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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의 서재입니다.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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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hershey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최근연재일 :
2021.02.17 10:37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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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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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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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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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DUMMY

점심을 먹고 나서 셀렌부인까지 해서 전 식구가 브루클린의 그린포인트로 갔다. 이미 이 지역은 폴란드 이민자들이 많아서 리틀 폴란드로 불렸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아이들이 비고스를 들고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조피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비고스 있어요. 받아가세요. 크리스마스 선물이예요."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비고스를 나눠 줄 때마다 아이들은 신나게 소리쳤다. 백 개가 넘던 비고스는 금방 다 사라졌다. 다시 차에 타기 전에 바웬은 셀렌부인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메이시즈(Macy’s, 미국 백화점)에 들리고 싶습니다. 아직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샀어요."

셀렌부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피아가 반색했다.

"우리 메이시 가는거야? 뭐 사려고?"

바웬은 웃기만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뭘 사든 간에 여자아이들은 백화점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신이났고, 타테우쉬와 쯔비그니는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시에 들어서자마자 돈 많이 쓸까봐 걱정하던 줄리아조차 사방으로 흩어지는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라와 아밀리아도 셀렌부인을 끌고 사라졌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많아서 금방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 어려웠다. 바웬 곁에는 타테우쉬와 쯔비그니만 우두커니 남아있었다.

"저 바보들, 돈도 없을텐데 다 가버렸네."

하고 쯔비그니가 투덜거렸다.

바웬은 타테우쉬와 쯔비그니를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으로 데려갔다.

"난 양복 필요없어."

타테우쉬는 양복을 맞추지 않으려했다.

"해. 가끔 회사에 나올 때 입어."

"회사 가도 돼?"

타테우쉬는 기뻐하며 물었다.

바웬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가끔. 와서 보기만 해."

"나는?"

하고 쯔비그니가 물었다.

바웬이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잘랐다.

"넌 안돼."

양복을 기웃거리던 쯔비그니는 시무룩해졌다. 바웬은 쯔비그니에게 양복을 사주지 않았다. 대신 과학기자재들 파는 곳으로 가서 현미경과 망원경, 그 외에도 여러가지 과학 실험 키트를 사주었다. 쯔비그니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져 닫히지 않았다.

"차에 가져다 놓고 올게."

쯔비그니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그 뒤로 타테우쉬도 쯔비그니의 물건들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고 뛰어갔다.

바웬은 여자애들이 있을 곳으로 갔다. 줄리아와 조피아, 체스바와는 화장품이나 드레스 같은 것을 볼 거고, 아밀리아와 알렉산드라는 악세사리나 장난감, 또는 군것질 거리를 찾고 있을 거였다.

먼저 만난 것은 줄리아였다. 줄리아는 예상 외로 그릇과 집안 장식품 같은 것을 파는 쪽에서 멋진 색등을 보고 있었다. 바웬을 보고 줄리아가 손짓했다.

"이거 집에 가져다 놓으면 멋있을 거 같아. 비싸지도 않아."

"사자."

하고 바웬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줄리아는 활짝 웃었다. 바웬은 줄리아를 데리고 여성복 코너로 갔다. K&C 라는 코트와 정장을 파는 곳이었는데 옷과 매장의 분위기가 다른 곳과 좀 달랐다. 멋지게 차려입은 날씬하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손님들 사이로 다니면서 인사하고 옷을 골라주고 있었다. 심지어 옷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옷을 잡아당겨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아가씨는 점원은 아니었고 옷을 직접 만든 디자이너라고 했다. 점원들은 그 디자이너가 상대하지 못하는 다른 손님들을 맞고 있었지만 손님들은 그 디자이너를 기다렸다. 점원은 그저 손님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는 역할만 하는 셈이었다. 바웬은 그 디자이너가 매장 주인 일거라고 생각했다.

"난 옷 많아."

하고 줄리아가 내키지 않아 했다. 그러나 바웬이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감당하지 못했다. 싸우려 들지도 않고 울기라도 하면 백화점에서 아주 난감해진다. 하는 수 없이 줄리아는 약간 독특한 액센트를 가진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서 긴 털 코트를 골랐다.

