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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왕을 죽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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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07.06 22:30
최근연재일 :
2018.08.07 17:5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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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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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132,158

작성
18.07.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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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살얼음 판 위의 뱀파이어 4

DUMMY

오염자.

그것은 인간의 피를 마신 뱀파이어를 의미한다.

흡혈은 뱀파이어에게 강한 신체 능력,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감각인 ‘감응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며, 막대한 도파민 분비를 촉진,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쾌락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구강을 통해 섭취한 혈액은 뱀파이어의 이형인자를 변질시킨다. 그 결과, 육체는 유전자 단위에서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뇌세포까지도 파괴되어 지능과 이성이 퇴화한다.


이렇듯, 흡혈이란 뱀파이어의 육신을 철저하게 오염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오염자’라는 표현만큼 적절한 명칭이 없을 것이다.


......


까득... 찌익...


경기도 모처의 한 야산.

산의 밤은 바깥보다 빠르다. 울창한 숲은 태양 빛을 가리고 일부러 찾아오는 등산객조차 없었기에 지금 이곳은 정적이 내려앉은 밤이 되어 있었다.


촤악... 으득...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한 구석, 불쾌한 소리가 흘러간다.

물기가 많은 고깃덩어리를 찢는 소리, 그리고 중간에 단단한 무엇인가를 물어 끊는 소리가 지금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한 인영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게에... 키릭...”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떠한 의미조차 갖지 않는다. 짐승이라 할지라도 그 울음소리엔 어떤 의사가 담겨 있건만, 지금 이 존재가 내는 소리는 그저 눈 앞의 ‘고기’를 게걸스레 뜯어먹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 ‘오염자’는 바닥에 놓여진 무언가에 머리를 처박고 짐승처럼 그것을 탐닉하고 있었다.


“키이이... 캬악?!”

갑자기 그가 비명과 함께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곤 탁한 붉은 색의 눈동자로 희미한 빛을 내뿜으며 어둠 속에서 미친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그때, 저 너머에서 잔가지를 밟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캬아아아악!”

그러자 ‘오염자’는 마치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튀어 올라 마치 네발 달린 짐승처럼 엎드린 채 그 쪽을 보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염자가 두 팔과 두 다리로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캬아아악!”


그러나 그 직후,


스윽, 하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오염자의 사지가 잘려나갔다.

그리고 허공에서 팔다리를 잃은 오염자는 운동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추락하여 구른다.

“케에에에에! 갸아아아아!”

오염자는 바닥을 구르며 비명과 함께 몸부림친다. 그러나 팔다리를 잃은 몸뚱이로는 그것조차 만족스럽게 할 수 없었기에 그저 물에서 꺼낸 생선처럼 팔딱 댈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뜯어먹고 있을 때 제압하는 게 가장 편한데 말이지.”

그걸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것은 제타.

“부주의하게 발소리를 내버린 누구 덕에 저놈이 눈치 채버렸군. ‘도망친다’라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뇌가 맛이 간 놈이라 다행이었지만.”

“...죄송... 우웁...”

그 뒤에선 재빈은 나무에 기댄 채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고 있었다.


난데없이 하게 된 야간 산행은 이미 인간을 상회하게 된 신체 덕분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막상 오염자와 마주치고 나니 상황은 제타가 오른 손을 한번 까닥한 것 만으로도 오염자가 토막나버림으로써 끝나버렸다.


그렇기에 지금 재빈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것은 팔다리를 잘린 채 괴성을 지르고 있는 ‘오염자’의 몰골과 상반신만 남은 채 굴러다니는 인간의 시체를 보는 일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재빈은 아직 이런 광경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

한편, 그 뒤엔 윤나래가 아무 말 없이 서서 재빈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제타 곁의 어둠이 꿈틀대는가 싶더니 실체를 가진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제, 제타님께서 직접 오시지 않으셔도... 어, 어려운 발걸음 해주신건 감사합니다만...!”

갑자기 나타난 그 뱀파이어는 어쩐지 식은땀을 흘리며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

그 기이한 등장씬에 놀란 재빈이 주위를 둘러보자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십 수명의 사람들(아마도 뱀파이어)이 현장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산에 들어온 관리국의 인원은 재빈과 제타, 윤나래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괜찮아. 오늘은 저 녀석에게 현장실습이라도 시켜주려고 온거니까. 아니지. 딱히 뭘 시킬 건 없으니 견학이라고 하는게 정확하겠네.”

제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재빈을 불렀다.

“정재빈, 이리 와봐라.”

“아, 네?!”

재빈이 허둥지둥 제타에게 다가가자, 제타가 별안간 발을 들더니 몸부림치는 오염자의 머리를 밟았다.

