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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 스릴러의 여왕, 로코바나나!

달콤한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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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바나나
작품등록일 :
2018.06.14 11:29
최근연재일 :
2018.06.14 11:5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34
추천수 :
0
글자수 :
35,820

작성
18.06.14 11:5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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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달콤한 여왕 - 7화.

DUMMY

강남역 인근에서 급히 차를 움직이기 시작한 태순. 그는 엑셀을 밟는 동시에 긴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박 비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권오 기자님. 급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박 비서와 하 기자의 통화는 2분 안에 끝났다. 매끄러운 통화만큼이나 밤의 도로는 한적했고 그 덕분에 태순은 빠른 시간 내로 판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증코드를 찍고 이씨 일가의 주택 내부로 진입한 태순은 밖으로 나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말리카의 모습을 발견했다. 말리카는 태순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박 비서, 어서 와요! 사하의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태순은 홀로그램 인공지능이 워낙 기밀사항이었던 지라 차마 소리내어 묻지 못하고 황급히 말리카를 따라 실내로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그럼요. 그건 항상 남편의 책상 위에 컵받침으로 쓰던 물건인 걸요. 제법 비싼 기계처럼 보여서 그렇게 써도 되냐고 그랬더니, 물에 빠뜨려도 안 망가진다고 하더라구요."


기밀에 붙여진 홀로그램 인공지능을 컵받침으로? 인공지능을 찾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이 우습게도 빗나가자 태순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한편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듯 쿨한 얼굴을 유지했다.


"이한영 대표님이라면 워낙 담대하신 분이니 그러실 만지요."


"그렇죠? 우리 남편이 워낙, 호호. 자, 이쪽이에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자 야외로 창이 트인 넓은 거실이 드러났다. 그곳은 세련된 컬러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엔틱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중 한 가운데에 있는 12인용 식탁 위에 커다란 은화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태순은 그것을 집어들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안경 너머로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빛났다.


한편, 말리카에게 있어 몇 년 동안 보아온 태순의 수트 차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편안한 트레이닝복이 꽤 신선했다. 마치 잘생긴 합기도 유단자가 잠시 가볍게 운동을 하러 나온 모습이랄까, 말리카는 태순의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우리 딸을 꾸준히 보필하는 남자답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하는 준연, 태순 둘 중 누구에게 진짜 마음이 있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말리카는 사하의 거대한 연애계획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들어왔지만, 실질적으로 그녀가 사귄다거나 마음에 든다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 당당하고 호방하기까지 한 귀여운 내 딸이 자신의 연애계획에 관해서는 거창하게 말하는데, 왜 사귀는 남자, 좋아하는 남자에 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못 하는 걸까. 혹시 말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 사귀어 본 적은 없는 것 아닐까?


"사모님, 혹시 사용법을 알고 계십니까?"


딸의 연애사에 대해 깊이 빠져 있던 말리카는 태순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 그건... 우리 남편이 말하길,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그것을 켤 수 있다고 했었어요."


"마법의 주문이요?"


"미안해요, 박 비서. 내가 워낙 기계에는 치라서 말이에요. 한 번 박 비서가 알고 있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봐요."


"음. 열려라 참깨?"


그러나 민망하게도 기계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말리카가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너무 식상해서."


밍구스러운 마음을 쿨한 표정 너머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추며 박 비서는 은화를 매만졌다.


"아닙니다. 뭔가 더 좋은 마법의 주문이 있겠지요."


태순은 이한영 대표가 사용했을 법한 마법의 주문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았다.

이한영 대표님. 예술작품에 가까운 초콜릿과 사탕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사업가이자, 세기적인 로맨티스트. 그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 않는 그의 부인 말리카를 모티브로 한 홀로그램 인공지능을 만들었다면, 비밀번호 또한 그와 관련된 것이어야 할 터였다. 문득 태순은 떠오르는 것이 있어 말리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모님, 이런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만, 혹시 이한영 대표님께서 평소에 사모님을 부르던 별명이 있었나요?"


"있죠. 부끄럽지만, 저희 단 둘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저를 '셰이린 말리카(Shirin Malika)'라고 불렀어요."


"그게 무슨 뜻이 있나요?"


말리카는 조금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그건... 우즈베크어로 '달콤한 여왕'이란 뜻이에요."


순간 태순은 은화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음성 인식 기능을 표시한 빛일 것이다. 셰이린 말리카, 혹은 달콤한 여왕. 만약 이 두 개 중 하나가 비밀번호가 맞다면? 하지만 비밀번호가 맞다면 왜 진작 풀리지 않았지? 멀어서 잘 안 들렸나? 태순은 은화를 고개 바로 앞에 놓아두고 큰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셰이린 말리카(달콤한 여왕)."


그 순간 은화에서 하얀 원반과도 같은 빛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흰 빛기둥이 위로 확 솟았다. 산산히 흩어진 빛 속에는 말리카와 매우 흡사한 얼굴과 몸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홀로그램형 인공지능 Hara 입니다. 홍채 인식 결과, 현재 사용자는 저의 소유주이자 제 1계정의 보유자인 이.한.영 님이 아니므로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동빛이 도는 길고 아름다운 흑발, 부드럽고 새하얀 피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이마와 코, 따뜻한 초콜릿 빛을 띤 눈동자. 인공지능 Hara는 말리카를 마치 여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태순은 그 인공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사하의 모습이 Hara와 겹쳐졌다. 사하가, 아니 Hara가 환하게 태순을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그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금 이한영 대표님께서는 어디 계시지?"


