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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yung4837
작품등록일 :
2022.02.07 19:01
최근연재일 :
2022.02.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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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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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1화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사냥꾼은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괴물을 찢어발기는 괴력도, 영원히 지치지 않는 체력도 없는, 우리와 다를 게 없는 나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그들의 신체는 언제든지 형편없이 찢어지고, 정신 또한 쉽게 바스러진다. 허나 그러한 현실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괴물들의 배를 갈라 복수를 다짐하는 이를 우린 사냥꾼이라 부른다.


대지를 불사르기 위해 높디높게 떠 있는 저 태양도, 날카롭게 번득이는 칼을 든 미치광이 살인마도 사냥꾼의 육체를 해할 순 없다.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괴물들뿐이다.


그리고 괴물도 마찬가지다. 오직 사냥꾼만이 그들의 피로 갑주를 적실 수 있다.


* * *


역겨운 썩은 내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황량한 대지 위를 남루한 행색을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타오르는 태양이 그의 몸을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는지, 그는 모자를 뒤집어썼다.


롱코트에 달려있는 칼날들은 부딪치며 찰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카일은 풍겨오는 피린 내와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에 옷가지를 올려 입과 코를 막았다.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태양 빛을 그대로 받아 피부가 타는 것보단 나으리라.


무엇이 묻혀 있는지 모를 모래 언덕 위를 오르고 있을 때 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이긴 하나 날카로운 이빨과 억센 발톱을 가진 새이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아마 붉은 이빨 독수리일 것이다. 게다가 크기를 보면 새끼임이 틀림없다. 카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 깃털 독수리의 새끼는 그리 강하지 않다. 아직 변이를 하지 않아 질기지 않은 새끼 붉은 깃털 독수리의 가죽은 단검으로도 쉽게 찢을 수 있다. 허나 새끼가 있다는 말은 분명 어미도 이 주위에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그때 귓청을 찢는 듯한 괴음이 들려왔다.


독수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3~4배에 달하는 크기를 가진 붉은 깃털 독수리는 붉은 안광을 번득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성애가 강한 붉은 깃털 독수리라면 새끼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새끼와 같이 있으면 새끼를 죽이려는 포식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카일은 힘겹게 올라왔던 모래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모래 속에 몸을 파묻었다.


자신의 새끼를 발견한 어미는 포효를 멈췄고, 쿵쿵거리던 발길질도 또한 멈추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자리를 벗어났다.


카일은 많이 겪어봤다는 표정으로 몸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래가 옷 안쪽까지 들어가 옷가지를 들어 안에 있는 모래를 털어야 했다.


밤이 되기 전엔 마을에 도착해야 한다.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인간의 육체는 괴물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나약하다. 그렇기에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지킬만한 높고 튼튼한 성벽을 필요로 했다. 허나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여 바위나 벽돌 따위로 성벽을 짓긴 힘든 상황. 그렇기에 대다수의 마을들은 목책을 지어 두었다.


카일이 목책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활시위를 당기며 카일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든지 화살을 날릴 수 있다는 듯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누구냐.”


카일을 경계한다는 듯한 날이 서 있는 목소리에 카일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자신은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성벽 위로 말을 건넸다.


“사냥꾼이다.”


그러자 육중한 문이 끼이익거리며 열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카일은 재빨리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카일은 마을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여관으로 발을 향했다.


고요한 마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변방인 마을을 찾는 불청객은 사냥꾼이 주를 이루지만, 때에 따라 용병들이 불청객을 자처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 마을에서도 용병들이 불청객을 자처했다.


어째서인지 용병들이 외진 마을까지 찾아왔고, 그 탓인지 여관주인은 꽤나 바빠 보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외진 곳에도 몇몇 사냥꾼들은 주기적으로 방문하곤 한다. 그렇기에 이런 곳에도 여관이 있는 것이다. 사냥꾼들이 방문해 주기적으로 이 주위를 청소해주지 않는다면 마을은 전멸한다는 것이 뻔히 보이므로,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사냥꾼을 경계하지 않았다.


간혹 사막에서 야영을 하는 멍청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여 이곳을 찾는 초보 사냥꾼들일 것이다.


사막은 낮과 밤이 확연히 다르다.


낮에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괴물들이 활동을 못 하는 반면에 밤에는 밤 공기가 차갑게 식어 괴물들이 활동하기 적합하다. 물론 털이 별로 없는 괴물들은 얼어 뒈지겠다만, 이곳의 괴물들은 이미 환경에 맞춰 변이를 맞춘 상태. 아마 얼어 뒈지는 괴물은 없을 것이다.


카일은 여관에 들어가서 맥주와 배를 채울 만한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카일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내가 벌어다 놓은 돈을 가지고 나와 자신의 카드를 상대방에게 안 보이게 열심히 숨기고 있던 한 도박꾼이 2층에 있는 방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 도박꾼은 한탕 하겠다며 판돈을 키우는 일 따위는 서슴치 않아 했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판돈을 올린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뒤, 앞에 앉아 낄낄거리는 용병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돈은 이미 용병들이 돈을 술값으로 탕진한 지 오래였다.


용병들은 멍청한 도박 중독자 한 명을 속여서 번 돈으로 술을 시켰고, 하얀 맥주 거품이 관리 없이 이리저리 길게 자란 그들의 수염을 덮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끝난 기념으로 술판을 벌이는 듯싶었다.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용병들이 크게 소리치며 말했던 터라 어쩔 수 없게 듣게 되었다.


아침부터 굶은 카일은 주문한 고기가 나오자 며칠을 굶은 사람인 양 고기를 뜯어 먹었다. 그런 카일의 모습을 본 한 대머리의 거한은 껄껄거리며 카일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맥주를 들이키고 남은 맥주잔을 책장에 쾅하고 내려놨다.


카일은 그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는 카일을 바라보고는 껄껄거리며 말을 꺼냈다.


“난 헤럴드일세. 흠..... 아직 젊은 데 벌써 사냥꾼인가? 치기 어린 자존심 부리지 말고 돌아가게.”


그의 진심 어린 조언에도 카일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헤럴드는 여전히 껄껄거렸다. 그는 카일에게 또다시 말을 건넸다.


“대답하기 싫다는 건가. 그럼 질문을 변경하지. 어린 나이에 왜 사냥꾼이 된 거지?”


그러자 카일을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헤럴드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걸로 대답은 다 된 것 같은데.”


카일은 으르렁거리며 술잔을 들이켰다.


카일이 술을 전부 들이키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 그때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들의 일그러진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소리.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러나 사냥꾼이라면 몇 번이고 들어왔고 또한, 단 한 번이라도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질적인 괴음이 문을 뚫고 들어왔다.


카일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는 여관 밖의 광경에 눈을 부라렸다. 살인귀(殺人鬼)는 이질적인 괴음을 내지르며 마을 이곳 저곳을 헤집고 있었다.


다른 것들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오직 인간만을 죽이는 괴물.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살인귀에게 죽은 사람은 똑같이 살인귀가 되는 그들만의 특성 덕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고,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어 많은 사람들을 사냥꾼의 길로 인도한 괴물이었다.


사냥꾼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이겠지만, 사냥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냥꾼을 만든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아님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괴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카일을 그들을 죽이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는 것이다. 카일은 살인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잠시 동안 카일의 검이 공기를 찢으며 낸 파공음과 살인귀가 내지른 음성이 뒤섞였다.


그의 주위에는 붉은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낮에 들었던 붉은 깃털 독수리의 포효가 들려왔다.


어째서 저 온순한 붉은 깃털 독수리가 움직인 거지?


붉은 깃털 독수리는 자신에게 위해가 가해지지 않거나, 자신의 새끼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헌데 어째서 저놈이 나타난 거지?


카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 깃털 독수리의 새끼를 안고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붉은 깃털 독수리의 새끼를 잡기 위해 용병들이 모인 건가? 아님 이곳 주민들이 잡은 건가? 멍청한 것들. 아마 저들은 곧 있으면 죽을 것이다. 붉은 깃털 독수리는 목을 치켜들며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여관 안에 앉아있던 사냥꾼들의 이빨을 드러나게 하기에는 충분한 괴음이었다.


2화


사냥꾼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들도 사냥꾼이 될 수 있다. 구석진 마을에서 평생을 농사일만 하던 한낱 농노에 불가하던 이도 사냥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그저 돈을 위해서든, 명예를 위해서든. 허나 이런 이들은 대부분 괴물을 사냥하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은퇴를 하거나 혹은 자신이 구매한 무기들이 아까워 용병이 되곤 했다.


유리처럼 쉽게 깨어지는 인간의 육체로 괴물들을 사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냥꾼에 도전하는 이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이들이 괴물을 사냥하는 일을 그만두곤 했다.


사냥꾼에서 도망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점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 한 가지만 고르라면 대다수의 사냥꾼들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복수심.


사냥꾼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뱃가죽이 찢겨 내장이 흘러나오더라도, 팔이 잘려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더라도, 양 눈에 발톱이 박혀 끝없이 펼쳐진 암흑이 찾아오더라도 부들대는 손으로 괴물들의 몸에 칼날을 꽂아 넣게 만드는 것은 괴물들을 향한 복수심이었다.


그것이 연인을 위한 복수든, 부모를 위한 복수던 간에 그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괴물들을 향한 끝없는 증오심이었다.


허나 사냥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복수심임에도 사냥꾼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복수심이었다. 사냥꾼의 계율 중 이런 말이 있다.


[복수심으로 살아가되 복수심을 드러내지 말아라.]


복수심으로 살아가되 복수심을 드러내지 말라니. 이 얼마나 모순되는 문장인가. 허나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사냥꾼의 계율은 틀린 법이 없었다. 초보 사냥꾼들의 머릿속엔 항상 맴돌아야 하는 문장이다.


복수심으로 인해 정신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눈앞의 괴물을 죽이는 데 정신이 팔려 다른 곳에서 몰려오는 괴물을 보지 못하고 바닥에 뇌수를 흩뿌린다. 초보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다.


몸은 뜨겁지만, 머리는 항상 차가워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냥꾼들은 자신의 숙념을 이루지 못한 채 괴물들의 손에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찢겨 흙으로 돌아가거나 그들의 한 끼 식사가 되어 버린다.


카일이 베어 넘긴 살인귀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골반까지. 긴 검상이 생겼음에도 살인귀는 고통스러워하는 내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키....키에에엑!!”

방금 지껄인 괴음은 고통에 찬 신음 따위가 아니었다. 분노의 표시였다. 자신을 공격한 이에 대한 적대감.


살인귀는 썩어가는 시체 냄새를 풍기며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그 괴물은 살점과 피로 뒤덮여 역겨운 냄새가 풍겨오는 아가리를 쩍쩍 벌린 채 카일의 오른쪽 어깨를 물어뜯으려고 시도하였지만, 살인귀의 공격을 알아차린 카일은 오른쪽 어깨를 틀어 살인귀의 공격을 피하였다.


살인귀는 넘어지면서 팔을 버둥거렸고, 그로 인해 카일의 검은 살인귀와 함께 바닥에 나뒹 굴렀다. 공포에 떨며 살인귀를 죽일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만큼 멍청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는 품속에 있던 단검을 꺼내어 살인귀의 모가지에 박아넣었다.


콰드득-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


카일은 단검으로 살인귀의 목을 꿰뚫어 단숨에 목뼈까지 부수었다.


하지만 목뼈가 부러져 목이 기괴하게 꺾여있음에도 살인귀는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집념이었다. 그러나 카일은 이러한 장면을 수없이 봐왔고, 또한 이러한 살인귀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해 왔다. 그는 단검을 가로로 휘둘러 살인귀의 뱃가죽을 찢었다.


위장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고, 썩어가는 음식물들이 쏟아졌다. 아마 저것들은 이전에 저 놈에게 물렸던 이들의 살점일 것이다. 토악질이 치밀어 오를 만큼 역겨운 냄새였다. 하지만 카일은 무표정으로 살인귀의 양다리를 썰었다.


카일의 무기가 단검인 탓에 공격이 얕았는지 뼈까지 썰리진 않았다. 하지만, 살인귀의 다리를 봉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카일은 가장 효율적으로 살인귀의 뇌를 헤집어 놓기 위해서는 눈을 통해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여 바닥에 나뒹구는 장검을 들어 쓰러진 살인귀의 눈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라 그런가 칼날이 깊게 들어갔다. 검붉은 피가 눈에 박아넣은 칼을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살인귀는 잠시 부들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카일은 이를 으득거리며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의 분노에 대상은 언제나 확고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 위로 올라타 기괴하게 일그러진 아가리를 들이대는 저 괴물들.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여관 안에 있던 사냥꾼들이 밖으로 나왔다. 카일은 자신과 달리 무기를 전부 내려놓고 쉬고 있어서 준비가 늦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냥꾼은 모두 6명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일그린 채로 무기를 꼬나쥐고 있었다. 아마 포효하는 저 괴물을 경계하고 있을 터였다. 카일은 그들을 따라 칼자루를 꼬나쥐었다.


썩어가는 몸뚱어리를 가진 저것들은 죽어있는 자였다. 괴물이긴 하나 여전히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냥꾼들이 가장 죽이기 꺼려하는 존재들. 죽어있는 자들은 모여있는 사냥꾼들에게 아가리를 벌려댔다.


공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치지도 않는. 우리가 괴물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존재였다. 허나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과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이 있는 저 사막을 횡단한 이들은 꽤나 노련한 사냥꾼들이었다.


저 살인귀들은 그들의 체력을 조금 깎아 먹었을 뿐, 자그마한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눈 깜짝할 새에 검신이 휘몰아쳤다. 뇌수와 피가 섞인 액체가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지고, 끼에에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동시에 사냥꾼들의 칼날이 살인귀의 허리를 양단했다. 몸통과 다리가 분리된 살인귀들은 바닥에 나뒹굴렀다. 그들의 다리는 아직도 펄떡대고 있었으며, 몸통은 사냥꾼들의 다리를 물어뜯기 위해 처절하게 기어 오고 있었다.


살인귀의 손가락이 땅에 파고들었다. 살인귀는 땅을 파고든 손가락을 지지대 삼아 몸을 앞으로 이끌었다. 썩어 문드러진 손가락은 부러졌지만, 그 괴물은 여전히 이빨을 딱딱거렸다. 역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사냥꾼이 그들의 머리를 즈려밟았다.


콰드드득-


오랫동안 살아온 살인귀였는지, 그 단단하던 두개골은 칼날이 척추뼈를 깨부술 때보다 조금 더 쉽게 산산조각이 났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뇌가 처음으로 공기와 맞닿았다.


살인귀의 역겨운 체액을 털어낸 뒤, 사냥꾼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앞에는 이제 살인귀가 되어버린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살인귀로 변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겁먹은 표정이었다.


살인귀의 얼굴은 살인귀가 되기 전의 마지막 표정이라고 했던가. 뭐, 맞는 말인 것 같다. 눈앞에 있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이었으니까.


카일의 옆에 서 있던 사냥꾼이 킥킥대며 말했다.


“용병 새끼들, 지들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여관에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네, 병신들.”


그는 킥킥거리며 용병들을 조롱하면서도 눈앞의 살인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죽어도 죽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카일과 주위에 있는 사냥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인귀의 강함은 생전의 강함에 비례한다. 허나 생전에 사용하던 무기 따위는 쓰겠지만, 기억은 계승되지 않는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던 마을의 경비대장은 그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의 몸은 지방이 거의 없는 몸이었다. 그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허나 거기까지였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유연한 사고도 할 수 없고, 생전 배웠던 검술 따위도 사용할 수 없다. 그의 공격은 그저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거나 물어뜯는 것. 그게 다였다. 평범한 살인귀보다는 힘이 더 세겠지만, 그것도 사냥꾼들 앞에 서는 무용지물이다.


괴물들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그에 맞춰 몸을 키워나가는 이들이다. 그저 힘이 센 것 가지고는 사냥꾼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 하지만 사냥꾼들에게 불리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사냥꾼의 수.


사냥꾼이 강하다곤 하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강함이다. 수천의 괴물을 단신으로 상대한다던가 수십 번의 공격을 막고도 살아난다든가 하는 초인적인 육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살인귀는 쉽게 죽일 수 있다. 허나 물량으로 밀어붙인다면 아마 사냥꾼들이 질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사냥꾼들은 그저 남아있는 마을 사람들이 집 안에만 숨어 있기를 소원할 뿐이다.


카일은 몰려오는 살인귀의 아가리에 칼날을 정확히 박아넣었다. 살인귀는 핏덩이를 울컥거리며 눈을 부라렸다. 허나 날카로운 칼날이 그 눈을 그었다. 눈이 붉게 물들어갔다.


카일은 그 살인귀의 복부를 발로 가격했다. 카일의 발에 맞은 살인귀는 뒤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다른 살인귀들과 얽히면서 바닥에 나뒹굴렀다.


옆에 있던 사냥꾼이 카일이 발로 걷어찬 살인귀의 목을 베어 넘겼다. 뜨거운 핏물이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졌다.


카일이 잠깐 숨을 돌리던 사이, 살인귀가 되어버린 경비 대장이 칼을 치켜들었다.



3화


장검이 카일에게 날아왔다. 살인귀로 변한 경비대장의 공격은 육중했다. 육중한 덩치를 바탕으로 한 공격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허나 그게 다였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그저 휘갈기는 공격은 너무 느렸다. 카일은 느리게 날아오는 공격을 몸을 낮춰 피했다.


카일은 칼날을 살인귀의 복부에 찔러넣었다. 칼날이 뱃가죽을 찢으며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찔러넣은 칼이 살인귀의 내장을 헤집었다. 카일이 칼을 뽑아내자 살인귀의 배에서는 뜨거운 피가 꿀렁이며 흘러나왔다.


그 괴물은 계속해서 카일에게 검을 휘둘렀다.


쾅- 쾅- 쾅-


두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검이 카일에게 수차례 내리꽂혔다. 쇠와 쇠가 긁히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쇳가루가 공기 중에 날아다닌다. 살인귀가 휘두른 칼의 이가 나가 있었다.


카일은 칼을 찔러넣어 살인귀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자 살인귀가 잠시 멈칫했고, 카일은 목을 베어 넘겼다.


그의 검은 이가 상했을 법도 한데, 아무런 피해도 없었는지 칼날에는 흠집조차 없었다. 사냥꾼들의 검은 평범한 무기와 다르다. 수 없는 싸움을 반복하는 사냥꾼들은 괴물을 죽이면 죽일수록 단단한 무기를 원했고, 그 결과가 카일이 들고 있는 검이었다. 괴물들의 뼈로 만든 칼날. 물론 살인귀와 같은 괴물의 뼈로 만든 검이라면 내구성이 형편없지만, 붉은 깃털 독수리와 같은 강한 육체를 가진 괴물의 뼈로 무기를 만든다면 어떨까.


그 내구도는 평범한 검과는 궤를 달리한다. 허나 단단한 만큼 정교하게 가공하는 것도 힘들어 괴물들의 뼈로 만든 무기를 가진 이는 몇 없었다.


카일의 검은 강한 괴물의 뼈로 만들었기에, 세공이 덜 되어 이가 나간 것처럼 표면이 불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인귀들을 베어 넘기기에는 충분했다.


살인귀는 달려들면서 몸을 비틀었는지, 목이 전부 잘리지 않았다. 목을 데롱거리며 달려드는 살인귀의 목을 잡아 뜯고, 척추를 부러트렸다. 그러고 나서 부들거리는 살인귀의 몸통을 난자했다.


이미 한번 꿰뚫린 심장이 썰리고,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왔다. 다리는 반대 방향으로 꺾기고, 어깨는 뽑혀 나갔다. 바닥에는 흥건한 피 웅덩이가 생성됐다.


찰박거릴 정도로 흥건한 피 웅덩이 속으로 살인귀의 두개골을 던졌다. 피는 사방으로 튀었다. 성벽 위에 서서 카일에게 활을 겨누던 경비 대장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카일이 휘두른 검이 부웅하며 공기를 가른다. 그 검 끝에 닿은 것은 달려드는 살인귀였다. 카일의 검이 살인귀의 살점을 파고들었다. 허나 살인귀는 칼날이 몸통에 박힌 채로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살인귀는 카일의 오른손을 으적였다. 허나 그는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살인귀의 이빨은 카일의 장갑에 박힐 뿐, 깊게 들어가 카일의 손에 작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카일은 살인귀의 입에서 손을 빼내 턱을 올려쳤다. 턱이 빠져버렸는지, 살인귀는 입을 벌린 채 우어어거리는 괴이한 소리를 냈다.


카일은 단검을 꺼내 들어 살인귀의 몸통을 수차례 베었다.


작은 칼날이 살인귀의 살점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힘을 주자 고깃덩이가 썰리는 느낌이 칼끝을 타고 올라왔다. 카일의 검이 가슴을 가르자 피가 쏟아지면서 살인귀의 갈비뼈가 보였다.


갈비뼈 안에는 차갑게 멈춰버린 붉은 심장이 자신을 꿰뚫어 달라는 듯 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카일은 그 심장을 꿰뚫지 않았다. 카일은 다시 한번 단검을 휘둘렀다.


뱃가죽이 썰렸다. 나약한 인간의 가죽은 손쉽게 찢어졌다. 지방이 보호하고 있던 내장이 함께 썰렸다. 가죽에 구멍이 생기자 역겨운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내장들은 바닥으로 쏟아졌다. 바닥은 붉은 장기들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차디차게 식어버린 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카일은 단검을 눈에 박아넣고, 자신의 발을 망치 삼아 단검을 걷어찼다.


걷어차인 단검은 살인귀의 머리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갔다. 카일은 얼굴에 튄 피를 닦아냈다.


