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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망나니 백작의 생존전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까르보치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1.02 18:12
최근연재일 :
2021.02.03 21: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34,639
추천수 :
1,211
글자수 :
204,097

작성
21.01.02 21:20
조회
1,415
추천
44
글자
11쪽

내 돈이야

DUMMY

하지만 칼리스는 올린 손으로 그랑디스를 때리기는커녕, 어깨를 살짝 잡기만 했다.


“아주 훌륭한 요리를 만들었더군.”

“지, 지, 지금 당장! 다시 만들어오겠···네?”

“아니, 다시 만들 필요 없네. 지금 그대로도 아주 훌륭한 맛이거든. 그러니, 이 맛 그대로···”


칼리스는 아주 조금 남은 스테이크 쪽에 눈길을 주더니 그랑디스에게 지시했다.


“스테이크 하나 더 내오게.”


그렇게 말하고 칼리스는 다시 자리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었다.

칼리스 백작은 원래 식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양이 영 적었다.


‘이왕 더 달라고 하는 거, 칭찬도 같이 해주면 더 많이 주겠지. 식당 아주머니들도 칭찬하면 서비스 더 많이 주셨다고.’


그래서 단순히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음식을 더 먹고 싶었기에 했던 행동이었다.

그랑디스는 예상 밖의 상황에 얼빠진 표정으로 바로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뭐해? 어서 안 내오고.”


칼리스가 입을 닦으며 재촉하자, 그랑디스는 정신을 차리고 손을 모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 그럼 다시 만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신지···?”

“아까 그렇게 말했잖아. 이번에는 좀 큰 덩이로 내오게. 맛있어서 더 큰 걸로 먹고 싶거든.”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이 끝날 것처럼 하얗게 질려있던 그랑디스의 얼굴이 금방 환하게 피었다.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칼리스는 담담하게 마지막으로 남은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식당에 있던 그 누구도 칼리스가 주방장을 칭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아까보다 어수선해지긴 했지만, 누구 하나 죽어 나갈 것 같은 살얼음판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맛있다.’


주방장이 들고 온, 아까보다 두 배는 더 큰 스테이크를 썰며 칼리스는 잠시 행복감에 젖었다.


-


식사를 마치고 업무를 본다며 서재에 들어간 칼리스는 속이 답답해 가슴을 쳤다.


“너무 과식했나···”


오랜만에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들뜨기도 했지만, 식사에 아주 만족했음을 주방장과 하녀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조금 더 먹은 감도 있었다.


‘다음번엔 주의해야지. 이제 이런 맛있는 식사를 매일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식사에 정신 팔릴 때가 아니야.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보자고.’


기지개를 쭉 펴고 칼리스는 현재 백작가의 상황이 어떤지 곰곰이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르니까 관리인들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겠어.’


칼리스는 서재에서 나와 문 앞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던 시종에게 근엄하게 명했다.


“샌슨과 마리온을 불러와라.”

“네! 알겠습니다.”


샌슨은 백작 가 영지의 세금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중년의 하인이었다.

마리온은 젊고 영리한 데다, 셈에 밝아서 샌슨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덕분에 둘은 칼리스 백작에게 매일 쪼이는 불쌍한 신세였다.


‘또 서재가 시끄러워지겠군.’


칼리스가 샌슨을 불러오라고 할 때는 항상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종은 지체하지 않고 부리나케 샌슨과 마리온을 부르러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샌슨과 마리온이 고개를 조아리며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지금 백작 가의 자산과 영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상태가 어떤지 알기 위해서다.”


샌슨과 마리온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건 칼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네? 아, 아닙니다! 다만 이런 세속적인 이야기를 고귀하신 주인님께 직접 말씀드려도 되는지···항상 저 같은 아랫것의 재량에 맡기셨는데.”


이 세계의 귀족들은 재산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칼리스에게는 관계없는 풍습이었다.


“상관없다. 보고해라.”

“오, 올해의 영지 내 농사도 저희 주인님의 어진 마음에 하늘이 감복하셔서 수확량이 전년 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아부가 거슬렸지만, 칼리스는 일단 잠자코 보고를 들었다.


“그렇게나 늘었느냐?”

“그러나 게으르고 어리석어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자들도 존재합니다. 당장 엄벌을 처해도 모자랄···”

“영지 내 주민들의 격차가 큰 모양이군. 합쳐서 평균을 내면 증가한 것처럼 보여도 수확량이 저조한 주민들도 있다는 뜻 아닌가.”


칼리스의 날카로운 지적에 샌슨과 마리온이 동시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고 있느냐? 계속해라.”

“네, 네. 이번에 수확량이 두 배로 늘었으니 작년에 걷은 세금과 수확물의 양을 네 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인님의 은혜 덕분이니 어리석은 영지 민들도 성의를 보여야 함은 물론···”

“네 배?”


칼리스는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뱉었다.


‘아니, 뭐 그런 양아치 같은 계산이 다 있어.’


마리온이 샌슨의 말을 끊으며 바로 항의했다.


“실례지만 샌슨님! 지금 세금도 감당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있는···”

“감히 주인님 앞에서 그 무슨 무례한 말이냐! 주인님, 이 어린 것이 철이 없어서 그만···”


샌슨이 호통치자 마리온은 입술만 깨물며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칼리스는 그런 마리온에게 주목했다.


