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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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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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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5,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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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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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30. 순간을 기억하는 법 (2)

DUMMY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며 문이 열렸다. 마법공학 실험부 사람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에밀리아의 볼에서 눈물이 흘러 턱에 방울져 떨어졌다. 대장은 의식이 없어 보였다.


“대장!”


호세가 다급하게 대장을 불렀다. 그러나 대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차오와 호세가 차가운 대장의 몸을 들고 ‘꿈나라로 떠나자 1호’의 밖으로 꺼냈다. 둘은 대장을 바닥에 눕힌 뒤, 상태를 살폈다.


숨을 쉬는 것으로 보아 치명적인 피해는 없는 듯 했다. 허벅지에 동여맨 옷자락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호세는 입술을 깨물고 더 강하게 대장의 허벅지에 붕대를 묶었다.


에밀리아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멍하니 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 안에서부터 꽁꽁 감춰두었던 것들이 둑이 터지듯 쏟아지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입술로 누워있는 대장을 바라보자, 갖가지 추억과 기억들이 가슴을 마구 헤집었다.


가장 강한 감정은 아련함이었다. 가슴이 시큰거릴 정도로 강렬한 아련함. 에밀리아는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 주먹을 꼭 쥐었다.


“대장, 정신 차려!”


데이지가 소리를 빼액 질렀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차오는 이미 의료진을 데려오기 위해 바깥으로 사라진 뒤였다. 데이지는 대장의 손을 붙잡고 불안한 얼굴로 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세의 얼굴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사라졌던 대장이 어째서 ‘꿈나라로 떠나자 1호’에 있었는지, 상처는 무엇인지.


어째서 진리의 문에 갔던 것인지.


‘대장이 진리의 문을 연 걸까?’


호세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대장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대장이 보았던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대장이 눈을 떠야했다. 대장은 붙잡은 호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대장의 몸이 꿈틀거렸다. 호세와 데이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장을 불렀다.


“대장!”


대장은 인상을 잠깐 찌푸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평소처럼 푸른 눈이 조금 지쳐 보였다. 눈동자가 데이지와 호세를 담다가, 우두커니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에밀리아에게 향했다.


그러자 대장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데이지와 호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장이 천천히 말했따.


“내가···, 말했지. 언젠가 네 우는 얼굴을 보고 말겠다고, 에밀리아.”


에밀리아는 무너지듯이 대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장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토해냈다. 데이지는 에밀리아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에밀리아는 고개를 들어 대장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작게 말했다.


“유진···.”


대장의 미소가 짙어졌다.


“드디어 그렇게 부르는군···.”


이윽고 차오가 의료진을 데려왔다. 들것에 실려 회복실로 옮겨지는 대장의 뒤를 따라 마법공학 실험부의 인원이 전부 이동했다. 수많은 그림이 남겨진 비밀 공간이 텅 빈 채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러나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


시간은 금세 흘렀다. 왕국의 수도는 괴물들이 언제 침입했냐는 듯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괴물들의 공격으로 위축된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데이지는 국왕의 명령으로 성벽에 다수의 마법진을 그리도록 허락받았다. 괴물들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했다. 덕분에 데이지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데이지의 유일한 낙은 호세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일이었다.


용족들은 자신이 경외하던 날개를 가진 괴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그들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색깔에 따라 다투었던 과거가 거짓인 것처럼 서로와 화합했다. 이제 왕국 수도의 정문에 다른 색의 용족들이 함께 순찰을 하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장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허벅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까지 나았다. 의료진들이 한사코 말렸지만 대장은 결국 마법공학 실험부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하고서.


본관에는 호세와 대장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세는 민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밀리아 경은 어디로 갔나요?”


“나도 모른다. 저번부터 구원 기사단 녀석들이 돌아오라고 노래를 부르던 걸 봤으니, 거기 가 있겠지.”


대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호세는 고개를 돌려 대장을 바라보았다.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모습에, 심술궂더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물론 대장의 서슬 퍼런 눈동자와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호세는 대장의 무시무시한 시선을 견디지 못했지만, 마음 속에 꾹꾹 눌러왔던 질문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윽고 호세의 입이 열렸다.