“씨발, 존나게 많네.”


카일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수십 구의 사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한 사내가 킬킬거리며 살인귀를 베어 넘겼다. 그의 발아래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가장 강한 경비 대장을 카일이 상대했다 하더라도 그의 강함은 경이로웠다.


그의 얼굴에 징그럽게 퍼져있는 화상 흉터가 그의 경험과 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푸른 안광을 번득였다. 아마 약을 복용했을 터.


하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감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겉으로는 티를 안 내기 위해 낄낄거렸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었다. 그가 지쳤다는 증거였다.


저런 괴물도 지쳤는데 카일은 어떻겠는가. 바닥에 나뒹구는 20구 조금 넘는 살인귀의 사체들만 봐도 카일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년 차 사냥꾼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잠재력은 뛰어났다. 허나 아직은 그의 옆에 있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중년의 사냥꾼만큼 노련하지 않고, 화상 흉터를 가진 사냥꾼만큼 강하지도 않다. (평생을 바쳐가며 세계를 방랑하는 사냥꾼들에게 있어서 6년이란 시간은 짧다.)


그의 팔이 덜덜거리고 있었다. 근섬유 한 가닥 한 가닥이 끊어질 것 같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움직이기도 벅차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런 그에게 살인귀가 달려들었다. 카일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역겨운 아가리를 벌려대는 살인귀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찢어질 것 같다.


그의 공격에 살인귀는 코피를 줄줄 흘렸다.


카일은 덜덜거리는 손을 이끌어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떨리는 손 때문에 절반 가까이 바닥에 버렸지만, 그 가루를 복용하자마자 덜덜거리는 손이 멈추고,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흐려지던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카일이 삼킨 가루는 맨드레이크로서 일종의 마약이었다.


카일은 살인귀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그러자 살인귀의 얼굴이 움푹 파이면서 피로 흥건한 피 웅덩이 위로 나뒹굴렀다.


찰박-


피가 사방으로 튀기면서 물결이 요동쳤다. 온몸이 피로 물든 살인귀를 본 카일의 얼굴에 웃음이 생겨났다.


괴물들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일임에도 카일은 여전히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허나 어째서인지 자꾸만 웃음이 난다.


킥. 킥킥.


맨드레이크는 단순히 신체 능력만을 항샹시켜주지 않는다.


정신.


몸 안으로 흡수된 맨드레이크는 머릿속을 헤집어 평범하던 사람도 광기 어린 살인마로 만드는 약이다. 칼날이 살점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미소가 지어진다. 사냥꾼들은 항상 맨드레이크를 복용하면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사냥꾼들은 맨드레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 역겨운 피 냄새가 달콤해진다. 내지르는 비명소리. 아아, 황홀하다.


킥. 킥킥. 킥킥킥킥.


맨드레이크를 복용하게 되면 아군도, 적군도 구별이 불가능하다. 그저 눈앞의 고깃덩이를 미친 듯이 썰어버릴 뿐. 그만큼 부작용이 세긴 하나 그만큼 뛰어난 효능을 가진 약이었다.


핏방울이 낭자한다,


맨드레이크를 복용한 카일의 공격은 얕았다. 맨드레이크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져 있다면 모를까, 맨드레이크를 처음 복용한 카일은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어 많은 살인귀에게 상처를 내긴 했다만, 깊은 공격이 아니기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짓거리는 자신의 체력을 깎아 먹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반쯤 미쳐있는 카일은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칼을 휘두를 뿐이다.


* * *


붉은 시야가 가셨다. 카일은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정신을 차렸다.


온몸 마디마디가 끊어질 것 같다. 맨드레이크로 사라졌던 고통이 한 번에 물밀 듯이 밀려온다.


“커....커헉.”


카일은 핏덩이를 토해냈다.


이미 한번 붉게 물든 땅 위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피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갔지만, 이미 수많은 피로 인해 붉게 물든 터라 카일이 흘린 피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가 없다. 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벌레로 뒤덮여 온몸을 뜯어먹히는 고통이 느껴진다. 카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구덩이가 있었고, 그 구덩이는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에서 한 사내가 살인귀의 시체를 업고 다가왔다. 그는 구덩이 속으로 살인귀를 밀어 넣었다.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는 표현보다는 시체로 이루어진 산 위에 올려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살인귀의 사체는 많았다. 대략 300구 정도는 되어 보였다.


마을 크기를 보았을 때 아마 마을은 이미 전멸하지 않았나 싶다. 카일은 낮게 혀를 찼다.


카일은 반대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검게 그을린 자국.


폭탄을 사용한 건가.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옛날에도 폭탄은 비쌌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폭탄에 들어가는 화약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이도 적을뿐더러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이는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이의 1/20이었다.


그렇기에 값비싼 폭탄을 사용한다는 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었다.


카일은 그래도 어떻게 잘 막아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붉은 깃털 독수리는 어떻게 됐지?


카일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붉은 깃털 독수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입구 쪽 목책은 부서져 있었고 인간 크기의 살덩이 두 개가 누워있었다.


아마 새끼를 되찾고 돌아갔으리라.


명치가 아파온다.


“오, 일어났는가.”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노인이 카일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카일은 그가 부담스러워 얼굴을 피하고 싶었지만, 손가락만 움찔거릴 뿐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움직이지 말게나. 그러니까 맨드레이크의 부작용을 생각하고 먹었어야지. 끌끌.”


맨드레이크를 계속 복용하게 된다면 정말 미치광이가 되어버려 온갖 것들을 전부 썰어버리게 되어버린다. 미치광이가 되어도 괴물을 썰 수 있을 테니 사냥꾼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정말 미치광이가 된다면 괴물들을 죽이기 전에 경비대에 먼저 끌려갈 것이다.


그는 혀를 내차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내가 맨드레이크를 먹었나?”


“그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자네를 말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모르겠군. 일단 사과부터 하지. 미안하다.”


“사과받으려고 한 말을 아니다만, 다음부터는 부작용도 생각하고 섭취하게나. 그리고 너무 약에 의존하려 하지말세. 이 노인네도 안 쓰는 걸 자네같이 젊은 나이부터 쓰다니. 확실히 사냥꾼의 마을이 한번 붕괴된 이후로 초보 사냥꾼들의 실력이 많이 줄어들었어.... 참 안타까운 일이지.”


그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카일을 쳐다보았다.


카일은 부들대는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그는 허리춤을 열어 푸른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약을 쓰지 말라고 방금 말했건만.....”


“이건 치료제다.”


“치료제도 마찬가지일세. 너무 그런 것에 의존하다 보면 몸이 그것에 익숙해져 나중에 꼭 필요할 때 효능이 떨어지게 될 걸세.”


카일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다리는 후들거렸고,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이 찾아온다. 허나 치료제를 먹었으니 며칠 동안은 후유증에 시달리겠지만, 곧 상처는 치료되리라.


카일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의 검을 들어 피를 턴 다음에 허리에 둘려져 있는 칼집에 넣었다.


“이봐, 영감. 사냥꾼의 피해는?”


카일은 그 노인에게 말했다.


“사냥꾼은 2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일세.”


“그런가.”


“마침 저기 오네,”


노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얼굴에 일그러진 화상 흉터가 퍼져있는 사냥꾼이 양 팔에 살인귀의 사체 4구를 가져오고 있었다.


“영감탱이. 이게 끝이야.”


그는 살인귀를 던지며 말했다.


그러더니 품속에서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타오르는 횃불을 살인귀의 사체 품으로 던졌다.


언데드의 사체를 불태우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야 벌레류 괴물들이 꼬이지 않을뿐더러 병균들이 옮겨 다닐 일이 없을 것이다.


따사로운 불꽃이 차갑게 식어버린 살인귀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겉에 둘려져 있는 사체가 먼저 타올랐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서.


코끝을 찌르는 살점이 타오르는 냄새.


고기를 구울 때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썩어문드러어진 사체를 태우는 냄새는 코를 썩어들어가게 만들 만큼 역겨웠다. 이 역겨운 냄새를 계속 맡다 보면 토악질이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카일은 비틀거리며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 안은 조용했다. 곳곳이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구태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는 않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와 널브러진 장검들은 용병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허나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살인귀야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흔한 괴물인데 반해 붉은 깃털 독수리는 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거나 새끼를 잡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새끼를 훔치려고 한 사람들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만,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대륙 중앙에 살기 무서워 이런 변방까지 도망친 사람들이 무슨 용기가 생겨 괴물을 잡으려 한 것일까. 의문점이 생겼다.


카일은 궁금증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옆에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카일은 노인이 알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허나 의외로 노인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4화



“마을 주민이 아니라 용병들이 잡은 거라고? 그놈들이 아무리 멍청하다 한들 붉은 깃털 독수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카일은 의외의 대답에 눈을 동그랐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용병들은 의뢰를 받는다면 괴물들도 사냥을 한다. 그렇기에 붉은 깃털 독수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붉은 깃털 독수리의 새끼를 납치했다는 것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선택지가 주민들이 잡는 것 아니면 용병이 잡는 것. 2가지 밖에 없었다만, 카일은 전자에 힘을 실고 있었다. 용병들과 달리 붉은 깃털 독수리의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모르는 마을 주민들이 상대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늙은 사냥꾼은 카일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어떤 멍청한 용병이 붉은 깃털 독수리를 잡아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다음에 마주치면 모가지를 먼저 비틀어야겠군.”


“그럴 필요는 없을 걸세. 이미 새끼를 납치한 것들은 어미에게 밟혀 죽었거든.”


“아, 하긴 마을 입구에서 밟혀 죽는 꼴을 보긴 했지. 그보다 그놈들은 붉은 깃털 독수리를 왜 훔치려 한 거지?”


“뭐, 당연하게도 의뢰겠지. 내가 알고 있는 것도 놈들의 품속에 있던 의뢰서에서 발견한 내용이니까.”

“그래서 생존자는?”


“모르겠네. 일단 한 건물에 전부 다 몰아넣어 숨기긴 했다만..... 지금쯤이면 다른 사냥꾼이 풀어주러 갔을걸세.”


카일은 그의 말을 잠시동안 듣고 있다가, 이내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갈 생각인가?”


“뭐, 당연한 것 아닌가.”


카일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눈앞의 늙은 사냥꾼은 옅은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가야지..... 같이 가게나. 기절한 다른 사냥꾼들도 깨워야겠군.”


* * *


떠나기 전에 확인한 결과 대략 3~40명의 주민들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적은 숫자였지만, 애초에 이 마을은 크기도 작고, 사람도 많이 사는 마을은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냥꾼들은 그들의 수를 확인한 뒤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사냥꾼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아무런 대가도 없이 괴물들을 사냥하고, 마을 사람들을 돕는 불세출의 영웅이 아닐뿐더러 남을 도울만한 위인조차 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괴물을 잡기 위해 살아가는 또 다른 괴물일 뿐이다.


사냥꾼들은 다시 황야를 헤매기 위해 여관에서 물과 몇 장의 육포만을 챙겼다.


다친 몸을 치료하며 쉴 법도 했지만, 그들은 사막 위로 여러 개의 붉은 선을 만들었다. 사냥꾼의 계율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사냥꾼은 방랑해야 한다.]


카일은 마을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살인귀들이 쳐들어오기 전 얼핏 보았을 뿐이지만 저 마을은 행복해 보였다. 마을의 크기와 위치를 보면 그리 풍족한 마을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허나 사냥꾼들은 이러한 마을을 더욱더 조심해야 했다. 사냥꾼은 항상 편안함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부터 사냥꾼으로서의 삶은 끝나는 것이다.


그 안온함이 사냥꾼의 정신을 헤집고, 나약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점점 해이해지며 자신의 숙념조차 이루지 못한 채 검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그러곤 짧으면 몇 개월 길게는 수십 년 후에 다시 사냥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허나 이미 나약해진 정신은 전으로 쉽게 돌아오지 않고, 과거에 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차디찬 바닥 위에서 뜨거운 피를 울컥거리며 차갑게 식어 갈 것이다. 육체야 어떻게든 단련하면 된다지만, 이미 바스러진 정신은 절대로 다시 단단해질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카일이 알고 있는 사냥꾼들은 그랬다.


사냥꾼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그렇기에 사냥꾼은 좋은 곳엔 오래 있지 않는다. 그저 황야를 헤맬 뿐이다. 언제 만날지 모를 자신의 숙적을 생각하며 자신의 품속에 날카로운 이빨을 숨겨둔 채로.


그 괴물은 이미 다른 사냥꾼에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사냥꾼은 여전히 세계를 방랑하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핏자국만이 남는다. 그것이 자신의 피일지라도.


카일은 고개를 돌리며 발을 내디뎠다.


‘서로가 끈끈했던 마을일수록 더욱 쉽게 무너지지. 하지만 서로를 믿으면 믿을수록 더 빨리 재건된다. 하지만 저곳에 재건되지는 못할 것 같군, 서로를 믿으며 너무 끈끈하게 살아왔어.’


카일은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젠장, 원래 어디로 가려 했더라?”


카일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특히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는 더더욱. 어차피 어딜 가든 괴물들은 존재하고 사냥꾼은 그 괴물들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사냥꾼들은 아무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마을을 떠난다.


모래 폭풍이 그치고 태양이 사막을 굽어살피기 시작했다.


“이틀인가.”


카일이 사막에 들어선 후 마을을 발견한 날짜였다. 모래 폭풍으로 인해 길을 헤맨 것을 감안 한다면 대략 하루 정도 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카일이 들린 마을은 사막에서도 초반에 있던 마을이었다. 아마 여기서 더 들어간다면, 괴물들만이 득실거릴 게 뻔했다. 저런 척박한 환경에서는 정착하는 이가 거의 없으니, 괴물들의 땅이라 보면 된다,


물조차 얻기 힘든 곳에서 누가 살아가겠는가. 아까 들린 마을 사람들도 아마 자신들과 같이 괴물들 또한 이런 사막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정착했던 거겠지. 살아가는 것이 힘들겠다만 그것이 마을을 유지하는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괴물들이 환경에 맞춰 변이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딴 곳에 정착을 하지 않았겠지만,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가슴팍을 뒤적거렸다. 허나 주머니에서는 육포, 수통, 단검 따위만이 쏟아졌다.


“큰일 났군.”


나침판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 싸움 중에 흘렸으리라.


“최악이군.”


카일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바닥에 떨어트린 육포나 수통 따위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카일은 지독한 길치였다. 지도를 줘도 길을 못 찾는 길치.


나침판이 있더라도 길을 헤매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침판도 없이 사막을 벗어난다?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불가능하다.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다못해 지도라도 있었다면.....


카일은 답답한 마음에 물이라도 들이켰다. 그러다가 사막에서 며칠 동안 헤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물을 수통에 뱉어냈다.


사막에서는 물이 가장 중요하다.


카일은 가슴팍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수통을 고이 모셔두었다. 그는 모자를 뒤집어쓰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걸어갔다.


달궈진 모래 탓에 다리가 뜨거워진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카일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주위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카일의 눈에 펼쳐진 건 휑한 모래 언덕들뿐이었다.


“시발.”


카일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푹푹 찌는 열기가 카일을 뒤덮었다. 입이 바싹 말라간다. 허나 물을 마실 순 없다. 카일은 계속 걸었다.


다리는 뜨거워지고, 이젠 목까지 말라갔다.


“아. 아.”


말라비틀어진 고목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버석거리는 소리가 카일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카일은 하는 수 없이 입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수통에 다시 되 뱉는 식으로 목을 축여갔다.


허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체내 수분 증발을 막을 순 없었다. 카일은 아마도 몇 시간 내에 탈수 증상으로 쓰러질 것이다.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들 돌아보았다. 여전히 황야만이 카일의 눈동자에 비칠 뿐이었다. 카일은 오랜 고심 끝에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오줌처럼 미지근해진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메말랐던 식도에 수분이 보충된다. 허나 그 어떨 때보다 시원한 물이었다. 모래 위를 몇 번 굴렀던 터라 간간이 모래알이 입안에서 씹히긴 해도 괜찮았다. 카일은 한 모금 더 마실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내 생각을 철회했다.


물은 귀중하다. 이런 곳에서 함부로 마실 수는 없다.


카일은 사막 위를 걸었다.


달이 태양을 밀어낸다.


땅거미가 지고 있다. 주위의 온도는 점차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제법 쌀쌀해졌다. 아마 달이 완전히 뜬다면 이보다 더 추워질 것이다. 카일은 외투를 여미었다.


이제는 달이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는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카일은 사막의 기온 변화가 왜 이렇게 심한지 모르겠다만, 그 마을에 살았던 이들이 대단한 이들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자게 된다면 동사할 것이라 생각한 카일은 불을 붙였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이 카일의 몸을 데워준다. 조용히 잠을 청해본다.


* * *


새벽빛이 밝아온다.


이럴 때 흔히들 여명이 비쳐온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여명은 희망을 의미한다. 허나 떠오르는 저 빛은 자신이 희망이라 불리우는 것을 모르는 듯 뜨겁게 타올랐다. 희망? 집어치우라고 해라. 저것은 희망이 아닌 지옥이다.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모닥불에 남아있는 불꽃을 즈려밟아 꺼트렸다.


물이 떨어져 간다. 얼른 이 사막에서 벗어나던가, 아님 떠나왔던 마을로 다시 되돌아가야한다. 카일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카일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한 상황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멍하니 땅을 바라보며 걸을 뿐이다. 저번에 들른 마을이 이 부근에 있다고 추측만 할 뿐,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걸어왔는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다.


카일은 딱딱한 육포를 질겅이며 모래 속으로 다리를 파묻었다.


* * *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올라오는 것과 함께 피비린내가 올라온다.


괴물들이 불타며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온 마을에 퍼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신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대체 우리가 당신에게 뭘 해주면 되냐고.


소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내려쳤다.


허나 신이 진짜로 있었다면, 아니 인간을 아꼈더라면 세상을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바라는 보지만, 절대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신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살아남은 인원은 모두 36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식량은 넉넉했다. 게다가 그들에겐 지도와 나침판이 있었고 이 사막을 떠날 수 있었다. 사막에서 키울만한 농작물도 있어, 그들은 이곳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다. 떠난다면 떠날 수 있고, 이곳에서 살려고 한다면 살 수 있다.


허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이다. 다른 곳에 어찌 가겠는가.


신이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그들은 분노할 대상을 찾아야 했다. 이 가슴에 억눌린 막막한 심정을 누군가에게 분출해야 했다.


이제 서로 아득바득 살아야 할 이들끼리 비방하고 헐뜯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은


사냥꾼들이 이곳으로 저 괴물들을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사냥꾼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대기 바빴다.


그래, 이건 모두 사냥꾼들의 잘못이다. 그들만 없었더라면 그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우린 더욱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지금처럼 슬픔에 젖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땅을 내려치고 있진 않을 텐데.....


그들은 이를 갈았다.


사냥꾼들이 그들을 지켜준 것은 잊은 채로 서로 누가 사냥꾼을 더 잘 비방하는지 대회라도 연 양 사냥꾼들에게 욕지거리를 남발했다.


끔찍한 밤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기뻐했겠지만, 오늘 밤만큼은 달랐다. 눈물이 눈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살인귀들이 또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어둡고 축축하기 짝이 없는 이 밤이 지나가기를 애원할 뿐이었다.


물론 잠에 들어도 그들은 편안치 않았다. 꿈속에서도 이미 불타 없어진 살인귀가 잿가루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을 조롱했다. 살인귀들은 이미 죽은 마을 사람들은 죽이고, 또 죽였다.


참으로 길고 참혹했던 밤이 지나갔다.


새벽녘 노을빛이 마을을 비추었다.


역겨운 냄새는 가셨지만, 땅에 스며든 피비린내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잔혹한 상처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마치 그들의 삶을 부서트린 살인귀처럼, 관절이 뽑혀버린 시체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를 어슬렁거렸다. ‘자신의 아이가 ‘엄마!’하고 소리치며 다시 달려오지 않을까’ 망상을 해대며 기약 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터벅. 터벅.


마을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눈을 부라리며 ‘그 사냥꾼 새끼들이 다시 돌아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사냥꾼을 죽일 농기구를 챙긴 채 입구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어째서 돌아왔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뿐이었다.


그들 또한 개개인은 사냥꾼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어, 자신들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발을 쿵쿵 구르며 달려나갔다.



5화



저 멀리 마을의 윤곽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일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카일의 눈이 정확했는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마을에 도착했다. 아마 이 사람들은 지도나 나침판을 갖고 있을 터. 이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될 것이다. 이왕이면 ‘물과 식량을 더 받아야겠다.’라고 생각한 카일은 수통에 있는 물을 들이켰다.


오랫동안 품속에 있어 따뜻해진 물을 들이켜 메말라가던 목을 축였다.


그러고 나서 역한 피 냄새가 올라오는 마을 안으로 향했다. 마을 안은 썰렁했다. 카일은 잠시 이들이 떠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내 저 멀리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생각을 멈췄다.


카일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돌자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위협적인 농기구를 치켜들거나 바닥에 질질 끌고 있었다. 평범한 농노들이 할만한 행동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가 묻어나 있었다.


카일은 재빠르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칼을 뽑기 위한 자세였다.


그들은 주춤거렸다.


“네....네놈같은 새끼들만 없었으면....너희 같은 사냥꾼들만 이 마을에 오....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마을은 안전했어!! 네....네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주....죽인 거야!!”


한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비명을 내지르며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팔을 휘둘렀다.


굳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카일은 정제되지 않은 그의 공격을 몸을 틀어 간단하게 피했다. 그들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은 절대로 카일을 이길 수 없다.


카일은 자신을 공격한 사내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커....커헉.”


