 12쪽
17 백귀야행(百鬼夜行) - 범 첫째 장 21.05.08 25 3 12쪽
16 백귀야행(百鬼夜行) - 황금룡 마지막 장 21.05.05 27 3 9쪽
15 백귀야행(百鬼夜行) - 황금룡 셋째 장 21.05.02 28 2 13쪽
14 백귀야행(百鬼夜行) - 황금룡 둘째 장 21.05.01 26 3 12쪽
13 백귀야행(百鬼夜行) - 황금룡 첫째 장 21.04.27 30 3 11쪽
12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마지막 장 21.04.25 31 3 13쪽
11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여섯째 장 21.04.24 33 3 10쪽
10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다섯째 장 21.04.22 29 3 13쪽
9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넷째 장 21.04.17 34 3 11쪽
8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셋째 장 21.03.21 34 3 10쪽
7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둘째 장 21.03.20 35 3 12쪽
6 백귀야행(百鬼夜行) - 구미호 첫째 장 21.03.14 42 3 11쪽
5 백귀야행(百鬼夜行) - 도깨비 마지막 장 21.03.13 48 3 12쪽
4 백귀야행(百鬼夜行) - 도깨비 셋째 장 21.03.13 49 3 11쪽
3 백귀야행(百鬼夜行) - 도깨비 둘째 장 21.03.13 60 4 8쪽
2 백귀야행(百鬼夜行) - 도깨비 첫째 장 21.03.13 79 4 11쪽
1 백귀야행(百鬼夜行) - 서문 +2 21.03.13 137 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