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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스톰 님의 서재입니다.

한번 소드마스터는 영원한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인디고스톰
작품등록일 :
2022.10.31 22:19
최근연재일 :
2022.11.30 23:54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5,187
추천수 :
215
글자수 :
107,271

작성
22.11.2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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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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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23화

DUMMY

-옛날에는 위대한 검사들이 왕국을 호령했단다. 감히 제국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때지.


-정말요?


프라이스가 아직 어릴적, 매일 밤이면 듣던 이야기였다. 피부를 데우던 따뜻한 불길과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강대한 적의 침략에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선 영웅들이 있었지. 여기사 시시프스도 그 중 하나였단다.


-저도 알아요. '검은 연꽃'의 주인이죠?


-그래. 동시에 우리 위대한 가문의 일원이시지.


한때 이름을 떨치던 가문은 이제 이름도 남기지 못했다. 하나 남은 후손이 남장하고 기사행세를 해야 할 정도니까.

하지만 가문이 쇄락했다고 해서 <검은 연꽃>이 약해진건 아니다. 다만 걸맞는 검사를 배출해내지 못한 것 뿐.


'책에서 읽으셨다고 했지. 대충 둘러대신 것 뿐이겠지만.'


포쿠본의 코를 꽤뚫고 들어간 검술은 <검은 연꽃>이 확실했다. 자세는 변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 뒤로 숨긴 검, 활시위를 당기듯 몸의 탄력을 이용한 찌르기.'


그 외에도 힌트는 무수히 많았다. 검과 평행하게 놓인 발이나 검을 품에 안으며 눕힌 팔꿈치 등등.


비전 검술, 특히 <검은 연꽃>은 비효율을 극단적으로 추구했기에 더 눈에 띄었다. 애초에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졌으니까.

몸을 가볍게 만들고 민첩성과 유연함을 기르는 등, 일반적인 기사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공자님은 완벽하게 수행해내셨지. 오히려 나보다 더 뛰어나게.'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그녀에게는 조금 부끄러웠다. 위대한 기사와 검술을 잇는 마지막 후손이라고 생각하며 평생 살았는데, 이제와서 아니라니.


'심지어 본가가 따로 있고. 내가 분가 출신이었어!'


그런 주제에 혼자서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고민하고 있었다니. 얼굴을 붉힌 프라이스가 발가락을 꼬물거렸다.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웠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뻤다. 늘 가슴 한구석을 짖누르고 있던 짐이 사라졌으니까.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본가의 후계자.

그것도 뛰어난 기사이며, 세실리아 아가씨의 배우자고, 고위 귀족의 자제였다.


'심지어 날 직접 골라서 데리고 오셨지.'


<검은 연꽃>을 알아보신게 틀림없다. 심지어 검술을 사사하시면서 눈치를 주기까지 하셨었는데 이걸 알아듣지 못하다니.


'으으으응···.'


기사로든, 가문의 후예로든 실책이었다. 앞으로는 어떤 얼굴로 공자님을 뵈야 한단 말인지.


검술을 이으며, 동시에 가문의 자손을 봐야한다는 의무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었다.

이제 남장을 하고 다닐 필요도 딱히 없는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여자라는 것도 한눈에 알아 보셨었지.'


혹시 그녀를 꼭 골라서 데려오신데 의미가 더 있는게 아닐까.


본가와 분가라지만 피가 섞인지 너무 오래 지났다. 사이가 너무 멀어지지 않게 다시 가문을 합치기도 했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혹시 세실리아 아가씨와 날 동시에···.'


프라이스는 붉다못해 새하얗게 변한 얼굴을 푹 숙였다. 기사가 되기로 맹세한 후, 의도적으로 차단하던 생각들이었다.

가정을 꾸린다거나 하는건 그녀에게는 지나친 사치였으니까.


리처드 공자님이 계신 지금은 달랐다. 힐끗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



'쟤는 또 왜 저러냐. 혹시 알아봤나?'


리처드는 자꾸 똥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는 프라이스를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가문의 비전 검술을 남이 펼쳤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검은 연꽃>을 펼친건 반쯤은 몸에 익은 습관이었다.


방심한 숲돼지가 주둥이를 훤하게 들어내고 있어서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쩍 벌어진 콧구멍에서 연한 살점을 지나 뇌까지 열린 허점.


'이건 못 참지.'


검사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순간이었다. 여길 찔러주세요 하는데 어떻게 참겠어. 소드마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서 재잘거리느라 바쁜 레인저들이라면 모를까.


"도련님, 허락해주시면 제가 이 놈의 숨통을 끊겠습니다. 이 진흙탕만 좀 피해서 일을 마무리 하시죠."


"저 무거운 놈을 옮기자고? 괜히 힘빼지 말고 여기서 끝내."


"그게··· 일이 꼬일까봐 걱정되서 드리는 말씀입니죠."


레인저는 연신 숲의 정상을 힐긋거렸다. 무언가 그를 내려다보기라도 하듯이.


"뭐가 그렇게 무섭길래 그래. 포쿠본들이 더 몰려와봤자 때려잡으면 그만이야."


"그게 말입죠. 워낙 몸집이 큰 놈이라 자주 모습을 들어내지는 않지만···."


끄어어어엉!