“케에엑!”

오염자가 비명을 지르지만 제타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고 재빈에게 말했다.

“보면 알겠지. 이게 오염자다. 그리고 이런 걸 내버려둔 결과가 바로 저거고.”

“으윽... 꼭 그렇게 짓이기면서 설명하셨어야 했나요... 우욱...”

제타가 가르키는 방향, 간신히 인간이었다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시체를 똑똑히 본 재빈이 다시 구역질을 억눌렀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 놈들을 포착하는 족족 사냥하는 이유다. 이 놈이 처음에 어떻게 흡혈을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오염자의 결말은 항상 똑같거든..”

재빈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넣은 채 오염자와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최악의 경우엔 피를 탐하고 대낮에 인간에게 달려드는 놈도 있지. 이 놈은 그렇게 되기 전에 잡았지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요?”

재빈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묻고 나선 스스로 바보같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여기까지 오면서, 아니 그 이전에도 언젠가 제타는 재빈에게 흡혈을 한 뱀파이어를 어떻게 하는지 말해준적이 있었다.

“사살해야지. 하지만 그 전에.”

그렇게 말한 제타는 갑자기 코트 안 주머니에서 길쭉한 막대기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자세히 보니, 그 끝엔 헌혈할 때 쓰는 것 같은 두꺼운 바늘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게 뭐죠?”

“오염 농도 검사기, 휴대용이고, 세세한 검사는 못하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이 놈이 얼마나 피를 마셔댔는지 알 수 있지.”

제타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곤 오염자의 머리를 밟은 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곤 그 끝의 바늘을 꿈틀대는 오염자의 목에 꽂아넣었다.

“캬아악! 키웨에에에!”

“가만히 있어라 더러운 쓰레기야.”

“...”

그리고 잠시 후, 오염자의 몸에서 바늘이 뽑혀져 나가고 제타는 검사기의 측면에 부착된 디스플레이 화면을 들여다보곤 혀를 찼다.

“3단계? 도대체 이 정도로 오염된 놈이 어떻게 지금까지 안 잡히고 돌아 다닌거지?”

“죄, 죄송합니다!”

그러자 뒤에 늘어서 있던 관리국의 대원들이 사색이 되어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쳤다.

“아니, 너희만 탓할게 아니지. 인원 부족이야 하루 이틀일이 아니니...”

“...저,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개, 개선하겠습니다!”

이 와중에도 재빈은 저 뱀파이어가 어째서 허둥지둥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상사의 현장방문은 뱀파이어에게도 영 껄끄러운 일이었나보다

“아무튼, 이 놈이 오염자인 것은 확인 했으니...”

그 직후, 제타가 머리를 밟고 있던 발을 그대로 아래로 내리 눌렀다. 그러자, 퍽,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오염자의 머리는 육편이 되어 흩어져버리고 그 몸은 잠시 펄떡이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윽...”

“자꾸 일일이 쫄지마라.”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지는 제타. 그러자 재빈은 자신의 위치도 잊고 울컥 짜증을 냈다.

“이런 걸 보고 안 쪼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제타는 그 항변을 무시해버리곤 검사기를 다시 코트 안에 넣었다.

“뒷정리는 맡기겠다. 큰 조각만 대충 치우면 나머지는 해뜨면 알아서 기화될테니 어렵진 않을거다.”

그때, 제타에게 굽실대던 뱀파이어가 손을 들고 제타를 불렀다.

“저, 제타님? 인간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제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상반신만 남은 시체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소각 처리해.”


“잠깐만요!”


그 순간, 거기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다급히 소리친 재빈에게 모인다.

지금까지 아무말 하지 않고 있던 윤나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지. 정재빈.”

제타의 권태감에 쩐 눈과 재빈의 눈이 마주치자 재빈은 이유 없이 공포에 질렸다.

그러나, 지금 재빈은 그것보다도 제타의 말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사람은... 무고한 희생자 아닌가요?”

“그렇겠지.”

“그렇겠지, 가 아니라... 그런데도 저 시체를 그냥 태워버린다고요?”

“그렇게 말했다. 넌 거기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로군.”

“당연하죠!”

뭐 그런 걸로 그러냐,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제타의 태도에 재빈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

“뱀파이어에게 습격당한 희생자인데... 그걸 그냥 쓰레기 태우듯이 태운다고요? 적어도...”

“적어도, 뭐?”

제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재빈은 순간 움찔 했지만 어떻게든 목소리를 짜내었다.

“적어도... 유족에게 돌려주거나... 그렇게 해야...”

“또 무슨 소리인가 했군. 순진해 빠졌어.”