"조피아가 지난 번 랜킨의원 연설 때문에 학교에서 좀 힘들었을거야. 그때 학교에서 야단이 났거든, 교장 선생님도 사과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선생님들 중에는 조피아를 칭찬하는 선생님들도 아주 많았어. 어떤 선생님은 평등교육의 증거가 바로 조피아라고도 했어. 학교에서는 어딜 가나 조피아, 조피아 할 정도였어. 조피아가 랜킨의원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말들 해. 교장 선생님하고는 조피아를 아주 불편해하지만."

바웬은 옷값을 계산하면서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

줄리아가 쇼핑백을 받아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아. 조피아는 예쁘고 말도 잘하고, 용감해."

"동감이야."

줄리아는 함께 걸으면서 학교에서 조피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했다. 조피아는 구두를 파는 곳에 있었다. 멋진 부츠를 앞에 두고 구경하고 있는 것을 사주고 줄리아가 코트를 샀던 곳에서 코트도 하나 사게 했다. 그 디자이너는 바웬이 다시 오자 반색을 했고 조피아에게 딱 맞는 옷을 골라주었다. 원래 예뻤던 조피아는 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멋지게 보였다.

조피아가 바웬의 지갑을 힐끔 보면서 걱정했다.

"이 만큼 많이 사도 돼?"

"괜찮아."

바웬은 오늘 직원들에게 줄 돈을 준비하면서 가족들 선물 살 돈까지 함께 준비했었다. 지갑에는 십 달러 이십 달러짜리 외에 백 달러 짜리도 다섯 장이 있었다. 품질좋은 양모로 만들어진 여성용 투피스도 30 달러면 충분하고 남았고 스웨트는 1 달러면 살 수 있었다. 오히려 장난감인 세발 자전거나 페달 밟는 차가 매우 비싼 편이었다. 페달 밟는 아기들 장난감 차 60 대 사는 값이면 진짜 자동차를 살 수 있었다. 가족들은 평화와 이 정도의 사치에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바웬은 그들 모두가 좀 더 사치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탕한 낭비가 아니라면 사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때로는 그 자체로 부를 재생산해주는 기능을 한다. 바웬은 사치와 낭비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많이 벌면 돼."

체스바와에게도 코트와 석고상 같은 것들을 사주고, 셀렌부인과 아밀리아와 알렉산드라를 찾았을 때 알렉산드라는 웬지 엄청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바웬은 그 세 사람에게는 장갑과 목도리, 부츠까지 해서 코트를 사입혔다. 그 세 사람이 겨울에도 센트럴 파크를 제일 많이 나가기 때문이었다. K&C의 미녀 디자이너가 아주 기뻐했다. 타테우쉬와 쯔비그니는 오자마자 다시 쇼핑백들을 차에 가져다 두러 갔다. 각자가 화장실도 다녀오고, 군것질거리에 자석처럼 끌려가는 알렉산드리아와 아밀리아에 끌려다니다가 그들이 밖에 나왔을 때, 구름낀 하늘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춤을 추듯 깡총거리며 알렉산드리아와 아밀리아가 차에 타고, 재잘거리는 소리를 가득 채워서 마제스틱으로 돌아왔다. 짐이 많아서 톰슨이 함께 집까지 올려다 주었다.

"일찍 들어가세요."

하며 바웬은 백화점에서 준비했던 선물과 함께 봉투를 주어 보냈다.

집안에서는 옷을 입어보고 신발을 신어보고 하느라 어수선했다. 낮에 만들어 놓았던 음식들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신일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생일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있던 선물상자들을 뜯었다.

넥타이, 장갑, 와이셔츠, 벨트, 모자, 양말, 만년필, 구두주걱, 라이터까지, 온통 바웬에게 주는 선물들이었다. 체스바와와 아밀리아, 알렉산드라 등이 용돈을 탈탈 털어서 바웬의 선물을 마련했기 때문에 사탕 사먹을 돈까지 없게 된 것이었다.

바웬은 백화점에서 화장실 가며 샀던 진주 목걸이를 셀렌부인에게 드렸다.

"셀렌선생님, 우리를 지켜고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말했다.

셀렌부인이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큰 아이들은 셀렌부인이 밤마다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가르친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타테우쉬가 말했다.

"케림씨가 왔다간 후에 마피아들이 우릴 대하는 게 달라졌어요. 셀렌선생님께서 시킨 일인줄 우리 다 알고 있어요."