바닥에 쓰러져 연신 피를 토해내던 숲돼지가 단말마를 내뱉었다.


'검에 묻어나온 뇌수를 확인했는데?'


뇌의 손상이 덜했는지, 우연찮게 배에 갇힌 공기가 뿜어져 나왔는지, 혹은 숲돼지의 죽음의 메아리일지도 몰랐다.

지금 중요한건 숲돼지가 내뿜은 단말마의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꾸어어어엉!


비명에 답하듯 우렁한 울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좋지 않습죠. 이젠 정말로 자리를 피하셔야 됩니다요."


"아까부터 뭐 때문에 그래?"


"저희끼리는 숲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놈입니다. 아주, 아주, 아주 덩치가 큰 돌연변이 포쿠본이 있습죠."


요즘 레인저들이 숲돼지가 무서워서 도망다니나? 코웃음치는 기사들을 본 알파가 얼굴을 구겼다.


"과장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요. 그 놈은 커도 너무 큽니다. 아주 그냥, 산만한 놈입죠."


"그래봤자 짐승 아니냐. 함정을 파고 독을 먹이면 되지. 레인저들의 숲돼지를 두려워한다고?"


알파는 소리의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발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질린 얼굴은 겁을 내는 기색이었다. 숲의 침입자에게 공포를 알려줘야할 레인저답지 않았다.


"옛날이라면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요. 이게 다 마법사들 때문입죠."


"마법사?"


어느새 다가온 비앙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 치들이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닌 이후로 마나에 오염된 괴물들이 생겨나고 있습죠."


쿵- 쿵- 쿵-


숲 정상에서부터 굉음이 들려왔다.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에 레인저들의 몸이 떨렸다.


"작은 놈들이야 저희가 어떻게든 처리했지만, 큰 놈은 최대한 숲 안쪽으로 밀어냈습죠."


쿵- 쿵- 쿵- 쿵-


소리가 다가오자 땅이 울렸다. 땅울림 때문인지 레인저들의 몸도 같이 떨렸다.


"안 그래도 몸집이 크던 포쿠본 수놈은··· 오히려 저희를 쫓아냈습니다요."


쿠우웅!


저 멀리서 나무들 사이로 꿈틀대며 다가오고 놈이 보였다. 레인저를 비웃었던 기사들도 그 크기를 보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허, 숲의 주인이라고 할만하네."


쿵!


가까이 다가오자 땅이 울려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설픈 기사들이 휘청거리는 사이로 리처드가 걸었다.


"도련님, 몸을 빼시죠. 저희가 유인해서 다시 숲 안쪽으로 끌고 가겠습니다요."


알파는 몸을 떨면서도 용캐 나섰다. 평소에는 경박했지만 이럴때는 또 숲을 지키는 레인저다웠다.


아까야 포쿠본 수컷 한놈 정도 풀어놓아봤자 나무 뿌리나 퍼먹었겠지만, 이 놈은 달랐다.


"저런 덩치면 마을 하나는 잡아먹어도 배가 덜차겠는데."


"···절대로 그렇게 둘순 없습니다요."


"그러면 도와라. 이럴 때 몸을 빼서야 기사라고도, 레인저라고도 자칭할수 없지."


쿵!!


숲의 주인이 발을 멈췄다. 놈이 쓰러진 동족과 그 주변을 둘러싼 작은 동물들을 눈에 담았다. 볼 것도 없었다. 놈이 거친 숨을 내뿜었다.


킁! 킁!


몸이 커졌어도 포쿠본의 습성은 그대로였다. 놈이 돌진해왔다. 작은 것들을 그대로 짖밟아버릴 생각이었다.


"밟히면 죽는다! 옆으로 빠져!"


"피해! 죽는다!"


순식간에 갈라지는 인파 사이로 리처드가 뛰어들었다.


"도련님!"


비명을 뒤로하고 리처드가 땅에 닿을 듯 몸을 숙이며 포쿠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킁?


덩치가 지나치게 큰 탓에 사람 하나정도는 지나갈 공간이 있었다.


촤아악!


검이 거대 숲돼지의 배를 가를 듯 지나갔다. 기사들이 순간 안심했다. 공자님의 실력이라면 결정타가 될거라 생각해서였다.


"피하십쇼!"


알파가 비명지르듯 외쳤다. 레인저들은 이미 놈을 겪어봤다. 화살은 당연하듯 튕겨냈고, 땅에 단단하게 박은 말뚝이나 칼날로도 뚫리지 않는 가죽을.


쿵!


거대 포쿠본이 몸을 깔고 앉자 레인저들이 헛숨을 들이마셨다. 놈의 몸을 생각하면 깔리고도 살아남을 확률따윈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마찬가지. 내장이 터져서 허무하게 뒤지게 되는법이었다.


"젠장, 그러게 도망치자니까! 뭐해, 뛰어!"


알파가 몸을 돌렸다. 망설이지 말고 뛸걸 하는 후회가 얼굴에 남아 있었다.


"도망치는거 하나는 빠르다니까."


첫 발이나 떼었을까. 알파가 멈췄다. 거대 포쿠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말

예약 실수로 잘못 올라갔던 22화가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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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1 22.11.23 110 8 10쪽
19 19화 +1 22.11.22 123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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