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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neke 님의 서재입니다.

그 새는 시간을 잇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Leineke
작품등록일 :
2023.05.10 15:25
최근연재일 :
2023.05.17 21:3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46
추천수 :
14
글자수 :
38,065

작성
23.05.10 17:00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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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1-1

DUMMY

1-1


Palais-Royal, Paris.


화려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메인 스테이지로 줄 지어 걸어가는 모델들의 그림자가 노을을 따라 길게 늘어지자, 가슴 한켠이 뭉클해 졌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음악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고, 검은 실크 후드를 뒤집어 쓴 모델들의 발 구름이 점점 커져 갔다.


“드디어 마지막이네.”


유빈 누나였다.

말수가 적은 민재도 어느 순간 옆으로 다가와 패션쇼의 마지막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매일 동대문시장과 신사동 샘플실을 오가던 날들.

더 좋은 원단과 부자재를 찾고 디자인을 하고··· 디테일이 많은 의상들은 밤을 새워가며 손 바느질을 했다. 패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나온 디자인들은 미싱을 쓰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수작업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되곤 했다.


서울에 자취하며 생활비로 쓰기도 빠듯한 월급. 복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오늘까지 버티고 버텨 온 것은 이 한 순간의 파리 컬렉션을 위해서였다.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쇼의 메인 모델이 드디어 검은 망토와 후드를 벗어 던졌다. 가려져 있던 흰 색과 아이보리 색의 의상 위로 남자 모델의 붉고 긴 머리가 흘러 내리자 객석에서는 탄성이 자아져 나왔다. 저 모델 섭외하려고 얼마나 빅 브랜드 몰래 컨택을 넣었는지... 고생했던 일들이 보상 받는 느낌이 들었다.


패션쇼는 성공적이었다.


“고생했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다가온 선생님이 어깨를 두드렸다. 힘들어 도망쳐 버리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고양된 감정들이 가득 차 올랐다.


끊기지 않는 박수 갈채를 리듬 삼아 모델들이 한 명씩 스테이지를 돌아 들어오기 시작하자, 유빈누나와 민재는 서둘러 대기실로 들어갔다.


모델들이 퇴장한 스테이지는 베이스와 드럼의 단조로운 리듬으로 정돈되어 간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 깔리는 순간. 스테이지를 가득 채우던 박수 갈채가 조금씩 잦아들어 갔다.


“선생님 차례입니다.”


신호를 주자, 선생님이 무대로 나가고 특별히 준비한 조명이 그 위를 비춘다. 작아져 가던 환호 소리가 다시금 터져 나왔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응?”


한 순간, 미친 듯이 터져 대는 플래시 라이트 사이로 하얀 불빛 하나가 솟아 올랐다.

인사를 하던 선생님도 이변을 눈치챘는지 멈춰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또렷해지는 형체.

하얗고 동그란 몸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날개. 앙증맞은 얼굴의 새. 흰머리 오목눈이였다.


스테이지 한 가운데로 날아오던 그것은 선생님쪽으로 날아와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한 손을 내미는 선생님을 피해 새는 대기실 입구를 가린 커튼 안으로 쓰윽 들어왔다.


기분 탓이었을까?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을 내는 듯한 녀석은 반응할 틈도 없이 내 어깨 위로 올라 앉았다.


“찾았다.”


흥분으로 가득 찬 관객들의 환호와 음악 소리에도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조금 하이톤의 귀여운 목소리.

당황한 내가 반사적으로 새를 잡아보려 했지만, 순식간에 새는 사라져 버렸다.


“이런 연출은 누가 준비한 거지?”


선생님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게··· 저도 잘···”


“그래? 우리 컨셉이랑 잘 맞아서 다행이었지만. 이런 해프닝은 다시 안 생기도록 조심해.”


“네···”


가슴 한 켠을 쓸어 내렸다.


갑자기 나타난 새를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마음에 안 들었더라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완벽주의자인 선생님은 새 한 마리 들어오는 것도 관리를 못했다며 난리가 났었겠지··· 그나마 ‘리저렉션’ 이라는 이번 시즌 컨셉과 새의 이미지가 어울리게 느껴진 것 같았다.


“다 들어왔으면 이 쪽 좀 도와줘.”


민재가 볼맨소리로 나를 불렀다.

모델들은 이미 옷을 갈아입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기 위해 몰려와 있었고, 가건물로 지어진 대기실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모델들이 대충 벗어 행거에 걸어 놓고 간 옷들. 여기저기 널부러진 신발들. 대충 봐도 옷과 세트였던 소품들도 정신없이 흐트러져 있었다.


