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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원 님의 서재입니다.

자각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린원
작품등록일 :
2017.08.31 15:12
최근연재일 :
2017.10.01 16:28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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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추천수 :
1
글자수 :
20,114

작성
17.09.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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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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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상징후 1

DUMMY

툭, 데구르르..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사무실에 펜 소리가 울리자 일제히 한태수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아아, 또구나. 망할 놈의 펜. 왜 거기 있어가지고···

곤란한 듯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반가운 듯 활짝 웃었다.

"아 그래 그럼 한대리 자네가 맡게. 괜찮겠지"

젠장. 그는 짓씹듯 중얼거리곤 싱긋 웃었다.

"그럼요 부장님, 제가 해보겠습니다."

미혼이라 늦어도 잔소리할 마누라가 없지않느냐고 부장은 허허 웃어댄다. 처음이야 아, 사람 좋은 웃음이구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무섭게만 보일 뿐이다. 신입때야 멋모르고 예예 했었지..

고개를 휙 돌려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동료들을 바라보지만 내가 하겠소 시원스레 대답해주는 이 하나 없다. 당연하겠지. 나같아도 안해주겠다. 허구한 날 미혼 타령이니 일 좀 줄이려면 결혼을 해야하는 건가...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였다. 회사일로 하루건너 야근이니 별다를 것도 없는데 여기서 일거리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딱 죽을 맛이다.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다른 수는 없었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일 뿐더러 어떻게 들어온 회산데 밉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열심히 버티다가 퇴직금 받고 빵가게 차리는게 그의 꿈이었다.


사실 한태수는 남들보다 조금 덩치가 큰 것 외엔 별달리 눈에 튀는 존재는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영리하고 공부 좀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또래에 비해 큰 덩치와 유난히 센 팔힘 때문에 학교 야구부에 스카우트 됐었다. 그마저도 고3때 부상으로 그만두고 지방대에 가까스로 입학했지만.

좋은 머리가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꽤 높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운 좋게도 한국 최고의 그룹인 태성에, 그것도 본사에 입사했을 때는 확인전화까지 걸었었다. 슈퍼를 물려주시려던 어머님은 동네 잔치를 벌이셨고 말이다. 대기업에 들어간 것만 빼면 다들 그렇듯 평범한 인생이다.


"우리 또 야근이네. 이놈의 회사는 여기서 더 얼마나 올라가겠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 커피 마실래?"

옆자리 입사 동기 박창호가 다가오며 투덜댄다. 이놈은 성격이 얼마나 능글거리고 사교성이 좋은지 회사 밖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었다. 성격답게 회사 정보와 소문 전달의 중심에 서있어서, 도통 둔한 한태수로서는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도 했다.

"고맙다."

그는 커피를 받아들고 고개를 까딱였다.

박창호는 괜시리 입이 근질한지 뭘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붙였다 했다. 벌써 몇년째 친하게 지낸 이 녀석은 그냥 말하면 될 것을 무슨 극적인 효과라도 노리는지 늘 이랬다.

"야 너 요새 소문 들었냐??"

결국 참다못한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무슨 중요한 일을 말하려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드니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다. 웬일이지? 무덤덤하게 생각하며 한태수는 캔커피 뚜껑을 가볍게 땄다.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움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무슨 소문??"

"다들 수근수근 말들이 많아. 연구원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느니, 한밤중에 사람 돌아다니는 걸 봤다느니."

"어.. 그래? 도둑이라도 들었나. 우리 회사 방범은 최고잖아?"

그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하자 박창호는 한심하다는 듯이 흘끗 보고는 국가 기밀을 말하는 것처럼 더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아마... 내 생각엔, 분명히 과로사한 야근귀신 일거다."

그럼 그렇지. 박창호가 진지는 무슨... 그는 피식 웃었다.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건 취소다, 취소. 이 녀석은 별 쓸데없는 소식까지 다 물어다 주는 놈이었다.

