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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에너그램 님의 서재입니다.

몰락 가문의 유일한 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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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그램
작품등록일 :
2024.06.02 00:44
최근연재일 :
2024.06.02 12:00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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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76

작성
24.06.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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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1)

DUMMY

나는 검을 잡고 싶었다.


대의를 위해 싸우고,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런 기사를 꿈꾸었다.


언젠가는 저 전설적인.

자신만의 검술을 창안하여 용을 베어내고 거인을 무찌르는.

소드마스터의 칭호를 달 수 있을거라 의심해 마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펜 대신 검을 잡았다.

글 대신 목을 잘랐다.


나는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었기에 두가지를 동시에 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채 나이를 손으로 세지도 못할 시절부터, 나는 검을 휘둘러 왔다.


부모님은 흡족해 했다.

그럴 것이다, 낳은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자식이 10년도 안되어 돈을 벌어다 주었으니.

오히려 내가 집에 있는걸 탐탁지 않게 여긴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손가락질 했다.

어린 놈이 귀신이 붙었다고.

검에 홀려서 벌써 피를 본다고.


용병들도 나를 꺼렸다.

어린 아이 주제에 불길하다고.

몇 번은 나를 치우고 내 몫을 가져가려 하던 놈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검을 좋아했기에.


검을 휘두르고 있으면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기에.

언제나 전설 속의 영웅처럼 남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렇기에, 그때 그 제안에 응한 것이었다.


“자네, 종자가 되어 볼 생각 없나?”


이따금씩 용병 길드에 찾아오는 꽤나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자 였다.

사람들은 그를 피리 부는 하멜른이라 불렀다.


“자네는 싹이 보여, 잘 갈고 닦는다면 엄연한 검이 될 수 있을걸세.”


종자.

기사의 뒤를 따라다니며 뒤치닥 꺼리나 하는 존재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아니다.


위대한 이 대륙을 만들어 낸 황제 조차도, 처음에는 이름 모를 기사의 종자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종자에서 기사로, 그리고 기사에서 왕으로.

그리고 왕에서 황제가 되었지 않았던가.


그것은 내 꿈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네.”


내 지옥의 시작이었다.


“짐을 챙겨라, 오늘부터 너는 이 시골구석이 아닌 저 도시로 가야 할테니.”


말똥 냄새와 풀내음만이 가득하던 마을.

그곳에서 떠난 나는 처음으로 도시를 보았다.

“아아...”


신기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풍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좋았던 것은 단 하나.


멋들어진 갑옷을 입은 기사가 있었다는 거였다.


“서둘러라! 입학 수속을 밟으려면 오늘 내로 아카데미에 도착해야 할 테니!”


아카데미.

기사를 키워내는 양성소.

그곳의 첫 인상은 더럽게 크다는 거였다.


“우와...”


마을 정문보다도 더 큰 대문.

그리고 그 안에서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헤치고 들어간 나는 곧이어 수많은 시선들과 마주해야 했다.

“이 녀석이라고?”

“겉보기엔 별로...”

“그래도 몸에 칼자국이 벌써 나 있군, 실전 경험은 있는 것 같다.”


교관들.

앞으로 지긋지긋하게 보아야 할 얼굴임을 알았으면 그때 미소라도 지었어야 했다.


“일단 소개비는 주는거겠죠? 저는 이만 갑니다.”

“그래, 내일 중으로 사람을 보내지.”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하멜른은 일종의 중개업자였다.

싹수가 보이거나, 혹은 홀릴만한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오는.


“이름이 뭐지?”

“이름... 말씀입니까?”


그들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막심입니다.”

“막심... 성은 없겠지.”

“...저는 귀족이 아니라서.”


그 날 이후로 내가 막심이라 불리는 일은 없었다.

다만 3901번이라는 번호로 불렸을 뿐.


아카데미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기사를 만드는 것.


넘쳐나는 작위들과 그 위에 앉은 귀족들.

그리고 그 귀족들의 요청이 있는 한 기사의 수요는 많았고 공급은 적었다.


“그게 아니지!! 3901번!!”

“헉...헉...”


그들은 많은 것을 요구했다.

충성과 서약.

