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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님의 서재입니다.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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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작품등록일 :
2024.08.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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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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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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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 결국

DUMMY

7. 결국




#


내기에 진심인 사람들답게, 판은 금방 깔렸다.


퍼엉-


호세가 연습구장의 마운드에 올라 가볍게 몸을 푸는 사이, 내게 다가와 그새 조율된 룰을 설명하는 누군가.


“헤이. 초이. 룰은 간단해. 아웃이면 호세가 이기는 거고, 안타나 볼넷이면 네가 이기는 거야. 판정은 저 친구들이 해줄 거고.”

“네.”

“혹시나 호세 편을 들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마, 우린 철저하게 중립적이거든.”

“알겠습니다.”

“집중력 좋은데? 행운을 빌지. 굿럭.”


하지만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호세의 공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싱커 그리고 슬라이더인가? 다른 공들은 안 던지려나 본데.’


우타자 기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급격하게 몸쪽으로 파고들며 떨어지는 싱커.


그리고 슬라이더라기보단 스위퍼에 가까울 정도로 횡 변화가 심한 슬라이더.


자세한 건 타석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피칭 터널도 그렇고 폼 자체도 디셉션에 어느 정도 신경 쓴 티가 나는 게 쉬운 승부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구속은··· 130 정도?’


그래도 아직 몸이 덜 만들어져 구속은 올라오지 않았기에 까다롭긴 해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불펜에서 꽤 공을 받아와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었고.


‘아니, 애초에 구속이 다 올라와도···’


그나저나.

어느새 캠프에 소문이 쫙 퍼진 건지, 연습구장의 양쪽 덕아웃 앞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정말이야? 초이한테 건다고?”

“난 평소에도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을 숭배해 왔어.”

“그거 인종차별이야 로빈.”

“인종차별은 네가 내 돈을 매일 갈취해 가는 게 인종차별이지.”

“오, 제발. 내가 대꾸할 수 있는 말을 해줄래? 기분이 이상하다고.”


홈팀 덕아웃 앞에서 본격적으로 판을 벌이며 100달러짜리 벤자민 프랭클린을 주고받는 메이저리거들과.


“작은 놈들은 이리 와!”


반대쪽인 원정 덕아웃 앞에서 조지 워싱턴 뭉치를 주고받는 마이너리거들.


“이건 당연히 호세에게 걸어야 하는 거 아냐?”

“10달러. 여기. 호세.”

“이럴 때 크게 따야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 나는 저 친구에게 걸겠어.”


그간 많은 수가 걸어서 5분 거리인 마이너 캠프로 많이 보내졌지만, 지폐 자체의 개수가 많아서 그런가 오히려 마이너리거 쪽이 더 뭔가 불법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고.


“루키와 호세가 붙는 거야?”

“호세가 또 호구를 물었군.”


심지어 한쪽 구석엔 코치들까지 삼삼오오 모여있는 게, 이쯤이면 무슨 축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약간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도 않았고.


‘신선하네.’


무엇보다, 신선했다.

그간 반복되는 삶에 질려 있던 내 정신을 약간 고양시킬 정도로.

아무리 나라도 이런 분위기의 캠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

나는 살짝, 아주 살짝 지금의 이 상황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내가 지금의 이 경험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왜, 사람이 많으니 떨려?”


그새 팔을 다 풀었는지, 마운드에서 날 향해 걸어온 호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음, 뭐.

의도가 빤히 보이는 한마디와 함께.


“그럴리가요.”

“하핫, 그래?”


아마 내가 긴장으로 인해 몸이 굳기를 바라는 거겠지.

뭐랄까, 작은 꼼수랄까?


하지만 뭐,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나 역시 워낙 많이 써먹은 레퍼토리였기도 했고, 애초에 관중들이 많다고 내 스윙을 못할 정도의 ‘짬’도 아니었으니.


‘사직 만원 관중 앞에서도 풀스윙을 갈겼는데, 이 정도야.’


그리고 역시.


“그럼 갤러리들도 충분히 모였으니까, 시작해 볼까?”