"야근귀신은 무슨.."

"진짜라니까? 원래 괴담으로 떠도는 말이긴한데 근래들어 더 심하다고!"

"그래그래.. 그러시겠지."

사실 이런 소문이 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히 태성은 보상을 주는만큼 과도한 업무로 유명한 회사였으니까.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 그룹은 처음엔 조그만 연구기관이었지만 점점 커져 다른 산업에도 손을 뻗치더니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괴물이 되었다.

대통령도 태성에겐 한수 접고 들어갔으며 어두운 쪽으로도 관여를 하고 있어 정부가 못 건든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근데도 이놈의 회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 커지려하니 아래 있는 사람들만 죽어나는거다.

한태수도 운동선수 출신이라 처음엔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요샌 그렇지도 않았다. 어제만 하더라도 후배 하나가 영양제 하나를 책상 위에 조심스레 놓고 갔으니까.

여름을 타는지 부쩍 피곤하긴 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한것 같기도 하다. 미열도 나는 것 같고.. 그는 복도를 걸어가다 머리를 휘휘 저었다. 의무실에서 약이라도 받아 먹어야 하나..

그때, 찌릿. 휘청.

"어...?"

어지러워서 벽을 잡는데 순간 눈앞이 붉어졌다 다시 환해졌다. 이건뭐지?

"뭐야. 왜그래 한태수. 괜찮은거냐?"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박창호가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아.. 괜찮아. 요근래들어 계손 어지러워서.."

"병원이라도 가봐라. 너 그러다 큰일난다?"

"됐어 임마. 영양제 잘 챙겨먹으면되지뭐."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휘휘 저었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진짜 병원이라도 가봐야하나? 그러고 보니 근래 들어 이렇게 멍할 때 가 자주 있었다. 체력만큼은 최고라는 생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는데.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진찰이라도 받아야겠다. 그는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박창호를 뒤로하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


그날 11시, 부장님이 맡기신 지난 회의 결과 서류 정리를 하던 한태수는 꾸벅꾸벅 졸다 누군가가 흔드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대리님, 피곤하신가봐요?"

"아아, 잠들었었네.."

"여기 가져오라고 하신거요." 이번에 들어온 후배 하나가 내 앞에 서있었다.

그는 서류를 건네주고 싱긋 웃으며 뒤돌아 걸어가는 후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또 느껴지는 졸음에 당황했다. 커피도 먹어보고, 기지개를 켜봐도 몸이 피곤한 건 여전했다. 눈을 부릅떠봐도 앞이 가물가물 하다. 왜 이렇게 졸린거지. 자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안되는...


눈을 감자, 회사 사무실의 풍경과 다른 낯선 배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한태수는 겁에 질려 무엇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 뛰어야해, 절대로 그게 내몸에 닿게 해서는 안돼...! 잡히면 그의 눈이 뒤로 넘어갈 때까지 목을 조를 터였다. 잠깐, 내 목을 조르다니, 무엇이?


"헉···!"

깜짝 놀라 눈을 뜨자 다시 회사 사무실 풍경이 보였다. 몰랐었는데 식은 땀이 온 몸에 범벅이다. 또 그 꿈이었다. 요새 항상 꾸고 있는. 꿈을 꾸는 당시엔 겁이나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못하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깨면 이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꿈 내용은 항상 같았다. 붉은색 바탕에 검고 큰 형체들이 돌아다니는 풍경. 꿈 속의 그는 항상 그 그림자에 쫓기고 있고 절대로 그것들이 내 몸에 닿으면 안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할 뿐이다.

근래에는 이 악몽과 어지러움의 연속이었다. 식은땀을 훔치며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손발이 떨려 제대로 서있을수도 없다. 한태수는 무기력하게 앉아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 대리님 괜찮으십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리셨는데요."

"깜박 졸았는데 꿈자리가 사납네요. 괜찮습니다. 세수라도 해야겠어요."

