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4장 - 아무도 쫓지 않는 도망자, 그토록 미련한 사람이 또 있을까 3
가후는 정처 없이 황궁을 떠돌던 중이었다.
익주에서 돌아온 유언의 아들들에게, 황제는 이전의 벼슬들을 돌려주고 또다시 익주로 보내 유언의 친서에 대한 황제 자신의 답서를 전해주도록 명했다.
그런 황제를 칭송하는 대신들의 만세 소리가 지금까지도 가후의 귀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후는 꺼림칙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을 해낸 열한 살의 어린 황제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해서 가후의 지성을 툭툭 건들고 있었다.
가후가 가졌던 의문은 여전히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해 마치 지금의 가후처럼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분명 뭔가가 있는데, 뭔가가 있는데···.'
“가 공!”
누군가가 두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길을 걷던 가후를 불러세웠다. 상념에 잠겨있던 가후는 흠칫 놀라며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더라?”
“아, 이놈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여후를 모시는 장료라는 놈입니다.”
“···아, 그렇군. 지금도 여후 곁에 있는가?”
“그렇습니다.”
'···장문원, 여포 그자 곁에 묶여있기는 아까운 자이지···.'
가후는 짐짓 장료에게 모른척했지만, 실상 장료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이곳 황궁까진 무슨 일인가? 혹시 여후께서 입궐하셨나?”
“그건 아니옵고, 저희가 따로 알아볼 것이 있어서 저 혼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침 공을 멀리서 뵙고 이렇게 인사드리러 온 것이지요.”
“알아볼 것? 무엇을 말인가?”
“실은 요 최근에 황상 폐하께옵서 저희 여후의 저택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시잖습니까?”
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들었던 그때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여포가 저 혼자 신이 나서 마음껏 술을 들이켜다가 저 혼자 뻗어버린 일은 벌써 온 장안에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듣자 하니, 폐하께서 돌아가시는 길에 수많은 금군이 따라나섰다고 들었습니다. 여후 저택 주변에 매복해있었다고요.”
“뭐, 호위를 위해서 아니었겠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여후께선 그리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가후가 아주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장료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설마 황제께서 여후를 치고자 하시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런 건 절대 아닐 거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 봤지만···.”
“아이고···.”
듣자 하니, 그 단순무식한 여포가 또 저 혼자 착각하고 움츠러든 모양이었다. 가후가 딱 질색하는 부류인, 저 혼자 판단하다 저 혼자 착각하고 저 혼자 움직이는 사람인 여포였다.
“자네도 참 고생이 많구먼.”
“혹시, 무슨 수는 없겠습니까? 가 공의 지모를 빌려주십시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질 않사옵니까?”
“···이제 보니 자네는 다름 아닌 나를 찾으러 왔던 게로군. 그런가?”
가후가 장료를 노려보자, 장료는 짐짓 송구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나 이미 가후의 머리는 충분히 복잡해서 여포에게 빌려줄 만한 지모 따위는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그 일은 어쩔 수가 없군. 아무것도 쫓아오지 않는데 무언가가 쫓아온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나란들 어찌 해주겠는가?”
“하지만 가 공···.”
“정 여후께서 폐하가 두려우시다면 그분이 다시 한번 폐하를 만나 뵈면 그만 아닌가?
내 가까이서 폐하를 살펴보니, 황상 폐하라면 여후께서 또다시 집으로 초대해도 또 한 번 응하실 분이라네. 여후께는 그렇게 말해보게. 그럼!”
그 말을 끝으로 가후는 또다시 황궁 안을 정처 없이 떠돌러 발걸음을 옮겼다.
장료는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곤 한숨을 쉬며 그렇게 멀어지는 가후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서 장군.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나도 알고 있었네.”
연주를 떠나 다시 장안으로 향하던 서황-이영남과 그 부하들은 밤을 맞이하여 어느 빈 민가로 들어가 불을 피우고 있었다.
