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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배낭 안에 괴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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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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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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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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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0. 혼돈

DUMMY

“... 회의는 다 마무리되었나요?”

“아니, 하지만 네가 보낸 보고가 더 급한 것 같으니까, 도중에 회의를 멈췄어.”



중후한 느낌이 나는 중년의 남자.


골목 사람답지 않게 양복 차림이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는,


28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우리 ‘말단 마을’의 이장이 되어,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장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백효성이라는 남자였다.



“... 골한의 아지트가 신수에게 당해, 그곳에서 단 두 사람만 생존했다니...”



백효성은 팔짱을 낀 채 말끔하게 손질된 자기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믿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니 말이야... 생존한 사람 중 한 명이 ‘골한의 대장’이 신뢰하던 ‘사력자’이고, 현재, 골한의 아지트와 연락 두절 상태. 게다가... 우리 마을의 수집가들이 말하길, 골한의 아지트 인근에서 엄청난 폭음 소리를 들었다. 라 했으니까.”



백효성은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리다가, 턱수염에서 손을 떼며 김류나를 바라봤다.



“언니의 일은 유감이야. 하지만, 지금은 멈출 수 없는 거... 이해하지?”



백효성의 진심 어린 걱정 속에 묻혀 있는 우려가, 김류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우리 마을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골한의 아지트’와 ‘골목 마을’을 달리 부르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김류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말단 마을’과도 같은 ‘골목 마을’들은, 마을이라는 특징상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물론 이들은 골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본적인 육체 능력은 갖추고 있었고 훈련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은 결국엔 각자의 삶을 사는 마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골한의 아지트에 있는 사람들은 달랐다.


비록 인구수는 골목 마을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지만,


그들은 골한이라는 하나의 단체를 개인적인 목숨보다 우선하며,


이장보다 훨씬 권력이 강한 ‘대장’이라는 직급 밑에서 매일 같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이들이었다.


한마디로 잘 훈련된 정예병들의 집합소라 생각하면 편했다.



“우선으로 경비를 강화한 뒤, 어떠한 형태의 신수에게 당했는지 생존한 그 두 명에게 물어봐야겠죠.”



잘 훈련된 병사들의 집합소인 ‘골한의 아지트’가 신수에게 당했다면,


당연하게 우리 ‘말단 마을’도 큰 위험에 직면한 상황.


무언가 대책을 강구 해야 한다고, 김류나는 경비 팀장으로서 마을 경비에 대한 일과,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



“골한의 아지트에서 생존해 온 최수호... 그 애도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어요.”



백효성에게 말했다.



“뭐... 그 애는 사력자라고 했으니 위험...”

“단순히 사력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녀석은 제 언니의 영향을 받아 골목 사람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녀석이 만약 우리 마을의 사업을 알아채면 가만히 있지 않을걸요?”

“... 그 애를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야? 그 애가 알아차릴 거라는 보장도 없고, 또 알아차리더라도 외부인이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백효성은 김류나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괜찮은 거 맞지? 우리 마을은 김류나 네 손에 달렸어. 이 마을에서 너만큼의 실력과 경험을 갖춘 사람은 없다고. 내 말 알지?”

“... 네... 알겠어요.”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이장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이들은 외부인.


딱히 이들은 우리 마을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알아도 뭔가를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곳은 골목.


불법적인 일 따위는 없었다.


그저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발악하는 거니까.


김류나는 벌레에게 물린 것처럼 갑자기 손바닥이 따끔거려,


손바닥을 펼쳐 바라봤다.



‘... 언니...?’



손바닥 위, 손가락 끝에서 선명해지는 그때의 기억...


왜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자꾸만 눈앞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뿐이었다.



“자, 그러면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인간들의 속담에 있지? 나는 이런 속담을 이용해서, 지금 바로 ‘물물교환 실험’을 시작할 거야. 물물교환 품목은 ‘확실한 형태의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83.2% 이하로 잘려있거나, 형태가 78.8%까지 훼손되어 있다면 교환해 줄 수 없어. 이런 조건에 부합되게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를 중앙에 있는 내게 가져다주면 빵 한 개나 물 한 컵 중에서 한 가지와 교환해 줄게. 물물교환 개수는 제한 없으며, 그것이 본인의 거든 다른 사람의 거든 상관없어.”



