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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이스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에서 탄생한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히아이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2:53
최근연재일 :
2020.08.11 19:41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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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87
추천수 :
502
글자수 :
383,659

작성
20.08.0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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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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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서국의 왕 -2-

DUMMY

진영은 망연자실한 채 엎드려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세라야.”


이게 끝인 줄만 알았다.

긴 여행도 이렇게 보잘것없는 끝을 향해 온 것일까?

그런데 울고 있는 진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있었다.

진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옆에는 진영의 어머니가 인자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이구. 우리 진영이. 고생 많았지?”

“엄...마?”


어느새 광목천왕의 성은 사라지고 진영은 고향 집에 와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만 자리했던 그 집이었다.


“엄마.”


진영은 스무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10년 이상 회사생활 하면서 전쟁터 같은 곳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거의 잊어가던 그였다.


“왜 울고 있어?”


진영은 어머니를 와락 껴안았다.


“엄마. 진짜 엄마 맞죠?”

“가짜 엄마도 있니? 우리 진영이 보는 낙으로 사는데.”


그녀에게서는 엄마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은은한 냄새.

분 냄새 같기도 하고 땀 냄새가 조금 섞인 나프탈렌 냄새 같기도 했다.

기억 속에 엄마라는 모습은 희미해져도 이 냄새는 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고생 많았지? 이제 여기서 마음 놓고 쉬렴. 엄마는 이날을 항상 기다리고 있었어.”

“엄마···.”

“군대 갈 때에도 있어 주지 못하고 결혼할 때도 있어 주지 못했으니 얼마나 허전했을까.”


어머니는 진영을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40이 다 되어가는 진영은 이 순간만큼은 다섯 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진짜 지옥이 맞을까? 천국보다 더 달콤한데···.’


진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진영에게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개인적인 아픔과 피곤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강한 척하면서 혼자 모든 것을 돌파해왔지만 그 역시도 한 사람의 작은 인간에 불과했다.


“다른 걱정 말고 좀 쉬어. 그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조금 쉰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니. 잠시만 기다려. 엄마가 밥 차려올게.”


어머니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진영은 오랜만에 딱딱거리는 도마소리를 들으며 방에 앉아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차려진 요리를 밥상에 올려 가지고 왔다.

진영이 제일 좋아하는 두부조림이 있었다.

세상에서 두부조림만은 어머니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았다.


“와 두부조림이네.”

“원 녀석. 고기는 싫다고 하고 두부만 찾으니.”

“엄마가 해주는 게 제일 맛있어요.”


진영은 허겁지겁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여유 있게 밥을 먹어본 것도 오랜만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 쓰곤 했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진영은 10분 만에 해치우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서를 보았다.

일이 좋았던 건지 일로 하루를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좀 드세요.”

“그래. 너 좋아하는 거니까 많이 먹어.”

“저···근데 엄마.”


진영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맛이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랑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있는 게 꿈 같아서요.”

“꿈이면 어떻니? 네 마음속에 있는 빈 곳이 채워질 수 있으면 그만 아니겠니?”

“네. 사실 저 많이 힘들었어요. 어른이 되면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직장생활도 결혼도 아이 키우는 것도요.”

“엄마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어. 사람이란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란다. 너도나도 마찬가지야.”

“그렇죠. 더 빨리 깨달아야 했는데. 혼자서 다 헤쳐나가려다 보니까 악바리가 되었어요. 가족도 돌보지 않고 그저 일에만 매달렸죠. 이제 알겠어요.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 그런 생각 그만하고 나랑 여기서 영원히 같이 살자. 세상 속에 부대끼며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여기선 쉴 만큼 쉬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시골 밤은 일찍 찾아왔다.

진영은 밥을 맛있게 먹고 잠이 들었다.


“아침 가져왔다. 어서 먹으렴.”


진영은 어머니가 가져온 상을 받아 들었다.

자작하게 끓인 강된장과 시큼한 김치 그리고 상추가 올려져 있었다.

진영은 한참 밥을 먹다가 창문을 보았는데 나무와 산이 보였지만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아직 밖을 보지 못했다.


“엄마.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밥 먹다 말고 왜? 밖은 위험하니까 여기 있으렴. 여긴 위험한 동물들이 돌아다닌단다.”

“그냥 잠깐 보고 올게요. 답답해서요.”


어머니는 진영을 팔을 붙잡고 말렸다.

진영은 자꾸 말리니까 더 바깥이 보고 싶었다.


“잠깐만 볼게요.”


진영은 억지로 대문을 열어젖혔다.

아까 창문엔 분명히 아침이었는데 문밖에 펼쳐진 전경은 깜깜한 암흑이었다.

진영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보았다.