맹신과 복종.


“20회 더!!”

“하악...학...”


기사는 명예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건...이건 뭡니까.”

“보면 모르나? 3901번?”


기사는 역겨운 존재였다.


“부랑자...아닙니까.”

“그냥 부랑자가 아니다. 이 도시의 고혈을 빨아먹고 세금을 축내는 존재들이지.”


주인의 명령하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도구.

몸과 마음, 필요하다면 그 이상조차도 바치면서 얻는 거라곤 닳디 닳은 명예 하나 뿐인 개새끼.


“...못합니다.”

“못해?”

“이건 기사답지 않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돌아오는 건 하나.


“이 새끼가...”


폭력.


“아아악!!”


교관은 나를 두들겨 팼다.

교관 뿐만 아니라 동기들조차 나를 짓밟아댔다.


“이 새끼가!!”

“너 때문에 우리까지 처맞아야 돼냐고!!”


몸이 아픈건 상관 없었다.

이미 그건 몇 년도 더 전부터 수없이 겪어왔으니.


그저 덤덤히, 씻어 내릴 수 있는 더러움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게 아니었는데...’


아팠다.

심장이 아팠다.


욱씬 거리는 심장이 너무 아파서 가슴을 긁어댔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팠다.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그들은 내 울음을 보고 조롱했지만.


“아아아...”


내가 우는건 그들의 괴롭힘 때문이 아니었다.


“아아아아...!!!”


그것은 내가 바라온 모든 것이 부정 당했기에.

내 꿈이, 더럽혀졌기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조금이라도 그 눈물에, 그 더러움이 씻겨져 나가길 바랬지만.

얼룩은 전혀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은채 덕지덕지 쌓여만 갔다.


그러길 몇 년이나 되었을까.


“...3901번.”

“예.”


나는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교관의 명령도, 수업도 듣지 않았다.


모든게 부질 없어 보였다.

더럽혀진 내 꿈을 씻어낼 길이 보이지 않았었다.


“졸업이다.”

“...예?”


그렇기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건만.

뜻밖에도 나를 누군가는 불러내었다.


“발롱도르 가문에서 너를 불렀다. 곧 전쟁이 일어날 테니 수습 기사라도... 아니.”


슬쩍.

나를 쳐다보는 교관의 눈길에 혐오가 배어 있었다.


“종자라도 좋으니, 보내 달라고 하더군.”

“...왜 저입니까?”


끔뻑.

아주 잠깐 교관의 눈이 감았다 떠지고.

“가망이 없지.”


그는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겁도 없이 고작 신생 귀족인 주제에 뿌리 깊은 라탈리아 가문을 건드렸으니 이제 곧 박살이 날거고... 곧 작위도 회수되겠지.”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너랑 닮지 않았나?”


킥.

그렇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는커녕 종자조차도 되지 못할, 문제아나 다름없는 네놈이랑 말이야.”

“...”

“귀족은 자신에 걸맞는 기사를 가지게 되는 법이다.”


꾸욱.

내 손이 주먹을 쥐었다.


“네놈이랑 잘 어울리지, 안 그래?”

“그래.”


콰앙.

그리고 그 주먹은 교관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졌다.


“커헉!!”

“내가 이 곳에 오면서 배운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게 뭔 줄 아나?”


당황한 교관을 향해, 나는 손에 씌워진 낡디 낡은 장갑을 벗었다.


“주인을 향한 모욕을 기사는 참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퍽.

교관의 얼굴에 맞고 떨어진 장갑과 함께, 내 주먹이 그의 몸을 두들겼다.

“결투를 신청한다. 리하르 L 아센.”


50을 넘긴 교관은 이제 갓 20이 된 내 주먹을 견디지 못했다.

아니, 아마 그가 20이었다 해도 힘들었을거다.


왜냐면 나는, 아직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커헉!!”


스릉.

교관이 나를 발로 걷어차고서, 벽면에 있는 검을 집어들었다.

그에 맞춰 나도 검을 뽑아 들었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과연 교관이었다.

수많은 기사를 길러낸 그의 검은 날카롭고 노련했다.