총 20명의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음성을 토해내는 공중에 붕 떠 있는 거대한 구체.


그것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양한 날붙이들이, 천장 곳곳에 있던 어떠한 배관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자~ 그러면 기간은 일주일. 잘 살아남아봐~”



김류나에게 아른거리는 그때의 기억.


살아남기 위해 언니와 발악하는 그때의 기억.


아니... 그때 발악했던 건 자신이 아니었다.



“미안! 네 손가락 좀 가져갈게! 미안해!”



그때 언니의 피범벅이 된 표정이 자신을 보며 미소 지었던 기억...


김류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회상에서 벗어났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김류나는 시청에서 나온 다른 팀장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장을 바라봤다.


팀장들은 하나 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장과 대화를 나누며, 이따금 자신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최수호에게 가야겠지...’



김류나는 때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했다.



----------



우리들은 김류나가 안내해 준 집에서 나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을의 시장을 방문했다.


이곳은 인구수가 약 만 오천 명이 넘어가는 이 ‘말단 마을’과 어울리게 상당히 큰 시장이었고, 덕분에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덜했다.



“자~ 그러면 마지막 주사위 간다!”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어떠한 이유로 더욱이 사람들로 득실대는 시장의 한쪽 구석.


신수로 인해 항상 조용한 마을의 분위기마저, 득실대는 사람들 속에서 격정이 끓어올랐는지 꽤 소란스러웠지만,


나는 이런 혼돈 속에서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자리에 멈춰 섰다.



“... 6이야! 이렇게 되면, 또 내가 이겨버린 거네? 헤헤”

“이야~ 꼬맹이 녀석이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고마워! 아저씨 실력도 장난 아니었다고.”



기억에서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죽을 때까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와 비슷한 소년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골목 사람들이 득실대는 그 중심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의 얼굴을 확실히 보기 위해,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이봐!”



또 다른 소년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소란스러운데도, 그 소년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뚜렷하게 들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소년의 목소리를 바라봤다.



“네가 진짜 그분이라는 사람이야?”



백색의 머리칼에 눈매가 날카로운 한 소년.


그런 소년의 은색 눈이 나를 감정 없이 바라본 채,


최수호의 목으로 기이하게 뾰족해진 손톱을 겨누고 있었다.



“... 모르겠다만...”



아직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다.


대충 12~14살 사이로 정도 보이는, 아직 키도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소년.


하지만 어려 보이는 건 소년의 얼굴과 키뿐이었고,


소년이 최수호에게 겨누고 있던 일그러진 뾰족한 손톱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을 것 같은 저 차가운 은색 눈동자는,


나는 녀석의 발톱이 어린것이 아닌, 늑대의 송곳니 같은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뭐. 딱히, 네가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네 사력으로 네가 ‘그분’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으니까.”



나는 소년의 말에,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의 단검을 옷소매에서 꺼내 손에 감추었다.



“그래... 그래서 뭘 원하지?”



여차하면 이 손바닥보다도 작은 단검을 던져, 소년을 제압해야겠지.


나이가 어린 녀석을 죽이는 건 아무리 나라도 꺼림직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나름대로 자신과 타협을 하고 있을 때였다.



“너는 뭐냐? 라프...”



최수호의 머리 위에 얹어져 있던 라프가 한 팔을 뻗으며, 소년의 목덜미를 잡아채려고 했지만,



“뭣?!”



소년은 라프의 커다래진 손톱을 간만의 차이로 피하며, 최수호에게서 뒤로 크게 떨어졌다.



“뭐야? 그분은 신수까지 사역하는 거였어?”



소년의 빛나는 은색 눈이 동그래지면서, 놀라워했다.


나는 소년이 방심한 틈을 타, 쥐고 있던 칼날을 소년의 목에 날리려고 했지만, 차마 손에 움직여지지 않았다.