“갈게!”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정리를 위해 뛰어 들어갔다. 이번 시즌의 파리 컬렉션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



“Au revoir!”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니 조금 허탈한 감정이 밀려왔다.


쇼가 끝나고 나면 늘 겪는 느낌이긴 하지만, 이번엔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일의 한계는 끝이 없었다.


생산 관리에 영업에, 마케팅까지···


쇼가 끝나고 나서 쇼룸을 지키며 해외 바이어의 수주를 받는 것도 그 업무 중 하나였다.


물론 현지 대행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내가 온 것을 보고 바로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비우는 직원을 보며 새삼 느꼈다. 한국 사람이 정말 성실한 편이라는 걸···


“혼자 괜찮겠어?”


유빈 누나가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응, 편하게 다녀와.”


웃으며 말했지만,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쇼가 끝난 후 파리에 상주하는 며칠.

시장 조사를 하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 등을 하는 기간이었지만 모두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다녀올게.”


민재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하며 나가자, 유빈 누나도 그 뒤를 이어 쇼룸을 나섰다.


“나도 가고 싶다···”


작은 한 숨과 혼잣말을 되뇌어 본다.


물론 파리까지 왔는데, 다른 디자이너들의 옷도 보고 쇼핑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한 달 200만원도 안되는 월급으로는 파리의 부띠끄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눈치가 보였다. 집에서 어느 정도 밀어줄 수 있는 형편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민재는 안 사면 뭐 어떠냐고 했지만, 소심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며 행거의 옷들을 정리하는데, 문득 쇼룸 문이 열렸다.


“Bonjour”


“Bonjour!”


40대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동서양이 묘하게 섞인 외모는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편한 옷차림에도 시선을 잡아 끄는 점이 있었다.


“May I help you?”


서툰 영어로 물으며 휴대폰의 번역기를 켰다.


“유원씨?”


“Oui?”


“저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차분하게 웃으며 말하는 남자의 말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뻔 했다.


“아, 네. 편하게 둘러보시고 발주하실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옷을 보러 온 건 아니에요. 유원씨를 만나러 왔어요.”


“네?”


유난히 투명한 하늘빛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는 남자에게서 유원을 시선을 떨궜다. 그런 취향은 아니었는데도 자꾸만 심장이 묘하게 뛰었다.


“힌쩨는 이미 만나셨죠?”


“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쳐다본 그의 어깨에 어느 순간 하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어제 패션쇼에 나타났던 흰머리 오목눈이.


“안녕?”


“아··· 안녕?”


말을 하는 새에게 당황하며 인사를 했다.


“힌쩨는 호문쿨루스예요.”


남자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호문쿨루스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7년전 등장한 RHB그룹이 연금술이라는 분야를 개발하여 만들어낸 존재들. 연구소나 개발 과정이 철저하게 보안에 쌓여 있어 이걸 과학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많았다.


“맞지? 내가 여기 와 있다고 했잖아!”


하얀 새가 조잘거리며 내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연금술과 호문쿨루스에 대한 기술은 놀랄 만큼 획기적이었지만, 그만큼 가격도 비쌌다. 뉴스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연일 떠들어 댔지만, 나 같은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지금 내 어깨 위에는 아마··· 한정판 슈퍼카 한 대가 올라가 있는 걸지도···


“그래. 아직 감은 안 죽었네.”


남자는 새와 이야기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오랜만이에요. 유원···씨.”


내가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어깨 위의 새가 다시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저는 마티아스. 유원씨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죠. 유원씨는 기억 못할 수도 있겠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려 했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외모에 호문쿨루스까지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봤다면 잊을 리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약을 먹여 버리는 건 어때?”


힌쩨라는 새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도망쳐야 하는 상황인 걸까?


“아냐. 이번엔 조금의 위험도 만들고 싶지 않아. 힌쩨.”


“저··· 위험한 일을 하려는 거라면, 여기 CCTV도 다 설치되어 있어요. 대행사 분들도 금방 돌아오실 거고.”


“그런 건 소용 없을 걸?”


“힌쩨!”


장난치듯 말하는 새에게 남자가 살짝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번역기를 켜 두었던 휴대폰을 슬쩍 통화 쪽으로 넘기려는 데 남자가 내 손을 잡았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자리를 옮기죠.”


순간,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며 사라져 갔다.

몸이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눈 앞의 남자마저도 금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작가의말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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