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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젠 님의 서재입니다.

몬스터들이 사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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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젠
작품등록일 :
2015.03.31 22:16
최근연재일 :
2015.04.12 08:51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3,165
추천수 :
48
글자수 :
71,622

작성
15.04.07 09:30
조회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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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8쪽

10화

DUMMY

궁전에 남아있던 NPC들을 처리하는 건 쉽다 못해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왕의 근위기사를 제외한 병력들이 몬스터들의 공격 앞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명을 다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궁으로 대피한 인원이 있었지만 패배 소식을 접하고 접속을 아예 끊어버린 건지 성안에 남아있는 건 NPC들뿐이었다.


“왕은 살려두는 게 좋지 않습니까?”


성 안에 남아있던 NPC들을 직접 수청을 한 탓에 온몸에 피를 두른 듀러스가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인 국왕을 가리키며 물었다.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하찮은 몬스터따위에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당장 죽여라!”


국왕이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자리에 앉은 채로 소리쳤다. 마녀와 레바이던이 국왕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그다지 동정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그가 왕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그가 우리의 적인 인간이라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들과 손을 잡지 않는다. 그를 죽이고 성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신의 눈물’을 가지고 와라. 아마 국왕의 몸이나 이 궁 안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레바이던이 움직임 없이 말했다. 이렇게 진지한 그의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다른 몬스터들은 모두 그 ‘신의 눈물’이라는 보석을 찾으러 왕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방에 남은 건 레바이던과 마녀 그리고 듀러스와 국왕뿐이었다.


“우리가 무너진 건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다. 나머지 성들은 우리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약한 전투력을 가진 우리 성을 무너뜨렸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지옥에 떨어져서도 네놈들을 저주하겠다.”


스스로 듀러스의 검에 뛰어든 국왕이 피를 흩뿌리며 땅으로 쓰러졌다. 국왕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듀러스조차 마지막 말을 듣고 살짝 움찔할 정도로 말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약해 빠진 인간들의 뻔한 최후구나. 듀러스, 놈의 몸을 뒤져봐라. 소중한 물건이니 몸에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듀러스가 국왕의 시체를 뒤적였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지만 굳게 쥐어진 오른손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피를 뒤집어쓰고도 영롱한 빛을 잃지 않는 보석은 레바이던이 말하던 그 보석이 틀림없었다.


“이리로 가지고 오거라.”


듀러스가 보석을 가지고 오자. 레바이던이 무언가 중얼거렸다. 그의 주문이 이어지자 듀러스의 손에 들린 보석이 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작의 섬의 균형을 담당하던 다섯 개의 보석 중 하나가 몬스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플레이어들의 환생을 돕던 축복이 사라집니다. 보석을 되찾지 못하면, 내일 해가 뜨고 나서부터 죽은 플레이어들은 다시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이제야 공평해졌네.”


설원의 마녀가 레바이던이 하고 싶던 말을 대신했다.


“광장으로 몬스터들을 모아라. 처형식을 벌이겠다!”


***


광장은 몬스터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들의 시선은 광장 정중앙에 설치된 처형대에 꽂혀있었다. 넓은 처형대에는 플레이어로 보이는 인간들이 줄지어 묶여있었다.


“죽어라!”


처형식을 지켜보러 온 한 오크가 던진 도끼가 줄에 매달려있던 여자 플레이어의 머리에 날아와 꽂혔다. 도끼가 꽂히는 순간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던 플레이어가 이내 축 늘어졌다.


“저 오크로 하지.”

“방금 도끼를 던진 오크는 처형대 위로 올라와라!”


레바이던의 말을 들은 듀러스가 오크에게 손짓했다. 혹여나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걱정하며 올라온 그 오크는 잔뜩 겁먹은 모습이었다.


“자!”


듀러스가 자연스럽게 처형대를 가로질러 플레이어의 머리에 꽂혀있던 도끼를 가볍게 뽑아들었다. 도끼가 뽑히자 플레이어의 머리에서 뇌수가 섞인 피가 튀어 올랐다. 얼마간이 듀러스의 몸에 튀어 올랐지만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다. 그의 태연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갑옷에 묻은 피가 금세 사라졌다. 마치 갑옷이 피를 마셔버린 것 같았다.


“오늘의 처형자는 자네네.”