“... 그래도 그분은 상층부에서 들었던 것처럼 악랄하지 않네? 쥐고 있던 칼날도 날리지 않고, 말이야”

“알고 있었나?”

“그럼~ 아마 그 칼날을 날렸다면, 지금쯤 ‘그분’의 목에는 네 손톱이 꽂혀 있을걸?”



건방진 꼬마이긴 했지만, 실력은 분명 태어난 뒤 발걸음을 뗐을 때부터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소년의 일그러졌던 손톱, 그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으니 저 소년도 아마 그 사력자라는 것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나는 뒤에서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하는 소년의 목소리를 놓치기 싫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럴 일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나... 아니면 설마, 라프처럼...


나는 불안했지만, 지금 앞에 있는 소년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 별건 아니고, 네가 우리를 깊은 골목으로 안내해 줬으면 좋겠거든.”



우리를 깊은 골목으로 안내해 달라고...?


이 소년도 이전에 만났던 그들처럼 나를 따라오고 싶은 건가?


나는 의문이 채 가시기 전에,



“당신이 그분?”



익숙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



햇빛이 거의 들지 않은 침침한 골목 속.


키가 족히 5M가 훌쩍 넘어갈뿐더러,


덩치마저도 바윗덩어리처럼 커다란 한 남자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가뿐히 들어 올렸다.



“교인이여. 네 녀석들이 말하는 그분이라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거지?”

“히히히... 괜찮아... 내가 죽어도 괜찮아... 우리들은 전부,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거니까...”

“...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면, 네 녀석들이 얻는 건 무엇이냐?”

“아아... 구원, 사랑, 해방... 그래! 해방! 골목으로부터 해방! 고층으로부터 해방! 히히히. 신수로부터 해방!”

“알겠다. 그만 죽어라.”



거구의 남자는 손에 든 그의 머리를 꽉 움켜쥐어 터뜨린 뒤, 아무렇게나 바닥에 집어 던졌다.



“‘최얀’ 녀석의 ‘친절한 자’들은 전부 저렇게 약물에 절여 있다고 하네? 그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려고 한다면, 역시 신도들보다 주교를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바윗덩어리처럼 거대한 남자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왜소한 키와 몸을 지닌 한 여인이 한 손으로 핸드폰을 두들기면서 말했다.



“마침, 골목으로 내려온 G.G.E의 박사가 ‘혜화’라는 ‘신수 해방 교단’의 주교를 잡았다고 하던데, 어떻게 할래? 지금으로선 최얀을 찾는 것보다, G.G.E에 잡힌 주교를 강탈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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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2 - 24. 그와 그분 24.04.17 5 0 13쪽
74 2 - 23. 그와 그분 24.04.13 6 0 12쪽
73 2 - 22. 그와 그분 24.04.06 8 0 12쪽
72 2 - 21. 혼돈 24.03.30 6 0 12쪽
» 2 - 20. 혼돈 24.03.23 6 0 12쪽
70 2 - 19. 나아가는 길 24.03.16 4 0 12쪽
69 2 - 18. 나아가는 길 24.03.09 6 0 12쪽
68 2 - 17. 나아가는 길 24.03.06 7 0 15쪽
67 2 - 16. 생태계 24.02.28 6 0 13쪽
66 2 - 15. 생태계 24.02.18 8 0 12쪽
65 2 - 14. 생태계 24.02.11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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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2 - 12. 골목 속으로 24.01.18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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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2 - 10. 사력자 23.12.22 6 0 12쪽
60 2 - 9. 사력자 23.12.11 6 0 12쪽
59 2 - 8. 사력자 23.12.06 6 0 12쪽
58 2 - 7. 고층의 기원 23.11.29 7 0 12쪽
57 2 - 6. 고층의 기원 23.11.21 8 0 12쪽
56 2 - 5. 맹약 23.10.22 13 0 12쪽
55 2 - 4. 맹약 23.10.11 12 0 11쪽
54 2 - 3. 맹약 23.09.28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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