그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카일은 그의 팔과 다리를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왜 나를 공격하는 거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난 약간의 식량, 물, 그리고 지도와 나침판을 원한다. 너희를 살려준 사냥꾼인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그는 일그러트렸던 얼굴을 피며 말했다. 협박하는 투가 아닌 누가 보더라도 부탁하는 듯한 온화한 말투였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사내가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도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뭐해!! 얼른 죽여!! 이 새끼만 없었으면 우리 가족이 죽을 일도 없었다고!!”


부들거리던 몇몇의 사람들이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한 여자가 휘두른 낫이 공기를 갈랐다. 카일은 아래로 내려꽂히는 공격을 몸을 뒤로 내빼어 피했다. 그녀의 공격은 카일의 밑에 밟혀 있던 사내의 다리에 꽂혔다.


“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질렀다.


낫을 휘두른 여자의 손에 피가 튀겼다. 그녀는 생전 두 번째로 본,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만든 깊숙하고, 끔찍한 상처를 보고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부들거렸다. 사람 몸에서 분출하는 피를 보지 어젯밤의 지옥이 생각났는지, 그녀는 다리에 박힌 낫을 뽑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카일은 왼편에서 휘둘러지는 괭이를 칼을 들어서 막았다. 카일은 그대로 괭이자루를 칼로 베었다. 힘없이 썰린 괭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카일은 괭이를 휘두른 남자의 배를 칼로 쑤셨다.


‘굳이 죽이고 싶진 않았는데.’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남자의 배에서 칼을 꺼냈다. 카일이 칼을 빼내자 그는 상처 부위를 부들거리며 부여잡았다.


“끄아아악!”


그는 흰자위를 까뒤집으며 게거품을 물었다. 카일은 그대로 그의 목에 칼날을 박아넣었다. 그는 잠시 목을 부여잡으며 부들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죽음을 맞이했다.


카일은 공포심에 다리가 굳어 아무것도 못 하고 주저앉아 있는 여자의 심장에 칼을 박아넣었다. 피가 역류하며 상처에서 뿜어져 나왔다.


카일에게 달려들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덜덜거리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의 뒤로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싸울 수 없는 아이들은 놔두고 왔으리라.


‘대략 스무 명 정도인가. 그중 두 명은 이미 죽었고, 한 명은 전투 불능 상태니까 스물세 명 정도라.... 도핑이 필요할까.’


카일은 얼어붙어 있는 여섯 명에게 달려들었다. 카일의 검이 마을 사람들의 몸을 꿰뚫고 바닥에 선혈을 낭자 시킨다.


뜨거운 핏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그들은 살인귀가 아니었다. 무한한 체력도 없으며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나약한 육체를 가진 평범한 인간. 그들이 공포에 질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살인귀보다 나은 건 두뇌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새하얗게 질린 그들의 머리는 돌아가지 않았으며, 공포로 인해 굳어버린 몸은 그들의 생각처럼 움직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덜덜거릴 뿐이었다.


‘도핑은 굳이 필요 없겠군.’


덜덜거리는 그들을 보며 카일은 생각했다.


“주....죽어!!”


뒤에 있던 사람들 중 한 남자가 뛰어들자, 다른 사람들도 고함을 지르며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뒤져!!”


“네놈들만 없었으면 됐다고!!”


여러 음색이 섞이며 카일의 귀에 들어왔다.


카일은 예리한 눈으로 그들은 바라보다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팔이나 다리에 낫 같은 날카로운 농기구가 스치긴 했어도 중상은 아니었다.


허나 카일을 공격했던 마을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운 듯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사....살려줘...!”


그들은 이런 무기를 들고 사람이든 괴물이든 죽여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어설픈 그들의 공격은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되었다. 그들의 무기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주민들을 향했다.


붉은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다. 꽃잎들은 바닥에 스며들고 사람들을 그 위를 구르고 있다.


상처에 손이 닿을 때마다 고통이 찾아온다. 허나 이미 살아갈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이를 갈았다.


“하아, 하아. 이 시발놈 때문에 이렇게 됐어.... 죽여!!”


카일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들의 몸에 칼날들을 쑤셔 넣었다.


투둑. 투두둑.


카일의 옷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쏟아지는 폭우에 기뻐했을 것이다. 그래 좋아했을 것이다. 허나 빗방울이 아무리 떨어진다고 한들 이 마을에는 그것에 기뻐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세차게 쏟아졌다. 마치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듯이 하늘은 눈물을 흘렸다. 카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친히 칼을 박아 주었다. 살점이 찢기는 고통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닌다.


“커....커헉.”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마 카일이 죽이지 않았더라면 고통 속에서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죽어 갔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치켜뜬 눈동자 속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봐, 사냥꾼. 우리 아이들은...다른....마을에....”


이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카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끝내 입을 닫았다. 카일은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괴물이라면 모를까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아직까지도 께름칙했다. 허나 후한은 남겨두지 않는다. 카일의 신조였다. 만약 이 신조가 없었더라면 카일은 이미 바닥에 쓰러진 이들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신조를 지키기 위해 이들의 아이까지 죽여야 한다.


가족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단검을 들어 카일의 배에 찔러넣을 수도 있으니까.


카일은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조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옆 건물 2층에서 창문을 통해 고개를 내밀고 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전부 저곳에 있으리라. 아마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이는 자신을 못 보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카일의 넓은 시야각은 그들을 눈치챘다.


카일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든 채로 그 건물로 올라갔다.


7명의 아이들이 구석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녀가 그들을 껴안고 있었고, 몇몇 소년들이 지팡이나 나무판자 따위를 들며 카일을 막아섰다.


카일은 한숨을 내쉬더니 16~17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들을 칼로 베어넘겼다. 그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여자아이가 그녀의 품속에 있는 아이들을 더욱 세게 껴안았다. 카일이 칼을 치켜든 그때 바닥을 기어 온 소년들이 카일의 다리를 붙잡았다.


허나 카일은 그들의 팔목을 썰어버렸다. 그들은 고통에 몸서리치며 바닥을 굴렀다. 카일은 나뒹구는 그들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더니 다시 구석에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먼저 그들을 껴안고 있는 소녀의 목을 베었다. 눈조차 감지 못한 소녀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러 소년들의 머리통과 부딪혔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귀청을 찢는 비명을 질렀다. 허나 소용이 없었다. 카일은 아이들을 단칼에 베었다.


한 여자아이가 손을 싹싹 빌며 제발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자신이 무엇이든 할 테니 제발 살려달라고. 허나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카일은 그녀의 목을 서슴없이 베었다.


핏방울이 카일의 얼굴에 튀었다.


카일은 쓰러지듯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는 지친 듯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카일이 고개를 틀자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가 보인다. 시선을 돌리자 새빨간 핏자국이 보인다. 시선을 또다시 돌리자 피에 젖은 칼날이 보였다.


그는 이유 모를 한숨을 내쉰 뒤 칼을 허리춤에 차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카일은 바닥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는 어른들의 옷가지를 뒤적였다. 그들의 품속에는 나침판과 지도가 나왔다. 그는 그것을 가슴팍에 넣어놓고는 식량을 챙기러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카일은 맛대가리 없는 말린 육포와 물을 잔뜩 챙겼다. 맛은 없었지만, 휴대성이 용이한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냥꾼들에게는 육포만한 음식이 없었다.


카일은 육포를 꺼내 입에 넣었다. 짭조름한 맛을 순식간에 가지고 딱딱한 식감만이 남았다. 물을 이용해 육포를 간신히 넘겼다.


“이 정도면 다음 마을에 가기까지 버틸 수 있겠지.”


카일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낡은 여관 문을 열었다. 끼이익거리며 문이 열렸다.


비는 금세 그치고 햇볕이 내리쬔다.


카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을 밖으로 나갔다. 비로 인해 땅이 시원해졌긴 하다만 오히려 걷는 것이 더욱 불편해진 것 같다.


카일은 조금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결국엔 내가 이곳 사람들을 전부 죽였군.’


카일은 잠시 동안 상념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저 마을을 괴멸시킨 건 괴물이 아닌 사냥꾼이라고. 사냥꾼들은 괴물과 다름이 없다고. 그들은 사냥꾼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허나 사냥꾼들은 영웅이 아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야. 그저 사냥꾼일 뿐이지. 난 최대한 많은 괴물을 죽이면 되는 거야. 그와중에 방해되거나 위협이 되는 놈들은 죽이는 것이 상책이지.’


사냥꾼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사냥꾼이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평생을 거쳐서 이루고 싶은 것은 그저 최대한 많은 괴물들을 죽이는 것뿐. 다른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카일은 ‘그래, 그런 거야. 난 다른 사람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어.’라고 되뇌이며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사냥꾼의 등 뒤로 짙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세차게 쏟아지던 빗방울을 어느새 멈추고, 금새 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6화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그것이 괴물이든, 인간이든.


그 작디작은 괴물도 인간에 대한 악의에 찬 괴물로 변해 언제 뱃가죽을 찢을지 모른다. 그 나약하던 아이가 언젠가 등에 칼을 박아넣을 수도 있다.


연민이 있다면 사냥꾼 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연민을 버리고,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괴물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을 방해한다면 사람마저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에 대한 연민이다. 아무리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연민이라는 못이 박혀있다. 그리고 가슴에 틀어박힌 못을 빼기 위해서는 크나큰 상처가 필요하다.


가슴이 쓰라려온다,


카일은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내리쬐며 대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다른 이들을 지키려는 소년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소녀가, 바닥에 처참하게 나뒹구는 작은 고깃덩어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다.


당연하게도 카일은 수없이 많은 괴물들을 도륙해왔다. 사람은 꽤나 많이 죽였을 것이다. 세어 본 적이 없다. 허나 카일이 죽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인간이지만 괴물로 살겠다 말한 놈들뿐이었다. 어린아이를, 그것도 자신의 절반도 채 되지 못하는 핏덩이를 죽여본 적은 없었다.


바닥에 구르는 아이의 머리처럼 카일의 가슴에 깊게 박혀있던 못도 바닥을 향했다.


모든 기억은 언젠가 흐릿해진다. 허나 이 기억만큼은, 가슴에 틀어박혀 있는 연민이라는 못이 뽑혀버린 이 기억은 언제까지나 카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잠시 동안은 수면 아래로 처박힐 수도 있겠지만, 언제든지 다시 떠올라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항상 그를 괴롭힐 것이다.


지금도 까아악거리는 비명소리가 카일의 귓가를 괴롭힌다. 여전히 그의 팔은 덜덜거린다.


하지만 나는 당연한 일은 한 거야. 그래, 죽이지 않았으면 언젠가 내가 죽었을 거야.


되뇌이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머릿속도 비워봤다. 허나 사라지지 않았다.


* * *


그늘 하나 없이 수평선 너머로 이어졌던 땅에 그늘이 생겨났다. 뜨겁게 피어오르던 열기는 걸을 때마다 조금씩 옅어지고, 작은 식물 같은 것들이 자꾸만 발에 밟힌다. 구름은 천천히 태양을 잡아먹고 있다. 사막은 어느 선을 기점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사막과 숲이 뒤섞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살인귀와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괴물들은 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는다. 아마 인간이 그랬듯이 괴물들도 인간이 토끼와 같이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하등한 생명체라 생각하는 듯 보였다.


오크와 엘프와 같이 지능이 있는 괴물들도 있지 않던가.


어쩌면 인간은 토끼보다 더 먹기 쉬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토끼는 재빠르게 이곳저곳을 도망 다니지만, 인간들은 한곳에 모여 덜덜거리니까.


이러한 변방지대에는 많은 괴물이 모여 살지 않는다. 조금만 걷는다 하더라도 사막 같은 척박한 땅이 나오기에 괴물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물론 인간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오히려 그 점을 노려 변방에 마을이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만, 그런 경우에는 괴물보다 하루하루 어떻게 배를 채워야 할지 걱정해야 하기에 이마저도 몇 없다.


이주 간의 여정 끝에 카일은 숲을 발견하였다. 원래 예상하던 마을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오게 되었다. 원래는 동남쪽으로 가려 했다만, 카일이 워낙 길치인 터라 북쪽을 향했다. 지도를 본다면 북쪽 끝 어딘가에 존재하는 숲이리라. 중간에 만난 괴물들은 전부 육편이 되어버렸고, 식량이 떨어진 카일은 그런 괴물들의 사체로 육포를 만들어 그 역겨운 것을 씹으며 숲을 지나왔다.


식수는 주위에 흐르던 개울물을 사용했다. 어째서인지 물에서 비린 맛이 올라왔지만, 그 비릿한 냄새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사냥꾼일 수도 있다 생각하였지만, 여러 명이 함께 몰려다니는 것을 본다면 사냥꾼은 아니리라. 이 부근에 마을이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어있으므로 아마도 저들은 이 근방에 사는 주민들이 틀림없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들어갔다.


카일은 천천히 그 좁은 동굴을 통과했다.


카일은 그들을 따라 마을로 가려 했다만, 자신이 들어간 동굴이 마을이라는 사실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카일은 숲인 점을 이용하여 많은 나무를 사용해 튼튼한 목책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동굴 안쪽에 살고 있었다.


동굴에 산다면 확실히 괴물들로부터 방어가 잘 될 것이다. 허나 나가기가 힘들 것이다. 저 입구를 통해 단 한 마리의 살인귀라도 들어가게 된다면 그 이후는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되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굴 안은 피로 범벅이 될 것이고, 수십 혹은 수백으로 늘어난 살인귀는 숲을 어슬렁거릴 것이다. 이런 동굴에 산다는 것은 이로운 점도 있지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카일은 앞서 들어간 사람들을 따라 약간의 검사를 마친 후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작을 것만 같았던 동굴 안은 예상외로 꽤 컸다. 전에 봤던 마을보다 큰 것 같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을 안은 의외로 밝았다. 물론 동굴 밖보단 아니었지만, 시야가 확보될 정도는 되었다. 카일은 이상하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동굴 천장에는 별 무리가 펼쳐져 있었다.


천장 곳곳에 작은 구멍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신기한 구조였다. 아마 저 구조를 만든이는 심한 노동에 시달렸으리라.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이 여기에 정착할 수 없었을 터, 그들에게 저 구조를 만든이는 영웅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여관을 찾기 위해 마을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허나 여관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숨겨진 곳에 사냥꾼이 찾아오리란 걸 예상하질 못한 걸까. 경비병들은 당황해 하며, 그들의 촌장에게 카일의 존재를 알렸다.


시장은 나름대로 활성화가 되어있었다. 여타 다른 마을과 달리 돈을 이용한 거래가 아닌 물물교환이었다. 아마 다른 마을 간의 교류가 없어 이런 것이겠지.


고기와 채소를 교환하는 것을 보면 카일은 마을 어딘가에 동물을 키우거나 농사일을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허나 카일의 생각은 틀렸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는 식물들이 광합성을 제대로 하질 못해 살아갈 수가 없다. 키운다 하더라도 분명히 영양가가 적은 작물이 될 것이다.


그들은 동굴 밖으로 나가 과일이라든지, 동물을 얻어온다. 괴물들도 숲에서 공존을 하다만, 매시간 밖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잠자리를 안전하게 할뿐더러 목숨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수고로움과 약간의 위협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촌장의 집은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들이 얻은 음식들을 가져다주었다. 카일이 지나가는 아낙네를 붙잡아 물어본 결과 이 마을을 만들었던 자의 자손이란다.


아낙네의 말에 의하면 촌장은 오랜 기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을 어떻게든 잘 유지되게 만들었는데, 그 고마움의 표시로 마을 주민들은 음식을 가져다준다고 하였다. 카일은 그의 마을 관리보다는 이 마을을 만들었던 조상에 대한 고마움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마을 꼬락서니를 잠시 보게 된다면 카일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을의 역사만 들어보자면 괴물들이 갑자기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할 때, 즉 제국이 망하고 나서 만들어진 마을인 듯싶었다.


카일은 아낙네의 설명을 들었지만,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생각했다.


‘현재 촌장의 고마움이 있다면 모를까, 그저 그의 조상이 했던 일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의 식량을 나눠준다라...... 이 마을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의문이군.’


카일을 찾은 경비병들은 헉헉대며 카일에게 말했다.


“촌장님이 불러오시랍니다.”


카일은 그들의 길 안내를 받으며 촌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촌장의 집은 대충 보아도 20명의 사람이 들어갈 만큼 커다랬다. 다른 사람들의 집이 그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용도에 불과한 크기인 것을 감안한다면 촌장은 꽤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의 집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카일은 많은 마을을 거치며 살아왔지만, 이런 촌장은 처음 본다. 또한 이렇게 운이 좋은 마을도 처음 보았다. 조상의 혜안과 지혜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망하고도 남았을 마을이다.


살인귀를 제외한다면 괴물의 종류와 수가 몇 없는 변방인 점과 괴물들을 막아줄 수 있는 동굴, 그리고 그 동굴을 가려줄 빽빽하게 솟아있는 나무까지. 어쩌면 이곳은 숲이 만들어준 천연 요새가 아닐까 생각하며 카일은 촌장의 집의 문을 열었다.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노인이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는 포크를 휘저으며 카일에게 인사하는 듯 보였다. 카일은 그에 반응하듯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이봐, 주방장. 이 사냥꾼이 먹을 것을 얼른 내오게나.”


목에 가래가 낀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가까이서 본 그의 몸은 더욱 엉망이었다. 살은 뒤룩뒤룩 쪄 있었고, 몸을 움직이기도 벅차 보였다. 전형적인 탐욕과 물욕에 찌든 인간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카일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만, 카일은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카일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봐, 촌장. 날 왜 부른 거지?”


“........”


대답 대신에 쩝쩝거리는 소리만이 카일에게 돌아왔다. 카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식사를 마쳤는지, 트림을 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하인을 시켜 간식을 내오게 했다. 카일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만, 아마도 의뢰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냥꾼은 무작정 괴물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의뢰도 받는다. 제아무리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의뢰를 받지 않는다면, 무기도, 식량도 사지 못한다. 그렇기에 사냥꾼들은 의뢰를 받곤 했다. 물론 용병들이 흔히 하는 사람을 죽이는 의뢰가 아닌 괴물에 관한 의뢰만 받았다.


가령 특정한 괴물을 죽여달라던가, 아님 괴물이 득실대는 곳을 지나칠 건데, 호위를 해달라는 의뢰 등이 들어오곤 했다.


카일은 이곳에서 호위를 부탁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괴물을 죽여달라는 의뢰라 판단했다.


“그래서 뭘 원하지?”


카일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진짜 사냥꾼인가.”


“그렇지.”


“내 할아버지 때까지만 하더라도 소수이긴 하나 사냥꾼들이 이곳을 발견하고, 찾아왔었지. 아마 지금 노인들이라면 희미한 기억 속에 사냥꾼들이 남아있을걸.”


“그래서 본론부터 말해라.”


“아, 아. 알겠다. 할아버지께서 사냥꾼으로 둔갑한 벌레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서. 아무튼 당신에게 의뢰를 좀 해야겠어.”


종종 사냥꾼 행세를 하며 의뢰금만 얻어내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곤 했다. 물론 사냥꾼들은 그렇지 않은 자와 사냥꾼은 구분할 수 있다. 그의 눈빛을 보면 된다. 사냥꾼들은 대게 죽은 눈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무슨 의뢰지.”


“헬하운드를 죽여줬으면 해서.”


“헬하운드라. 그놈은 이 주변 환경에서 살지 못해. 존재하지도 않은 괴물을 잡으라니.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건가?”


“물론 나도 이곳에서 60년을 살면서 헬하운드를 본적이 없어. 어릴 때 사냥꾼들에게 들어본 적은 있어도.”


“본 적이 없다면서 어째서 이곳에 헬하운드가 있다 단언하는 거지?”


“불타는 늑대라 표현할 수 있는 건 헬하운드 밖에 없지 않나. 킥킥. 그러고도 사냥꾼이라 할 수 있겠어?”


촌장은 출렁이는 배를 문지르며 카일을 비웃었다.


“일단 알겠다. 의뢰금은.”


촌장은 커다란 바지를 뒤적거리다가 금으로 만들어진 목걸이 한 개를 꺼내었다.


“이걸 주도록 하지.”


금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과거였다면 비싸게 팔렸겠지만, 수요가 거의 없다시피한 지금은 그리 필요치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지금도 몇몇 왕족이나 귀족의 후손들은 여전히 이런 귀금품을 모으곤 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판다면 꽤나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계산을 끝마친 카일은 촌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놈을 죽이려 하는 거지.”


“사냥꾼이 그런 것도 물어보나? 그냥 가서 죽이기나 해.”


그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휙휙 저었다.


카일은 고기 몇 점을 더 주워 먹고, 헬하운드가 자주 목격되었다는 지점을 표시한 지도를 하인에게 받은 뒤 마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7화



울창하게 뻗어 있는 나무들은 하늘을 뚫을 듯이 높게 솟아있었다. 빽빽하게 나 있는 싱그러운 이파리들은 하늘을 막아 햇빛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고목들로 인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바닥은 어두컴컴했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 덕분에 시야는 확보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나뭇가지들은 서로 뒤엉켜 있어 마치 미로를 연상시켰다.


새가 아무리 높게 난다 한들 이 숲속에 있는 동물을 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하늘에서 본다면 초록빛으로 펼쳐져 있는 초원을 연상케 했다. 눈이 좋다던 매도 이곳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나무 아래쪽의 사정도 위쪽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살아왔을 고목들은 바닥에 있는 더 많은 물을 흡수하기 위해 싸웠다. 마치 슬라임들이 촉수를 가지고 싸우듯이 이 고목들은 자신의 뿌리를 이용하여 옆에 있는 나무들을 장악해갔다.