부하 중 하나가 저 멀리 민가 바깥을 내다보다가, 넌지시 서황에게 그렇게 물었다.
서황이 그 말에 저렇게 대답하면서 함께 같은 방향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연주에서부터 우릴 따라온 자일세.”
“목적이 무엇일까요?”
“앞서 연주 사람들은 내게서 우리 장안 조정의 정보를 얻어보려고 했다네. 내게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으니, 이젠 직접 사람을 보냈던 것이겠지.”
“하면, 지금 저자를 잡아서 요절을 내버릴까요?”
“···아닐세. 저들도 우리 사정이 궁금할 것이고, 우리도 저들에게 우리 사정을 들키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야.
우리와 함께 장안까지 가도록 놔두세. 가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도록 해주세.
그래서 오히려 연주에서 우리 조정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해주자고.”
그 말을 끝으로 영남은 바깥으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몸을 떨었다. 곧 있으면 장안이었다. 이젠 자신의 주군이 된 이순신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줄 생각에 기쁘기 한량없던 영남이었다.
'···비록 실제 역사와 연의가 다르다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막아냈어. 서주대학살을···.
사또께서 아시면 기뻐하실 테지···.'
***
“···연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후들이 벌써 그런 모략으로 서로를 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왕윤이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순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순신은 영남이 장안에 도착하여 들려준 이야기를 듣곤, 즉시 그와 함께 동창으로 향했다. 그러곤 동창의 회원들을 불러들여 연주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들었던 참이었다.
“···하온데 폐하께선 어찌 이런 사정을 아시곤 이 젊은 장수를 그 먼 서주까지 보내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전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었어요. 여기 있는 서 장군을 그곳에 보냈던 건 순전히 다른 일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운이 좋았던 게로군요. 이 또한 폐하의 홍복이시옵니다···!”
왕윤이 금방 수긍해주자 순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영남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곤 마 상시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 상시, 앞으론 여기 있는 서 장군을 내 직속에 두고 여러 일들을 맡겼으면 하는데. 동창의 일도 포함해서 말이요.”
“이미 여러 차례 서 장군을 부르시어 그 사람됨을 살피셨던 것 아니신지요? 저흰 폐하의 판단력을 믿사옵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고맙소. 그럼 여기 있는 서황 장군도 앞으로는 동창 회의에 참관할 수 있도록 하겠소. 다들 괜찮으시지요?”
왕윤, 주준, 순유, 마 상시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가후 또한 마찬가지로 넌지시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러면서도 아주 면밀하게 순신과 영남을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았던 가후였다.
“좋아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오늘은 이만 해산토록 합시다.
서 장군, 장군은 따로 날 따라오도록 하시오.”
가후는 함께 동창을 나서는 유협과 서황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눈을 멈추지 않았다.
***
“···앞으로는 행보를 더더욱 조심해서 가져갈 필요가 있겠네. 자네가 알고 있는 연의의 내용이 실제 역사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어.”
“실로 그러합니다.”
후원에서 또다시 따로 만난 순신과 영남은 그렇게 서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난번 조선에서 두 번째 백의종군 전에 내가 했었던 실수가 떠올랐네. 조급한 마음에 사정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급하게 조정에 장계를 올렸었지.”
“···소장도 기억합니다.”
“뒤늦게 동창의 정보를 살피고는, 자네를 너무 섣불리 서주로 보냈던 것이 아닌지 자책했었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자네한테도 동창의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자격을 준 거야.
이 이역만리에 우리 둘만이 떨어져 있으니, 서로 조심하지 않으면 언젠간 정말로 큰 낭패를 볼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사또!”
순신이 술병을 들어 영남을 위해 술 한 잔을 따라주자, 영남은 어린 몸의 순신을 위해 술 대신 차를 잔에 따라주었다. 마 상시가 이젠 두 사람의 만남을 위해 이런 성의까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급한 일은 이제 대부분 넘긴 듯하구먼. 이젠 우리의 일을 논해보도록 하세.