은근히 날린 꼼수에 아무런 반응도 없는 나를 보고 재미를 못 봤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눈썹을 모으며 마운드로 향하는 호세.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타석에 돌을 고르는 척을 하며 어느새 장비를 입고 앉아 있는 척에게 재빨리 말을 걸었다.


최대한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며.

은밀하게.


“척.”

“왜?”

“초구는 한가운데 패스트볼이 좋다고 생각해.”

“뭐? 지금 나보고 조작하라는 거야?”

“아니. 우리의 팀워크를 보여주자는 거지. 우린 ‘버디’잖아?”

“···”

“하나 주면 이틀 동안 운동 빼줄게.”


먼저 수작을 부렸으면 반대로 자기도 수작질에 당할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겠지.


그렇지?


꽈아악-


음. 배트가 오늘따라 손에 잘 달라붙는데?


#


삶을 반복하다 보면 이득이라는 것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남들이 하는 틀린 선택을 거의 안 하고 살 수 있기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


어쩌면 내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그럴 수도 있겠고.


그런 의미에서, 이 대결은 내게 내기 그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판이었다.


이 대결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난 호세는 물론이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내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을 테니까.


심지어 저기서 아닌 척 지폐를 주고받고 있는 코치들에게도.


뭐, 그렇다고 KBO에서처럼 바로 로스터에 들어가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맞이할 순 없겠지만, 안 그래도 마이너 뎁스가 박살 난 팀의 사정상 이런 작은 어필이 모이면 ‘선택’의 순간에 내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할 거고.


그러니 내가 척에게 대놓고 패스트볼을 요구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세가 직접 구종을 선택하지 않고 척의 싸인에 고개를 끄덕인 건 조금 의외였긴 했지만.


그리고.


투구판을 밟고 선 호세의 오른발이 투구판을 강하게 차면서 튀어나오고, 디셉션을 위해서인지 왼발을 내딛고 나서도 얼리코킹을 최대한 유지하는 특유의 폼이 끝난 뒤.


쌔애액-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오는 공은···


따아악!


“오?”

“초구를?”


퉁-


“파울. 파울이야.”

“폴대 안에서 휘어나간 거 아냐?”

“헛소리하지 말고.”

“끄응.”


내 예상 그대로의 공이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누군가 고무줄이라도 매달아 놓은 듯 급격하게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며 가라앉는 싱커.

아쉽게도 너무 예상대로의 공이라 타이밍이 좀 빠르게 나가버려 파울홈런이 되긴 했지만.


“척.”

“왜?”

“기억할 거야.”

“얼마든지.”


그런 날 바라보며 씨익 웃는 척.

그래, 초구는 패스트볼이 아닌 몸쪽을 깊게 파고드는 싱커였다.


“스트라이크 원이야. 버디.”


아무리 나와 척이 서로 편하게 지낸다고 해도, 결국 이곳은 매 순간이 경쟁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아무리 내기라도 실제로 한가운데 패스트볼같은 공을 던지게 할 리가 없지.


적어도 마스크를 쓰며 포수라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척은 패스트볼이 아닌 싱커를 선택했고, 나 역시 그렇기에 싱커를 노렸다.


그렇게 서로의 노림수가 교차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내가 한 방을 얻어맞은 상황인 셈이지.


“휘익-”

“이봐 호세! 너무 봐주는 거 아냐?”

“닥쳐!”


저기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호세는 내 타구를 보는 순간 자기가 한 방 얻어맞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메이저리거는 메이저리거긴 했다.


그간 불펜에서 수도 없이 받아봐 제법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130km/h, 80마일짜리 싱커로 내게 파울을 끌어냈으니.


비록 아직 성장 중인 몸이라 밸런스가 불안하고, 자연스럽게 타격 훈련도 덜 한 상태라는 말을 할 수는 있었지만, 나 정도 되는 경력이면 그것 역시 그저 변명이라고 봐야지.


“초이. 빨리 들어와. 실전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했어?”


그렇게 잠시 타석에서 벗어나 배팅 장갑을 매만지며 타이밍을 다시 잡는 내게 주저 없이 방해 공작, 그러니까 여기 용어로 ‘트래시 토크’를 날리는 척.


‘이런 성격을 어떻게 숨기면서 사는지.’