서로 엉키고 설키며 자라나는 뿌리들은 길을 험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주었다. 일정한 규칙이 없이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들은 위치를 외우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금도 카일의 옆에는 길을 헤매다 죽은 것 같은 백골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 숲에 사는 동물들은 물론이거니와 지능이 높은 사람마저도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그로 인해 이 마을은 몇백 년간 아무런 침략도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 집요하던 괴물 추종자들의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이곳의 위험성을 알 수 있었다.


빽빽한 이 숲은 미로 그 자체였다. 카일은 그 위험성을 알기에 자신이 지나온 나무들에 칼로 흠집을 내며 제멋대로 솟아있는 나무의 뿌리에 발을 올렸다. 서로 뒤엉키며 싸우는 뿌리는 단단하게 얽혀 있었고, 어떤 뿌리들은 카일의 키보다 더 높게 자리하기도 했다.


카일은 힘겹게 발을 내딛으며 헬하운드가 나타났다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지나왔던 나무에 흠집을 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 * *


하인은 이틀이면 갈 수 있다고 했다만, 그것은 아무것도 몰랐던 하인의 어리석은 이야기였다. 단 한 번도 마을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하인은 숲이 미로 같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카일의 눈앞에는 세 개의 흠집이 있는 나무가 있었다.


일주일 내로 돌아오겠다고 얘기를 했다만 아마 이번 의뢰는 더 길어질 것 같다. 벌써 나흘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카일이 길치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돌아갔을 시간.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나무에 네 번째 흠집을 냈다.


그러곤 질긴 육포를 잘게 찢어 입안에 넣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말라비틀어진 육포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잘게 찢긴 했어도 육포는 아직도 딱딱했다.


카일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채로.


* * *


카일은 다행히도 미로에서 탈출했는지,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발견하였다. 카일은 재빨리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에 표시된 헬하운드의 주위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헬하운드가 출몰한다는 곳이 지도에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면, 아마 300m 이내에 있으리라 추측했다.


고작 이틀 거리에 있는 냇물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카일은 나흘 동안이나 이 작은 냇물 하나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는 자신이 불쌍하고도 대견스러웠다.


카일은 이 부근에 헬하운드가 있다 생각하여 칼을 뽑아 들었다. 카일은 침을 꿀떡 삼키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헬하운드는 꽤나 강한 괴물이었다. 육체 능력은 일반 늑대보다 가죽이 더 질긴 것밖에 차이가 없다만, 헬하운드의 강함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몸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 그것들의 몸은 항상 화염으로 뒤덮여 있다.


게다가 호랑이의 줄무늬가 개체마다 다르듯이 헬하운드의 불꽃이 나오는 곳도 개체마다 달랐다. 그렇기에 헬하운드는 공략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피부는 불길을 버틸 수 있어, 헬하운드는 자신의 가죽을 이용해 변칙적인 공격을 해댄다.


불길이 치솟는 부분은 용암만큼 뜨거워 무엇이든 녹일 수 있다. 그 불꽃은 특이하게도 헬하운드의 몸에서 벗어난다면 1~2분 내로 꺼지게 된다. 불길이 치솟는 부위가 같은 개체도 존재하는 걸로 봐선 아마 유전적인 것 같다만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존재하지 않는다.


잿가루가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카일은 손으로 눈 주위를 가렸다. 만약 잿가루가 눈에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을 때 헬하운드가 공격을 시도하면 죽게 될 것이다. 카일은 그런 것보다는 시야를 조금 포기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 판단하였다.


찰박-


카일이 냇물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잔잔하게 흐르는 냇물의 흐름을 깨트렸다. 허나 카일은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모든 신경을 눈에 집중하여 어디에서 헬하운드가 튀어나올지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극도로 긴장을 해서 그런가 손에서는 땀이 흘렀다. 허나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과 칼을 끈으로 묶어 칼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몸에 바람 한번 스치는 것만으로도 몸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헬하운드.


아마 대다수의 사냥꾼들이 입은 화상은 헬하운드를 잡다가 생긴 흉터일 것이다. 그리고 불에 타 죽은 사냥꾼들도.


많은 사냥꾼들의 죽음으로 강함이 증명된 몬스터다. 특히 자꾸만 옮겨붙는 불길이 헬하운드를 더욱 죽이기 까다로운 몬스처로 만들어준다. 고작 1~2분 내로 꺼지긴 해도 큰 부상을 입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처럼 강한 몬스터다. 카일이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카일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심장 박동 소리가 몸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급히 몰아쉬는 숨소리도 귓가에 꽂힌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갈 때마다 잿가루가 더욱 많이 불어온다. 그리고 카일의 심장도 더욱 빨리 뛴다. 근육들이 긴장을 한다.


카일의 몸이, 본능이, 직감이 저 앞에 헬하운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도망가라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어째서지.


카일의 오른팔에 크게 펼쳐져 있는 화상 자국이 욱신거린다. 카일은 지금까지 헬하운드와 3번 마주했다. 큰 고통을 감수하긴 했지만, 카일은 헬하운드를 도륙했었다. 분명 헬하운드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만 도망치라 하는 걸까.


오른팔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이 이젠 단검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바뀌어 갈 때쯤, 잿가루로 뒤덮인 공간이 나타났다.


불에 타버린 고목이 있었다.


움푹 패인 구덩이가 있었다.


아직도 치솟는 불길이 있었다.


그리고.....


헬하운드가 있었다.


도망쳐라. 도망쳐.


카일의 몸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당장 도망치라고. 그렇지 않는다면 너는 죽을 수도 있다고. 지금 당장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그래. 지금 도망친다면, 저 미로 같은 숲 속에 들어간다면, 헬하운드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헬하운드를 죽일 기회는 다시금 나타날 것이다. 몇 번이고 시도할 수 있다. 허나 카일의 목숨이 사라진다면, 시도조차 못 할 것이다.


오른팔이 덜덜거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분명히 몇 번이고, 죽여왔던 헬하운드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어째서일까.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요동을 친다.


하아. 하아.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니 헬하운드와 1m가량 떨어져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항상 차가웠던 사냥꾼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북서쪽 사막을 지배하고 있던 붉은 깃털 독수리(사냥꾼들의 착각이다. 사냥꾼들을 사막 깊은 곳까지 들어간 적이 없고, 그에 따라 사막 깊숙한 곳에는 어떠한 괴물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곳에서 자신들이 만난 괴물들 중 가장 강한 붉은 깃털 독수리가 사막을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뿐.)를 만났을 때도, 카일의 머리는 차가웠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종인가?


괴물들은 항상 변이를 해왔다. 강한 돌연변이만이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흩뿌리는 인간의 진화와 다르게 그들은 변이를 해왔다. 자신의 환경에 맞춰 변이를 하여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저것은 새로운 종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번에 사냥꾼의 마을에 갔을 때도 저런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도 2년 전이니까 2년 안에 새로이 발견되었나?


모르겠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카일은 결굴 두 가지 선택지에 도달하였다.


저것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허나 카일은 도핑을 위해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거칠던 숨이 가라앉았다.


카일은 지금 도망가더라도 저것은 분명 끝까지 따라오리라 판단하였고, 카일은 손에 묶여 있는 칼자루를 꼬나쥐며 몸을 틀어 카일을 들이받기 위해 달려오는 헬하운드의 입에 칼날을 넣어 돌진을 막았다.


카일은 헬하운드를 걷어차고, 재빨리 다른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손에 묶고 있던 붕대를 풀고, 원래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헬하운드의 질긴 가죽을 찢기 위해서는 그저 단단하기만 한 본 소드 보다는 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 칼이 필요하다. 날이 서 있지 않은 본소드로는 헬하운드의 질긴 가죽을 뚫을 순 없다.


카일은 다시금 일어선 헬하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염이 헬하운드의 몸을 뒤덮었다. 헬하운드가 앞발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몸을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주위의 나무로 불이 옮겨붙는다. 크게 치솟은 화염은 나무로 가득한 숲을 태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불이 이곳저곳으로 옮겨붙는다면 위험하다. 불은 1~2분 내로 꺼지긴 하겠지만, 그 시간 안에 전부 타버린 나무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시야가 방해될 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제약이 생기게 된다.


카일은 최대한 빨리 헬하운드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나무가 쓰러지는 것쯤은 카일에게 닥칠 상황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헬하운드라면 화염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인간의 체력이 유한한 것처럼, 헬하운드의 화염도 유한하다. 휴식을 취하지 않는 이상 화염을 계속해서 사용하기란 불가능하다.


허나 눈앞의 헬하운드는 끝없이 불길을 생성하고 있었다. 주변을 보아하니 카일이 오긴 전에도 화염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만, 어째서인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저 불꽃은 계속해서 주위의 나무를 불태우고 있다.


저 불길이 계속된다면, 이 부근은 폐허가 된다. 카일은 그리 판단하여 헬하운드의 목을 노렸다. 허나 헬하운드는 잽싸게 몸을 뒤로 뺐다.


헬하운드는 앞발로 카일을 짓눌렀다.


뜨거운 발이 카일의 팔을 누르고 있다. 팔목이 타들어 갈 것 같다. 팔목 주위의 옷가지는 이미 타버렸으며, 손목까지 오는 괴물의 가죽으로 만든 장갑 덕에 버티고 있다만, 이 장갑도 곧 있으면 타버릴 것 같다.


카일은 헬하운드의 앞발을 잡고 꺾어버렸다. 아까 했던 도핑이 이제야 몸에 흡수가 다 되었는지, 근육이 팽창을 하고, 시야가 일렁인다. 눈앞의 헬하운드가 파도같이 춤을 추고 있다.


헬하운드는 꺾여버린 앞발로 계속해서 카일을 짓눌렀다.


어째서지.


어째서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행동하는 거지.


가죽을 뚫고 나온 뼈에 살점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헬하운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언데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언데드 이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이놈은 언데드였다. 어째서지. 어째서 이곳에 언데드 헬하운드가 있는거지?


허나 그러한 의문점을 해결할 새도 없이 헬하운드는 카일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들었다.



8화



카일은 재빨리 몸을 뒤로 제쳤다. 순간적으로 반응했음에도 카일의 목에서 살점이 떨어졌다. 카일은 목을 붙잡았다. 다행히도 깊은 상처가 아닌지, 피는 생각했던 것만큼 많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허나 살점이 뜯기는 고통과 함께 상처 부위가 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이빨에 화염을 둘러쌌는지, 목은 뜨거웠다.


헬하운드는 우물거리던 살점을 바닥에 뱉었다.


크르르르-


헬하운드는 몸을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더니 카일을 경계한다는 듯이 눈알을 굴리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피 맛을 본 것인지 입가에 묻은 피를 할짝이며 눈을 번득였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목숨을 잃는 싸움이다. 단 1초라도 방심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몸을 긴장시키는 것은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지 카일의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카일의 이마에서는 땀이 떨어졌으며, 카일은 칼을 꼬나쥐었다.


드디어 저 괴물이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카일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하는지 좌우로 번갈아 움직이며 달려들었다. 허나 그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일렁이는 카일의 시야는 빠르게 다가오는 헬하운드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고, 카일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앞발이 카일의 복부를 누른다. 타오르는 뒷발이 카일의 다리를 짓이긴다. 온몸을 갑옷으로 치장하고 있어 피해가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카일이 입고 있는 방어구는 강철로만 이루어진 판금갑옷이 아니라 가죽과 쇠로 이루어진 경갑옷이었다. 이런 경갑옷은 언제든지 타올라 카일의 몸을 방어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헬하운드는 카일의 머리를 물어뜯기 위해 아가리를 벌려댔고, 카일은 검으로 헬하운드의 목을 밀어내며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헬하운드의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익어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카일을 얼굴을 찡그러트렸다.


카일은 이를 악물고 헬하운드를 밀어냈다. 헬하운드는 옆으로 나뒹굴었고, 카일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오른팔은 화상으로 인해 붉어졌으며, 아직도 잔열이 남아있는지 여전히 팔은 뜨거웠다.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카일은 덜덜거리는 손으로 칼자루를 꼬나쥐었다.


카일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남아있는 마약을 전부 흡입한 카일은 헬하운드를 노려보았다. 저놈은 여전히 화염 속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카일이 헬하운드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카일은 바닥에 연신 토악질을 해댔다.


약을 너무 많이 복용했는지, 토사물은 피와 섞여 바닥으로 쏟아졌다. 먹은 것이 별로 없어 누런 위액을 질질 흘렀다. 속이 쓰라리다. 눈앞에 마주한 헬하우드에 대한 공포와 앞선 도핑 덕에 판단이 흐려져 발생한 실수였다.


허나 일부 마약은 이미 몸 안에 흡수가 되었는지, 덜덜거리는 오른팔의 진동이 멈췄다. 입꼬리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헬하운드는 여전히 일렁이고 있다. 오른팔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은 이제 사라지고, 점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일은 팔에 묻은 피를 할짝였다.


달짝지근한 피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하늘에서 일렁이는 태양이 푸르게 변해간다. 여러 마약들이 뒤섞이며 시야가 이상해진다. 입꼬리가 위로 쭉 찢어진 카일이 킥킥거리며 헬하운드에게 달려들었다.


헬하운드는 전신이 무방비하게 달려드는 카일을 그대로 둘 위인이 아니었다. 헬하운드는 몸을 낮춘 채로 그대로 카일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었다. 허나 뜯겨진 상처에서 새살이 순식간에 돋았다.


카일이 들이킨 마약에는 치료제도 같이 섞여 있었는지,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었고, 카일의 검은 헬하운드의 배를 꿰뚫었다.


카일은 피 냄새마저도 향기롭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카일은 짐승처럼 헬하운드의 코를 물어뜯었다. 입안에 불이 붙는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입천장은 전부 화상을 입었으나 카일의 몸속에 흡수된 치료제는 그 상처를 회복해 주었다.


카일은 물어뜯은 헬하운드의 코를 으적거렸다.


헬하운드는 언데드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지, 카일의 배에 발톱을 쑤셔 넣었다. 5개의 구멍에서 피가 솟구친다. 허나 그 상처는 금세 지혈이 되었고, 이내 상처는 사라졌다. 헬하운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뜨거운 화염으로 감싼 채 카일을 들이받았다.


카일의 몸에 불이 옮겨붙으며 저 멀리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카일은 울컥거리며 피를 토해냈지만, 여전히 즐겁다는 듯 일어섰다.


철과 철을 연결하던 가죽은 이미 불타버려 갑옷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이고, 아무런 방어구도 갖추지 않은 채 카일은 헬하운드에게 달려들었다. 헬하운드는 썩은 피를 코에서 질질 흘리며 달려오는 카일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가만히 서서 카일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카일과의 거리가 3m가량이 되었을 때 헬하운드는 낮췄던 몸을 피며 눈 깜짝할 새에 불을 머금은 이빨을 어깨에 박아넣었다. 목을 노렸다만, 여러 마약으로 도핑을 한 카일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몸을 옆으로 틀어 목이 물리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아무리 피에 치료제가 흐르고 있다 하더라도 즉사한다면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이번 공격은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도핑되어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카일의 몸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카일은 달려드는 헬하운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고 고꾸라졌다.


찰박-


흐르던 시냇물 위로 고꾸라졌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다. 근육이 비명 지른다.


어깨에 난 상처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카일은 어깨를 부여잡았다. 손에 피가 흥건히 묻어나왔고, 카일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것으로 뼈를 타고 올라오는 고통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카일은 물에 젖은 칼을 쥐었다.


헬하운드는 카일이 약해진 것을 알아차렸고,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카일은 칼을 휘둘렀다. 물이 묻은 칼이 헬하운드에게 닿았고, 불이 꺼져갔다.


헬하운드가 나타난 지 20여 년. 헬하운드는 항상 메마른 장소에서만 나타났다. 태양이 끊임없이 내리쬐는 곳에서 물은 귀중했고, 그렇기에 물을 뿌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간단한 생각이었으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꽃을 내뿜는 괴물이 고작 물 따위에 약해질 것이라곤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괴물들에 비하면 헬하운드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물을 사용한다는 것을 몰랐으니, 헬하운드의 공략법이 나올 리가 없었다.


돌아온 정신은 헬하운드가 물에 약하다는 것을 카일에게 알려주었다. 카일은 그것을 깨닫고, 헬하운드를 물 쪽으로 몰아넣기로 결심하였다.


우선 칼에 물을 최대한 많이 묻힌 뒤, 헬하운드에게 휘둘렀다. 헬하운드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허나 헬하운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핏물이 가득한 아가리를 벌려, 카일의 다리를 물었다.


카일은 헬하운드의 목을 그대로 눌렀다. 아직도 남아있는 불꽃이 카일의 장갑을 불태웠으며, 손바닥에 끔찍한 화상을 남겼다. 허나 카일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으며, 도핑의 부작용인지 온몸은 벌레에 물어뜯기는 고통이 느껴졌기에, 손바닥에 난 화상 따위에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카일은 헬하운드의 목을 잡아 물가로 집어 던졌다.


등에서 타오르고 있던 불꽃은 물에 닿으며 치이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물이 증발하면서 생긴 수증기가 바람을 타고 저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키에에엑


헬하운드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몸에 있던 불꽃은 전부 꺼졌으며, 헬하운드는 으르렁거렸다. 불이 사라진 헬하운드는 그저 덩치가 조금 크고, 가죽이 질기고, 힘이 센 늑대에 불과했다. 물론 고통을 느끼진 않겠지만, 늑대들의 무리를 짓는다는 장점이 없는, 늑대였다.


무리를 짓지 않는 늑대는, 불꽃이 없는 헬하운드는 죽이기가 쉬웠다. 허나 온몸이 끔찍한 상처로 뒤덮인 카일은 힘겹게 칼을 집어들었다.


카일은 전에 냈던 상처를 찢기 위해 몸을 낮췄다. 헬하운드가 배를 들어내는 즉시 가죽을 찢고, 내장을 끄집어낼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 카일은 온몸에 퍼지는 통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치료제나 마약은 이미 복용한 상황, 카일은 순수한 육체로만 저 괴물을 상대해야 했다. 카일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카일은 헬하운드를 예의주시하였고, 불이 꺼져 분노한 헬하운드는 이성을 잃고 카일에게 달려들기 위해 땅을 박찼다. 흙먼지가 날리고, 붉은 이빨이 카일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카일은 몸을 낮추고, 자신이 이미 냈던 검상에 다시 한번 칼을 찔러넣었다.


그러곤 헬하운드의 배를 갈랐다.


제아무리 가죽이 질긴 괴물이라 하여도 이미 난 한 번 상처가 난 뱃가죽을 공격하는데 안 찢어지겠는가. 일자로 찢어진 배에서 내장이 빠져나왔다. 카일의 몸에 피가 쏟아졌으며, 그의 몸은 썩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헬하운드는 내장이 빠져나왔음에도 카일에게 아가리를 벌려댔다. 언데드는 이런 걸로 죽지 않는다. 카일은 내장이 쏟아져 나온 몸을 발로 찼다. 헬하운드는 저 멀리 내팽개쳐졌으며, 카일은 헬하운드의 눈에 칼을 찔러넣었다.


카일은 헬하운드의 머리를 즈려밟았다. 헬하운드는 입을 벌리려 했으나 카일은 그대로 턱을 올려 찼다. 헬하운드의 턱이 돌아갔다. 카일은 내팽개쳐진 본 소드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허나 본 소드는 보이지 않았다. 격렬한 전투 때문에 칼은 버린 곳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카일은 손을 뻗어 주위를 훑었다. 주위에는 바윗덩이가 있었다. 카일은 재빨리 그 바윗덩이를 들어 헬하운드의 머리를 내려쳤다.


쾅.


쾅.


쾅.


카일은 헬하운드의 머리를 수십 번 내려쳤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바윗덩이가 뇌를 짓이겼다. 뇌수가 흐르고, 피가 쏟아졌다. 버둥거리던 헬하운드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카일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 끔찍한 고통이 퍼졌다. 고통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 다닌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카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치료제를 만드는 제조법은 사냥꾼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숲이다. 많은 식물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는 치료제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가 있을 확률이 높다.


카일은 그리 생각하여 주변을 살폈다. 치료제에 쓰이는 재료 중 몇 가지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애초에 몇 가지는 평범한 가정에서도 쓰이는 약초가 사용되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품 속에서는 치료제에 필요한 재료가 몇몇 있었고, 카일은 그것들을 모두 모아 갈았다.


허나 다른 재료들은 보이지 않았다. 카일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찾을 수 없기도 하지만, 헬하운드의 싸움으로 인해 주위에 있는 많은 식물들이 불타버려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카일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약초를 빻아 상처에 발랐다. 재료가 많이 없었기에 치료는 더뎠다. 그리고 사냥꾼의 마을에서 초보 사냥꾼들에게 줬던 치료제가 효능이 좋았던 이유도 있었다. 치료제의 효율이 좋으면 좋을수록 몸에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그렇기에 치료제도 적절하게 사용해야 했으나 복수심에 불타는 사냥꾼들을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냥꾼들은 더 효율이 좋은 치료제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줄이기는 힘들었다.


카일은 더 이상 효율이 좋은 치료제를 다 사용했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 늙은 사냥꾼의 말이 옳았군. 역시 그렇게 오래 살아남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


그보다 쓰러져 있는 헬하운드를 조사해 봐야 한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살 몬스터가 아닐뿐더러 언데드다. 헬하운드 언데드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헬하운드보다 더욱 강한 괴물이다. 아마 주위에 물이 없었다면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카일은 헬하운드 사체를 뒤적거렸다. 헬하운드의 몸과 가죽에는 카일이 낸 상처를 제외하면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언데드라면 살점과 가죽이 어느정도는 썩어있어야 당연한 것이다.