내가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왕 사도가 내 앞으로 와서 동탁의 수급을 바쳤었네.
그런데 그 수급, 어딘지 모르게 지난 정유년에 칠천량(漆川梁)에서 죽었던 원균과 닮아있었다네. 내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했었거늘···.”
“원 수사와 동탁이 닮았다? 둘 다 몸이 비대했으니 그래서 닮았다고 생각하셨던 건 아닐까요?”
“···내 어찌 원균 그자의 얼굴을 잊을 수 있겠나?”
“···송구하옵니다, 사또.”
영남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무릎을 탁 치며 이야기했다.
“하오면 소장이 그 머리를 직접 보면 더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소장은 임진년 때 원 수사 휘하의 군관이었으니 말이옵니다.”
“···그랬지. 너무 아득히 옛날처럼 느껴지는군. 그래서 잊고 있었던 모양이야.
동탁의 수급은 아직도 장안 저자에 걸려있을 걸세. 다만 분명 부패가 많이 되었을 텐데···.”
“···어쩔 수 없지요. 백골이라도 샅샅이 살펴보겠습니다!”
“좋네, 말이 나왔으니···. 마 상시!”
순신이 목소리를 높여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 상시를 불렀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당황한 순신이 다시 마 상시를 부르려던 그때, 그제야 마 상시가 급히 후궁으로 달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아, 마 상시! 뭐하다 이제···.”
“크, 크, 큰일 났사옵니다, 폐하!”
마 상시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마냥 창백해진 얼굴로 순신 앞에 엎드려 황급히 고했다. 당황한 순신과 영남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크, 큰일이라니! 소상히 말해보시오, 마 상시!”
“바, 방금 황궁 밖에서 급보가 도착했사온데···.”
마 상시가 고개를 든 채 식은땀을 흘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 여후, 아니 여포가 조금 전···.
자, 장안성 저자에 걸렸던 동탁의 수급을 훔쳐 달아났다고 하옵니다···!”
“뭐, 뭐요!!”
순신과 영남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버려 뒀을 때는 아무런 쓸모가 없던 물건이, 정작 쓸모가 생기자 사라져 버리다니.
그것도 다름 아닌 그 여포의 손으로···.
“···어째서 그런 짓을···?”
“그, 그 이유는 아직 불상이오나, 그 때문에 효수된 수급을 지키던 경비병 대부분이 크게 상했다고 하옵니다···.”
'···혹시 연주에서부터 따라왔던 그자가 여포를···?'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금군이 있다면, 소장에게 맡겨주십시오! 즉시 추격에 나서겠습니다!”
“지, 지금 궐 안에 경비를 서는 기마병이 몇 기 있사옵니다만···.”
“사수···, 아니 서 장군! 즉시 출발하게! 나 또한 병력을 더 모아서 따라가겠네!”
“···예, 폐하!”
***
“장료!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라!!”
“젠장, 이랴!!”
그 무렵 두 기(騎)가 장안성의 동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중 한 기는 유독 붉은 빛이 두드러지는 커다란 말이었다. 허리에 궁전(弓箭)을 차고 극(戟)을 자유자재로 흔드는 여포가 적토 위에 올라탄 채 마치 유성처럼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딱 사람 머리 하나가 들어갈 만한 나무 함(函)을 품속에 간직한 장료가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적토를 탄 채 앞서나가는 주군을 어떻게든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젠장! 전장도 아니고 장안 한복판에서 이 꼴이라니, 내가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꼬···?'
***
노량에서 쓰러진 삼도수군통제사는 어찌하여 헌제가 되었는가
(21) 4장 - 아무도 쫓지 않는 도망자, 그토록 미련한 사람이 또 있을까 3
끝
- 작가의말
4장 3화입니다.
눈코 뜰 새도 없이 또 벌어지는 사건!
몸은 어린아이라도 머리는 천재 군략가!
내 이름은 코... 아니 이순신!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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