제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런 제타의 모습이야 말로 재빈에겐 어이없는 것이었다.

“순진하다뇨? 상식이죠! 경찰들도 살인 사건 피해자 시신을 당연히...”

“우린 경찰이 아니다.”

제타의 차가운 목소리가 재빈의 말을 가로막았다.

“저걸 잘 봐라.”

“...”

제타가 가르킨 것은 반만 남은 인간의 시체였다.

“네 말대로 저걸 희생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잘 수습하고, 그걸 유족에게 돌려주거나, 인간의 경찰에게 넘겨준다고 치자.”

제타는 그렇게 말하며 재빈을 향해 한걸음 다가 왔다.

“그럼 유족이던 경찰이던, 저 사람이 왜 죽었는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아내려 하겠지?”

“...”

제타는 어느새 재빈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럼, 넌 저 시체를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지? 한번 말해봐라.”

“...”

재빈은 다시 시체 쪽을 보았다.


하반신은 이미 없었다. 오른 팔도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남은 몸뚱이 역시 무사한 것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거칠게 뜯겨나가고, 살점이 너덜거리는 부분 투성이.

게다가 얼굴은 가족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 당해 있었다.


“말해봐라. 저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 저 사람이 왜 죽었는지, 뱀파이어의 존재를 숨기면서 인간들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말해보란 말이다.”

“그, 그게...”

재빈이 애써 무언가를 말해보려하지만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백년하고도 수십년 전이었으면 호랑이에게 뜯어 먹혔다는 변명도 있을 수 있겠군. 물론 지금 이 나라엔 그런 대형육식동물도 없지만 말야.”

제타는 눈을 부릅뜨고 재빈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 앞에서 재빈은 마치 포식자 앞에 선 작은 초식동물 마냥 바짝 얼어붙었다.

“...”

뒷걸음질이라도 쳐서 그 앞에서 멀어지고 싶다, 그러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재빈의 이마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흐른다. 눈 앞의 이 미청년이 뿜어내는 압력에 재빈은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만 같았다.

“경찰은 난리가 나겠지. 언론도 달려들거다. 그렇게 이 사건이 주목을 받게 되면, 뱀파이어의 존재가 드러나는 시발점이 될 지도 모른다. 그건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할 일 중 하나지.”

그러나 재빈은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제타의 말에도 굽히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존재... 그걸 숨기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뭐?”

“죽은 사람을 그렇게 폐기물 취급할 가치가 있을 정도의 일인가요? 그 비밀이? 아무리 그게 중요해도 이건...”

재빈은 말을 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제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눈은 마치 현대인이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래...이걸 먼저 설명했어야 했는데. 나도 오래살았더니 머리가 굳었군.”

재빈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마치 혼자 중얼거리던 제타는 차가운 목소리로 재빈에게 물었다.

“너, 만약 평범한 인간이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고, 뱀파이어가 되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고 치자. 그럼 보통 어떻게 할 것 같냐?”

“네? 그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말을 짜내는 재빈이었지만 제타는 애초에 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영생, 영원한 젊음, 강력한 힘... 아마 열에 아홉은 당장이라도 뱀파이어 혈액을 혈관에 쑤셔넣을 거다. 그렇게 된다 해도 뱀파이어가 될 수 있는 확률은 20%도 안되고, 대부분은 변이 과정의 거부반응으로 죽겠지만.”

“...그래서 인간들에게 존재를 숨기는 건가요? 뱀파이어 화에 도전하다 실패하면 죽기 때문에?”

“설마. 그런 멍청이들을 살리자고 이런 개고생을 수 천년째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제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뱀파이어가 되고 난 후, 그러니까 지금의 너처럼 ‘변이계’ 뱀파이어가 된 놈들 때문이다.”

“저 같은 사람이요?”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되자 재빈의 표정에 긴장의 빛이 스쳐지나간다. 물론, 이미 제타 앞에 섰을 때부터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지만.

“뱀파이어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날 때부터 뱀파이어였던 놈, 그리고 원래 인간이었던 놈. 전자는 순혈계, 후자는 변이계라고 불린다.”

“...”

제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재빈을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변이계 뱀파이어는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재빈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너무나 크다는 단점이란 바로 지금의 자신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안 된 변이계들은 감정이 격화되거나 중상을 입게 되면 ‘발작’이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건 너 역시 겪어봤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재빈은 그 당시의 기억이 없다. 다만, 자신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는 것 정도는 들었다.

“그땐 다행히 휘말린 놈은 없었지만... 그 상태는 굉장히 위험하다. 본인에게도, 주위 사람에게도.”

“어떻게 위험한 거죠?”

