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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df 님의 서재입니다.

30세기 리얼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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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df
작품등록일 :
2023.12.02 03:25
최근연재일 :
2023.12.0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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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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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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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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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예..다음으로는 김춘복씨의 매드무비 상영이 있겠습니다. ‘89세 김춘복 할아버지 인생 최후의 똥테러’를 감상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진다.

연단에서 사회자가 내려가자 먼지투성이로 뒤덮인 지저분한 빔 프로젝터가 빛을 뿜었다.


실내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정면의 스크린에 사출된 화면이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89세 김춘복 할아버지 인생 최후의 똥테러’라는 영상 제목이 얼마간 떠올랐다.


약간 지루할 정도로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자 제목이 내려갔다.

하늘이 화창한 어느 도시를 비추며 조잡한 음악과 함께 한명의 노인이 등장했다.

노인은 멀리서 광화문 광장을 내려다보며 독백했다.


-나는 김춘복이다. 하찮은 삶을 살아왔지. 친구도 가족도 없는 그야말로 하찮은 삶이었다.


광화문 광장의 8차선 사거리에는 많은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자동차와 버스들이 도로 끝에서 나타나 저편으로 사라졌다.


보도블럭이 깔린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걸음을 재촉했다.

도로를 건너려는 사람들은 차들이 쌩쌩 오가는 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였다.


복잡한 도로였지만 규칙이 지켜지는 덕분에 사고는 나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가로수와 화단, 전면이 유리창으로 덮인 유려한 빌딩들. 잘 꾸며진 도시다.

젊은 사람들이 청춘을 살아가는, 활기가 살아 숨쉬는 도시였다.


세상이 빠르게 흘러 밤이 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도시를 보며 노인은 속으로 감탄하는 듯 했다.


도시의 야경은 언제봐도 감탄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에도 도시는 멈추는 법이 없다.

세상은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도시를 한가로이 바라보고 있자면 지나간 세월을 체감하게 된다.

노인은 독백을 이었다.


-눈이 부시는 시대다.


도시에는 선조가 남긴 옛 것이 보존되어 있었다.

강산이 몇번씩 뒤바뀌고도 남는 거의 백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경복궁의 고즈넉함은 그때 그대로였다.

그러나 경복궁에도 고유의 아름다움이 었었지만 도시의 경관에는 견줄 수 없었다.


아니, 비교가 무의미했다.

옛 선조들의 흔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도시의 일부였다.

시대를 초월한 무언가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토록 눈부신 시대라니. 정말 놀라워.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나는 작은 손길조차 보태지 못했다. 하찮은 놈이지. 그러나 비록 하찮은 삶을 살았을지언정 갈때도 하찮게 갈 순 없지 않는가?


화면이 노인의 시선을 따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크게 담았다.


-나 김춘복, 이제라도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을 본받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한몸 보탠다.


장면이 전환되었다.

노인은 집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벽마다 도배된 프로파간다 선전물과 비장한 태도에서 노인이 무엇을 하려는지 약간이나마 추정할 수 있었다.


노인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는 쪽바리에게 핍박당했고 젊어서는 내내 민족 분단으로 인한 괴로움을 겪었다.


일제는 노인의 원수였다.

빨갱이보다 더한 악의 주모자였으며 결코 잊어서는 안될 참극의 주범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역사를 잊어버렸다.

몸 내던져 일제 타도를 외쳤던 독립 유공자는 대가 끊겼거나 후손이 궁핍하게 살고있다.


반면에 쪽바리 친일파들은 어떠한가?

나라를 팔아넘긴 주제에 대대로 호가호위하며 천수를 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며 김춘복은 결심했다.


“우리의 주적은 일제다.”


다행스럽게도 역사를 잊지 않은 동지들이 있었다.

함께 활동하진 못하겠지만 뜻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에서 나온 노인은 레미콘 트럭을 운전해 서울로 향했다.

마당이 커다란 정원이 있는 어느 으리으리한 저택에 도착한 트럭은 속도를 낮추지 않은 채 출입문을 부수며 저택에 들어갔다.

노인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솥에 삶아먹을 이완용의 후장 빨개, 나라 팔아먹고 편하게 사는 매국노 새끼들아!”


때아닌 소란에 경비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그러나 육중한 트럭을 멈춰 세울 순 없었다.

당당한 외침이 그들에게 일갈했다.