“대장은 진리의 문을 여신 건가요?”


호세의 질문에 대장이 다시 호세를 힐끗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마력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 역시 비밀···, 예?”


호세는 대장의 대답 거절을 예상하고 말을 중얼거렸으나, 자신의 귀에 들린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왕족 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력석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조건만 찾아 내면.”


호세는 대장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갈등하며 눈치를 살폈다. 대장은 분명 무섭고 짓궂은 사람이지만,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호세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건···, 왕족을 부정하는 말이잖아요···.”


대장은 가만히 호세를 바라보더니 말을 꺼냈다.


“왕족 같은 건···, 이제 필요 없다. 아니, 애초에 필요 없었어.”


대장의 눈이 과거를 헤메고 있었다. 겨울의 저주와 쫓겨난 왕자. 그리고 왕관과 마력석. 돌아가신 선왕. 그 모든 일들이 왕족 사이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 어쩌면 왕족으로서 짊어져야 할 굴레를 벗기기 위한 걸음을 내딛는 중일지도 몰랐다.


사색에 잠신 대장의 눈치를 보던 호세는 결국 자신의 들었던 내용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대장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지만, 호세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드는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대장은 호세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앞으로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충격으로 멍한 얼굴의 호세를 향해 대장이 말했다.


“가서 에밀리아나 데려 와. 보나마나 구원 기사단 놈들의 부탁에 쩔쩔매고 있을 텐데.”


정신을 퍼뜩 차린 호세는 주눅든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말하면 들을까요···?”


대장은 귀찮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종이에 서명과 날인을 찍은 뒤에 자신의 손바닥에 얹었다. 그러자 바람이 일더니, 호세의 앞으로 종이가 천천히 날아왔다.


호세는 그 광경을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대···, 대장!”


그러나 호세의 놀람도 잠시, 바람 뒤에서 만들어진 눈덩이가 얼굴을 때렸다. 체온으로 녹은 눈이 주르륵 떨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 호세가 눈을 굴려 대장을 바라보았다.


“다음엔 불이다. 느림보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지.”


“흐아악!”


호세는 질린 얼굴로 후다닥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멀리서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때문에 대장이 살짝 짓는 미소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얼마 뒤, 본관의 문이 열렸다. 대장은 문쪽으로 시선을 향했고, 혼자 들어오는 에밀리아가 꾸벅 인사했다.


“호세를 만나지 못했나?”


“호세 말인가요? 저는 보지 못했는데···.”


대장이 혀를 찼다.


“엇갈렸나보군. 신경쓰지 마라.”


그 시각 호세는 구원 기사단원들에게 붙잡혀 에밀리아가 복직할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는 부탁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대장은 대충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아 내버려 두었다.


대장이 호세를 떠올리고 있을 때, 에밀리아가 쭈뼛쭈뼛 대장의 근처로 다가왔다. 대장은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에밀리아를 향해 몸을 빙글 돌렸다.


“무슨 일이지?”


“최근 구원 기사단장직을 다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대장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이제 널 얽매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 그 어떤 일이든 말이야.”


에밀리아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장은 따뜻한 표정으로 에밀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밀리아가 검을 뽑았다. 대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에밀리아는 빠르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받치며 고개를 숙였다.


“기사 에밀리아는, 앞으로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의 기사로 살기를 원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내색하지 않았지만 크게 놀란 대장은 잠시 돌처럼 굳었다. 그리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몇 번 깜빡거린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국왕 이외의 존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위법이다, 에밀리아.”


“이것은 법이 아니라 제 의지로 하는 일입니다. 이 맹세은 어떠한 속박도 막을 수 없으며 제 명이 다할 때까지 지켜질 것입니다.”


대장은 에밀리아를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다, 에밀리아.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대장의 말에 에밀리아는 긴장한 듯 떨리는 음색으로 물었다.


“평소에도 유진이라고 부르도록.”