듀러스가 뽑아든 도끼를 주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도끼가 전달되자 광장은 금세 광란이 가득한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플레이어들의 몸에 도끼가 꽂혀 들어갈 때마다 광장은 끔찍한 비명과 환호로 가득 찼다. 백이 넘는 인간을 처형한 오크가 탈진할 때까지 진행된 그 처형식은 인간의 역사에도, 몬스터들의 역사에도 커다란 사건으로 다뤄질 것이 분명했다.


“인간은 몬스터들에게 무너졌다!!”


탈진한 채 주저앉아있던 오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몬스터들이 일제히 처형대로 뛰어올라와 이미 목숨이 끊어진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날카로운 손톱에는 인간의 눈알이 꽂혀있었고, 독을 품은 송곳니에는 몸통이 통째로 물려있었다. 증발된 피는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사방에선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


“우선 전투불능의 플레이어나 NPC를 잡는 걸론 경험치가 쌓이지 않아. 같은 맥락으로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상대 또한 전직으로 다가가는데 도움이 안 돼. 플레이어들이 강해지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듯이 우리도 인간들을 사냥한다. 더 강하지기 위해.”


궁으로 돌아온 모여 있는 몬스터들에게 전투로 알게 된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플레이어들은 한 번 죽으면 게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저희는 설원의 마녀님의 마법으로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습니까?”


레토가 성을 습격할 때 보여줬던 마녀의 마법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 마법은 그저 일시적인 부활일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재가 되어 사라지는 일회용 마법이란 말이지.”


그 모습에 다른 몬스터들이 실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목숨은 언제나 하나였다. 열 번을 베어도 다시 나타나던 인간들이 이제는 한 번의 목숨밖에 없다는 데 왜 고개를 숙이는 것이냐.”


듀러스가 몬스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몬스터들이 조금 웅성거리더니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저희는 수도로 쳐들어갈 준비가 다됐습니다.”


원래대로 자신감에 가득 찬 동료들을 바라보던 듀러스가 레바이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쳐들어갈 곳은 섬의 동쪽에 위치한 템트라는 성이다.”

“어째서 바로 수도를 공격하지 않는 겁니까?”


성격이 급한 바이론이 참지 못하고 레바이던의 말을 끊었다. 듀러스가 그런 바이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를 노려보자, 바이론이 죄를 지은 죄인처럼 그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정작 레바이던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지 말을 이었다.


“바로 수도를 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아. 다행히 시작의 섬 전체에 나나 설원의 마녀만큼의 마법 실력을 가진 인간은 없지만 수도에서 싸울 때는 설원의 마녀의 정체를 철저히 숨겨야하기 때문에 그녀가 전투에 참여하기는 어려워. 비슷한 이유로 나도 거의 힘을 쓰기 어렵고, 수도 공격은 모두 너희들의 힘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수도를 둘러싼 네 개의 성을 모두 정복하고 마지막으로 수도를 친다.”


혹시 질문은 없는지 잠깐 말을 멈췄던 레바이던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 개의 성을 모두 우리 손에 넣으면 인간들의 힘은 많이 약해지게 될 거야. 더 강해진 상태로 그런 적과 싸우게 된다면 전쟁의 승패는 뻔하겠지. 나와 설원의 마녀는 빼앗은 성을 지키고, 나머지 전투인원들은 네 방향에서 수도를 친다.”

“저희의 힘만으로 가능할까요?”

“가능해야지. 사실 다음 공성전을 끝으로 우리는 전쟁에 일체 간섭하지 않을 거야.”


걱정스러운 표정의 듀러스가 레바이던에게 던진 질문에 설원의 마녀가 답했다.


“수도를 무너뜨리면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레바이던님의 최종 목적 말입니다.”

“그건 수도를 칠 정도의 전력이 되었을 때 말해주지. 우선 오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낸 몬스터들을 모아라. 오늘은 전쟁을 대비하고 내일 바로 출발하겠다.”


작가의말

흑룡 기사단 길드 마스터(앍갉긹슭) - 레벨 150. 히든클레스인 바람의 가사. 어려운 이름때문에 길드 내에서는 대부분 길드 마스터나 아가기스라고 불린다. 초보자용 장비를 입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넣는 다소 특이한 버릇이 있다. 빠른 움직임과 뛰어난 상황판단은 그가 가진 레벨보다 높은 전투력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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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15.04.05 214 4 10쪽
6 6화 15.04.04 278 4 9쪽
5 5화 - 전쟁의 서막 15.04.04 91 3 12쪽
4 4화 15.04.03 22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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