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1박스 님의 서재입니다.

대충 망한 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1박스
작품등록일 :
2022.06.27 23:08
최근연재일 :
2023.03.20 16:2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29
추천수 :
2
글자수 :
10,499

작성
23.03.20 16:25
조회
11
추천
1
글자
13쪽

알파 - 보안관(1)

DUMMY

허름한 펍.


비록 낡았다곤 하나, 서부 영화에서 볼법한 펍이었다. 핵에 의해 문명이 무너졌다곤 믿기 힘든 한가로운··· 정겹기까지 한 내부 경관.


건물 관리를 잘 했는지 방심하면 생기는 기포 포자, 병균 점액도 없었다.


나름 깨끗한 펍의 문 틈새로 햇빛이 들어온다. 한낮임에도 펍 내부는 정겨운 이웃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평소와 같진 않았다. 개점한 지 10여분만에 거하게 취해 서로 싸우는 취객들, 그들을 구경하러 온 손님들, 그런 구경꾼들에게 내기를 권유하는 이들 등. 별에 별 한량들이 모여 개판이 되야할 펍은.


싸늘하기만 했다.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원흉.


그는 여타 손님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해 보이는 이형의 사내였다. 팔다리도 가늘었으며, 하얀 옷 탓에 더 붉어 보이는 피부. 더불어 며칠을 굶었는지 해골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혀 위협적이지 못한 생김새.


당장 그와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손님만 해도 ‘빵(Bread)’이지만. 사내와 극적으로 비교될만큼 터질 듯한 근육을 가졌다. 바텐더 눈 앞의 사내 따위는 그의 손가락 힘만으로도 가볍게 찢어버릴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무시하지 못했다.


이런 끔찍한 정적 속에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했다. 하필 총대를 매는 것이 자신이 된 것에 원망스러웠지만. 바텐더는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억지로 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손님.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술이라도 드릴깝쇼?”


잔뜩 긴장해서인지, 평소완 다른 어눌한 어투였다. 그 광경을 보는 다른 손놈들은 경악한 기색을 보였지만, 바텐더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린 사내가 바텐더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이런 X발. 이런 깡촌에 웬 귀족이야.’


바텐더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사내의 모습을 아래 위로 훑어봤다.


‘허여멀건한 천조각에··· 맨발? 이게 귀족의 패션인가. 역시 상식적이지 않군.’


“X벌, 존나 못 생겼네.”

“야! 쉿!”

“허미 씹.”


별안간 들린 말. 귀족 앞에서 감히 내뱉을 말이 아니었던지라, 바텐더는 잠깐 뇌정지가 왔다. 그리고 그 뜻을 이해했을 땐,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어, 허허허허. 제가 못 생기긴 했죠! 허허허허. 손님들이 자주 그런 말을 내뱉으니 저는 신경 안씁디다. 부디 신경쓰지 마십셔!”


갈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바텐더의 동공은, 함부러 떠든 손님, 아니 손놈에게 잠시 머물었다.


‘저 돼지 새끼가···! 죽고 싶으면 혼자 죽으라고!’


눈으로 온갖 쌍욕을 했다. 그 시선을 받은 돼지의 일행은 찔끔 몸을 떨곤 조용히 펍을 나갔다.


‘육시럴 놈들. 니들 똥은 니들이 치워야지··· 우린 다 죽으라는 거냐?’


일련의 헤프닝이 있었음에도, 사내는 무신경했다. 그저 살의 어린 눈으로 바텐더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내의 눈빛에 오금이 저린 바텐더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 저쪽 자리가 비었습죠. 허허. 앉으시겠슴까?”

“적당히 핥아라, 불쾌하니까.”

“어···허허허? 제가 입술을 좀 많이 핥았습죠. 어허허허. 입냄새가 심했습죠? 그나저나···.”


진땀을 빼는 바텐더를 보며, 혹여 자신에게도 불똥일 튈까 두려웠던 손님들은 조용히 자리를 나섰다. 그 모습을 보게 된 바텐더는 속으로 절규했다.


‘육시럴 놈들! 그동안의 외상값은 해줘야지! 아이고 나 죽네!’


“네 눈알.”

“아이고. 나리···! 집에 늑대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죠!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쇼! 나리~.”


바에서 나와 사내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려던 바텐더. 사내는 그를 제지하듯 다급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나.


“적당히··· 욱!”


별안간 구토를 하는 사내. 신물이 나올 때까지 구토하던 그는 짜증서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침을 뱉곤, 술집을 나갔다.


“허허허허. 살았다.”


비록 바닥이 더러워졌지만, 그 사실은 바텐더에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바닥에 쏟아진 것이 자신의 피가 아닌게 어디인가?


바텐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턱에 자란 촉수를 쓸어내리려 했다.