“똥이나 쳐먹어라!”


개조된 믹서에서 콘크리트 대신 눅진한 죽같은 액체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검갈색 오물의 정체는 숙성된 똥이었다.

오래 숙성되어서인지 잘 밀폐되었던 믹서가 개봉되자 구역질이 나는 똥내가 사방으로 퍼졌다.


-으아악!


-저거 뭐야! 당장 치워!


트럭은 똥을 흩뿌리며 저택을 활보했다.

사람 한명이 지나가게 만들어진 좁은 길에 트럭이 우악스럽게 밀고 들어가자 갖은 조형물들이 아작이 났다.

어디 잘못 박으면 바로 멈추겠지만 장애물을 잘 피해 다니며 훌륭하게 정원을 파괴했다.


사람이라도 죽으면 큰일이겠지만 사상자는 없었다.

경비원들이 진작에 노인이 미친놈인걸 알아보고 무리해서 트럭을 막으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경음악이 박진감 넘치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불편한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핸들을 꺾었다.

트럭에서는 진작에 갈린 기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이놈아!”


노인의 바렘대로 똥을 뿌리는 트럭과의 추격전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저택의 경비들이 외제차가 섞인 차들을 끌고 왔지만 노인은 대비가 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스파이크처럼 날카로운 잔해가 뿌려져 있었다.

특별히 더 두꺼운 화물차용 타이어가 달린 트럭과는 달리 정원에 새로 들어온 차들은 타이어가 구멍나서 퍼져나갔다.


차들이 멈춰서자 더이상 트럭앞에 놓인 장애물은 없었다.

트럭이 타이어가 터진 차들을 들이박았다.

차를 운전하던 경비들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노인이 호쾌한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웃었다.


“으허허흐허!”


트럭은 삼중, 사중 추돌사고를 내면서 느긋한 속도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노인의 난동에 구경꾼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정원에 스며든 똥내를 맡고 코를 막는 구경꾼들에게 확성기로 반복 재생중인 노인의 메세지가 전달됐다.


-매국노를! 처단하라!


그때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 여러대가 저택에 도착했다.

곧 진압용 대형 경찰차가 저택에 진입해 트럭을 멈춰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저택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으아아악! 씨발! 저 미친 노인네!


집주인이 머리를 잡아뜯으며 절규했다.

노인은 경찰에게 붙잡혀 트럭에서 끌려 나오며 주위를 둘러봤다.


박살난 차들, 사방에 흩뿌려진 오물들.

복구하는데만 돈이 꽤 들 것이다.


몇천? 몇억? 차값만 수억에 달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정원 가운데에 있던 비싸 보이는 조각상도 부쉈으니 자산피해는 십억을 돌파할 것이다.

십억. 일평생 만져본 적 없는 금액이었다.


노인은 핸드폰으로 셔터를 눌러대며 자신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면상에 윤기가 흐르는 매국노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통쾌해졌다.


매국노의 후손으로 태어난게 죄였다.

그들과 어울리는 자들 또한 한통속이다.


“클클.”


화라도 난듯 무심한 표정으로 연행하는 경찰에게 끌려가 경찰차에 갇히며 노인은 만족스런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짧은 소동이 마무리됐다.

89세 김춘복의 인생 최고 업적이었다.


화면은 사라지는 경찰차를 비추며 서서히 암전하다가 완전히 꺼졌다.

영상이 끝나자 실내에 불이 들어왔다.

김춘복은 연단에 올라섰다.


“흠흠.”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간혹 기침소리만 나지 조용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준비해온 대사를 말했다.


“허허. 먼저 제가 이 자리를 있게 도와주신 한인 애국회 정미나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김춘복은 소감을 이었다.

상투적인 대사가 나긋한 말투와 어울리자 더없이 지루한 연설이 되었다.

김춘복은 강하게 주장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 한인들의 땅을 되찾고..”


시간이 흐른다.

다들 밥 한끼 얻어먹으려고 지키고 있는 자리였다.

사회자는 하품을 했다.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얼마나 기구한 삶을 살아왔는지 토로하고 서로 버둥버둥 위로해주는 공간이다.

쉽게 말해 경로당이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 노친네였군.’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이면 각자의 기구한 사연에도 평가가 따라붙는다.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에서부터 정상은 아니지만 저정도면 얌전히 미친축에 속했다.