어느새 재빈은 조금 전까지 제타에게 화가 나 있던 것은 잠시 잊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참으로 단순한 사고회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름아닌 그 자신의 이야기였으니까.

“간단히 말하지, 이 녀석처럼 된다.”

제타는 밑에서 굴러다니던 오염자의 머리 잃은 시체를 가르켰다.

“...오염자가... 된다고요?”

제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오염자로 변이하진 않는다. 다만,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신체 능력이 극한까지 활성화된 모습이 오염자와 비슷할 뿐.”

“...”

그리고 제타는 그 얼굴에 비웃는 듯한 웃음을 떠올렸다.

“물론, 얼마든지 오염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

“발작을 하게 되면, 이성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정신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욕망 하나가 떠오르게 되지.”

“그 욕망은... 설마...”

재빈은 이제야 제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닫고는 식은 땀을 흘렸다.

그리고 제타는 거기에 쐐기를 박듯이 한마디를 던졌다.

“흡혈 욕구, 뱀파이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것이다.”

“...”

“이제 알겠지? 어째서 우리가 뱀파이어와 이종족의 세계를 숨기는 지, 그리고 어째서 뱀파이어 화를 제한하는지 말야...”


제타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는 재빈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지금,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자신의 지독한 팔자에 대한 저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던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된 종족이란 말인가, 자연스레 내재된 욕구가, 그 존재 자체를 파멸시킬 열쇠라니.

마치 태어나면서 자살용 권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리고 자신을 그런 존재로 만든 엡실론은, 얼마나 증오해야 마땅한 존재인 것인가.


그때, 제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널 데려온건, 단순히 일하는 걸 보여주려고 데려온 게 아니다. 너에게 뱀파이어라는 게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 그 불안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려주고 싶었거든.”

“...”

재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이, 그 표정과 떨리는 손발은 지금의 교훈을 똑똑히 새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렇지만 재빈은 여전히 제타의 처사에 완전히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불합리하게 희생된 저 사람은... 이대로 실종처리된 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재가 되는 건가요? 그건 너무...”

그러자 제타가 혀를 차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건 아닌데, 고집이 세군. 좋아, 확실하게 말해주지.”

그리고 제타는 한발짝 더 재빈에게 다가 오더니, 그 어깨를 붙잡고는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며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우리는 인간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

그 말,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재빈의 마음속을 깊숙이 찔러온다.


“그리고 우린 인간이 아니며, 그것은 너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하는 제타의 검은 눈동자는, 어느새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뱀파이어 같은 불안정한 종족인 주제에 인간 틈에 섞여서 살고 싶다면... 너 자신을 숨기고, 억누르며, 비밀을 지켜나가라."


어째서 였을까.

재빈은 갑자기 낮에 들었던 엡실론의 말이 떠올랐다.


'뱀파이어는, 인간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타는, 음산한 웃음과 함께 말을 맺는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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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왕과 미치광이 6 18.08.07 35 0 10쪽
22 왕과 미치광이 5 18.08.06 46 0 11쪽
21 왕과 미치광이 4 18.08.03 52 0 9쪽
20 왕과 미치광이 3 18.08.01 49 0 13쪽
19 왕과 미치광이 2 18.08.01 47 0 12쪽
18 왕과 미치광이 1 18.07.30 59 0 14쪽
» 살얼음 판 위의 뱀파이어 4 18.07.27 53 0 18쪽
16 살얼음 판 위의 뱀파이어 3 18.07.24 49 0 10쪽
15 살얼음 판 위의 뱀파이어 2 18.07.24 52 0 11쪽
14 살얼음 판 위의 뱀파이어 1 18.07.21 59 0 13쪽
13 일상으로 회귀? 4 18.07.16 66 1 15쪽
12 일상으로 회귀? 3 18.07.13 65 1 16쪽
11 일상으로 회귀? 2 18.07.12 83 1 20쪽
10 일상으로 회귀? 18.07.12 72 1 15쪽
9 괴물이 모이는 밤 6 18.07.09 66 1 10쪽
8 괴물이 모이는 밤 5 18.07.09 76 1 13쪽
7 괴물이 모이는 밤 4 18.07.09 66 1 16쪽
6 괴물이 모이는 밤 3 18.07.08 68 1 13쪽
5 괴물이 모이는 밤 2 18.07.08 88 1 11쪽
4 괴물이 모이는 밤 1 18.07.08 102 1 16쪽
3 일상이 비일상으로 2 18.07.07 123 1 11쪽
2 일상이 비일상으로 1 18.07.07 144 2 11쪽
1 프롤로그 : 전야 18.07.07 28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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