헌데 가죽에는 세월의 흔적은 전혀 없고, 카일이 낸 상처만이 존재했다.


그것에 위화감을 느낀 카일은 아무것도 없는 헬하운드의 사체를 헤집었다. 허나 이내 사체를 뒤지는 행동을 멈췄다. 문득 사냥꾼의 마을에서 들었던 늙은 사냥꾼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리치”


언데드를 만들고, 그들을 부리는 괴물.


대부분의 언데드는 지성이 있는, 이를테면 인간이나 엘프와 같은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인귀를 제외하면 모든 언데드들이 어떤 연유로 발생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지성이 없는 언데드라면 말이 다르다. 언데드가 될 수 없는 괴물을 언데드로 만드는 괴물은 리치, 그 괴물밖에 없다.


이 기본적인 것을 까먹다니.....


100여년 전 움직임을 멈췄던 괴물이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알려야 한다.


카일은 몸을 일으켰다. 사냥꾼의 마을로 가야 한다.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옮겼다.




번외. 리치와의 전투기록



기괴한 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진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대지 위에 새하얀 백골이 냄새의 원인 위에서 사냥꾼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괴물에게 붙여진 이름은 리치.


수천, 어쩌면 만이 넘어가는 언데드를 이끌고 사냥꾼들과 대치 중이다. 수천에 달하는 리치에 비하면 사냥꾼은 고작 1,000명 남짓. 전력 차가 심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적들의 사체는 많이 부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한 악취를 본다면 아마 꽤나 많은 언데드가 부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냥꾼들은 목책을 세웠다. 단단하고 높게 박혀있는 목책은 그리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주변에 있는 사냥꾼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럼에도 고작 1000명 남짓이다.


리치의 군대는 대략 1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도시를 향해 진격 중이었다.


리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조금만 힘을 가해도 으스러질 것 같은 언데드들이 사냥꾼들이 세워놓은 목책을 행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간에는 리치가 있었다.


목책이 흔들린다.


목책 위에서 바라보는 언데드들의 공격은 괴이했다.


물밀 듯이 목책을 향해 달려오는 언데드들로 인해 맨 처음으로 목책에 도달했던 언데드가 바닥에 나뒹구른다. 나뒹구르는 언데드를 밟고 목책을 향해 달린다.


언데드들은 아군을 밟고 목책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맨 밑에 깔린 언데드들은 이미 다른 언데드들의 무게로 인해 온몸이 곤죽처럼 으깨져 죽었으며, 그건 위쪽 언데드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냥꾼들은 아군을 밟고 위로 올라오는 언데드들을 행해 화살이나 단검 따위를 던졌다. 그 무기에 맞은 언데드들은 뒤에서 올라오던 언데드들과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져 머리가 부서졌다.


부패가 시작된 지 오래되었기에 고작 바닥에 머리가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언데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언데드가 파도처럼 목책에 부딪힌다.


목책은 그들의 검붉은 피로 물든 지 오래이며, 나무 사이사이로 언데드의 피가 흘러들어왔다.


“죽 같네.”


“뭐?”


그것이 한 사냥꾼의 감상평이었다. 좆 같네를 잘못 발음한 것이 아니었다. 물밀 듯이 밀려오고, 서로 엉키고, 뭉개지고, 으깨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죽을 연상시켰다. 물론 고기로만 이루어진 썩은 내가 나는 죽이란 것이 문제지만.....


“죽은 시발. 죽보다는 슬라임 같지 않냐?”


으깨진 살점 속에서 발버둥치는 언데드 때문에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살덩어리들은 슬라임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슬라임 같다는 감상평을 한 사냥꾼의 머리에 뼈다귀가 박혔다.


날카롭게 깨진 언데드의 뼈는 사냥꾼의 머리를 꿰뚫기에 충분했다. 한 사냥꾼이 뼈다귀에 맞고 바닥에 나뒹굴자, 그 옆에서 같이 킥킥거리던 사냥꾼은 곧바로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시발, 공격 온다. 준비해!!”


소리친 사냥꾼은 몸을 숨겨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하였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일어나 기어 올라오는 언데드를 칼로 찌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 언데드 늑대 한 마리가 다른 언데드들을 밟고 목책 위로 뛰어 올라왔다. 몸을 숙이고 있던 사냥꾼은 뛰어 올라오는 늑대를 보았고, 그것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칼날은 가죽을 찢고 살점을 파헤쳤다. 썩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상처에는 구더기가 바글거렸다.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늑대의 턱을 올려치자 살점이 뜯기면서 턱이 저 멀리 날아갔다. 사냥꾼은 늑대의 두개골을 칼자루로 깼다. 그러고 나서 칼로 목을 베자 철푸덕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냥꾼은 으깨진 머리통과 몸을 목책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겨우겨우 목책의 위로 올라왔던 언데드와 함께 저 바닥으로 처박혔다.


언데드는 계속해서 기어 올라왔으며, 사냥꾼들은 계속해서 베어나갔다. 검과 살점이 맞부딪친다. 계속해서 지는 것은 살점 쪽이었다. 부패되는 살점은 단단한 검을 이기지 못한 채 허물어져 갔다.


하지만 한 개의 살점이 찢어지면, 두 개의 살점이. 두 개의 살점이 으깨지면 네 개의 살점이 기어 올라와 검과 맞부딪쳤다.


하지만 검에게는 체력적 한계가 있었고, 살점에게는 없었다. 부패한 살점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살점은 계속 검과 맞부딪쳤고, 결국 검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니, 검을 쥐는 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검은 여전히 살점 속에 박혀 또 다른 살점을 썰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가 걸어 다닌다. 누군가는 이 괴물을 보고 그리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산신이라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나무의 정령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틀렸다. 이것은 정령이나 산신 따위가 아니다. 이것은 괴물이다.


인간을 가장 잔혹하게 해치는 괴물.


잿가루가 흩날린다. 검은 나무가 목책을 기어 올라왔다. 불에 탄 것 같은 나무는 거뭇거뭇한 발자국을 남기며 사냥꾼에게 다가왔다.


엔트(Ent)의 가지가 사냥꾼의 배를 꿰뚫었다. 배를 뚫은 가지에서는 또다른 가지들이 솟아나 사냥꾼의 온몸을 뚫고 나왔다. 피떡이 되어버린 사냥꾼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엔트의 팔에서 넝쿨이 자라났다. 엔트는 여러 개의 넝쿨을 꼬아 채찍처럼 휘둘렀다.


나무꾼이었던 사냥꾼이 엔트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엔트의 팔은 부서졌다. 그러나 팔이 잘린 곳에서 나무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팔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엔트를 죽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재생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부수거나 불로 태우는 것.


하지만 후자는 이런 곳에서 사용할 수 없다. 만약 불로 태워버린다면 목책도 같이 불탈 것이 뻔하다. 사냥꾼은 도끼로 엔트의 팔을 내려쳤다. 재생되지 않을 정도로 계속해서 내려찍고, 또 내려찍었다. 이미 한번 타 죽어버린 엔트는 큰 충격에 쉽게 바스러졌다.


숯덩이처럼 검던 엔트는 잿가루가 되어 공중에 흩뿌져렸다.


엔트를 잿가루로 만든 사냥꾼의 어깨에 화살이 박혔다. 사냥꾼이 뒤를 돌아보자 화살 수 발이 몸에 박혔다. 사냥꾼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고귀하던 엘프들이 썩어 문들어가는 살점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채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 * *


즉살 당한 사냥꾼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오히려 괴물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목책의 아래쪽에서는 중상을 입은 사냥꾼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언데드들이 밀려오는 중에 제대로 된 치료 따위는 없었다. 크게 찢어진 상처라면 바늘과 실로 꿰매고, 뚫린 상처라면 붕대로 묶어버리는 것밖에 없었다.


게다가 치료실의 위생은 더욱이 개 같았다.


언데드의 썩은 피가 흘러들어와 악취가 뿜어져 나왔고, 사냥꾼들이 흘린 피와 침, 진흙 따위가 바닥에 깔려있었다. 치료를 담당한 사냥꾼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련하다는 이유로 앉혀져 있을 뿐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사냥꾼이 시끄럽게 굴자 입에 마약을 넣어주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들은 고통이 찾아오면 마약을 흡입하며 겨우겨우 버텼고, 피가 멎으면 다시 목책 위로 올라가 싸워야 했다.


한 사냥꾼이 피를 질질 흘리며 기어왔다. 진흙과 먼지, 괴물이 피, 오물 따위가 배에 있는 상처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마취도 없이 상처를 꿰맸다. 마취제마저 부족하다는 듯이 그들은 재빨리 수술을 이어나갔다.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오물 따위가 상처에 묻어있지만, 그것들을 씻어내기는커녕 수술로 인해 상처 안으로 더 많이 들어간다. 괴물의 피가 상처에 들어간다. 누군지 모르는 사냥꾼의 피가 상처로 스며든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목이 쉬어간다.


하지만 치료를 담당한 사냥꾼은 그를 제압하고 상처를 꿰맬 뿐이었다.


“끄아아아악!!”


발버둥을 친다.


“닥쳐, 이 새끼야. 좀 가만히 좀 있으라고!!”


발버둥 치는 사냥꾼을 제압하고 상처를 봉합한다. 수술용 실이 아닌 바느질용 실과 바늘로 상처를 꿰맨다. 아주 정상적인 치료실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이 빌어먹을 전쟁터에서는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수술이 끝나자 마약 조금과 붕대를 던져주고 다른 사냥꾼에게 달려갔다. 이젠 붕대를 묶어줄 시간도 부족한 듯 보였다.


치료를 담당한 사냥꾼의 옷가지가 점점 피로 물들었다.


* * *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갔다. 어째서인지 언데드들의 공격이 멈추었다. 이유는 모른다. 사냥꾼들은 이때라도 쉬자 싶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냥꾼들은 다 같이 일렁이는 푸른 달을 바라보았다. 치료를 담당한 사냥꾼들의 눈에는 달은 새하얗고 미동도 없었으나, 괴물들의 살점으로 뒤덮힌 사냥꾼들의 눈에는 달이 아름답게 일렁였다.


한 사냥꾼은 리치를 바라봤으나 리치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시발, 저 새끼 자는 거 아냐?”


“언데드가 자는 걸 봤냐? 리치가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아무리 봐도 자는 것 같은데.”


사냥꾼은 고개를 돌렸으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언데드는 잠 따위 자지 않는다. 하지만 리치는 마치 자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냥꾼들에게는 리치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치를 바라보던 사냥꾼은 이내 이상하다는 생각을 접었다.


애초에 이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저놈이 자는 것이 휴식을 더 많이 취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비명으로 가득하던 저곳도 지금은 조용해졌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올라오긴 하지만 상관없었다. 휴식의 달콤함에 취해 그리 심하기 느껴지지 않았다.


* * *


며칠간 공격이 계속되었다. 언데드의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다. 사냥꾼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사냥꾼들은 검을 휘둘렀고, 괴물들은 쓰러졌으며, 괴물들이 물어뜯었고, 사냥꾼이 바닥을 구른다.


난자당한 괴물의 사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이곳저곳으로 살점이 튀겼다.


한 사냥꾼이 잘린 오른팔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이를 바드득 갈며 겨우 일어섰고, 치료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치료실에서는 한 젊은 사냥꾼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시...시발, 치료도 제대로 안 하고, 내보내 달라고!!”


젊은 사냥꾼들부터, 명예를 위해 달려든 사냥꾼들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수천의 언데드가 몰려들고, 피와 살점이 낭자하는 곳에서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냥꾼들이 이상한 것이다.


“나.... 난 여기서 안 죽어!! 내가 죽으려고 사냥꾼이 된 줄 알아?!내가 원한 건 이딴 게 아니었다고!!”


오른팔이 잘린 사냥꾼은 뒤에서 그를 걷어찼다.


“그럼 뭘 바란 거냐. 죽을 위기에 처해도 괴물들을 죽이는 사람들을 사냥꾼이라 하는 거다. 괴물을 사냥하니 사냥꾼들이 명예로워 보였나? 명예로운 기사들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이 지랄 맞은 세상에 남은 건 개 같은 괴물들과 사냥꾼들밖에 없다.”


그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젊은 사냥꾼의 목에 박아넣었다. 목에 박힌 단검에서 피 거품이 일었다.


“사...살려...”


그는 바람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피가 들끓는 소리를 뚫고 살려달라고 외쳤다.


“네놈 같은 놈은 방해만 될 뿐이다. 봐라. 네가 몇 놈을 죽였는지. 이들이 죽일 수 있는 언데드를 생각하면 네놈의 목숨 값은 싼 거다.”


오른팔이 없는 사냥꾼은 그렇게 말하곤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발, 여기서 뒈지는 건가? 아직 죽여야 할 괴물들이 산더민데......’


정신이 흐릿해진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정신이 흐릿해진 이후에는 기억이 없다. 다른 사냥꾼들의 말에 의하면 언데드는 모두 죽고, 사냥꾼 100여 명만 살아남은 싸움이었다고 한다.


“뭐야, 영감. 끝이야?”


“그래.”


오른팔이 없는 사냥꾼이 그의 옆에 앉은 사냥꾼에게 대답했다.


“뭐, 별거 없네.”


“뭐, 그렇지.”


그런 이야기다.


사냥꾼이 괴물을 사냥한.


더할나위 없이 평범한.



9화


사냥꾼의 마을로 가는 것도 중요하다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 리치가 깨어났다는 것은 확실치 않지만, 카일이 헬하운드를 죽인 것에 대한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애초에 이 빌어먹을 세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냥꾼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고, 또한 어떠한 괴물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 이 세상이다.


헬하운드를 죽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일은 헬하운드의 양쪽 귀를 잘라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화염에 강하고, 질긴 헬하운드의 가죽을 가져다 사냥꾼의 대장장이나 귀족들에게 판다면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었으나 다친 몸으로 이 가죽을 가지고 갈 자신이 없다.


카일은 혀를 내차곤 자신의 본 소드를 찾아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잿가루가 날리는, 카일이 처음 헬하운드를 발견한 곳에 본 소드가 떨어져 있었다. 바위 위에 떨어졌지만 경이로운 강도를 가진 본 소드라 아무런 흠집도 남지 않았다. 카일은 본 소드를 잠시 살피다가 검집에 넣었다.


그러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피와 땀으로 엉킨 머리카락을 물에 담갔다. 피와 땀은 흐르는 시냇물로 인해 씻겨나갔으나 비릿한 피 냄새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에 맛봤던 비릿한 맛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다른 동물들의 피 맛이리라. 카일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 겨우 형태만 알아볼 수 있는 거적대기를 가죽끈 대신 갑옷에 덧댔다. 그러곤 갑옷을 입고는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벌써 나흘이나 흘렀다. 약속했던 일주일은 고작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촌장이 주민들에 대한 걱정 속에 살아갈 인물이 아니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겉보기와는 달리 걱정하고 있을 수 있으니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한 카일은 절뚝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나무에 칼로 낸 흠집들을 따라 걸으면 길을 잃지 않을 거란 안일한 생각을 하며.


* * *


헬하운드를 사냥한 지 벌써 닷새가 흘렀지만, 카일은 아직도 길을 헤매고 있다. 나무에 칼로 흠집을 내면 뭐하나 잘못 들어선 길에도 표시해놔서 더욱 헷갈리게 되었다. 더 이상 식량도 남아있지 않아 헬하운드의 귀라도 뜯어먹을까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의뢰의 증거품이야. 먹어선 안 되지.’


비싼 값을 받고 의뢰를 해결해 준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귀는 그 보상에 대한 증거품이고.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걸었다. 다행히도 전에 있던 시냇물에서 물을 떠 온 터라 식수는 부족하지 않았다. 동물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카일의 앞에 긴 뿔을 가진 사슴이 나타났다.


카일은 피어오르는 모닥불 위에 올려진 고기를 생각하며 사슴에게 낱붙이를 던졌다.


단검이 목을 관통한 탓에 사슴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한 번의 공격에 즉사했으므로 고통은 없었으리라. 그리 생각한 카일은 가장 먼저 사슴 가죽을 찢어 살과 가죽을 분리했다. 그러곤 사슴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전부 빼내었다.


카일은 자신이 먹을 정도의 양만 불에 직화로 올렸고, 나머지는 전부 훈연했다. 이렇게 해야 고기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이러한 생존 기술은 사냥꾼들의 기본 소양이다. 과거에는 생존 기술이 없어 죽는 사냥꾼이 허다했다. 널리고 널린 괴물들이 아닌 식량을 구하지 못하거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니. 사냥꾼에게 그보다 수치스럽고, 허망한 죽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초보 사냥꾼들은 사냥꾼의 마을 혹은 방랑하는 늙은 사냥꾼들에게 생존 기술을 배우곤 했다.


카일이 잘 익은 살점을 뜯으려고 할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카일에게 창을 들이댔다. 나무를 깎아 만든 조잡한 창이었으나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위협적인 무기일 것이다. 카일은 빠르게 칼을 뽑아들어 그의 창 자루를 잘라버렸다.


“사람이었네. 미안허이. 이 근방에 괴물들이 많이 나오는 탓에 괴물인 줄 알고 기습하려고 그랬지. 특히 불타는 괴물인 줄 알았어. 그놈이 이 주변을 불태워서 먹을 것이 사라지고 있거든.”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소리다.


고작 나무창 따위로 헬하운드를 잡겠다고? 옛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카일은 헬하운드를 사냥하기 전이었다면 ‘용기는 가상하나 도망치는 것이 좋을 거야’라고 충고를 했겠지만, 헬하운드는 이미 카일이 죽였다.


“이봐, 당신은 동굴에 지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인가?”


“그걸 어떻게 알았데.... 마을에선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안내 좀 부탁하지. 마을 촌 장의 의뢰를 받았거든”


“그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 따라오슈.”


카일은 사슴 뒷다리를 물어뜯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마을의 경비병들은 온몸이 피로 뒤덮인 카일을 보고 경계했으나 이내 그가 촌장이 의뢰를 부탁한 사냥꾼이라는 것을 깨닫고, 촌장의 집으로 안내했다.


카일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은 끼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 안에서 촌장은 여전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고기를 잡아 뜯으며 주위에 소스를 흩뿌리고 있었다. 그는 나오는 모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일주일 전쯤에 봤을 때보다 더 뚱뚱해진 것 같은 것 자신의 착각일까 생각 중인 카일에게 촌장은 자신의 앞에 앉으라 하였다.


카일은 그의 말대로 식탁에 앉았다. 촌장은 입속에 있는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식탁보 위는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음식물들로 더럽혀졌다. 그는 식탁에 떨어진 음식물 찌꺼기들을 아깝다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스테이크를 더 가지고 나오라고 호통을 쳤다.


주민들에 대한 걱정 속에 살고 있을 거란 카일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전히 사치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그래서 헬하운드는 죽였나?”


촌장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카일에게 물었다. 카일은 무표정으로 반문했다.


“보상은?”


“내 말에 먼저 대답해,”


촌장은 카일이 자신의 말에 반문한다는 것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것이 고기를 먹다가 자신의 혀를 씹어 얼굴을 찡그렸다는 것을 카일은 알지 못했다.


카일은 주머니에서 헬하운드의 귀를 내던졌다.


“헬하운드의 귀다. 이걸 본 적이나 있을지 의문이군.”


촌장은 웃으며 말했다.


“잘했다. 근데, 늦게 왔네.”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분명 일주일 안으로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벌써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나 지났네. 보상은 못 주겠어.”


카일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못 주겠다?”


“어, 못 주겠어.”


“그럴 땐 못 주겠어 보단 안주겠다가 더 어울리지 않나.”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난 안 줘. 집사, 이 새끼 끌어내!”


카일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위로 휙휙 던지며 말했다.


“난 내 돈을 떼어먹는 새끼들이 두 번째로 싫다.”


“그래? 그럼 첫 번째는?”


촌장은 그 두꺼운 손은 식탁 아래로 넣더니 이내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총이었다.


사냥꾼의 마을에서 늙은 사냥꾼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무기.


카일은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냥꾼들의 것들과 달리 녹이 슬어 있었다. 늙은 사냥꾼들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는 총이란 무기를 굉장히 귀중히 여겼다. 허나 녹이 슬어 있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거나, 점검한 적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촌장은 총을 사용하는 법을 모르거나 이미 망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알아차린 카일은 웃으며 말했다.


“괴물들과 타협한 놈들.”


카일은 그리 말하며 식탁을 밟고 촌장 가까이 다가가 목에 단검을 들이댔다. 촌장은 기겁을 하며 두 손을 뒤로 들었고, 총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카일은 단검을 목에 가까이 댔으며, 촌장의 두꺼운 목에서는 피가 망울망울 맺혔다.


“네놈의 조상들이 사냥꾼의 돈을 떼어먹지 말라는 건 안 가르쳤나 보군.”


촌장은 어린아이같이 눈물을 쏟으며 소리쳤다.


“살려줘!! 경비병!! 살려달라고!!”


촌장의 비명을 들은 경비병들은 문을 벌컥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으나 촌장의 목에 칼을 들이댄 카일을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움직이면 저 사냥꾼이 촌장님을 죽일 수 있다. 그리 판단한 경비대장은 가만히 멈춰 섰으나, 촌장은 울부짖었다.


“빠....빨리 날 구하라고, 이 새끼들아!!! 빨리!!”


촌장은 울부짖었으나 경비병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카일은 촌장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서 보상은.”


“드...드릴게요. 드릴 테니 제발....”


촌장은 애원하며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보석을 전부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카일은 그 중 의뢰금으로 준다고 했던 목걸이만 챙긴 채로 촌장을 인질 삼아 마을 밖으로 나갔다.


