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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수상한 원룸에 이사를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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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작품등록일 :
2023.05.31 16:30
최근연재일 :
2023.06.12 08:0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80
추천수 :
18
글자수 :
92,750

작성
23.05.31 17:10
조회
43
추천
2
글자
10쪽

2. 구조

DUMMY

눈을 뜸과 동시에 느껴진 건 지독한 숙취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와중에도 어제 일을 떠올리려 애썼다. 벽을 치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다음에 우식이가 뭐라고 했더라···?


****


“우리가 시끄럽게 해서 벽을 망치로 치는 새끼라고? 그거 좀 위험하지 않냐?”


한참의 침묵을 깬 뒤, 우식이가 입을 열었다. 우식이의 눈은 뭔가 결심을 한 듯 보였다. 저 눈빛이 술김에 호기를 부리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


“조용히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오늘 같은 날 아니면 집에서 딱히 큰 소리 낼 일도 없으니까.”


“아냐. 이런 새끼는 초장에 기선을 제압해야 해. 안 그러면 또 너한테 무슨 해코지를 할 줄 알고.”


우식이는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가 봐도 그 몸짓은 지금 당장 201호를 찾아가 따지려는 행동이었다.


“야, 관두자···. 진짜 미친놈이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하지 마, 새끼야. 형이 괜히 헬스를 몇 년 동안 빡세게 한 줄 알아? 이런 놈들 참교육해 주려고 한 거다. 넌 여기 딱 있어. 내가 가서 한마디 하고 올게.”


누가 김우식 아니랄까 봐, 저놈의 욱하는 성격이 또 튀어나왔다. 물론 우식이가 키도 크고 덩치가 있는 건 사실이다. 평소에 길거리에서 시비 걸리는 모습은커녕 어깨 한번 부딪히는 모습을 못 봤다. 하지만 그래도 좀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식이가 문을 닫고 나간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체감상 5분은 넘은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을까? 밖에서 딱히 큰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몸싸움을 하거나 언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슬며시 문에 귀를 대 보았다. 혹시라도 대화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기대하며···.


- 철컥


“으악!”


“너 뭐하냐?”


귀를 문에 갖다 대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터라 넘어질 뻔한 나를 우식이가 잡아주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식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너무 오랫동안 안 들어오길래···. 뭔 얘기를 그리 길게 하나 궁금했지.”


“야, 그게 말인데. 옆집 사람 또라이는 아닌 것 같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


“여자야, 여자.”


“응? 여자라고?”


“어! 그것도 꽤 이쁘장하게 생겼던데? 조금 음침해 보이긴 하는데, 그게 또 수수한 매력이 있더라고. 이야~ 최태훈! 땡잡았네.”


“여자 친구 있는데 뭔 헛소리야. 그럼 아까 났던 그 큰 소리는 뭔데?”


“집 정리하다가 선반에서 뭘 좀 떨어뜨렸대. 귀엽지 않냐? 내가 가서 도와줄까?”


우식이는 싱글벙글하며 여자 얘기를 계속했다. 키는 크고, 머리가 길며 코가 오뚝한 20대 여성이라고 했다. 우식은 그녀와의 결혼식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술을 퍼마셨다.


“야, 옆집 여자랑 좀 친하게 지내면 안 되겠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진심이지! 나도 여자친구 좀 사귀어보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잖아···. 남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어떻게든 좀 친해져서 자리나 한번 마련해줘라. 부탁할게.”


****


냉장고를 열고 생수를 페트병째로 들이마셨다. 어느 정도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옆집 사람이 여자라니, 괜히 겁먹었잖아? 미지에 대한 공포가 없어진 다음에야, 현실의 공포가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컴퓨터를 켠 뒤, 메일을 확인하는 나의 손길은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XX 인사팀입니다. 귀하께서는 20xx년 XX 그룹 상반기 공채에 불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번에도 불합격이다. 몇 군데 더 넣어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불합격 통보 메일을 수집하면서 자존감도 떨어지는 중이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아보았지만 비어있는 담뱃갑들만 바닥에 굴러다녔다.


“씨발···.”


하는 수 없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편의점은 집 근처에 있었던 터라 담배를 산 뒤 집 앞 분리수거장에서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며 머릿속으로 취업 준비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 냐~옹!


갑자기 들린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담배를 떨어뜨렸다. 대체 이놈의 동네엔 왜 이렇게 고양이들이 많은 거야? 얼마 피지도 못한 담배를 아까워하며 새로 담배를 꺼내려 할 때, 다시 한번 울음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가까운데···?’