셀렌부인이 머리를 설설 흔들었다.

"그 이야긴 더 하지 말아요."

했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매일 밤 가르치고 있지만 어떻게 친 형제도 아닌 이들이 하나 같이 놀라운 재능과 총명을 보이는지 셀렌부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한 명에게 가르친다는 게, 어느 순간에 보면 개별적인 가르침 마저 모두가 다 배워 알고 있었다. 집에는 소년소녀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책들로 서가가 채워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교 과제를 하고 나면 책을 가져다 읽었다. 조피아와 체스바와가 네덜란드 화가 램브란트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며 다투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램브란트가 초기에 그린 "튈프교수의 해부학 강의"에서 여덟 명의 사람과 하나의 시체가 나오는데, 그중 사람들의 시선 방향에 대한 논쟁이었다. 라즐로 라스처럼 화성인 현상을 겪어보지 못한 셀렌부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였다. 바웬에서 알렉산드라까지 그들 여덟 명은 핏줄보다 더한 삶과 죽음으로 맺어진 가족이었다.

"셀렌선생님 만세!"

하고 알렉산드라가 외치자 모두 합창으로 한 번 더 외쳤고,

"퀸 만세."

하고 바웬이 외치자 또 모두가 따라했다.

"바웬오빠 만세."

하고 줄리아가 소리쳤다. 한데 이번에는 바웬오빠 만세 소리가 반밖에 안 나왔다. 어리둥절해 하는 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줄리아 언니, 그다음엔 줄리아 만세 소릴 들으려고 언니가 바웬 오빠 만세 한거지?"

아밀리아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만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그냥 만세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응."

줄리아가 순순히 시인했다.

"안 하면 다음엔 조피아 만세가 먼저 나올 것 같아서."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체스바와가 소리쳤다.

그 틈에 조피아가 외쳤다.

"바웬오빠 만세."

역시 킥킥거리느라 반밖에 따라오지 않았다.

줄리아가 노래하자며 분위기를 바꿔 자기의 어색함에서 벗어났다. 쯔비그니가 자기의 현미경이며 각종 실험 키트를 꺼내놓고 자랑했고, 체스바와는 뭐든지 현미경을 대고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예뻐."

석고상 바닥에 붙어 있던 라벨이었다.

바웬은 쇼파에서 그들이 노는 것을 보며 옆에 있는 타테우쉬에게 말했다.

"좋다."

"나도."

타테우쉬는 조금 있다가 힐끔 보며 말했다.

"힘들지? 난 형처럼 못할거야."

"좋은데 힘들 게 뭐있어. 힘 안들어."

"학교는 정말 안 갈거야? 배울 게 많아. 이전에는 몰랐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다 중요하고 놀라운 것들이야."

타테우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바웬은 알렉산드라가 발꿈치를 들고 방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사람마다 다 달라. 난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어."

"그래도 학교 가는 게 낫지 않아?"

바웬은 웃었다.

"모르는 거 있으면 너한테 물을게."

"왜 학교를 안 가려는 거야? 이제 회사는 잘 되잖아."

"강철왕 카네기도 학교 조금 밖에 안 다녔어."

타테우쉬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이유야?"

"응."

바웬은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말했다.

타테우쉬는 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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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 세일렌 - 길은 자기 속에. Nosce to ipsum (나 자신을 알라) 21.02.17 89 0 9쪽
79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지혜의 문을 지나서 21.02.17 78 0 7쪽
78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칸트의 몽상 21.02.17 79 0 10쪽
77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집으로 들어온 전쟁 냄새 21.02.17 7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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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17. With Peace and Hershey - 착한 부자, 착해서 부자가 된 사람 21.02.16 72 0 10쪽
» 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21.02.16 78 0 11쪽
70 17. With Peace and Hershey -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것 21.02.16 80 0 11쪽
69 16. 전야의 반전주의 - 반전주의자 랜킨 의원 21.02.14 79 0 11쪽
68 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21.02.14 7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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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63 0 12쪽
61 11. 아사신 - 거래 21.02.11 83 0 13쪽
60 11. 아사신 - 암살교단의 우두머리 21.02.11 86 0 7쪽
59 10. 크리스마스의 거미 21.02.11 67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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