‘이 녀석, 꽤 쓸만 하겠는데.’


칼리스의 눈치를 살피던 샌슨이 머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됐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다.”


원래 칼리스는 수확량에 상관없이 꽤 혹독하게 토지세를 걷은 편이었다.


‘아마 샌슨에게 매일 수확량이 늘고 있다는 보고만 들어서 그런 거겠군. 그래도 정도는 지켰어야지. 벼룩 간 빼먹는 것도 아니고.’


나중의 이야기지만, 백작가의 가혹한 수탈에 지친 소작농들은 곡괭이를 드는 대신 횃불을 들고 자신이 수확한 농작물들을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어차피 뺏길 거 그 백작가에 엿이라도 먹이자는 심정으로.


‘그때 칼리스 백작도 꽤 손해를 봐서 다른 곳에서 손해를 메우려고 했었지. 그 사업이 하필 불법 마약 밀매였고.’


키르케가 어렸을 때부터 칼리스가 조금씩 키워온 문제의 마약 밀매 사업.

이웃 나라에서 주로 재배되다가 음지의 경로로 들어와 이 나라에도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마약. 뷔레.


‘원래 영지 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평범한 농민들을 쫓아내기까지 하면서 영지 내에 마약을 직접 재배하질 않나.’


나중에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영지 주민들이 칼리스 백작에게 등을 돌린 것은 당연지사.

미래의 오싹한 전개를 떠올린 칼리스는 서둘러 앞으로의 대책을 떠올려냈다.


‘우선, 영지 내 주민들의 여론을 좋게 만들어야겠어.’


그것이 장기적으로 생존 확률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이 부유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게다가 영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 내 돈줄이니까.’


칼리스가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지금 있는 세금 정책을 손봐야겠다.”


샌슨은 예상했다는 듯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밝은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다.


“세금을 지금의 다섯 배 정도로 늘리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칼리스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니. 그동안 매기고 있던 세금의 양을 절반 정도 줄일 계획이다.”


샌슨과 마리온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네? 세금을 줄이신다고요?”

“물론, 거두고 있던 수확물도.”

“네?”


그동안 아무리 쥐어 짜내도 늘 세금이 부족하다고 닦달하던 사람이 칼리스였다.

그런데 세금을 줄인다니.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것보다 믿기 힘들었다.


“아! 그, 그럼 줄이시는 대신 다른 세금을 만드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안 그래도 가축의 꼬리 수에도 세금을 매기려고 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으로도 충분해.”


칼리스의 입에서 연속적으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오자

샌슨은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주, 주인님. 부디 이렇게 말하는 저의 무례를 용서해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됐고, 할 말이 뭔가?”


칼리스는 굽신거리는 샌슨의 말을 바로 끊었다.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하루가 꼬박 지날 것 같았다.


“그, 그게 이렇게 파격적으로 세금을 줄이게 된다면 백작가에 들어오는 수익도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사용인들에게 지급하는 비용을 확 줄이지 않는 한···”

“그렇게 영향을 크게 준단 말이냐?”

“네, 네! 저의 부족한 소견이지만 그렇게 판단됩니다.”


칼리스의 질문에 샌슨은 안도한 얼굴로 대답했다.

역시 우리 돈 욕심 많은 백작님이 바뀔 리가 없지.


“그렇단 말이지.”

“네, 그럼 말씀을 거두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하지만 칼리스는 샌슨의 예상과 달리 마리온에게 시선을 돌려 지시했다.


“너희 둘이 쓴 장부를 가져와라. 마리온.”

“네?”

“어서 가져와라. 꾸준히 쓴 장부가 있을 것 아니냐.”


마리온이 샌슨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따로 장부를 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샌슨에게도 비밀이었는데, 칼리스가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주, 주인님!”


샌슨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백작이 내린 명령이라 마리온보고 가져오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칼리스는 마리온이 잽싸게 가져온 두 가지 장부를 살펴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숫자가 안 맞는데?’


분명 들어온 수익과 농작물이 있는데, 어느 순간 삼 분의 일 정도가 사라졌다.

이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 마리온이 몇 번이고 머리를 싸매며 계산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해답은 샌슨이 쓴 장부에 있었다.


‘거대한 도둑놈이 있었군.’


칼리스는 신경질적으로 장부를 탁 닫았다.

장부가 닫히는 소리에 샌슨과 마리온이 동시에 경직했다.


“내가 보니 세금을 늘릴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하, 하지만 주인님···”

“네가 뒷주머니에 넣은 돈을 토해내면 문제없겠어. 샌슨.”


샌슨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렇게 말하는 칼리스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장부를 조작했더군. 아주 명백하게.”

“주,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주인님!”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자, 샌슨이 몸을 심하게 떨며 바로 넙죽 엎드렸다.

칼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긴 다리로 샌슨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서재 내에 울려 퍼지며 저절로 위압감을 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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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정교사 구했습니다 +3 21.01.06 1,273 40 13쪽
7 가정교사 구합니다 +2 21.01.05 1,300 42 13쪽
6 관계 개선(2) +4 21.01.04 1,314 44 11쪽
5 관계 개선(1) +5 21.01.03 1,382 47 12쪽
» 내 돈이야 +2 21.01.02 1,416 4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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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 뜨니 백작 +2 21.01.02 1,976 47 12쪽
1 프롤로그 +7 21.01.02 2,202 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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