계속되는 울음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쓰레기봉투 더미 속이 소리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굶주린 고양이가 쓰레기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 반감이 들었다. 분명 봉투를 다 헤집어 놔서 쓰레기들을 흩뿌려 놓을 것이다. 그럼 미관도 미관이지만 벌레들도 꼬이고 아주 난리가 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고양이를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적어도 피해를 주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꺼내려던 담배를 다시 담뱃갑 안에 넣어두고 봉투 더미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휴, 제발 딴 데 가서 먹을 거 찾아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응?”


낯이 익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진심으로. 분명히 어제 본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현관이 열리길 기다리다 배가 고파서 잠시 먹을 것을 찾으려 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너무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있는 게 이상했다.


‘헉!’


가까이 가서 살펴본 녀석의 상태는 처참했다.


두 개의 앞발은 마치···.


땅에 떨어뜨린 햄버거 같았다.


으깨진 패티, 흩뿌려진 새빨간 케첩···.


“씨발, 대체 이게 무슨···.”


- 냐···옹.


구슬피 우는 녀석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몇 시간이나 여기에 버려져 있었던 걸까.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경련만이 녀석이 움직일 수 있는 전부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마 안 가서 죽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쓰레기봉투를 치운 뒤 녀석을 안아 올렸다. 피를 흘린 지 꽤 시간이 지났는지 피가 옷에 묻는 일은 없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텐데···. 어제 동네를 둘러보던 중 동물병원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당장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서 검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녀석을 일단 내려놔야 한다. 애써 안고 있던 고양이를 충격이 가지 않도록 살살 내려놓으려는 그때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를 미처 다 내려놓지도 못한 상태로 뒤를 돌아보니, 4~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이건···.”


“남의 건물 앞에 그런 걸 버리면 안 되죠!”


그런 거? 이 여자 말하는 거 봐?


“버리려는 게 아니라 구조하는 겁니다. 그리고, 누구시길래 참견이세요?”


“이 건물 주인이에요! 그러는 아저씨는 누군데 여기서 그러고 있는 거죠?”


“입주민입니다. 어제 이사 왔어요. 여기 분리수거장에 이 고양이가 버려져 있길래 제가 꺼낸 겁니다.”


“아이고, 그런 줄도 모르고···. 갑자기 큰 소리 낸 건 미안해요. 근데 뭐하러 굳이 그걸 꺼내서 그 고생이에요?”


“네? 그럼 뭐 어떡해요?”


“그냥 구청에 전화하면 알아서 가져갈 텐데.”


“그래도 생명인데 어떻게 그럽니까. 혹시 알아요? 지금이라도 병원에 데려가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요, 뭐 알아서 하시고···. 근처에서 고양이 밥이나 주지 말아요. 요새 왜 이리 고양이들이 많이 보이나 몰라. 그나저나 그거 데려다가 키울 거에요?”


“아뇨, 그러진 않을 건데···.”


“그럼 뭐하러 병원에 데려가요? 가면 치료비 수십에서 수백만 원은 그냥 깨질 텐데.”


병원비···. 그래, 병원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반려동물도 아닌데 그만한 돈을 내고 치료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단돈 몇만 원도 아쉬운 지금의 내게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냥 거기다 둬요. 관리인한테 전화해서 치우라고 할 테니까.”


“하지만···.”


“?”


“그럼 이 녀석, 죽을 거 아니에요?”


“이미 다 죽었는데 뭘.”


집주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부터 깊은 반발심이 올라왔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의 생명인데, 물건 취급하고 있는걸 보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치료할 겁니다.”


“치료한다고요? 사비 털어서?”


“네. 제 돈으로요. 혹시 근처에 동물병원이 있을까요?”


그녀는 한참을 의아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띠며 친근한 목소리로 동물병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감사를 표하며 떠나려는 내 팔을 붙잡은 그녀는 명함을 하나 건넸다.


“이곳 관리인 전화번호에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최대한 편의 봐 드릴게. 화양 원룸 가족이 된 걸 축하해요.”


명함을 받아들고 가볍게 묵례한 뒤, 재빨리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집주인과 얘기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다. 조금이라도 빨리 녀석을 치료해주고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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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4 박궁금
    작성일
    23.05.31 17:15
    No. 1

    작가님 잘 읽고 가니다. 추천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맵짠
    작성일
    23.06.02 22:36
    No. 2

    층간소음, 아니 벽간소음에 동물학대. 흥미로운 소재네요. 편마다 주요 사건이 한번씩 나오는데, 꽤 흥미로워요. 습작하면서 많이 배우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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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포섭 23.06.09 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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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친구의 행방 23.06.08 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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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새로운 입주자 23.06.07 11 0 9쪽
16 16. 블랙아웃 +2 23.06.07 15 1 9쪽
15 15. 이상한 면접 +3 23.06.06 15 1 10쪽
14 14. 창고의 비밀 +1 23.06.06 1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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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1204호 +1 23.06.04 1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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