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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듀라미스 작가, 북풍광입니다.

[회귀자]Regressio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07,789
추천수 :
2,264
글자수 :
123,061

작성
14.04.14 22:05
조회
1,462
추천
28
글자
7쪽

죽음(9)

DUMMY

깜짝 놀란 룩소르가 나체로 몸을 일으켰다. 설마 그동안 순종적이기만 했던 아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라슈벨의 검은 그의 몸을 가를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어떻게든 방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룩소르가 허둥지둥하며 머리맡에 걸린 검을 뽑아 들었지만, 애초에 장식용 검이 진검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그는 퇴역한 군인이었고, 상대는 이제 막 하늘로 날아오르는 세찬 매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들어 올린 검은 라슈벨이 가볍게 휘두르자 반으로 조각나 버렸다. 기세에 눌린 룩소르는 침대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라, 라슈벨! 장난은 그 정도에서 멈춰라!”

“장난? 장난이라고요? 대체 이게 어딜 봐서 장난이지. 어떻게 해야 이게 진심으로 보이는 겁니까. 말씀 좀 해주세요.”

“내가, 내가 너에게 지금까지 해준 것들을 잊은 거냐! 내 지원이 없었다면 너도, 네 집안도 모두 이렇게까지 버티고 살지 못했어!”

“그깟 거. 나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덕분에 난 정신이 반으로 쪼개지는 질병을 가졌고, 동생을 학대하는 반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내게 중요한 건 그 대가로 당신이 나를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점. 그거 단 하나에요.”

“여봐라! 밖에, 밖에 아무도 없느냐!”

“누가 들어오겠어요.”


라슈벨의 입가에 문자 그대로 새하얀 미소가 번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당장 목이 날아간다는 것 쯤, 다 알고 있을 텐데.”

“여봐라! 여봐......!”


더 이상 말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푹. 하고, 무방비 상태의 노인의 몸에 손자의 검이 꽂힌다. 그것은 천륜을 저버린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매끄럽고, 깔끔해서 누구라도 그 장면을 봤다면 박수를 절로 쳤을 정도였다. 그만큼 감정의 동요가 없는, 마치 적을 대하는 것만 같은 세밀한 움직임이었다. 그의 몸에 검이 들어갈 때에, 라슈벨의 눈빛이 살짝 빛났지만 그의 눈은 금세 낮게 가라앉았다.


“끄아아악!!”

“울음 소리가 비참하군요.”


잠시 멍해있던 룩소르는 이내 자신의 몸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충격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검이 꽂힌 다리에선 피가 쉴 새 없이 솟구치고, 충격과 고통에 룩소르는 계속해서 몸을 발발 떨어댔다. 하지만 떨면서도, 죽을만큼 두려우면서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살려달라는 말, 당장 무릎이라도 꿇겠다는 말, 당하는 입장에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을 그는 하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라슈벨의 눈에는 너무나도 강렬한 희열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나는 편히 죽지 못하겠구나.


룩소르에게 그것은 일종의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자행되는 사형 선고. 기계에게 아무리 빌어봐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룩소르는 포기했고, 라슈벨은 잔인한 복수를 택했다. 단검이 하나 더 남은 다리에 꽂혔고, 이어 두 팔에, 그리고 복부를 그은 것도 모자라 남은 검은 목에 비스듬이 꽂혔다. 룩소르는 그저 꺽꺽 소리를 내며 뒤이어 목에 꽂힌 검을 멍하니 내려다 볼뿐이었다. 마치 검이 꽂힌 마법 상자처럼 라슈벨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검을 내리 꽂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


그렇게 숨이 끊어질 때까지 검을 꽂아 넣은 라슈벨은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옆에 놓인 수건으로 손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닦아내는 속도는 빨라지고, 그는 마치 자신의 손의 껍질을 벗겨내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박박 문질러 닦았다. 그것은 천륜을 저버린 것에 대한 속죄였을까. 아니면 할아버지의 더러운 피 한 방울까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정답은 오로지 그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


라슈벨의 심복이 다시 돌아왔을 땐, 이미 저택은 불에 휩싸여 있었다. 저택 안에선 비명 소리가 가득했고 마침 현관문을 열고 도망 나오던 여인의 목을 베어버린 라슈벨이 그의 앞에 섰다. 심복은 그 순간 직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으며, 이제 이곳에서 핀 불길은 다시 꼬마 도련님과 미치광이 영주만이 남아있는 그 저택으로 향할 거라는 것을. 심복은 마차의 문을 정중히 열며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음.”


마치 이제 막 일터로 나가는 사람처럼 마차에 올라탄 라슈벨은 그가 건넨 수건으로 얼굴과 전신을 닦아냈다. 그리곤 한결 개운한 얼굴로 심복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작은 도련님이 계속해서 학대를 받아왔고,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제대로 운신조차 하실 수 없는 형편이라 합니다.”

“그래. 그거면 됐어.”


이제야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다. 제국에서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는 아동학대, 그것도 자신의 아들을 학대한 남자는 그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극형을 받는다. 자신은 그를 죽임으로서 이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것이고, 공주를 죽이는 대역죄를 저지름으로서 발렌타인 가문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아무도 자신을 말릴 수 없었다.


“그나저나 벨 도련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영주님을 죽이고 나서 바로 죽이시는 건 아니겠죠?”

“벨. 벨이라......”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라슈벨은 의외의 문제에 부딪쳤다. 벨 폰 발렌타인. 발렌타인 가문의 막내이자,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성을 타고난 아이. 물론 발렌타인의 이름을 가졌기에 당장에 죽여야 하는 게 맞았지만, 라슈벨은 선뜻 그 일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과연 벨은 죽어야 하는가. 아직 7살도 되지 않은 그 아이가 단지 발렌타인이란 가문의 업을 뒤집어쓰고 죽어야 하는가.


‘물론 살아도 산 목숨은 아닐 것이다.’


평생 꼬리표가 붙겠지. 살인자의 가문에 대역죄를 지은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잠시 고개를 숙이고 그 무게를 짐작하던 라슈벨을 보고, 심복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아무리 이중인격을 가진 주인이라도 막내에 대한 심정이 애틋하지 않을 리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또 아버지를 죽이러 가는 길이 아닌가. 그가 조금이라도 주인의 짐을 덜어주고자 라슈벨에게 말을 걸려 할 때, 심복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본 라슈벨의 얼굴은 당장에라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 가득 환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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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죽음(챕터 完) +1 14.04.25 1,382 25 12쪽
33 죽음(10) 14.04.23 1,438 22 7쪽
» 죽음(9) +2 14.04.14 1,463 28 7쪽
31 죽음(8) +1 14.04.02 1,392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22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31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4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9 47 8쪽
25 죽음(2) +2 14.02.27 1,958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8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8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41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3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2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2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1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2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91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1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4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4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9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5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6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5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5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2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8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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