"해당 질문은 권한이 제한되어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말리카는 Hara의 앞으로 고개를 조심스럽게 숙이며 그녀의 홍채가 인식되도록 했다.


"이한영 님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제 2 계정의 보유자인 이말리카 님을 인식합니다. 안녕하세요, 말리카님."


"방금 그 명령을 다시 실행해 줘요. 이한영 대표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죠?"


Hara는 방긋 미소지으며 말리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매우 유사한 아름다운 두 여성이 쌍둥이처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기이한 풍경이었다. 태순은 이 신비로운 풍경을 한동안 잊지 못하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한영 님은 현재 인천국제공항 제 2여객터미널, 2번 출국장으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한영 대표님과 연락이 가능합니까?"


"죄송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이한영 대표님으로부터 접근 금지 요청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한영 대표님의 모습을 비추어 줄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건 뭐, 되는 게 없네요."


태순은 허탈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죄송하지만 사모님, 혹시 노트북이나 컴퓨터가 있다면 2~3개 정도 빌릴 수 있을까요?"


말리카가 노트북을 가지러 나간 사이, 태순은 자신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세팅하며 사하에게 전화했다.


"이사하 대표님. 지금 어디십니까?"


"지금 저 인천공항 안이에요! 인공지능은 찾으셨나요?"


"네, 찾았고 부팅시키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아쉽게도 그 이상으로 상황이 진전되지 않네요. 인공지능 Hara의 말에 따르면 이한영 대표님의 위치는 현재 인천국제공항 제 2여객터미널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알겠어요. 저랑 준연이가 먼저 그쪽으로 가서 이한영 대표님을 찾고 있을게요."


말리카가 노트북 2대를 추가로 가져왔다. 2 개 모두 사하가 대학교 다닐 적에 쓰던 것이라고 했다. 태순은 자신의 노트북 2대와 말리카가 가져온 노트북 2대의 뒷면을 각각 뜯어 서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찬 말리카가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 말고 물어보았다.


"박 비서, 뭐하시는 거에요?"


"아, 상황 설명을 드리는 것을 잊어버렸군요. 지금으로써는 이한영 대표님을 직접 쫓아다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일 것 같고, 이대로는 언론에 알려지는 것도 시간 문제에요. 그래서 차라리 인공지능 Hara의 방화벽을 무너뜨려서 제한되어 있던 권한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쉽게 말해서 Hara를 해킹해서 제 마음대로 쓰겠다, 이겁니다."


"그게 가능해요?"


"사모님, 저 어릴 적에 해커로 유명했던 거 기억 안 나세요? 감옥도 갈 뻔 했었잖아요. 그걸 무마시켜서 꺼내주신 게 이한영 대표님이셨죠. 대신 평생 사하의 전속 비서하라고 30년 계약을 쓰게 하셨죠."


"어머나, 노예 계약 아니에요?"


"노예까지는 아닙니다. 저도 덕분에 이사하 대표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제 파란만장했던 해커 시절도 무마시킬 수 있게 되었으니. 게다가 연봉도 초봉부터 5억원을 제시하셨거든요."


"우리 남편이 태순씨를 여자와 돈으로 회유했구나?"


"아니, 여자와 돈이라니요 사모님. 이사하 대표님이 들으면 엄청 섭섭해하겠습니다."


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사양을 크게 확장한 태순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Hara의 기기에 그것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말리카는 빙긋 웃었다.


"우리 사하, 마음에 들죠?"


태순은 순간 뜨끔했지만 특유의 냉담한 얼굴을 유지하는데에는 간신히 성공했다. 그러나 여자의 촉이란 그보다 더 예리한 것이다.


"저 알아요. 옛날에 있었던 해킹 사건, 사하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면서요."


"하하. 그건 제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사하가 그 해킹 사건 때문에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 줄 알아요. 그래도 다행히 당시 남편 전속 비서의 아들이라서 우리 남편이 바로 꺼내줬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준연이처럼 사하가 엉엉 울면서 도와달라고 아빠한테 매달렸을 거에요."


한준연. 아무리 사하와 준연이 가깝다고 해도, 솔직히 태순은 그를 딱히 질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학력, 경력, 집안 모두에서 그는 준연을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준연 이상으로 사하를 보필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사하가 준연과 상당히 친해보이지만 그 또한 사하가 애써서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았다.


"사하, 그 애. 원대한 자신의 연애계획에 대해서 박 비서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네,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연애를 무척 좋아하신다는 사실도요."


"스캔들이 많이 나긴 하지만, 사실 그 애는 그 누구하고도 제대로 사귀어 본 일이 없을 거에요. 그렇겠죠, 최상류층은 그저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것 자체만으로 가십거리가 되어버리니까요."


태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사하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인공지능은 그들 앞에 두둥실 떠올라 찬란한 여신의 형태를 계속 뿜어내고 있었다.


"사하는 지금까지 사랑도, 연애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을 거에요."


"그걸 굳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거야, 우리 가족이 가장 신임하는 박 비서니까요. 자, 일해야 하는데 계속 방해했네요. 중요한 일 마저 해요."


"네. 알겠습니다."


말리카로부터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태순은 속으로 되뇌었다.


'사하는 지금까지 사랑도, 연애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을 거에요.'


갑자기 태순의 가슴이 조금씩 쿵쿵뛰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심박수에 놀란 태순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Hara의 후광 속에 애써 감추며 해킹에 몰입하는 척 했다. 그러한 태순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인공지능 Hara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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