그의 검은 몇 번이나 나의 목을 노렸고, 또한 내 살을 베어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챙!!!


“흐...억...”


모자랐다.

나를 죽이기에는.


“항복해라.”


꿈이 깨어진 그날.

싸늘하게 식은 부랑자의 시체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보았던 그날부터.


나는 하루도 검을 쉬지 않았다.


“하...항복...항복 하겠네...”

“...항복을 받아들인다.”


검은 고사하고, 대련조차 하지 않는.

귀족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과 여자들을 끼고 다녀 뱃살만 뒤룩뒤룩 찐 이따위 교관 따위는.


“다신 보지 맙시다. 빌어먹을 교관님.”


내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로.


“빌어먹을 자식...”


그 날로 나는 아카데미를 떠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카데미는 나를 잊었고.

나 또한 그들을 잊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하, 씨발.”


나는 폐허 앞에 도착했다.


“남아있는 사람이 있긴 한거야?”


툭툭.

건드릴 때마다 재가 된 나무들이 부스러지며 무너져 내리는 이곳.


여기가 바로 내가 모시게 될 발롱도르 가문의 저택.

...이 있었어야 할 자리였는데.

그런데.


“어이-!!!”


힘껏 소리쳐 보았다.

울려퍼진 목소리에 새들이 포르르 날아가고, 나무들이 바람에 한껏 나부꼈지만.

폐허에서 나오는 이는 없었다.


“...젠장.”


늦었다.

발롱도르 가문과 라탈리아 가문간의 전쟁은, 이미 끝나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발롱도르 가문의 압도적인 패배로.


“기사가 되자마자 바로 방랑 기사 신세라...”


픽.

헛웃음이 나왔다.

주인을 섬기긴 커녕 얼굴조차 보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방랑 기사 신세가 될 줄이야.


“뭐... 추가 수당 정도는 챙겨 주겠지.”


기사는 어디를 가나 대접받는다.

용병 또한 에외는 아니었다.


기사만큼 사람을 죽이는데 도가 튼 종족은 없었으니까.

용병들에게 있어선 아군 일때는 누구나 원하고, 적 일때는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하는 존재였다.


‘그래, 용병 기사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저벅저벅.

그렇게 뒤돌아서 떠나려던 그때였다.


[어이.]

“...?”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들리냐?]

“뭐야, 누구냐?”


곧바로 사방을 훑었다.

다리는 약간 벌려선 채, 손은 검 손잡이에 올린 채.

금방이라도 발도할 수 있는 자세로 대기한 것도 잠시.

[헛수고 하지 말고, 나 거기 없다.]

“...헛것이 들리다니, 유령이 들렸나.”


사상자가 꽤나 많이 나온 전쟁이었다.

살아남은 유령이 내게 씌인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


[네 주인, 안 구할거냐?]

“...뭐?”


내 주인.

발롱도르 가문의 이름을 꺼내는 목소리.


[저기 정 가운데에 있는 바닥, 저 바닥 뜯어내봐라.]

“갑자기 무슨...!”


그것도 모자라 뭔가를 지시하기까지 하는 그 목소리에 당황 했지만.

그럼에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네 주인 굶어 죽게 내버려 둘 거냐?]

“...씨발.”


바로 불타버린 저택의 한가운데로 향한 나는 보았다.

바닥의 정 가운데에, 아주 미세한 틈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틈이 다른 바닥들과 맞물려 있지 않다는 것을.


‘비밀 통로? 아니, 통로가 아니야.’


생각할 시간도 아까웠다.


푹!

바닥에 꽂아넣은 검이 바닥을 슥슥 가르자, 그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허.”


대략 열 넷 정도 되었을까?

성인이 되기 직전의 얼굴을 가진 여인이, 흙먼지가 잔뜩 묻은 드레스를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발롱도르 G 아리아네.]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든 나에게, 목소리는 그렇게 말했다.


[발롱도르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네 주인이다.]


원래라면 그 목소리를 향해 뭐라뭐라 물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정체가 무엇인지.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 물이 어디에...!!!”


목소리가 아리아네가 칭한 그녀.

그녀는 지금 죽기 직전이었다.

그것도 쫄쫄 굶어서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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