같이 야근하던 동료가 놀랐는지 다가와서 묻는다. 약을 내미는 그에게 어차피 바람이라도 쐬려 했다고 만류하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한참이나 내리 눌렀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이젠 이명까지 들리는 것 같다.


정신차려야돼. 도대체 그 꿈은 또 뭐고 왜 이렇게 어지러운건지···

촤악.

찬물세수를 하다말고 거울을 쳐다보는데 놀라우리만치 하얗게 질린 얼굴이다. 다크써클이 턱밑까지 내려오겠군.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세수를 하려는데 찌릿. 눈앞이 붉어졌다.

낮에도 이랬었는데··· 이상한 꿈에 어지러움증 까지. 진짜 뭐 문제 있는거아닌가싶다.

내일이라도 회사에 얘기한 후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며 고개를 휘휘 젓다가 멈칫했다.

방금 뭔가 지나갔는데···? 그는 자신이 잘못본 것이길 바라며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거울엔 놀라 눈이 커진 한 남자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다. 하하, 이젠 환각까지? 가지가지 하는구만. 그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조소를 지었다.

그 때, 뒷편에서 까만 연기 같은 것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저게 뭐지?

스윽- 그거다. 그 검은 형체. 잠깐만, 지금도 꿈 안이던가?

그는 잘못 본거라 확신하며 거울을 슥슥 닦았다. 그러나 그 검은 형체는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등 뒤로 소름이 쭉 끼치면서 그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한태수를 압도했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 옆에 있던 밀대를 움켜잡고 있는 힘껏 휘둘렀다.

쿠당!!!!! 있는 힘껏 검은 형체를 내리치자 붉었던 앞이 환해짐과 동시에 검은 형체가 스르륵 사라졌다.

뭐지 이건. 꿈안에서 나오던게 왜 현실에서까지 나타나는거지? 한태수는 식은땀을 훔쳐내며 그것이 사라진 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요새는 스트레스로 환각이 보이기도 하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너 막대기를 왜 허공에 날리고 그러냐???"

"뭐야···! 아, 박창호."

뒤돌아 인기척을 향해 밀대를 휘두르려다 박창호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니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다.

"왜 그러고 있느냐니깐?"

"별 거 아니니깐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요새 진짜 피곤한가보다. 아님 니말대로 병원 진찰이라도 받아야 되던가. 눈앞도 붉어지고 헛것도 보이고..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다."

"···무슨 소리야? 헛것? 너 괜찮은거냐?"

"아냐 내가 무슨 말을... 신경쓰지마라."

"아니. 난 알아야겠다. 소중한 내 동기가 귀신 본 것처럼 식은땀을 흘리시는데. 거기다 공중에 밀대까지 휘두르셨겠다?"

박창호가 능글거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건..."

이런말 저런말 다했다간 분명히 미친사람처럼 볼거다.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보통 환각 때문에 겁에 질려서 허공에 밀대를 휘두지는 않으니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박창호는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내려치곤 말을 이었다.

"이건 분명히..."

"분명히?"

"야근귀신을 본거야!!"

뭐?

순간 골이 띵해져왔다.

"내말 못들었어?? 야근귀신을 본거라고 임마. 너 내말 안듣더니 호되게 당했잖냐. 오줌은 안지렸냐? 걱정마라 소문안낸다. 한태수 오줌싸 창피해서 사표내다. 크크큭."

박창호는 킬킬대며 손가락을 허공에 휘휘 저어댔다. 이 녀석에게 진지한 답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래도 다행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는 애써 미소지으며 팔을 툭툭치고는 화장실을 황급히 빠져나왔다.장난치는 거라 생각했는지 빤히 보며 웃는 박창호를 뒤로한 채.

후에 지금의 상황을 회상하고 왜 자신을 보며 웃었는지 진실을 알았던 날 한태수는 분노했다.

그리곤 그녀석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이런 개사기꾼 같은 새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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