에밀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에밀리아의 눈동자를 자신의 눈에 담은 대장이 미소지었다. 에밀리아는 마음속으로 ‘단언컨대 자신이 바라본 미소 중에 가장 짙은 것’이었다고 확신했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앞으로 너는 내 검이다. 에밀리아.”


“감사합니다.”


에밀리아가 대답하자, 유진이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며 에밀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에밀리아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유진···, 님.”


대장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님’자도 곧 떼게 만들 거다, 에밀리아.”


일렁이는 불꽃처럼 아름답게 웃는 유진을 보며, 에밀리아도 빙그레 미소지었다.


-


위대한 존재는 마치 농사를 짓는 사람처럼 검은 흙밭을 걸었다. 그레고리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불쾌한 채로 지냈으나, 그것을 뒤엎을만한 즐거운 소식을 받았다.


“이건가.”


“예, 위대한 존재시여.”


거대한 언덕을 바라보며 위대한 존재가 뚜렷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움직일 수 있지?”


“지금도 단순한 움직임은 가능합니다만, 세밀한 조정이 필요할 듯 합니다.”


“좋아. 어디 한번 보지.”


위대한 존재의 옆에서 연신 허리를 구부리던 사내는 잠깐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이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그리고 언덕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은, 마치 사람의 형태를 한 거대한 형상이었다. 산 하나는 우습게 부숴버릴 것 같은 위용이었다. 위대한 존재는 폭소를 터뜨렸다.


“조정이 되는대로 바로 트란실바니아를 친다.”


위대한 존재는 몸을 빙글 돌려 앞으로 저벅저벅 걸었다. 검은 눈동자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배신자들의 모든 것을 흙으로 되돌릴 시간이 돌아왔다. 제군들.”


위대한 존재가 지나간 통로에는 수많은 실험관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의 형태를 한 무엇인가가 잠들어 있었다.


작가의말

이번에 외조부의 상이 있어서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최종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 주시면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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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4-29. 순간을 기억하는 법 (1) 19.09.05 44 0 12쪽
158 4-28. 조우하다 (2) 19.09.04 36 0 12쪽
157 4-27. 조우하다 (1) 19.09.03 55 1 12쪽
156 4-26.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4) 19.09.02 35 1 12쪽
155 4-25.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3) 19.08.30 39 1 12쪽
154 4-24.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2) 19.08.29 40 1 12쪽
153 4-23.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1) 19.08.28 39 1 12쪽
152 4-22. 질문과 답 (4) 19.08.27 42 1 12쪽
151 4-21. 질문과 답 (3) 19.08.26 41 1 12쪽
150 4-20. 질문과 답 (2) 19.08.23 43 1 12쪽
149 4-19. 질문과 답 (1) 19.08.22 59 1 12쪽
148 4-18. 진리를 향한 걸음 (3) 19.08.21 55 1 12쪽
147 4-17. 진리를 향한 걸음 (2) 19.08.20 60 1 12쪽
146 4-16. 진리를 향한 걸음 (1) 19.08.19 69 1 12쪽
145 4-15. 돌아오다 (3) 19.08.12 61 1 12쪽
144 4-14. 돌아오다 (2) 19.08.09 53 1 12쪽
143 4-13. 돌아오다 (1) 19.08.08 59 1 12쪽
142 4-12. 진실 (2) 19.08.07 56 1 12쪽
141 4-11. 진실 (1) 19.08.06 60 1 12쪽
140 4-10. 소동과 음모 (3) 19.08.05 59 2 12쪽
139 4-9. 소동과 음모 (2) 19.08.02 60 3 12쪽
138 4-8. 소동과 음모 (1) 19.08.01 74 3 12쪽
137 4-7. 귀환 (3) +2 19.07.31 77 3 12쪽
136 4-6. 귀환 (2) 19.07.30 74 3 12쪽
135 4-5. 귀환 (1) 19.07.29 78 3 12쪽
134 4-4. 네드 (4) +2 19.07.26 87 3 12쪽
133 4-3. 네드 (3) 19.07.25 7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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