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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노예 검투사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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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맨
작품등록일 :
2021.06.14 09:45
최근연재일 :
2021.06.28 23:21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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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1
글자수 :
55,218

작성
21.06.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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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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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노예로 산다는 것

DUMMY

02


구령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에 맞춰 팔을 휘둘렀다.


묵직한 나무 칼을 가지고 허수아비를 내려친다.

이 짓도 꽤나 익숙해졌지만, 팔머는 편해지도록 두지 않는다.

언제나 다른 훈련을 시키고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만든다.


칼 휘두르기가 끝나면 창을 잡는다.

창이 끝나면 방패 쓰는 법을, 방패가 끝나면 단검을 배운다.


모래뿌리기와 침뱉기는 오래전에 끝냈다.


알아야할 지식도 많지만 몸으로 배워야하는 것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맞는 법.


단순히 멧집을 키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막을 것인가.

다쳤을 때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모두 몸으로 직접 배웠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고 실제 칼에 찔리고 베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세상에는 약초학이 꽤 발달해 있어 치료에는 문제가 없었다.

또한, 마술학이라는 내가 보기에는 도무지 믿기가 꺼림찍한 학문도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무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첫 시험을 통과했던 열 셋 중에 두 명이 낙오했고, 세 명은 죽었다.


낙오자 중 한 명은 팔 근육이 잘려 불구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내장기관을 심하게 다쳐 병실에 실려가 소식이 없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시험이 있었지만, 처음 때처럼 동료를 죽이라는 경우는 없었다.


'동료라...'


함께 고통을 겪다보니 어느 새 다른 노예들을 동료라고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별명이 생긴 녀석들도 있다.


짝눈, 닭다리, 대물, 왕코, 삼손 등이다.


"젠장. 이건 언제먹어도 토 나오는군."


왕코가 내 옆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그는 걸죽한 죽같은 음식을 퍼먹었다.

한 입 먹을때마다 그의 커다란 코에 주름이 졌다.


훈련이 끝나면 받는 배식이다.


콩과 보리를 넣고, 생선 대가리인지 내장인지 모를 것들을 함께 갈아서 삶은 음식이다.


"먹고 나면 숨 쉴때마다 목구멍에서 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다고!"


동감이다.


소금도 안 치고 향신료도 없었다.


씁쓰레한 풀이 섞였다는 것은 알겠는데 맛은 내 인생 최악의 맛이었다.


이는 원래 이 세상 사람인 다른 노예들도 공감했다.


"그냥 먹어, 인마.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닭다리 녀석이 실실 웃었다.


녀석의 별명이 닭다리인 이유는 두 번째 시험을 제일 먼저 통과한 후, 에라모스 칼투스에게 닭다리가 먹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당당하게 요구할만큼 뛰어난 녀석이기도 했다.


참고로 내 별명은 독사.

첫 시험 때, 워낙 독한 모습을 보여줘서 생긴 별명이다.


"것보다 니들 그거 아냐?"


닭다리가 말을 꺼낸다.


"저 쪽, 담장 너머 있는 놈들 보이지?"


"그런데?"


"저 인간들 중에 우리처럼 노예로 팔려왔던 놈들도 있다는 모양이야."


이 저택에서 훈련을 하는 사람은 세 부류다.


첫째, 노예인 우리들.


둘째, 그런 우리를 가르치는 교관. 예를 들어 팔머 감독관이 있다.


마지막으로, 에라모스 칼투스와 계약을 한 정식 검투사들.


고작 담장 하나를 두고있지만 그들 정식 검투사와 우리 노예의 대우는 천지 차이다.


저들은 매일 고기를 먹고 심심할 때면 여자를 끼고 산다.

훈련도 자유롭게 하는 모양이다.


다른 노예들은 그들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도 종종 검투사들을 쳐다보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어느 날, 저들 중 하나가 고기 한 덩이를 담장 너머로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날 우리는 고기 한 조각이라도 더 먹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검투사들은 그 꼴을 보면서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결국 보다못한 팔머가 짜증섞인 호통을 내지르긴 했다.


꽤 오래 전이지만 나는 그때 일을 잊지 않았고, 언젠가 저 놈들을 두들겨 패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밤이 되면 동료들끼리 잡담을 나눴다.


처음에는 서로 싸웠던만큼 분위기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때때로 팔머와 에라모스 칼투스에 대한 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와서는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묻기에 이르렀다.


삼손이 말했다.


"그렇게 해서 그 때 귀족 놈 목걸이를 슬쩍 했다 이거지. 내 손이 얼마나 빠른지는 니들도 봤잖냐. 그 놈 표정을 봤어야 되는데."


"그래. 그래. 니 놈이 최고다. 그래서 여기 와 있겠지, 이 도둑놈아."


"야, 씨.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내가 틀린말 했냐?"


대물은 시큰둥했다. 이 녀석은 여자얘기 아니면 관심이 없다.


삼손과 대물은 둘 다 귀족을 건드렸다가 범죄자가 되어 노예로 팔렸다.


삼손은 손을 잘못 놀렸고, 대물은 아랫도리를 잘못 놀렸다.

대물은 어떤 젊은 여자와 자주 관계를 맺었는데, 알고보니 그녀가 어느 귀족가 딸래미였다고 한다.