카일은 그를 죽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새된 비명을 지르던 주민들을 생각하며 촌장을 마을 안으로 걷어찼다.


‘다시는 이곳에 들르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 숲을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카일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들이 있다.


첫 번째로는 괴물들과 타협한 놈들. 즉 괴물 추종자들이다. 이것들은 인간인 걸 포기한 채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괴물들, 특히 지성이 있는 엘프나 오크와 같은 것들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다.


둘째로는 자신의 의뢰금을 떼먹은 새끼들이다.


카일은 돈 욕심 따위는 별로 없다. 허나 돈이 있어야 무기를 사고, 그 무기로 괴물을 잡을 수 있으니, 의뢰를 받아 돈을 벌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돈을 떼먹은 놈들에게는 무조건 돈을 받아내었다.


물론 사냥꾼의 돈을 떼먹는 이들은 별로 없으나 이 마을의 촌장처럼 멍청하거나, 대담한 몇몇이 카일의 돈을 떼먹곤 했다. 이 촌장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경비병들이 있어서 목에 자그마한 생채기밖에 나지 않았으니.


칼날들이 부딪쳐 찰그락거리는 소리에 목걸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추가되었다.


아마 규모가 큰 마을에서 팔면 꽤나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이다.


카일은 촌장이 떨어트린 총을 생각했다.


‘어차피 녹도 많이 슬어 있었고, 사냥꾼들이 쏠 때 들리던 ‘철컥’거리는 소리도 없었어. 그럼 사용할 수 없는 총이겠지. 무게도 많이 안 나가 보이던데, 가져온다 한들 부피만 차지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겠군.’


아무런 쓸모도 없었을거라 생각하며 카일은 미로 같은 숲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0화


카일은 간신히 숲을 벗어났다. 워낙 미로 같은 숲인지라 벗어나는데 1주가량 걸렸지만, 동물들이 많아 식량이 떨어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울창하던 숲은 사라지고 다시 황량한 대지가 이어졌다. 간간이 나무와 풀, 동물 그리고 괴물 따위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굳이 신경을 쓰진 않았다.


“캬하하하하!!”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비명 소리인지, 아니면 희열에 찬 소리인지는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 뒤로 기괴하게 일그러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시대에든 미친놈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강대하던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도 미친놈들은 존재했다만, 이런 지랄 맞은 세상이 된 후에는 그런 놈들은 더욱 활개를 치고 다닌다. 카일이 그것을 깨달은 건 사냥꾼이 된 이후였다.


무리를 짓고 다니며 침략과 약탈을 일삼으며, 사냥꾼들처럼 황량한 세상을 방랑하는 것들.


그들에게 사냥꾼과 같은 호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인종. 살인마. 약탈자. 노상강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사람들은 그놈들이리란 걸 알아차리니까.


어쩌면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놈들이다. 그놈들은 살육을 좋아한다. 특히 괴물을 죽이는 것보다는 같은 인간을 살해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 같은 놈들이다. 놈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심지어 시체까지도.


그놈들은 시체를 먹는다.


괴물의 사체를 먹는 것은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다. 사냥꾼들도 종종 식량이 떨어질 때 괴물을 먹으니까. 허나 그놈들은 인간의 시체를 먹는다.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놈들이란 표현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그놈들은 자신이 죽인 인간의 두개골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괴물들도 괴물을 먹는다. 허나 언데드라면 모를까, 적어도 동족을 먹는다는 괴물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사람이지만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 스스로 괴물이 되어 괴물처럼 살겠다는 이들이다.


저 멀리 수평선에 가까이 있던 점같이 작은 물체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카일은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살인마, 식인종, 약탈자 등 그들에게 붙여지는 명칭은 다양하다만 카일은 그들은 살육자들이라 지칭해왔다.


그놈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도 살육이고, 또한 가장 좋아하는 것도 살육이다. 마치 맨드레이크를 복용한 것처럼, 수많은 살육을 하고 다닌다. 아니 어쩌면 맨드레이크에 중독된 걸지도 모른다. 사냥꾼들은 그 특유의 부작용(맨드레이크에 중독된다면 육체 능력 향상은 없이 정신만을 헤집어 평범한 육체를 가진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다.) 때문에 맨드레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버려진 맨드레이크가 살육자들의 손에 들어간 걸지도 모른다.


뭐, 확실치는 않다만, 그들의 정신상태를 본다면 맨드레이크에 중독되었을 확률이 높다. 조금씩 사용한다면 모를까, 계속해서 맨드레이크를 흡입하다 보면 결국 맨드레이크에 중독되어, 나중엔 맨드레이크를 복용하지 않더라도 미치광이가 되기에 십상이다.


저런 미치광이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어쩌면 저 흉포한 괴물을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로 시작한 한 살육자의 기괴한 망상은 살육자들에게 빠른 발을 선물해주었다.


괴물들을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살육자를 본 많은 방랑자들이 알 수 있었다. 허나 괴물들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건 살육자들뿐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면 괴물을 증오의 대상 혹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 뿐, 그들을 타고 다닌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뿐더러 그들과 마주할 용기조차 없다.


게다가 미친 듯이 날뛰는 괴물들의 입에 고삐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똑같이 미쳐있는 살육자들뿐이다.


몇몇 사냥꾼들도 괴물들을 이용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마침내 그들의 등에 올라탔지만,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이기지 못한 채 모가지에 칼을 박아넣었다. 게다가 괴물들이 내는 괴음은 주위의 시선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그 괴음으로 인해서 괴물들이 몰려오면 사냥꾼들에게 있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만,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사냥꾼은 사냥을 해야 한다. 사냥의 기본 원칙은 기습이다.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그것이 사냥꾼의 방식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 그것이 사냥꾼의 역할이다.


하지만 괴물들을 타고 다닌다면 그들이 내는 괴음에 괴물들이 몰려온다. 한두 마리 정도 꼬인다면 모를까, 수십 마리의 괴물이 몰려든다면 꽤나 위험하다. 그렇기에 사냥꾼들은 살육자들처럼 괴물들을 타고 다니지 않는다. 기습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냥꾼들에게 있어 괴물들이 몰린다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물론 괴물들을 타고 다니는 살육자들에게도 괴물이 꼬이지만, 그들은 괴물들이 꼬이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홀로 다니는 사냥꾼들과 달리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몰려오는 괴물들을 죽여버린다. 그 과정에서 동료, 혹은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희열에 찬 괴성을 내지른다.


카일은 조용히 숨어 괴물을 타고 지나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괴물들의 꼬리에는 인간들이 매달려 있었으며, 그들은 살가죽이 바닥에 쓸려나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죽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겠지만, 미세하게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카일은 죽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고기를 으적거렸다. 아마 사람고기이리라.


괴물들의 꼬리에 사람들을 매단 것을 본다면, 아마 인간 사냥을 끝마친 뒤에 했던 파티에서 남은 사람들일 것이다. 비상식량으로 쓸려고 살려둔 것이겠지. 사람들의 옷이 많이 해져있는 걸 보면 적어도 이틀 정도는 되었겠군.


사람들도 신선한 고기를 원하듯이, 살육자들도 신선한 인간 고기를 원했다.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카일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살육자들을 몇 번 죽여본 적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저런 미치광이들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치광이다. 그 인간에 대한 집념과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소름 끼치는 집착은 살인귀를 넘어설 정도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무장을 하고 있었고, 괴물들까지 데리고 있었다. 죽이기엔 까다로운 상대다.


그리 판단한 카일은 그들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허나 그들은 주위에서 멈춰 섰다. 고기를 으적거린 것을 본다면 아마 배가 고프기 때문이 아닐까 판단하였다. 게다가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어쩌면 살육자들은 이곳에서 야영을 할지도 모른다.


살육자들이 저곳에 있는 이상 편히 쉴 수 없다. 저놈들이 이끌고 다니는 괴물들이 언제 자신의 냄새를 맡아 괴음을 내질러 내가 이 주위에 있다는 걸 들킬지 모른다.


그리 생각한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주간의 고된 행군 끝에 지쳐있는 카일이었다. 그렇기에 하루 정도는 편히 쉬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처참하게 으깨어져 흙탕물 속으로 던져졌다.


카일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냥 저들이 잠든 사이에 도망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생각을 돌렸다. 하루 정도야 봐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부근에 마을이 하나 더 있을 뿐만 아니라, 저것들의 눈을 피해 도망가기도 힘들 테니까.


그래, 하루 정도는 더 불편해지기로 하지.


카일은 풀숲에 몸을 숨긴 채로 살육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한 살육자가 킬킬거리며 줄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칼을 핥는 시늉을 하며 묶인 사람들을 보고 웃어댔다. 그리고 이내 칼을 높게 치켜들어 그들을 죽이려는 찰나, 사람 두개골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살육자가 그를 제지했다.


인상착의로 볼 때 아마 저놈이 대장이리라.


살육자들의 대장을 찾아내는 것은 간단하다.


해골을 주렁주렁 달고 있거나, 커다란 덩치를 가진 괴물을 타고 다닌다면, 아마 그놈이 살육자들의 대장일 가능성이 높다.


살육자가 움직일 때마다 두개골이 부딪혀 달그락 소리를 낸다. 칼을 치켜드는 것보다, 달그락거리는 두개골이 더욱 무서웠는지, 묶여있는 사람들을 덜덜거렸다. 한 남자는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살육자들은 크게 웃어댔다. 그 웃음 소리는 200m가량 떨어져 있는 카일의 귀에 들어갈 정도였다.


“큭큭큭큭. 형님. 이 새끼들 지렸는데요.”


“푸하하하. 사내새끼가 오줌을 지리고 말이야. 앙?! 안 부끄럽냐? 느그 애미가 길거리에 오줌싸라고 가르치든?”


“형님. 이 새끼가 싼 오줌 다 처먹으라 할까요?”


“그래, 그거 좋다. 니 새끼 몸에서 나온 거니까, 네놈이 처리해야지?”


살육자들의 대장은 그리 말하며 오줌을 지린 남자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오줌의 지린내가 그의 코끝을 찔렀다. 그 냄새가 역겨워 토악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입이 바닥에 처박혀 있어 토사물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대장은 바닥에 처박힌 남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는 참았던 토사물을 밖으로 내뱉었다.


질퍽한 토사물들이 바닥에 쏟아졌고, 그것을 본 살육자들의 대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그를 발로 걷어찼다.


“이 새끼가!!”


계속해서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형님, 이러다 죽겠어요.”


“그럼 더 좋지. 오늘 이 새끼 가지고 파티나 하자고. 아 맞다. 니들 그거 아냐?”


“뭘요?”


“고기는 때릴수록 맛있어 진다는 거.”


그는 킥킥거리며 남자의 복부를 가격했다.


대장이 그리 말하자, 다른 살육자들도 연달아 남자를 밟았다.


“아니,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여기서 더 부드러워지면 어떡하라고. 다른 새끼들도 때려죽일 수밖에 없잖아. 형님, 그런 걸 알려주면 고기 먹을 때 힘들어지잖아요.”


“원래 일하고 먹는 고기가 가장 맛있는 법이야, 이 새끼들아.”


그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졌지만, 살육들은 연신 그의 배와 등, 다리 따위를 발로 걷어찼다.


“형님, 이 새끼 뒤졌는데요?”


“그래? 그럼 가죽 싹 벗겨 내고, 불에 구워. 아, 맞다. 피는 따로 빼놓고. 술이 떨어졌는데, 대신 마셔야 하지 않겠냐.”


“여윽시, 형님이십니다. 뭐하냐 이 새끼들아, 빨리빨리 불 위에 올리지 않고.”


살육자들은 죽은 남자가 묶여있는 줄을 단검으로 끊었다. 그들은 남자의 배를 갈라 내장은 전부 괴물들에게 던져주었고, 피부를 전부 벗겨 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전부 술통에 담았으며, 불에 올리기 전에 시체를 해체하는 놈들이 몰래 살점을 집어먹기도 했다.


살육과 도축, 피의 축제가 벌어졌다. 살육자들은 술 대신에 피에 취하며, 통돼지 바비큐처럼 돌아가는 남자의 사체를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펼치는 듯싶었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이 얼마나 맛있는 고기를 먹었는지였다. 물론 그 고기는 당연하게도 사람고기였다.


다 익지도 않았지만, 살점을 먼저 뜯어먹는 살육자 때문에 칼부림이 일어날 뻔했지만, 대장의 만류 덕에 축제에 사용될 고기가 한 덩어리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리고 피 냄새는 주위의 괴물들을 불러모으기에 적합했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퍼져 나갔다.



11화


살육자들이 피운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검은 연기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며 검은 구름을 생성하는듯싶었다. 그리고 모닥불 주위를 배회하는 살육자들의 등 뒤로 길고 짙은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타오르는 모닥불(평범한 모닥불이라 칭하기엔 불길의 세기가 세다.) 주위를 돌고 있다. 마치 신에게 제사를 지내듯이 이상한 소리들을 지르며 모닥불을 도는 그들의 얼굴에는 광기가 맴돌고 있었다. 모닥불 때문에 노예들은 살육자들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는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자신들도 저 불 위에 올라가 있는 한때 사람이었던 고깃덩이와 같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들만에 의식을 치르던 살육자들은 그 울음소리가 의식에 방해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두개골을 자랑하듯이 온몸에 달고 모닥불을 돌던 살육자는 그 아이의 얼굴을 후려쳤다. 아이의 연약한 몸뚱어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입술에는 피가 묻어나왔고, 아이의 입에서 빠지지 않고 계속 고통을 주던 썩은 어금니가 빠져나왔다.


어금니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아이는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렸다.


여자건, 아이던 간에 살육자들은 무자비하게 죽인다. 그것을 모르고 있던 아이는 다시 의식을 치르러 가는 살육자의 심기를 건들었다.


그러자 살육자는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트리더니 외쳤다.


“오, 신이시여. 어린 양은 한 마리 더 보내겠습니다.”


그러더니 밧줄에 온몸이 칭칭 감겨있는 아이의 멱살을 잡아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던졌다. 삽시간에 아이의 옷에 타오르고, 몸뚱어리에 불이 옮겨붙었다. 팔과 다리를 구속하고 있던 밧줄도 옷과 함께 불타 몸이 자유로워졌지만, 아이의 약한 피부는 점점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울부짖었다.


“안돼!!”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아이를 지옥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구덩이 속에서 꺼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온몸을 구속하고 있는 밧줄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는 몸이 불타는 채로 불 밖으로 나오려고 시도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살육자들의 발 앞에 가로막혔다.


그들은 나오려는 아이를 발로 차 불구덩이 속으로 다시 돌려 넣었다. 그런 잔혹한 짓을 몇 번 반복하자, 아이는 더 이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아이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도 멈췄다. 아이의 엄마가 목을 찢어가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만이 생생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살육자들은 시끄럽게 울부짖은 여자의 배를 걷어찬 뒤 자신들만의 의식에 빠져들었다.


얼핏 본다면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몇몇 종교인들(멸망한 세계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에 살아 남아있는 종교가 있다.)은 제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전 감사 기도를 올리니까. 허나 이들의 의식은 그것과 사뭇 달랐다.


‘내일은 더 맛있는 인간을 잡을 수 있게 하소서.’ 따위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몇몇은 살육자들이 종교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의 행동은 신을 믿는다기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이를테면 카일과 같은 사냥꾼들, 혹은 다른 무력이 있는 집단에게 우리는 이만큼 미쳐있으니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따위의 경고를 남기는 것 같았다. 적어도 카일은 그리 생각하고 있다.


의식이 전부 끝났는지, 살육자들은 모닥불의 위쪽에서 은은한 불꽃으로 굽던 고기를 물어뜯었다. 그것은 역시나 사람고기였고, 그들은 그 역겨운 살점을 물어뜯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이라면, 마음속에 자그마한 인간성이 남아있다면, 이렇게 사람고기를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이 먹어댈 수가 없다. 이놈들은 괴물이다. 아니..... 괴물보다 더한 놈이다.


그리 생각하며 한 남자가 부들거렸다. 허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온몸이 구속되어있고, 아무런 무장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런 미친놈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무력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저 힘없이 부들거리며 목 끝까지 차오른 욕지거리를 삼킬 뿐이었다. 그의 입술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루카스는 메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엄마, 괜찮아?”


그는 옆에 묶여있는 노파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할머니? 자는 거지? 그치?”


그는 자신이 살육자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를 냈기에 엄마가 못 들은 것일 거라며, 죽지 않았을 거라며 발로 자신의 엄마를 툭툭 건드렸다. 허나 늙은 어미의 차디찬 몸뚱어리는 그의 건드림에 따라 흔들리기만 할 뿐, 다시는 깨어나는 일이 없었다.


건장한 남성조차도 바닥에 온몸이 부딪혀 죽을 맛이다. 그런데 움직이는 것도 벅찬 노인은 어떻겠는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


루카스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울분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울부짖는다면, 저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놈들이 자신을 죽일 것을 알기에, 소리치고 싶어도, 소리칠 수 없었다.


* * *


카일은 그리 멀지 않은 풀숲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의식을 치르는 것부터 아이를 불구덩이에 집어넣은 것까지.


하지만 카일은 조용히 잠을 청할 뿐이었다.


‘미친놈들을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은 없지.’


만들지 않아도 될 적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 살육자들이 자신에게 그리 큰 피해를 끼치지 않았기에 카일은 시끄럽게 고기를 물어뜯는 그들을 무시한 채 귀를 막았다. 소음이 있다면 숙면을 취하지 못하리라.


* * *


살육자들은 인육을 물어뜯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 원래 근육 많은 것들을 벨 때 손맛이 가장 좋은 거야.”


그들은 킥킥거리며 마을을 습격할 때의 이야기를 해댔다.


“경비 대장이란 놈이 나서더니 한 번에 뒤지는 거야. 그 새끼 진짜 경비 대장이 맞나 싶어. 근데 시발, 덩치는 존나게 큰데, 다 질긴 근육들뿐이라 먹을 것도 없었어. 그래서 내가 두개골만 챙겨왔지.”


살육자들의 대장은 어깨에 달려있는 두개골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 놈들은 모두 버리고 왔지 않습니까. 헤헤.”


“그래, 잘했어. 근데, 저 늙어 빠진 새끼는 왜 데려왔냐. 늙은 것들도 질겨서 못 먹어.”


“저거, 아주 독한 년이에요. 제가 또 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살려준다 해도 안 꺼지고, 지 아들이랑 같이 간다네요. 그래서 과녁으로 쓸려고 가져왔죠. 아까 죽인 꼬맹이도 과녁으로 쓸려고 가져온 건데, 죽여서 못쓰게 됐네요.”


“큭큭, 아직도 과녁 놀이하는 거냐? 그러다 너 지옥 간다.”


“에이, 저처럼 착한 놈이 또 어디 있다고....”


킥킥대면서도 살벌한 대화를 나누는 살육자들을 보며 잡혀있는 노예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야, 술 좀 가져와 봐라.”


“아이고, 그럼요. 여기 있습니다.”


한 살육자가 커다란 양동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가져왔다. 양동이 안에는 시뻘건 피가 잔뜩 들어있었다. 살육자들의 대장은 끈적이는 피를 컵에 담아 들이켰다. 비린내가 그의 입속을 돌아다닌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거부감에 바로 뱉었겠지만, 이들은 달랐다.


마치 사람들이 술에 취하듯이 살육자들은 피에 취했다.


“이거 왜 이렇게 싱겁냐? 설마 여기에 아무것도 안 넣은 거냐?.”


“그럴 줄 알고, 이미 준비해놨슴돠.”


동철이란 살육자는 품속에서 마약을 꺼내 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들은 술에는 별 감흥이 없다. 살육자들의 관심은 피와 마약, 그리고 인육에만 쏠려있다.


피비린내가 역겹지도 않은지, 살육자들의 대장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피를 들이켰다. 마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지 그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캬하하하하. 기분 째지네. 캬하하하.”


그러자 다른 살육자들도 피를 들이켰다.


“오늘 술맛 죽이네.”


“크으, 이 새끼 피 존나 달콤한데.”


“씨발, 벌써 눈앞이 흔들린다.”


욕지거리가 섞인 말들을 내뱉으며, 살육자들은 인육과 피를 들이켰다.


루카스는 그런 그들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면서 사람을 먹어?! 시발 새끼들. 내가 다 죽여버릴 거야. 시발.’


그는 마음속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꽉 쥔 주먹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으드득거리며 이를 갈았다.


살육자들의 대장은 피를 들이키며 자신들이 잡아 온 식량이 자신들에게 눈을 부라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컵에 담겨 있는 피를 전부 들이키고는 불구덩이에서 조금씩 익어가던 살점을 잡아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왜, 너도 먹고 싶냐?”


대장은 루카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그의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 이 고기보고 입맛 다신다.”


그와 다른 살육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야, 이거 먹고 싶으면 처먹어라.”


대장은 루카스의 입에 인육을 욱여넣었다. 루카스가 먹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자, 대장은 그의 입을 억지로 벌려 입안에 넣었다.


“이 새끼 먹는다. 먹어. 완전 쓰레기 새끼 아녀. 어떻게 자기 마을 사람들을 먹냐. 킥킥.”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카스는 입안에 있던 인육을 모조리 토해냈다. 혹시 넘어갔을 작은 살점까지 내뱉기 위해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그 모습을 본 대장은 분노하며 루카스의 배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 새끼가. 고기 아까운 줄 모르고.”


그는 루카스의 얼굴을 바닥에 떨어진 고기에 문댔다.


“먹을 거 아까운 줄 모르는 애새끼들은 이렇게 가르쳐야지. 니가 다 먹어야 한다.”