짝!


“아얏. 이 여편네가?

“짐승 같은 아내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 갖고 싶네요~.”

“노, 농담 할 수도 있지, 왜 그러나?”


삐진 아내를 달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별안간 두려운 상상까지 한 바텐더였지만. 다행히 사태가 위급해서인지 그의 아내는 화제를 전환했다.


“저거 귀족 맞지?”

“그래. 어찌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 있겠나···. 귀족들이 흉측하게 생겼다 듣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 흉측하군.”

“그러게. 얼굴 봤어? 어쩜 저렇게 못 생길 수 있지? 팔다리는 또 얼마나 얇고···. 정말 저런 몸으로 그렇게 강하단 말이야?”


촉수는 의문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촉수의 말에 바텐더는 무언가를 회상하듯 먼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끔찍하게 강하지. 알잖나. 전 직장.”

“제대로 얘기해준 적이 없어서 짐승 같은 저는 잘 모르겠네요?”

“크흠! 어찌 됐든 문제로구먼.”

“···경고 안 해도 돼?”


바텐더는 아내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봤다.


“따로 할 필요 없을 걸세. 목격자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 놈들이 다 했겠지.”

“그래도 정신 못 차린 녀석들이 있을텐데? 특히 스캐빈저 녀석들이 걱정이야. 걔네 때문에 귀족이 빡쳐서 우리까지 확 다 조지면 어떡해.”

“자연 재해를 어찌 사람 손으로 막을 수 있겠나. 운명이다 하고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바텐더. 그는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나 고민했다. 한참을 뜸 들이는 바텐더가 답답했던 촉수는 그의 뺨을 때렸다.


짝!


“크흠. 미안하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뭔데 그래?”

“귀족의 손. 팔짱을 끼고 있어서 긴가민가 하네만. 왼손이 파랗게 보였다네.”


어쩌면 그 귀족은, 다른 귀족과의 영지전에서 패배한 게 아니었을까. 아까 구토한 것도 사실 지난 전투의 여파로 인해 생긴 내상 탓일지도.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그 귀족은 잠시 몸을 회복할 요량으로 이 깡촌에 온 걸지도 몰랐다.


“그럼 귀족끼리 서로 싸웠단 얘기야?”

“단정할 순 없지만··· 아마도. 다만 놀랍군. 도망쳤다는 것도 그렇고. 고작 구토를 했다는 것도. 과연 귀족인가. 패배했음에도··· 구토 정도에 그칠만큼 회복하다니.”

“음··· 사실 단순히 연약해서 구토한 거 아냐? 왜 갓 태어난 아기들도 막 구토하고 그러잖아. 특히 포스가 가득한 곳에선 다 큰 성인들도 그런다고 들었는데.”

“그럴리가 없잖나! 허허허! 어떻게 봐도 귀 족같이 생겼는데, 고작 포스 때문에 토를 하다니! 허허허허. 재밌는 농담을 들었어. 허허허!”


사실 촉수의 추측이 옳았단 것을 바텐더가 알게 된다면, 꽤나 억울할 것이 분명했다. 아직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알파에겐 ‘포스’라 불리우는 방사능은 몸에 치명적이었으니.


만약 알파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분명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


펍을 나온 귀족.


아니, 평범한··· 유일한 인간 알파.


그는 입의 손상률을 낮추기 위해 펍을 나온 뒤로 계속해서 침을 내뱉었다. 이 세계에선 침으로 영역 표시를 하는 생물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분명 다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이었으나, 아무도 알파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사실 지적할 사람도 없었다. 벌써 이 작은 마을에 귀족이 방문했단 소식이 퍼졌는지, 길거리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따금 바람에 날려 굴러다니는 회전초만이 알파를 반겼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커튼이 쳐진 창문과 인적 없는 거리.


거리는 알파 혼자 걷기엔 지나치게 넓어 보였다. 양 옆으로 보이는 목제 건물에선, 으레 들려야할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황량한 풍경. 드문드문 커튼 틈 사이로 괴수들의 공포에 질린 눈동자가 보인다.


외형만 본다면, 분명 그들에게 공포를 느껴야할 사람은 분명 알파건만.


수많은 눈. 그 눈빛이 비록 공포에 질린 눈일지라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고 생각하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괴수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건물에 숨어 그를 지켜보는 이들은 기껏해야 이 세계의 하층민. 즉 ‘빵(Bread)’이라 불리는 패배자, 노동자들이었으니.


어차피 그런 구분은 알파에게 중요치 않았다. 다 같은 괴수일 뿐이다.


‘한계 피폭까지 4일. 신체 손상률 38%. 피폭량 3그레이(Gy).’