원래 포수란 놈들이 이랬다.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바뀌는 사람처럼, 저 마스크만 쓰면 성격이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리고.

경험상, 이런 양면적인 친구들에겐···


“치킨샌드위치를 우리나라에서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치킨버거라고 해.”

“뭐?”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번을 밥으로 만든 라이스버거도 있지.”

“지금 무슨.”

“심지어 전설적인 버거 중에는 피그 커틀릿 버거라는 것도 있어. 네 얼굴만 한 커틀릿이 번 사이에 끼어있는 건데, 너무 맛있어서 만든 회사에서 감당이 안돼 판매중지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

“뭐해, 싸인 안내?”

“얼굴이나 돌리고 이야기 해. 왜 이래? 피치 컴도 안 차고 왔는데.”

“오케이. 피치 컴(Pitch, come)”


그냥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게 최고였다.


“···”


그렇게 척을 입 다물게 만든 뒤 이어진 2구는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는 슬라이더였다.


“휘익! 호세가 도망친다!”

“그래, 슬슬 터질 때가 됐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로진백을 두들겨 대는 걸로 봐서는 아마 존 안으로 넣으려던 공이 빠진 것 같았지만, 어쨌든 원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된 상황.


좋은 타자라면 이런 카운트에서 상대의 구질 하나를 노리는 걸 주저해서는 안 됐다.


‘싱커는 파울홈런, 슬라이더는 제구가 맘처럼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찍은 구질은 싱커.


'겨우 19살짜리 핏덩이에게 도망가고 싶진 않을테니.'


난 내가 기억하는 호세의 싱커 궤적에 맞춰 오른쪽 어깨를 슬쩍 올렸다.


우타자인 내가 지금처럼 뒷 어깨와 손을 올려 스윙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어퍼스윙의 궤적을 그리게 되니까.


물론, 이것도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대응을 하면서도 자기 타격폼의 밸런스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말 그대로 ‘타고난’ 타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니.


혹은 나처럼 아주 오랫동안 온갖 타격폼으로 온갖 공을 다 때려본 경험이 있거나.


그리고.


따아악!


“어?”

“어어?”

“간다! 간다! 갔다! 갔다고! 내 돈 내놔!”

“우우우우우- 호세. 이거 진짜야? 진짜냐고!”

“He’s Unbreakable man! 난 너를 믿었어 히-언!”


나는 초구와 같이 살짝 몸쪽을 흝으며 떨어지는 호세의 싱커를 보란 듯이 받쳐놓고 휘둘러 순식간에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홈런타구를 만들었다.


말 하자면, 이런걸 보고 사람들은 완벽한 게스히팅이라고 하지.


“오늘 저녁은 치킨-샌드위치 어때?”


경기가 아닌 단순한 내기였기에 늘 하던 대로 베이스를 한 바퀴 돌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 아쉬움은 척을 놀리며 해소하면 될 일이니까.


띠링-


[팀워크 증가]

[+0.5]

[+0.2]

[+0.4]

[+0.02]


게다가, 부수입 역시 짭짤했고.


[팀워크 감소]

[-0.01]

[-0.04]

[-1]


물론 당연히 이번 타구로 인해 돈을 잃은, 잠깐만.

뭐야. 혹시 방금 내 타구에 누구 가족이라도 맞았나?


···그래도 일단 이득이긴 하니까.


작가의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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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아니. 나도 잡혀왔어. +4 24.08.25 5,980 125 15쪽
8 8. 포수란 그런 존재지 +7 24.08.24 6,334 116 14쪽
» 7. 결국 +5 24.08.23 6,373 135 11쪽
6 6. 욕구불만 +4 24.08.22 6,680 132 11쪽
5 5. 애리조나 +7 24.08.21 6,940 136 13쪽
4 4. 진출 +13 24.08.20 7,156 145 11쪽
3 3. 루틴 +16 24.08.19 7,306 158 15쪽
2 2. 그럼 한국에서 야구 안하면 되겠네요 +11 24.08.19 7,883 139 13쪽
1 1. 홈런 못 치면 죽음 +14 24.08.19 9,468 1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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