아침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진영이 열어보려고 했지만 이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진영이 물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요!”


화를 내는 진영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었잖아. 세상을 왜 그렇게 어렵게 사니. 불합리하고 썩은 세상이라도 눈 감으면 아무렇지도 않아.”

“네?”


할 말이 없어진 진영이 뒤돌아보니 그가 먹던 밥그릇 위엔 벌레들만 가득했다.

밥상 위에 있는 그릇에는 온통 벌레와 썩은 줄기뿐이었다.


“욱!”


진영은 구역질이 나왔다.

먹은 것을 다 토해내려 했지만 올라오지도 않았다.


“참. 너도 어떻게 해야 세상사는 법을 배우겠니? 자. 이리 오렴. 엄마가 안아줄게.”


어머니는 진영에게 점점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마!”


진영은 소리를 질렀고 또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왜 그래? 진영아. 엄마잖아. 엄마도 못 믿니?”

“제발. 그냥 가세요.”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진영아. 나라니까.”


진영은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어머니에게 던졌다.

구슬은 어머니의 이마에 정확히 맞았고 이마에서 푸른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진영아! 진영아!”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몸이 점점 초록빛으로 변하더니 근육질의 남자로 변했다.

광목천왕의 본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모른 척했으면 편하게 살 것을. 어리석은 것.”


광목천왕은 손바닥을 진영에게 향했고 붉은빛이 모여들었다.


“파이어볼?”


콰쾅!


손에서 나온 불덩어리가 집 벽을 뚫고 나갔고 곧이어 천정이 무너져내렸다.

진영은 가까스로 피했다.

진영의 구슬에 맞은 괴물의 마력이 감소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괴물의 입에서는 다시 빛이 모여들었다.


“두 번 당할 수는 없지.”


진영은 재빨리 뒤에서 광목천왕의 등에 매달렸다.

광목천왕은 하늘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와 광목천왕의 몸을 관통했다.


“으악!”


진영은 몸이 다 뜯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우두둑!


광목천왕은 몸은 고정한 채 머리를 180도 돌려 뒤를 보았다.

진영과 눈이 마주쳤다.


“에잇!”


진영은 구슬을 깨트려 광목천왕의 이마에 ‘죽을 사’자를 썼다.

그리고 목을 감은 팔을 풀고 땅에 떨어졌다.


쿵!

쿵!


광목천왕은 이마를 손으로 닦으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은 손가락이 합쳐지고 금세 긴 창으로 변했다.


“마지막이다!”


광목천왕의 날카로운 창이 진영의 배를 깊숙이 찔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창은 분명 코뿔소의 뿔처럼 단단해 보였는데 진영의 몸에 닿는 순간 힘없이 부러져버렸다.


“뭐지?”


질그럭!


창만 그런 게 아니라 광목천왕의 얼굴에서부터 피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


펑!


발끝까지 금이 간 몸은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금방 깨져버렸다.


“여기도 주술이 만들어 낸 공간인가? ”


진영은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고 주문을 외웠다.

그의 손에 직경 2m가 넘는 불꽃이 모여들었다.


“파이어볼!”


화염 덩어리는 공간을 찢어버렸다.


커억!


진영이 밖으로 나와보니 아까 토끼 모습의 광목천왕을 봤던 절벽 위였다.

광목천왕이 그를 토해낸 것이다.


“거의 다 됐는데 아깝군.”

“주술을 걸어서 영원히 뱃속에 머물게 하려던 것이군. 외모는 토끼인데 하는 짓은 하이에나나 다름없군.”

“생각보다 똑똑하군. 역시 두 명의 사천왕을 쓰러뜨리고 온 게 확실하군. 그럼 계속해볼까?”


광목천왕은 빨간 토끼 눈에서 빛을 뿜어냈다.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을 만드는 빛이었고 다시 진영을 빨아들였다.


“두 번은 안 당한다고 했을 텐데?”


진영은 한꺼번에 구슬 두 개를 꺼내 광목천왕에게 달려갔다.

붉은빛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눈을 어지럽게 했다.


“다시는 눈을 못 뜨게 해주마.”


진영은 양손에 쥔 구슬을 광목천왕의 두 눈에 박아버렸다.


“악!”


두 눈에서 나오던 빛은 산란되었고 여러 가지 색깔로 변했다.


“내 눈이! 내 눈이!”


광목천왕은 온몸에서 가시를 뿜어냈다.

마치 가시나무처럼 그의 몸에서 긴 가시가 나와 가까이 있는 아무거라도 찌르려고 했다.

진영은 공간에 떠 있었다.


“6성이 되니까 이건 편하군. 점프하지 않아도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는 거.”