자의든 타의든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건만. 그런 행위가 피폭량을 감소시켜주진 못 했다.


진즉에 회복됐어야 할 왼손은 피폭량이 늘수록 상태가 악화됐으며. 전신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피부가 연약해졌는지 옷에 쓸리는 것만으로도 쓸린 상처가 생길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제 시간에 두 번째 신비를 얻지 못 한다면, 골수까지 손상되고 말 것이다.


‘그 때는 차라리 괴수들한테 먹히는 게 나을 엔딩이지.’


수많은 루프를 통해 쌓인 데이터에는, 알파의 가정 속 결말 또한 무수히 존재했다.


괴수의 신체를 이식당해, 방사능에 대한 최소한의 면역 체계를 갖게 되는 엔딩.


그것이 공략에 도움이 되었다면, 엔딩이 아닌 분기점이었겠지.


분기점으로서 기능을 하려면, 최소한 알파의 통제에 따라야 했으나··· 얌전한 게 선녀일 지경이었다.


기 적같이 얌전해도 왼손의 흑염룡마냥 도움이 될 가능성은 1도 없으니 남은 것은 결국 비참한 말로 뿐이었다.


귀족들도 없어서 못 먹는··· 깊은 풍미에 맛 좋은, 품질 좋은 최상급 ‘고기’로서의 엔딩.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엔딩이기도 했으며. 나름 순한 맛의 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괴수들.’


알파의 알고리즘이 잔뜩 성이 났다. 단순히 배드 엔딩··· 도축 당하는 상상만 했음에도 괴수들을 향한 적의가 불타오른다.


갈길 없는 분노를 머금은 알파였지만. 그 순간에도 그의 알고리즘은 이번 회차의 루프에 대한 견적을 재고 있었다.


현재 육체 손상률과 변동 확률의 이벤트.


다음 분기점은 갈 수나 있을까 싶을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악재만 가득한 현 상황.


진흙 속 진주처럼 희소식도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불임이 되었다는 것.


남성성을 상실하는 것이 무어가 희소식이겠냐마는. 소프트웨어는 AI일지라도 하드웨어가 인간의 육체였다.


아무리 알파의 알고리즘에 성욕이 제거됐다고는 하나, 하드웨어 때문에 발정이 나는 일은 존재했다.


증오해 마지않는 괴수들에게 발정하는 것은··· 특히나 ‘그것’이 존재하는 한 발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럴바엔 자결하고 말 것이다.


이러저런 견적을 재던 알파는 이변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펍에서 나온 후 15분 내외 이벤트 발생.’


챕터1 이벤트 넘버17.


육체 손상률을 줄이는 루트는 물 건너 갔다. 알파는 혈관이 터져 붉게 물든 눈을 깜빡였다.


“··· 벌레들이 정신이 나갔군.”

“크크큭. 귀족 나리~ 몸은 괜찮수?”


겉으로 보이는 알파의 몸상태가 썩 안 좋아보였던가.


몸이 정상이기만 했다면 말도 못 걸었을 잔챙이들. 그들은 거들먹 거리며 알파를 포위했다. 알파는 헛웃음을 내뱉곤 잔챙이들을 탐색했다.


‘돼지 하나, 들개 둘, 육체 이식한··· 문어 하나.’


이족 보행하는 팔 짧은 근육 돼지. 뼈만 앙상한 들개. 그들의 팔을 한짝씩 이식한 듯한 문어까지. 상당히 엽기적이면서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선 흔한 풍경이었다.


‘경계할 것은 문어 하나. 다만 저 녀석은 분명···.’


이벤트 넘버78로 수정.


난이도의 고점과 저점이 롤러코스터 같은 이벤트. 문어 하나의 출현 치곤 드라마틱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살생 없이 쉬운 길. 몰살하고 어려운 길.’


사시인 듯 초점이 맞지 않는 눈. 그 눈동자를 멍청하게 굴리며 기어코 알파를 담아낸 돼지. 놈은 입을 벌리곤 침을 질질 흘려댔다.


“흐, 히힛. 귀족··· 못··· 생겼다!”

“에헤이! 버릇 없긴! 나리~ 얘가 머리를 다쳐서 그래. 애는 착하거든? 좀 봐줘. 하핫!”


바람잡이인 듯한 들개 녀석이 계속 주둥이를 나불댔다. 그러나 그는 쉴새없이 깐쪽대면서도 불안한 듯 손을 떨었고. 이따금 문어와 알파의 눈치를 살폈다.


“보안관이 너흴 지켜줄 거라 생각하나.”

“히끅!”

“귀, 귀족··· 천재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충 망한 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입니다. 23.03.20 11 0 -
» 알파 - 보안관(1) 23.03.20 12 1 13쪽
1 프롤로그 23.03.20 18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