모래에 얼굴이 짓눌린다. 작은 모래 알갱이가 눈으로 들어가 고통을 유발한다. 입이 바닥에 처박혀 숨을 쉬기가 어렵다. 입을 연다면 숨을 쉬기 편하겠지만, 내 입 앞에는 인육이 있다. 난 절대로 이걸 입속으로 들이지 않겠어. 저 새끼들처럼 되지 않겠어.


그리 생각하며 루카스는 살육자들의 대장을 노려보았다.


머리를 바닥에 아무리 처박아도 고기를 먹지 않자 대장은 고기를 주워 루카스의 입안에 집어넣었다. 루카스는 삼키지 않기 위해 인육을 볼 한쪽에 몰아넣었지만, 대장은 루카스의 입에 손을 넣어 목구멍 너머로 인육을 넘기려고 하였다. 대장의 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오자 루카스는 입을 최대한 세게 닫았다.


루카스의 이빨이 대장의 손가락을 파고든다.


“이 새끼가.”


살육자들의 대장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마약에 취한 그에게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장은 루카스의 안면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코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코뼈가 부러진 듯 루카스의 코는 휘어있었다.


“끄아아악!”


루카스는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그럼에도 살육자들은 루카스의 배를 걷어찼다.


“이 시발 새끼가.”


퍽. 퍽. 퍽.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루카스는 기절한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자 대장은 루카스의 입을 벌려 인육을 목구멍 너머로 집어넣었다.


“킥킥. 존나 맛있을 거다.”


살육자들의 대장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피를 들이켰다.


* * *


피비린내가 한층 짙어졌다. 그리고 그 냄새를 맡는 이들도 늘어났다. 짙어진 피 냄새는 괴물들을 꼬이게 하기 충분했고, 그들이 내지르는 괴음이 살육자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연장 챙기자, 새끼들아.”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킥킥. 입 몇 개가 줄겠구먼.”



12화


미친놈들의 세상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방랑자들은 전부 죽고 미친놈들만이 세상을 활보하는 그런 세상이다. 그리고 미친놈들 중 가장 미친놈을 고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살육자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살육자들은 미쳐있는 놈들이다.


괴물과의 싸움도, 자신의 죽음도 그저 하나의 놀이라 생각하는 살육자들은 인간임에도 겁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괴물들이 몰려오는 것을 본 살육자들은 저마다 무기를 챙겼다. 고철 따위를 갈아 만든 조잡한 칼이었으나 살육자들은 그런 것에 개념치 않아 했다. 무기가 부러진다 한들 고철로 만든 것이기에 다시 제조하면 될뿐더러 그들의 싸움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빨리 죽거나 빨리 죽이거나. 이 둘 중 하나였다. 게다가 살육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칼이나 창, 길들인 괴물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의 이빨과 손톱. 소름 끼칠 정도로 집요한 집착이 살육자들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무기가 부러지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괴물들을 도륙해간다.


살육자들은 이런 놈들이다. 아무런 무기조차 갖추지 않고 괴물들과 싸우는 놈들. 어쩌면 사냥꾼들보다는 살육자들이 괴물들을 죽이기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개개인은 사냥꾼보다 강하지 않지만, 그들의 미쳐버린 정신은 쉽게 바스라지는 정신을 가진 사냥꾼들보다 괴물들을 사냥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며칠 동안이나 똥물에 구른 멧돼지 같은 얼굴을 한 살육자들의 대장이 인간의 두개골을 깎아 만든 투구를 뒤집어썼다.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 줄 순 없지만, 그가 투구를 뒤집어쓴 것은 단지 멋을 위함이었다. 잡혀있는 노예들에게는 그저 미친놈으로 밖에 안 보이겠지만.


그는 인간의 갈비뼈로 만든 갑옷도 입었다. 그의 뒤틀려진 정신상태를 잘 표현한 갑옷이었다. 인간의 뼈로 온몸을 감싼 살육자들의 대장은 칼을 뽑아들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루카스는 살육자들의 대장이 뽑아드는 검 또한 인골(人骨)로 만든 검이리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날이 예리하게 서 있는 강철 검이었다. 아마 경비대장에게서 뺏은 검이리라.


피비린내를 맡고 모여든 괴물들이 사냥을 시작했다.


그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대장을 칼을 휘둘렀다. 대략 3~40마리의 괴물들이 동시에 살육자들에게 달려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


이 부근에는 그리 강한 괴물들이 없었다. 사냥꾼들이라면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죽일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살육자들에게 잡힌 사람들에게는 불행이겠지만, 살육자들에게는 행운이었다.


몇몇 살육자들이 몰려드는 괴물들을 보더니 커다란 거목에 묶여 있던 괴물들을 풀어주었다. 살육자들이 길들인 3마리의 괴물은 살육자들을 먹어치우기 위해 몰려든 괴물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살육자는 거목에 묶인 괴물들을 풀어준 뒤 조잡한 칼날을 자신을 공격하는 괴물을 향해 휘둘렀다. 불퉁한 칼날을 가진 검은 괴물의 가죽을 쉽게 찢지 못했다. 얕은 열상이 생겼다. 상처에서 핏방울이 새어 나왔지만, 괴물의 가죽을 약간 적실 뿐, 그리 많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괴물은 분노한 듯 살육자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스프링처럼 순식간에 살육자를 향해 뛰어든 괴물은 어정쩡한 자세로 칼을 들고 있던 살육자를 덮쳤다. 괴물의 발톱이 살육자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괴물은 넘어진 살육자의 위로 올라타 목을 물어뜯으려 하였으나 살육자는 괴물의 발을 물어뜯었다.


비릿한 향이 살육자의 입안에 맴돈다.


살육자는 괴물의 피를 바로 뱉어냈다. 인간의 살점과 피였다면 삼켰겠지만, 괴물의 피에는 비릿한 향과 더불어 특유의 썩은 내가 동반되어있어 살육자는 괴물의 피와 살점을 바닥에 뱉어냈다.


“와, 시발 피 맛 좆 같네. 내가 이래서 괴물을 안 먹는 거야.”


살육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괴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괴물은 품속으로 파고든 살육자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발톱이 가슴에 긴 상처를 남긴다. 허나 살육자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조잡한 칼을 괴물의 배에 박아넣었다.


칼날을 깊숙이 박아넣기 위해 힘을 주고 밀어 넣으니 칼날이 뚝 하고 부러졌다. 허나 상관없었다.


뱃가죽은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약하다. 배보다는 등이나 가슴 쪽이 공격을 당할 확률이 높기에 괴물들은 그쪽 가죽을 질기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이했다. 그래서 살육자들의 무기로도 쉽게 뱃가죽에 자상을 남길 수 있었다.


끈적거리는 피가 부러진 칼날을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살육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배에 박혀있는 검을 더욱 깊숙이 집어넣어 내장을 헤집었다. 칼날이 짧아서 그런가 내장이 썰리는 느낌이 손끝부터 올라왔다.


살육자의 입에 미소가 띄워진다.


괴물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살육자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살점이 뜯기고 살육자는 자신의 어깨뼈를 볼 수 있었다. 허나 고통에 찬 신음 소리는 들어볼 수 없었고, 오히려 그 고통을 즐긴다는 듯이 웃어댔다.


살육자는 똑같이 괴물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억센 가죽으로 인해 살육자의 이빨 몇 개는 흔들렸으나, 평소에도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이빨을 날카롭게 갈아놓는 살육자이기에 괴물의 가죽을 찢을 수 있었다.


괴물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사이 살육자는 괴물의 두 눈에 손가락을 박았다. 괴물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으며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괴물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발을 헛디뎠다. 살육자는 앞으로 고꾸라진 괴물의 위에 올라타 코를 물어뜯었다.


어린아이가 본다면 누가 사람이고 누가 괴물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살육자들은 더럽게 싸워댔다. 살육자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 더러웠다. 쏟아지는 피를 뒤집어쓰고, 발을 물어뜯으며, 살점을 으적거린다. 오물들이 여기저기에 튀겨있어도, 괴물들의 배나 입에서 구역질나는 그들의 체액에 쏟아져도 아무렇지 않아 하며 심지어 그 체액을 삼킬 때도 있었다.


살육자는 배에 있는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 부러진 칼날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서 괴물의 턱에 박아넣었다. 괴물은 짧은 단말마 같은 괴음을 내지르며 부들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 광경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토악질을 해대며 버둥거렸다. ‘저 괴물들이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도망가야 해’라고 말해며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끊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양팔이 묶인 상태에서 밧줄을 끊고 도망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버둥거리고 있던 찰나 늑대같이 생긴 괴물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르릉거리며 아가리를 벌리던 괴물은 피를 쏟아냈다.


한 살육자가 그 괴물의 등에 칼날을 박아넣었다. 그 살육자는 어깨뼈를 훤히 들어내며 웃고 있었다. 부러진 칼날이 괴물의 등을 파고들었고, 늑대처럼 생긴 괴물은 외형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도 늑대와 닮았는지, 재빠르게 몸을 틀어 이어지는 살육자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늑대는 살육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살육자의 어깨는 무리가 왔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괴물은 살육자의 배를 찢어버렸고, 내장을 으적거렸다. 살육자는 부들거리며 죽었지만,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죽음마저도 재미있다는 듯이, 자신은 이마저도 좋다는 듯이 웃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기괴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토악질을 하거나 도망칠 것이 뻔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장이 전부 파해 처져 죽은 시체가 웃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괴물은 살육자의 사체를 완전히 헤집어 놓은 뒤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역겨운 아가리를 벌리며 사람들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 강철 검이 괴물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이 시발 새끼가 내 식량을 노려?”


살육자들의 대장이 괴물을 막아섰다. 눈이 찔린 괴물은 괴이한 소리를 내뱉더니 대장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괴물의 오른쪽으로 돌아 심장에 칼을 박아넣었다. 실명된 오른쪽 눈으로는 살육자를 쫓을 수 없었고, 괴물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묶여 있는 사람들의 머리에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살육자가 ‘식량’이라 말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죽였고, 마을을 몰살 냈던 살육자를 보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서 있던 사람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맥아리 없이 주저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숨이 가빠진다. 저 살육자가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금 죽일 거야.’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살육자들의 대장은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식량을 건드린 괴물들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그는 이를 바드득 갈며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그들에게 달려가 괴물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 * *


30구의 괴물들의 사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살육자들의 시체도 몇 구 보인다.


“이번 싸움에서 몇 명이나 뒤졌냐?”


“한 5명 정도 뒤진 것 같은데요.”


“내 식량들 중에선 뒤진 놈 없지?”


“형님께서 지키신 덕에 한 놈도 빠짐없이 살았습니다. 킥킥. 하여간 먹을 것엔 예민하시다니까.”


“식량이 5개나 더 생겼네. 우리 귀여운 괴물들에게 줄 괴물 시체 몇 개만 제외하고 전부 버려라. 괴물 피는 썩은 내가 너무 난다. 먹을 게 못돼.”


살육자들의 대장은 코를 부여잡는 시늉을 하며 그의 옆에 있던 살육자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는 다른 살육자들에게 명령했고, 자신은 괴물 사체 두 구를 들고 괴물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괴물들을 거목에 묶어 놓은 뒤 먹이로 괴물 사체를 던져주었다. 두 괴물을 사체를 파먹었고, 그는 역겨운 괴물의 피비린내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한 살육자가 허리가 양단된 괴물의 상체와 하체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썩은내가 나는 이 사체와 하룻밤 동거를 하는 것이 역겹기에 괴물들을 멀리 버리기 위함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내가 왜 이딴 잡일을 도맡아서 해야 하는지 불평불만을 내비치며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때 그의 옆에 있는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육자는 괴물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소리가 났던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오고 그는 소리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소리가 났던 곳을 풀숲을 뒤적거리자 작은 괴물 한 마리가 나타났다.


“뭐여, 이 새끼 때문이었어?”


그는 그 괴물을 밟아 죽였다. 그리고 몸을 틀었을 때 자신 앞에 있는 한 사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허리춤에 두 개의 검집이 있었고, 오른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다. 그는 살육자의 입을 막아 신음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였고, 소리가 차단되자 목에 검을 찔러 넣어 살육자를 암살하였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의 끝자락을 간신히 부여잡은 살육자는 그 사내가 내뱉는 말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살육자들이랑은 안 싸우는 것이 상책인데..... 어쩔 수 없군. 공격해 온다면 싸울 수밖에. 저 살육자 놈들이 이놈을 찾으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용병인가? 아니, 혼자 다니는 걸 보니 사냥꾼인가? 무슨 일로 이곳에 숨어있던 거지? 설마 우리를 암살하려고? 의뢰를 받았나?’ 따위의 생각들이 살육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3화


미친놈들과는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놈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예상할 수 없을뿐더러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살육자들의 변칙적인 공격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사냥꾼들과 용병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정보이긴 하지만, 그 정보를 안다고 해서 살육자들과의 싸움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고통을 느끼지 않고(고통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조차도 그저 놀이라 생각하는 살육자들은 살인귀와 비슷할 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살인귀보다는 살육자가 더 까다로운 존재일 지도 모른다. 살인귀는 그저 본능에 이끌려 사람들을 죽이는 괴물이라면, 살육자들은 생각이란 걸 하니까.


물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중 대부분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어떻게 해야지 괴물을 잘 조종할 수 있는지, 인육은 무슨 맛이 날지 따위의 내용을 기록한 ‘살육자의 지침서’(살육자들 사이에서만 내려오고, 평범한 사람들은 불길하다며 불태워버리는 책이다.)가 그들의 지식의 정수라는 것을 본다면 살육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육자들의 머릿속 상당수가 고기, 피, 살육 따위로 가득 차 있으니 구태여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허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중에서도 위험한 지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살육자를 능할 인물이 없다는 것은 방랑자들 사이에 자명하게 퍼진 소문이다.


수없이 많은 인간을 도륙해온 살육자들은 사냥꾼이 괴물을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인간의 어느 부분을 찌르고 베야 고통스러운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살육자들은 죽이기에 꽤나 까다로운 놈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살육자들은 방금 전 괴물들과의 싸움을 통해 지쳐있다는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죽은 이도 몇 있을 것이고, 또한 상당수의 인원이 다쳐 있을 것이다. 맞붙지 않는 것이 가장 차선의 선택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된다면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판단한 카일은 살육자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다시 풀숲에 몸을 숨겼다.


그러곤 숨을 죽이며 살육자들을 노려보았다.


* * *


괴물의 사체를 버리러 간 막내가 돌아오질 않는다. 다른 살육자들은 고깃덩이가 더 생겼다며 좋아하고 있었지만, 살육자들의 대장은 막내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더니 한 살육자에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


“막내 그 새끼 왜 안 돌아오냐? 시발, 시체가 존나게 쌓여 있는데, 일 똑바로 안 하냐?”


“죄송합니다, 형님.”


“내가 이딴 것까지 하나하나 관리해야겠냐? 빨리 그 새끼 찾아와. 괴물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는데 뭐 하는 거야.”


대장은 혀를 내차더니 양동이에 담아져 있는 피를 들이켰다.


두 명의 살육자가 욕지거리를 남발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괴물을 사체를 버리러 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던 막내를 자신들이 찾아야 한다는 것에 꽤나 큰 반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발, 그 새끼는 어디로 간 거야? 이러다 우리가 먹을 것이 다 사라지게 생겼다고.”


역시나 인육을 더 많이 먹지 못해 화가 난 것이었다. 한 살육자가 그리 말하자 옆에서 같이 두리번거리던 살육자가 입을 열었다.


“그니까, 시발. 야, 근데 이 주변에서 피 냄새 나는 것 같지 않냐?”


“괴물 피를 뒤집어썼으니 당연한 거겠지. 빡대가리 새끼야.”


“아니, 병신아. 괴물 말고, 사람.”


“저기서 해체하고 있는데,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라. 그것보다 빨리 찾기나 해. 저것들이 고기 다 먹을라.”


“걍 대충하고 끝내. 오히려 그놈이 뒈졌으면 우리야 좋지. 입이 하나 줄게 되는데.”


살육자는 킥킥거리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대충 시간만 때우다 가는 거지. 존나 빨리 가게 되면 지랄할 게 뻔하니까.”


“그래, 대충 뒤적거리다 가자고.”


두 살육자들은 시시콜콜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시시콜콜한 농담이란 어떻게 사람을 죽였냐, 그놈을 죽일 때 나한테 비는 것 봤냐 따위였지만, 그들은 그런 농담이 재미있는지 미친 듯이 웃기도 했다.


* * *


카일은 풀숲에 숨어있었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밤에 움직인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였다. 불을 피운다면 시야가 확보되겠지만, 살육자들에게 들킬 우려가 있기에 카일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몸을 숨기고 있었다. 미친놈들과는 싸워봤자 득보다는 실이 더 많기에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카일이 몸을 숨길 채 육포를 뜯어 먹고 있을 때,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카일은 먹던 육포도 내팽개친 채로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커다랗게 웃어댔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굳이 자세히 들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차피 쓰잘데기 없는 이를테면 살육이나 식인 따위의 내용이겠지.


카일은 ‘그들이 이쪽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이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살육자들은 카일을 발견하였다. 살육자들은 카일의 옷가지에 묻어있는 피를 보고 그가 자신들의 막내를 죽였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살육자들이 칼을 뽑아들었고, 카일도 그에 대응하듯 칼을 뽑았다.


카일은 살육자들이 방심하고 있을 찰나 품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살육자의 목을 날려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소드로 목을 부러트렸다고(목은 절반밖에 썰리지 않았지만, 부러진 목뼈가 살가죽을 찢고 나왔다는 것을 보고 카일은 살육자가 목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겠지만, 둘 다 한 번에 살육자가 즉사했다는 것은 똑같았다.


카일은 본소드로 살육자의 목을 부러트린 뒤 옆에 있던 살육자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왼팔이 썰려 나갔다. 아무런 반항조차 못하고 팔이 잘린 살육자는 절단된 왼팔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뒹굴었다.


“끄아아아악!!”


살육자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는 것을 본 카일은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육자들이 모여있는 곳은 카일이 있는 곳부터 그리 가까이 있진 않지만, 그가 내지른 신음소리는 충분히 들리고도 남을 거리였다.


그걸 깨달은 카일은 우선적으로 바닥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살육자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카일이 손 쓸 필요도 없이 왼팔이 잘린 고통을 이기지 못했는지 살육자는 게거품을 물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카일이 의원이 아닌지라 정확한 죽음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쇼크사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카일은 본소드를 허리춤에 차고, 강철 검을 꺼내 들었다. 저들의 고철로 만든 검을 그리 단단하지 않다. 그렇다면 강도가 높은 본소드보다는 예리한 강철 검을 쓰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카일의 판단이었다.


* * *


살육자들은 고기를 물어뜯고 있었다. 괴물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고기 5덩이가 더 생겼기에 살육자들은 서로가 더 먹겠다고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고기를 오랫동안 먹지 않고 놔둔다면 빨리 상하기 때문에 살육자들은 고기를 모두 불에 올렸다. 시체가 구워져 가는 모습에 붙잡힌 사람들은 토악질을 해댔지만, 살육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낄낄거리며 내일은 누구를 먹을까 얘기를 나눴다.


시체가 다 익자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전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충분한 양이었지만, 자신이 더 맛있는 부위를 먹겠다고 싸우는 것은 여전했다. 기름기가 많은 배가 인기 있는 부위였고, 뱃살은 순식간에 사라져 내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그릇이 되어주었다.


피와 인육을 먹으며 그들이 큭큭거리고 있을 때 고통스럽다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부하들이 막내를 데리러 간 쪽에서 비명이 났다는 것을 깨달은 살육자들의 대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것이 자신의 부하들의 비명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녀석의 비명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대장은 무기를 챙기라 명했고, 살육자들은 또 뭔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어기적거렸다. 대장의 명령을 억지로 따르는 것이라 귀찮다는 그들의 속마음이 얼굴에 전부 드러나 있었다. 대장과 괴물과 사람들을 관리할 살인귀 2명을 남긴 채 살육자들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갔다.


싸움으로 인해 지치기도 했고, 배도 아직 차지 않은 상태라 그들은 다리를 질질 끌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아니, 밥 먹다 말고 이게 무슨 짓 거리야.”


“아이 씨, 몰라 대장을 갈아 치우든가 해야지.”


“야, 괜히 대장이겠냐. 얼굴 봐봐 존나 늙었잖아. 존나 쎄니까, 저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거라고.”


살육자들은 대장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소곤거렸다.


대장을 갈아치울까 하는 그들의 생각은 등 뒤에서 바닥에 나뒹구는 2구의 사체와 흥건한 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졸린 눈으로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걷던 살육자들은 재빨리 검을 뽑아들어 자세를 취했다. 자세가 엉망이었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소름 돋게 생긴 얼굴과 흉측하게 생긴 검으로 인해 겁을 지레 먹고 도망쳤을 것이다.


아까와는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던 살육자들은 아무도 없는 것에 의문을 표했고, 주위에 있는 나무 위를 둘러보았다.


두 명씩 떨어져서 찾자고 하는 살육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그들은 한 명 씩 떨어져서 주변을 살폈다.


나무들이 그리 빽빽하게 나 있지 않아 둘러보기에는 수월했다. 살육자들은 자신의 동료를 죽인 놈을 찾아 연신 두리번거렸다. 동료를 향한 복수 따위가 아니었다. 살육자들에게는 동료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딴 것이 있었다면 동료를 잡아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 * *


카일은 나무 위로 올라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까지는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 같아 올라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나무는 카일의 무게를 잘 버텨주는 것 같았다.