"우린 서로 좋아서 한 거였다고."


대물이 억울함을 토로하곤 했으나 그는 양다리도 아니고 수십개 다리를 걸치며 여자들한테 돈을 빌어먹고 사는 녀석이었다.


결국, 귀족가에서 이런 망나니 자식을 인정할 수는 없었고 별별 죄를 붙여 범죄자로 낙인 찍었다.


"됐고, 독사. 니 얘기나 좀 해봐."


내 차례도 당연히 왔다. 처음에는 사람을 찔러죽인 나를 경원시 했으나 칼투스가의 고된 훈련을 겪다보니 이내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말했잖아.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해안가에 떠밀려 있었다고. 그리고 노예상인한테 잡혀서 3년간 광산노예질을 했고. 그 전에는..."


"상인 밑에서 글쟁이 노릇을 했다고?"


짝눈이 의심스러운 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내 사정을 모두 말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는 솔직히 말했다.


내가 정정했다.


"... 정확히는 무역업자의 통역사. 라고 말했지."


닭다리가 빙글거리며 웃는다.


"크크. 매번 말하는게 똑같긴 한데 말이지."


짝눈이 말했다.


"저거 구라야. 저 놈만큼 독한 자식 못 봤어. 내가 볼 때 상인 밑에서 노예 감독관을 했을거야. 배에서 노젓는 노예들한테 채찍을 휘둘러 댔을걸. 그러다가 자기가 노예가 되니 괜히 과거를 숨기는 거지."


인간들이 도무지 믿어주질 않는다.


"독사가 내 등짝에 채찍질을 한 녀석일지 누가 알겠어?"


짝눈은 식민지 구역 출신이다. 그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어떤 상인 밑에서 십 년간 노잡이 노예가 되어야 했다. 녀석은 상인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나는 그냥 무역회사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첫 시험 때 보여준 모습 때문인지 독한 인간이라는 캐릭터가 잡혔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닌가.'


날 잡아다 노예로 만든 노예 상인들을 채찍으로 찢어발기고 싶다는 마음만은 정답이니까.


나를 먹음직스러운 과일처럼 바라보던 그 노예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렸다.


그 자식도 언젠가 찾아내 목덜미에 구멍을 뚫어주고 말 것이다.



**



날씨가 선선한 가을이 되었다.


흘러오는 바람에 바다 냄새가 섞였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제법 맛있는 식사와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우리를 불러모은 에라모스 칼투스 때문이었다.


"이제 너희에게는 마지막 시험이 남았다. 3일 뒤, 우리는 칼라모의 지하투기장으로 간다. 너희는 그곳에서 싸워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는다면!"


그는 담장 너머를 가리켰다.


"진짜 검투사가 될 수 있다."


그의 말은 노예들을 마음을 고양시켰다.


내가 에라모스 칼투스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 만큼은 썩 마음에 들었다.


그가 돌아간 후 팔머는 우리를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가 시험을 통과하고 정식 검투사가 되면 봉급이 나온다. 투기장 상금도 일부 너희에게 제공된다. 고기와 술, 여자까지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는 여섯 달 동안 고생하면서 우리에게 약간의 정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평소의 험악했던 표정 대신 한층 풀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봉급과 상금을 열심히 모아 노예라는 굴레를 벗을 수도 있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팔머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유를 구속당한 것에 가장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라는 것을.


그래서 그 나름대로 당근을 내미는 것이다.


'그 동안 모든 말에 복종했고 반항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이어 말했다.


"너희는 나에게 배웠다. 배운대로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팔머는 단순히 악독한 노예 감독관이 아니었다.


한 때는 위대한 검투사로써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우리를 가르치면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믿을만 했다.


담장 너머의 검투사들에게까지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내가 물었다.


"지하투기장 어떤 곳입니까?"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이지."


팔머가 말했다.


"칼라모는 온갖 더러운 돈이 모이고 술과 마약, 창녀가 넘치는 도시다. 그중에서도 지하투기장을 운영하는 작자는 검은손이라 불리는 안토니 포프스다."


"...검은손."


왕코가 코를 찡그린다.


"그자의 뒤에 고위 권력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하지만 너희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렇다.


중요한 건 지하투기장이 어떤 곳이냐는 거다.


"지하투기장에는 너희같은 노예나 범죄자가 모인다. 정체를 숨기고 상금을 타먹으려는 녀석도 있지. 보통 은퇴한 검투사다."


팔머가 말했다.


"온갖 비열한 술수가 허용된다. 모래를 뿌리던 독을 쓰던 마술을 부리던 신경쓰지 않는다. 상대의 손발을 자르고 조롱하며 가지고 놀아도 되는 곳이다. 그곳의 관객들은 더 잔인하고 더 포악한 자를 좋아하지."


내가 물었다.


"그럼 상대는 우리같은 노예 검투사입니까? 아니면 다른 범죄자?"


팔머는 웃었다. 뻐드렁니 때문인지 그의 표정이 퍽 불쾌하다.


"너희는 아직 노예 검투사가 아니다. 그냥 노예일 뿐이지."


그리고 말했다.


"너희가 싸울 상대는 도살자 레도클레. 지하투기장의 챔피언이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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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로 산다는 것 21.06.16 5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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