“허허. 한인 애국회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밀폐된 방을 채웠다.

듣다가 졸을 정도로 연단에 향하는 관심은 적었지만 박수만큼은 열렬했다.


사흘마다 열리는 한인 애국회의 정기 코너,‘나를 소개합니다’ 차례가 끝났다.

다시 연단에 오른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일정을 진행했다.


한인 애국회의 집회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대략 서른명의 ‘한국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영혼없는 동작으로 그리 성실하지는 않게 일정을 수행했다.

주로 집단의 정체성을 확고히하고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 활동들이다.


사람들은 사회자의 지휘에 맞춰 애국가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사람들이 잊지는 않겠지만 말했다.


“밥 받아 가세요.”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다.

면상만 봐도 굶고 다니는게 훤했지만 먼저 먹겠다고 급하게 성질 부리는 경우는 없다.


그는 반수 이상 빠져나가자 의자를 가지런히 정렬하는 등 공간을 정리했다.

한인 애국회 집회의 사회자이자 관리인이 그의 직장이었다.

혼자 일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직장이었으나 그는 이 직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플라스틱 의자만 몇십개 있을 뿐 휑한 집회 장소를 보며 마지막으로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던 중 구석자리의 아직도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눈을 까뒤집은 채 실실 웃고 있었다.


“뭐야. 어디 아픈가?”


그는 남자의 머리 뒷부분을 매만졌다.

아니나 다를까 봉합자국이 남아 있다.

의료기기가 아닌 칼을 대서 생긴 수술 자국이었다.

이제보니 좋은 꿈을 꾸는 중이었다.



*



김현우에게는 행복회로가 있다.

그가 행복회로를 작동시키면 그는 행복해진다.


행복회로가 작동하면 뇌에서는 두가지 작용이 발생한다.

대뇌에 박힌 칩이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조합해서 또다른 현실을 생성해낸다.


일련의 과정에는 어떤 외부의 개입도 없기 때문에 애비가 죽은 자식 불알을 만지듯 자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행복회로가 장착된 싸구려 전뇌 칩은 도파민을 분비 시킨다는 점에서 마약과 비슷하지만 보다 가성비가 좋고 무엇보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뒷골목의 병원에서 신장 하나만 떼어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김현우는 행복해지기를 갈망했다.

그는 상상 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책, ‘SSS급 경험치 100억배 헌터가 되었다’의 주인공이었다.

마약 중독자가 으레 그렇듯 상상의 현실성과 디테일은 중요치 않았다.

그는 40년째 협회를 때려부수는 똑같은 장면을 반복하며 이미 죽은 협회장을 수천번을 넘게 죽였다.

이제는 파블로프의 개마냥 협회장의 얼굴만 봐도 피가 끓어 오르며 중독으로 인한 발작증세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김현우가 물밑에서 사악한 범죄를 저질러온 가증스러운 협회장을 요리하려던 찰나였다.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어지러움에 김현우는 휘청거렸다.

때문에 격렬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 치명적인 빈틈을 내보였다.


하지만 협회장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

잔뜩 일그러진 화난 표정에도 불구하고 마치 빈틈을 보인 상대를 공격하는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한 태도다.


그런데, 그 협회장이?

모순 속에서 김현우는 깨달았다.


“음, 음?”


“끝났어요. 도시락 받아서 가세요.”


사회자가 단호하게 말한다.

김현우는 무슨 상황인지를 인지하지도 못했지만 몸에 밴 말투로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김현우는 여전히 멍했지만 사회자는 여러번 말하지 않겠다는 듯 나가 버렸다.

그래도 문을 잠궈야 하니까 아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는 의식이 떠오르는 잠깐동안 끙끙대다가 정신이 돌아오자 깊은 패배감을 맛보았다.

김현우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중얼거렸다.


“씨발.”


밖으로 나가자 사회자는 벽에 기대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눈치다.


김현우는 문 옆 책상에 놓인 도시락 두개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선 눈치를 봤는데 챙겼으면 빨리 가라는 투였다.


김현우는 빈민 아파트에서 나왔다.

단지내 공용 벤치에는 거지들이 오가기 때문에 두리번거리며 사람없는 골목길을 찾았다.

그는 쪼그려 앉아 차가운 도시락을 까먹으며 중얼거렸다.


“씨발.”


개같은 세상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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