‘안 걸리길 바랐는데, 이렇게 됐다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겠군.“


카일은 혼자 떨어져 두리번거리는 살육자를 나무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곤 단검을 목에 박아넣어 경추를 끊었다. 즉사를 시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사체가 되어버린 살육자는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카일은 떨어진 살육자의 시체를 뒤로 한 채 다른 나무로 건너갔다.


살육자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다른 살육자들도 모여들었다.


”시발, 어떤 새끼야!!“


살육자들이 크게 소리치며 카일을 찾기 위해 이 부근을 쥐잡듯 뒤졌다. 카일도 그에 따라 나무들을 옮겨 다니며 그들의 눈을 속였다.


카일이 다른 나무로 건너려고 할 때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렸다. 그에 따라 카일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무가 몇 번 버텼다고, 모든 나무가 버티리라고 생각한 카일의 실책이었다.


카일이 바닥에 떨어지자 주위에 있던 살육자들의 시선이 모두 카일에게 쏠렸다. 카일은 강철 검을 지지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땅에 박은 검을 뽑아 들었다.



14화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살육자들의 공격이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들어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았다. 팔이 지잉하고 울린다. 땅에서 떨어졌을 때 팔에 금이 갔는지, 고통이 이어진다. 카일은 부러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카일은 살육자의 조잡한 검을 내려쳤다. 살육자의 검은 이미 한계였는지, 카일의 검이 닿자마자 조각조각 부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카일은 무방비 상태가 된 살육자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었다. 카일은 이 살육자가 죽었으리라고 생각하여 검을 뽑으려고 하였으나 칼날이 움직이지 않았다.


살육자가 카일의 칼날을 잡고 있었다. 살육자는 킬킬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더욱 깊게 찔리는 칼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카일을 향해 붉은 피로 물든 손을 내뻗었다. 그러나 카일은 그의 배를 걷어차 살육자를 빼내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살육자는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카일의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부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일은 몸을 숙여 살육자의 검을 피했다. 귀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고, 귓바퀴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카일은 덜렁거리는 귀를 부여잡았다.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나 살육자들은 피를 지혈할 시간 따위 주지 않았다. 카일은 왼쪽에서 들어오는 살육자의 횡 베기를 칼등으로 쳐냈다. 살육자의 검이 튕겨 나갔고, 카일이 그의 목을 썰려는 찰나 칼을 버리고 카일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살육자의 검은 형편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육자는 챙그랑거리는 소리에 맞춰 카일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날카롭게 갈린 살육자들의 이빨은 웬만한 가죽 갑옷을 찢기에는 제격이다. 그들의 이빨이 아무리 날카롭고, 단단하다고 한들 강철을 뚫을 수는 없다. 갑옷에 이빨 자국이 남았다만, 카일의 검이 살육자의 뇌를 통과했으니 상관없지 않은가.


순식간에 두 명의 살육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허나 살육자들의 기세는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올라간 듯 보였다. 그들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그것마저도 즐기고 있었다.


카일은 지체할 새도 없이 다른 살육자의 공격을 받았다. 그 살육자는 카일의 배를 노려왔고, 뱃가죽을 뚫고 들어가 깊은 자상을 만들려는 살육자의 공격을 카일은 칼날을 손으로 잡아 살육자의 공격을 멈췄다. 이미 헬하운드와의 싸움에서 가죽 장갑은 타버린 터라(숲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마을이 없었기에 장갑을 사지 못했다.) 왼손이 그대로 찢겨나갔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카일은 살육자의 목을 썰었다. 카일의 검이 살육자의 목을 파고들었다.


허나 그때 주위에 있던 다른 살육자가 카일을 발로 차 넘어트렸다. 그러곤 카일의 위에 올라타 목을 향해 칼을 내리꽂았다.


카일은 살육자가 몸을 누르고 있는 상태임에도 몸을 비틀었다. 카일이 움직인 탓에 살육자도 정확히 카일의 목을 노릴 수 없었고, 살육자의 검은 카일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얕은 상처에 핏방울이 망울망울 맺혔다.


카일은 몸을 최대한 비틀어 살육자의 압박 속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나서 살육자가 했던 것과 똑같이 그의 몸 위에 올라타 목에 칼을 찔러넣었다, 카일은 조금씩 움찔거리는 살육자의 사체를 밟고 일어선 뒤 다른 살육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몸을 낮춘 상태에서 휘두른 횡 베기는 살육자의 다리를 불구로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 고꾸라진 살육자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 채로 허우적거렸다. 일어나려고 하는 듯 보였다. 허나 살육자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한들, 힘줄이 끊어졌는데, 어떡하겠는가.


굳이 공격하지 않고 저대로 가만히 둔다 하더라도 저 살육자는 죽게 될 것이다.


그리 판단한 카일은 힘줄이 끊어져 바닥을 기고 있는 살육자를 제쳐둔 채 다른 살육자에게 달려들었다.


가능한 빨리, 최대한 많이.


살육자들을 기습할 때 가장 중요한 말이다.


굳이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빠르게 많은 상대를 기습으로 죽여놓고, 상대를 하는 것이 좋다는 한 사냥꾼의 조언은 반쯤은 맞아떨어졌다.


빠르게 죽이는 것이 좋다만, 그것은 모든 살육자를 빠르게 죽일 수 있을 때만 허용되는 말이었다. 그 조언을 한 사냥꾼의 몸이 특출나게 강해서(사냥꾼들은 대부분 몸이 좋긴 하다만, 이 사냥꾼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인지 모르겠다만, 몇 분 이내에 모든 살육자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느리게 공격하란 말은 절대 아니다. 만약 느리게 한놈 한놈 상대하다간 놈들이 공격 패턴을 읽고, 떼거지로 몰려들 테니까.


이래서 카일이 살육자들을 상대하기 꺼려하는 것이다.


공격 패턴이 없기에. 그들의 머릿속을 읽을 수 없기에 카일은 살육자들과의 싸움을 최대한 피해왔다.


카일은 눈앞의 살육자의 왼쪽 어깨에 검을 내려꽂았다.


칼날이 어깨뼈를 부수고 대각선으로 내려간다. 갈비뼈를 부수고 심장 부근에 칼날이 도착했을 때, 카일은 검을 그대로 뽑아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카일은 예상했다는 듯이 재빨리 눈을 가렸다.


하지만 카일이 그대로 검을 내려 몸을 양단할 거라 생각했던 살육자들은 피 분수를 예상하지 못했고, 심장이 베여버린 살육자의 피가 그들의 머리에 쏟아졌다. 피가 머리를 적시고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머리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눈에 들어갔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다면 자동적으로 눈을 비비거나 이물질을 빼내기 위해 노력한다. 설령 그것이 살육자들이 좋아하는 피일지라도 거부할 수 없다. 본능은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카일이 실행한 이 공격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정확히 동맥만을 썰지 않고,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심장을 잘랐다면, 이처럼 높이 솟구치는 피분수를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다. 카일의 운이 아니었다면 아마 실패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를 보여줬을 것이다. 만약 도박에 실패했다면, 칼이 몸 중간에서 멈췄을 것이고, 그때를 노려 살육자들의 검이 카일의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이런 위험한 도박이었음에도 카일은 오른팔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고통에 어쩔 수 없이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뼈에 금이 간 것 같지가 않다. 아마 폐쇄성 골절인 듯싶었다. 땅에 떨어지면서 골절이 된 경우에는 개방성 골절이 다반사여서 폐쇄성 골절을 예상하지 못하고, 단순히 금이 간 것으로 치부한 나머지 몸을 너무 험하게 다뤘다. 그 탓인지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욱 심각해졌다.


카일은 눈에 들어간 피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살육자를 향해 달려가 칼을 박아넣었다. 시야가 막혀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살육자는 맥아리 없이 쓰러져 카일의 발목을 붙잡았다. 허나 카일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발을 털어 그의 손을 떨어트렸다.


끄아아악거리는 동료의 비명이 들리자 살육자는 앞이 잘 안보이는 상황에서도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 과정에서 뭔가 썰리는 느낌과 신음 소리가 들려오긴 했어도 적이 베인 것이리라 생각하며 계속 휘둘렀다.


허나 그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고, 마구잡이로 휘두른 조잡한 검은 동료의 등을 난자했고, 안 그래도 흉터로 가득했던 등 위에 상처가 덧씌여졌다.


카일은 멍청한 행동을 하는 살육자를 보고는 조잡한 검을 휘두르는 그의 손목을 베었다.


절반가량 잘린 손목이 덜렁거린다. 당연하게도 칼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카일은 그대로 그를 베어 넘겼다. 칼날이 살육자의 몸을 파고들어 온몸을 헤집어놓았다.


살육자들은 시야가 돌아왔는지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을 해왔다. 그들은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피눈물을 연상케 했다.


눈도 충혈되어 붉게 물들어있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인육을 먹고 있던 터라 입안에도 붉은 액체들이 남아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흡혈귀를 연상케 했다.


그저 모습이 비슷한 것뿐인데도, 카일의 부러진 오른팔에 힘이 들어간다.


* * *


카일의 주위에는 서른이 조금 안되어 보이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살육자였으며 처참하게 찢겨진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카일은 검에 묻어있는 살육자들의 피와 체액들을 모두 닦아낸 뒤 칼집에 넣었다.


널브러져 있는 살육자들은 미소를 지은 채 죽어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카일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미친놈들의 세상이란 걸.


* * *


살육자들의 대장은 연거푸 피를 들이키고 있었다. 마약을 탄 피는 언제 마셔도 끝내주는 것 같았다. 대장은 넓적다리를 뜯으며 부하들이 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몇 번의 비명소리가 더 이어졌다. 목소리는 익숙했다. 자신의 부하가 내지른 비명이란 걸 뒤늦게 깨달은 살육자들의 대장은 옆에 뉘어져 있는 검을 들었다.


하늘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했고, 오직 푸르게 빛나는 보름달 이외에는 앞을 밝혀줄 것이 없었다. 대장은 횃불을 챙겨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저기 어딘가에 있는 놈과의 싸움 중에 나무에 불이 옮겨붙는다면, 놈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불길에 휩싸여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횃불을 챙기지 않았다.


살육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하여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곤 부하들이 갔던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들이 타는 냄새, 괴물들의 냄새, 그리고 마시고 있던 피에 냄새에 가려 이곳에서 느껴지는 짙은 피비린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살육자들의 대장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부화를 찾았다. 저 멀리 시체 몇 구가 쓰러져 있었고, 그쪽으로 향하자 부하들이 모두 죽어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죽음에 분노하거나 슬퍼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애 따위는 고기에 섞어 괴물에게 줘버린 살육자들은 그딴 생각보다 자신의 무리를 건드렸다는 자존심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살육자들의 대장은 부하들이 죽었다는 것에 울컥거리기는커녕 오히려 희열 된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카일은 부러진 팔을 부여잡았다. 팔은 사시나무가 떨리듯 덜덜거렸다. 카일은 간편하게 만든 치료제를 들이켰다. 제대로 된 재료로 만든 치료제가 아니라 치료가 더뎠지만, 고통을 줄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사시나무 덜리듯 덜덜거리던 팔이 멈췄고, 카일은 눈을 부라렸다. 살육자들의 대장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대장은 우락부락한 덩치를 가진 중년이었다.


괴물들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40대 이상의 방랑자는 드물었고, 대부분의 중년 방랑자는 강했다. 카일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마약이 찌들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라 하더라도 살육자다. 어떤 변칙적인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


카일은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카일이 검을 양손으로 잡고 자세를 취하자 살육자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낄낄거리며 달려드는 그의 손에는 전에 약탈했던 마을에서 주운 강철 검이 들려있었고, 그는 그 검을 크게 휘둘렀다.


카일은 얼른 몸을 낮춰 그 검을 피했다. 그러나 검과 동시에 밑에서 들어오는 발길질을 피하지는 못했다. 카일은 그의 발길질에 바닥에 나뒹굴렀고, 그로인해 부러진 오른팔에 고통이 찾아왔다.


치료제를 들이켰건만, 회복이 완전히 되지 못하였다. 카일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부들거리는 칼날을 바르게 고쳐잡았다.


‘도핑을 할 수 있다면. 아니 하다못해 오른팔만 멀쩡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고전하지 않았을텐데. 내 실책이군.’




15화


살육자들의 대장이 휘청거릴 때마다 온몸에 박혀있는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비릿하면서도 역겨운 피냄새가 카일의 코끝을 찔러왔다. 카일은 천천히 숨을 들이키며 몸을 낮췄다. 그러곤 순식간에 살육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카일은 검을 깊게 찔러 넣었으나 살육자가 몸을 비트는 탓에 검은 살육자의 몸을 파고들지 못했다.


살육자는 카일의 명치를 쳤다. 카일이 컥컥거리며 명치를 부여잡고 있는 동안 그는 카일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그는 단순히 카일을 죽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조금씩 고통을 주며 천천히 죽이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카일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 20명에 달하는 살육자를 죽인 카일은 많이 지쳐있었다. 카일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광기에 가득 찬 살육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달로 인해 생긴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절반정도 덮어 살육자는 한충 괴기해보였다.


카일의 검과 살육자의 검이 맞부딪쳤다. 팔이 지잉하고 울린다. 두 검의 힘겨루기가 시작됬다. 칼이 조금씩 움직이며 끼긱, 끼기긱거리는 소리가 카일의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그딴 것에 신경을 쓸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그저 단숨한 근력으로 따지자면 살육자는 카일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허나 부러인 오른팔과 전 싸움에서 소비한 체력 따위가 맞물리며 카일과 살육자는 호각을 이루었다. 카일은 계속하다간 체력만 소비할 거라 판단하여 살육자의 칼날을 뿌리치고 뒤로 몸을 뺐다.


낄낄거리며 다가오는 살육자를 향해 카일은 검을 휘둘렀다. 허나 오른팔이 부러져 힘이 제대로 실리지 못한 탓에 살육자가 칼을 드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카일의 공격은 막혔다.


“시발.”


카일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시 한번 몸을 뒤로 뺐다.


“네가 내 부하들을 전부 죽인건가?”


“그렇다면.”


“.......”


“혹시 빡쳤나.”


“빡치긴. 난 오히려 기분이 좋은데.”


살육자는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너같이 강한 새끼랑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달아올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다고. 큭큭.”

“미친 새끼.”

살육자는 비릿한 미소를 유지한 채 카일의 검을 내리쳤다.


“캬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이 광기로 젖어갈 때 쯤 카일은 그의 배를 걷어찼다. 살육자는 고통따윈 느껴지지 않았지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는 듯 켁켁거렸다.


카일은 그 틈을 노려 칼을 찔러넣었다. 오른팔에 제대로 된 힘이 없어 심장을 꿰뚫으려던 칼은 옆구리를 파고들었지만, 카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옆구리에 생긴 커다란 상처는 살육자에게 고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녀석도 사람인지라 계속해서 움직이다보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카일은 옆구리에 박힌 검을 뽑았다. 그때 살육자는 강철검을 내리그었다. 살육자의 검이 왼팔을 스치고 지나간다. 얕고 긴 상처에서 피가 묻어나왔다. 카일은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살육자는 조금씩 피가 빠져나가 힘이 풀리는 느낌에 흥분된다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옆구리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흘러내려 바지를 적신다. 금새 흥건해진 살육자의 바지는 더 이상 피를 흡수하지 못한다며 바닥에 피를 뱉어냈다.


살육자는 비틀거리면서 카일에게 달려왔다.


광기에 사로잡힌 살육자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공격은 카일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카일은 검을 휘둘러 몇 번의 공격을 더 가했다. 허나 그럼에도 살육자는 여전히 황홀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살육자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으며 그 붉은 눈으로 보는 세상은 정신없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어지러움을 느낀 살육자는 피가 섞인 토사물들을 울컥거리며 토해냈다. 카일은 그런 그의 몸에 칼을 집어넣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들어간 칼날은 살육자의 살점을 갈랐다.


질퍽거리는 내장이 쏟아졌다. 살육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으나 광기에 젖은 표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황홀하다는 듯 웃고있는 그의 얼굴에서 공포마저 느껴졌다. 카일은 질척거리는 그의 살점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것은 일종의 장례식과 같았다.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놈들에게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추모.


카일은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나 사냥꾼들이 살육자를 죽이고 나서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살육자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몇몇 사냥꾼이 시작한 듯 보였으나 이제는 관습처럼 여겨지는 행동이었다.


카일은 이 관습이 단지 추모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관습이나 전통은 필요에 따라 생겨난다. 그럼 굳이 필요도 없는 살육자의 시체를 태우는 이유는 뭘까?


카일은 그것이 살육자들에게 하는 경고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인간을 먹기 전 하는 행동처럼 사냥꾼들의 행동도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저 카일의 생각의 불과하지만.


카일은 불타오르는 살육자를 뒤로 한 채 그들이 묶어 놓은 괴물들을 향해 걸어갔다. 늑대 형태의 괴물들은 카일이 피를 뒤집어 쓴 카일이 다가오자 침을 질질 흘리며 으르렁거렸다. 이빨을 들어내며 짖는 괴물을 들을 향해 카일은 검을 휘둘렀고, 묶여있는 괴물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곤 묶여있던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 그들의 끈을 끊어주었다. 밧줄에 묶여있든 풀려있는 어차피 평범한 사람들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주변에서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카일은 그들을 풀어주었다.


“가....감사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카일에게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그들을 신경쓰고 살육자들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만, 오랜만에 감사의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물들한테 모두 죽거나 카일이 가지고 있는 물품들에 눈이 돌아가 이리 죽든 저리 죽든 똑같다며 달려들었다.


그렇게에 카일은 오랜만에 감사인사를 들었고, 정따윈 사라져버린지 오래인 세상에서 카일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저...저기.”


“무슨일이지?”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건네왔다

아마 먹을걸 달라는 거겠지.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싫ㄷ.”


“이 주변에 마을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랄맞은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스스로 빛을 향해 걸어가려고 하다니.


카일은 오랜만에 스스로 희망을, 빛을 잡아당기는 사람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런 세상에선 대부분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무언가를 요구한다. 허나 이 남자는 스스로 빛을 향해 걷고 있었다.


카일은 그의 질문에 짧지만, 아주 잔혹한 말을 하였다.


“없다. 이 주변엔 아무런 마을도 없어. 저 개같은 괴물들은 넘쳐나지만.”


“그....그렇군요.”

절망적인 상황에 그 남자는 차마 얼굴을 필 수 없었다.


희망을 향해 걸어가면 뭐하나. 그 희망을 잡기 전에 늑대 무리에 목이 뜯겨 죽을 텐데.


그것이 이 세상에 희망을 향해 걸어가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이다. 희망을 갈구하면 갈구할수록 그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찾아오는 절망과 고통이 너무나도 크다. 그렇기에 카일은 희망 따위 버린 지 오래이다.


카일의 대답에 그는 아무말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곤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 말하였다.


“여러분 이제 저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그의 말에 누군가 이미 포기했다는 듯한 말투로 소리쳤다.


“가긴 어딜가! 어차피 우린 어딜가든 죽게 될 거야. 시발, 좆까는 소리 말로 난 여기서 죽을거야.”

저게 정답이다. 어차피 저들은 내일 아침이면 괴물들에게 물어뜯길 거고, 죽기 전에 희망을 버리는 것이 마지막 순간에 덜 비참할 테니까.


카일은 그들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체념한 듯 축 쳐진 몸으로 주위를 어기적거렸다. 배고픔 따윈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인데 배고픈 것 따위 부질없다.


그렇다고 우리를 여기까지 집어 쳐넣은 저놈들과 같은 괴물이 될 순 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리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카일은 이내 길을 떠나려 했으나 한 남자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


“너 사냥꾼이지.”


“그렇다.”

“그럼, 시발 날 사냥꾼으로 만들어줘.” 그런가 이 남자였다.


카일이 유심이 지켜봐야 할 사람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아닌 이미 희망따윈 바닥에 처박아 놓고 증오심만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왜, 괴물을 죽이고 싶은가.”

“괴물? 그렇지 저것들도 엄밀히 말하자면 괴물이지.”


그는 타오르는 모닥불을 가리치며 말했다.


“시발, 괴물이고 뭐고 내 알바 아니야. 난 저것들의 씨를 말려버리겠어.”

“그전에 네가 먼저 죽을거 같은데. 네놈은 너무 약해. 덩치도 작고 힘도 없어. 뭘 믿고 설치는 거지?”

“시발, 어쩌라고! 단 한 놈만 죽여도 되니까, 날 사냥꾼으로 키워줘!”

카일은 피식 웃으며 품속에서 지도와 나침판 그리고 단검 한 자루를 그에게 던져주었다.


“뭐, 알아서 잘 해보라고. 난 누굴 가르치거나 하는건 잘 못하거든. 그리고 네놈같이 걸리적거리는 것과 같이 다니는 것보다는 혼자 다니는 게 더 편할 것 같군.”


“뭐?”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알아서 잘 찾아가라. 아마 거기로 찾아간다면 널 가르칠 거다. 물론 그곳까지 가기 전에 뒈지겠지만.”


그는 부들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다 맞는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멀어져가는 사냥꾼의 뒷모습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사냥꾼이라. 저놈이 사냥꾼을 한다면 개나 소나 다 사냥꾼을 하겠다. 뭐, 그래도 그 좆같은 눈빛만큼은 사냥꾼다웠어.’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절뚝거렸다.


‘내가 사냥꾼이 되던 때가 생각나네. 그 사냥꾼도 나를 그토록 한심하게 봤을까.’


그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디 피식 웃었다.


‘아마 한심했을 것 같군.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똑같이 죽은 눈을 하고 있었어도, 그땐 약했으니까.’


카일은 그리 생각하며 황량하기 그지없는 평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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