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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별 님의 서재입니다.

피터팬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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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별
작품등록일 :
2017.07.01 21:59
최근연재일 :
2017.07.05 22:28
연재수 :
6 회
조회수 :
673
추천수 :
13
글자수 :
19,825

작성
17.07.05 20:32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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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5)

DUMMY

2015.03






어, 뭐야. 어디 갔어. 자습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수학 문제집을 들고서 여을을 찾아온 도연은 불이 꺼진 채 텅 비어있는 여을의 자리에 맥이 빠져 인상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여을이 문제풀이 강의 좀 들어보려고 했더니. 얘가 자습 중간에 어딜 갈 애가 아닌데. 괜히 미련이 남아 여을의 자리로 더 가까이 걸어간 도연은 그제야 여을이 남겨 둔 작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진학 상담 갑니다.’




아마도 자습실 출석 체크를 하는 감독 선생님께 보내는 것일 그 메시지를 읽은 도연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 벌써 최여을 차례야? 우리 중에 제일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 할 차례는 아닐 텐데? 고개까지 갸웃하며 메모지를 찬찬히 읽어보던 도연은 결국 하릴없이 메모지를 내려놓고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돌렸다. 어쨌든 여을이 거짓말하고서 자습을 빠질 위인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지금 여을이 내신으로는 웬만한 대학도 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정말요?”


“네, 어머님. 유지만 해도 여을이는 그나마 좀 편한 수험생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진학상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 위주로 이어지는 대화 때문에 여을은 상담 시작부터 아무 말도 없이 제 앞에 놓인 녹차만 마셨다. 어머님이 찾아왔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상담하게 된 학생이 이 학교의 최고 우등생이라는 것에, 앞으로의 상담 역시 순탄하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고 있는 건지, 여을의 생활기록부를 여을의 어머니에게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가는 담임의 얼굴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상담이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여을의 시선이, 담임 쪽에 놓여 있는 홍삼 박스에 가 닿았다.




“······.”




···어지간히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수시는 서연고만 쓰실 거죠?”


“굳이 여섯 개 다 안 채워도 될 것 같은데.”


“사실 여을이 모의고사 성적만 보면, 수시 자체를 노릴 필요가 없긴 해요. 자칫하다 납치될 수도 있으니까.”


“맘 같아서는 정시로만 노리고 싶긴 한데,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그건 그래요. 그래도 여태 여을이는 해 온 게 있기 때문에 별 이변은 없을 겁니다.”




어지러워. 녹차엔 커피보다 많은 카페인이 들어있다고 하던데, 그럼 정신이 더 또렷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얼음이 들어 있어서 그런가. 너무 차가워서, 그래서 머리가 띵한 건가. 옆에서 들리는, 담임과 어머니의 대화가 순간 아득하게 들리는 기분에 여을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여을아.”




그러나 그건 오래 가지 못했다. 웅웅대는 소음 속, 어렴풋이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여을은 저도 모르게 살며시 눈을 떴다. 누구지. 누가 부르는 목소리지. 마치 그 잠깐 눈을 감았던 순간이 아주 오랜 시간 빠져있던 잠이라도 되는 듯, 여을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아 그 목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을아?”




굳게 닫힌 눈꺼풀 뒤에 숨어있느라 차마 제 모습을 바꾸지 못한 시선이 그대로 담임 선생님에게 가 닿아버렸다. 한심함, 아득함, 어지러움이 한데 섞인 그 복잡한 눈빛이. 찌푸려진 미간을 펼 새도 없이 담임을 쳐다봤음에도 불구하고 담임은 여을에게 ‘표정이 왜 그러냐’는 말을 꺼낼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학부모에게, 학생의 우수한 성적을 대신 자랑하느라 신이 난 담임 선생님은 다행스럽게도 무례하다 느껴질 수도 있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아니, 애초에 우등생에게 그런 잘못은 잘못이 아닌 걸 수도.




“왜요?”


“자기소개서에 희망 진학 대학이랑 학과를 안 썼던데. 혹시 아직 고민 중이니?”




음······. 그걸 어머님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면 뭘 어쩌자는 거지. 안 쓴 데에는 어지간한 이유가 있겠지. 제가 지금 공부할 시간 뺏겨가며 이 마음에도 없는 자리에 앉아있는 것부터 불만이 아닌 것이 없다. 내가 생각한 진학 상담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머리 속에 못마땅한 생각이 가득한 채 여을은, 자신을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제 어머니를 슬쩍 바라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나는,




“별 상관 없어서요.”




모르겠으니까.




“응?”


“대학만 스카이면 상관 없잖아요.”




내가 정말 대학을 가고 싶은 건지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스카이 안정권이면, 저 이제 가 봐도 되죠?”




그래서 안 썼어. ‘희망’ 진학.




“어, 어, 여을아···!”


“어머, 얘, 여을아!”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정작 자신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는 그 자리에 더 앉아 있기 싫었다. 제 담임과 어머니가 채 붙잡기도 전에 교무실을 뛰쳐나오다시피 도망 나온 여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습실로 향했다. 제 뒤를 쫓아오는 것만 같은 허상의 걸음 소리에 쫓겨, 그녀가 향할 수 있는 곳은 그 곳밖에 없었다.






***






“나 왔···!”


“쉿.”




늘 그렇듯 자습 시간이 끝나고 인원 점검이 다 끝나고 나서야 학교로 돌아오는 영원이 공부에 지친 룸메들을 위해 달콤한 간식거리를 사 들고서 신나게 방문을 열었지만,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조용한 분위기에 순식간에 압도 당해 버렸다. 12시도 안 됐는데 벌써 불을 꺼서 캄캄한 방에, 가장 어두운 정도로 설정해 둔 도연의 스탠드만 어렴풋이 빛나고 있는 방은 어쩐지 스산함까지 느껴졌다. 둘이 같이 공부하는 거면 다른 한 책상에도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영원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도연에게 물었다.




“최여을 자?”


“응.”


“벌써? 어디 아프대?”


“속이 좀 안 좋다네. 사감쌤한테 손가락 따달라고 하라니까 그냥 자면 된대.”


“헐.”


“그래도 소화제는 먹고 자는 거야.”




몸 작은 구석이라도 아프면 공부하는 데 지장 간다며 언제나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을 주장하던 튼튼 최여을 선생이 아프다고 잔다니. 고등학교 3년이면 이런 날도 다 오는 구나. 초코 케이크 사 왔는데 이건 내일 아침으로 먹여야겠네. 마치 죽은 듯 미동도 없는 여을의 침대를 흘끗 바라본 영원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잘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일찍 잠든 여을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들어간 영원이 이불까지 덮는 걸 확인한 도연은 책을 덮고서 스탠드 불을 껐다. 어차피 영원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켠 것이었으니. 그들 중 가장 잠 못 드는 룸메가 (비록 아프다는 핑계가 있긴 했지만) 간만에 이른 시간에 잠든 날이니 굳이 그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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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6) +1 17.07.05 56 1 8쪽
»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5) 17.07.05 52 1 7쪽
4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4) 17.07.02 93 2 7쪽
3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3) 17.07.02 117 3 7쪽
2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2) 17.07.01 145 3 7쪽
1 꽃잎 일기장이 모여 피워낸 한 송이 꽃 (1) +1 17.07.01 211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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