광목천왕의 가시는 허공을 휘두르다가 자기 몸을 찔렀고 마력이 모두 빠져나간 광목천왕은 몸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풀잎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영은 천천히 내려와 광목천왕이 있던 풀숲을 걷어보았다.

거기엔 빨간 무당벌레 한 마리가 있었다.


“이거군. 그래 친구를 소개해주지.”


진영은 주머니에 차고 있던 병을 열어 무당벌레를 넣었다.

유리병 속에는 사마귀로 변한 지국천왕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먹이도 줄 게 없었는데 잘됐네.”


연둣빛의 사마귀는 무당벌레가 들어오자마자 강한 앞발로 잡고 뜯어먹기 시작했다.

강력한 턱으로 작은 무당벌레를 조각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진영은 한숨 돌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잔뜩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절벽에 새겨져 있던 수백 개의 얼굴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끝난 건가?”


진영은 다시 강태공이 있는 나루터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기가 이미 5살 정도로 커 있었다.


“언제 이렇게 컸죠?”

“허허. 지옥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네. 기쁠 때는 빨리 지나가고 고통스러울 때는 천천히 가지. 자네가 어머니를 만난 그 시간이 빨리 흘러간 거네.”

“그렇군요.”


진영은 아이를 안고 웃었다.

젖먹이 아기가 금방 이렇게 크다니 지옥이란 곳도 참 잔인한 곳이었다.

아이는 배고프다며 칭얼댔다.


“강태공. 뭐 먹을 것 좀 없나요?”

“글쎄. 먹을 거라. 이런 황무지에서 그런 걸 구하긴 힘들지.”


강태공은 낚싯대를 꺼냈다.

그리고 똑바르던 바늘 끝을 구부렸다.


“이 바늘을 구부려 본 건 처음이구먼. 이번엔 원념이 아닌 진짜 물고기를 잡아야지. 허허.”

“고맙습니다.”

“고맙긴. 이제 마지막 나라가 남았네. 다문천왕이 다스리고 있는 북쪽의 나라지. 아마 힘든 여행이 될 거야. 각오 단단히 하게.”

“네.”


강태공은 두 마리의 물고기를 낚아 불에 익힌 뒤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뭣도 모르고 허겁지겁 물고기를 먹었다.


“저 강태공.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뭔가?”

“광목천왕이 대단한 주술을 가진 건 알겠는데 어떻게 제 과거를 그렇게 파고들었을까요? 너무나 진짜 같아서 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엄마 냄새까지 가짜일 거라고는.”

“그건 광목천왕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의 약한 고리가 뭔지 금방 보이는 거지. 엄마 냄새란 것도 사실은 그 냄새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네. 자네의 나약함이 그것을 엄마 냄새로 믿게 만드는 걸 수도 있네. 타인에게 기대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세라가 자그레우스와 결혼하는 장면도 가짜겠죠?”

“아마 그렇겠지만 그날이 가까워진 건 사실이네. 빨리 가야 해. 신부의 식을 거친 이후엔 되돌릴 수 없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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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배신의 나라 -2- 20.08.06 12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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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국의 왕 -2- +1 20.08.04 120 3 13쪽
65 서국의 왕 +1 20.08.03 11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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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남방을 지배하는 자 20.07.29 130 3 11쪽
61 지국천왕의 나라 -5- 20.07.28 121 3 12쪽
60 지국천왕의 나라 -4- 20.07.27 118 3 12쪽
59 지국천왕의 나라 -3- 20.07.24 120 3 12쪽
58 지국천왕의 나라 -2- +1 20.07.23 125 3 12쪽
57 지국천왕의 나라 20.07.21 119 3 12쪽
56 흑마왕과의 만남 -4- +1 20.07.20 114 4 11쪽
55 흑마왕과의 만남 -3- 20.07.17 122 3 13쪽
54 흑마왕과의 만남 -2- 20.07.16 125 3 12쪽
53 흑마왕과의 만남 20.07.14 133 3 12쪽
52 지옥의 라비린스 -4- +2 20.07.13 123 3 12쪽
51 지옥의 라비린스 -3- +1 20.07.10 123 3 11쪽
50 지옥의 라비린스 -2- 20.07.09 120 3 11쪽
49 지옥의 라비린스 20.07.07 127 3 12쪽
48 남지옥의 공주 카렌 -9- +2 20.07.06 121 3 12쪽
47 남지옥의 공주 카렌 -8- +2 20.07.03 123 3 12쪽
46 남지옥의 공주 카렌 -7- +2 20.07.02 125 3 12쪽
45 남지옥의 공주 카렌 -6- 20.07.01 139 2 12쪽
44 남지옥의 공주 카렌 -5- +2 20.06.30 13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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