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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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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연재수 :
130 회
조회수 :
5,448
추천수 :
25
글자수 :
748,091

작성
19.07.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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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17화

DUMMY

그건 아주 사소한 계기, 평소처럼의 변덕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성에서 맞이하는 지긋지긋한 업무와 호화로운 만찬에 질렸을 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가식적인 얼굴, 하나같이 자극적인 음식, 그런 것들의 순환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게 됐을 무렵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성을 뛰쳐나왔다.


“하아··· 지루해. 아버님은 이런 것들을 용케 아무렇지 않게 해내시네.”


나의 아버지, 바론 드 샬롯은 귀족 사회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귀족으로서 제국에서도 그 수완을 인정받아 주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나는 샬롯 백작령에 속박당한 채 제국은커녕 바깥으로 나갈 수조차 없기에 다른 의미에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이가, 이 나를 전쟁용 결전병기로 취급하고 있으니까.


“정말 웃기지도 않아,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평생을 이곳에서 썩어가야 할 바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출해주겠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문장력을 최대한 사용하면, 아버님이 부여해준 컨트렉(계약)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의지와 동기가 필요했다.

어차피 이능작가들의 능력의 상한선은 개인적인 차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의지나 동기로 직결되니 말 그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말이지.


“그렇게 탈출만 한다면, 내 눈앞에 있는 풍경도 다르게 보이겠지.”


그것들은 똑같은 사람, 똑같은 풍경, 똑같은 거리, 똑같은 마차,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것의 순환이었다.

마치 성에서 매일 틀어박혀서 업무만 하는 나처럼 보였다.

아니, 아니다.

분명 모든 게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뭐지, 저 음침해 보이는 꼬맹이는? 이 샬롯 백작령에서 본 적이 없는 복장을 하고 있는 특이한 녀석이네?’


에둘러 좋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의 극치를 보이는 꼬맹이, 아니 내 또래의 소년이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온 것처럼 본 적이 없는 형식의 옷차림을 하고서 거리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소소하게 만든 벤치에 앉은 채 축 늘어져있었다.

그 특이한 차림의 우울한 소년과 거리의 소소한 벤치 조합은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내 눈에 띤 것일지도 모르겠다.


‘옷차림을 보면 타국의 사람인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아무리 타국의 사람이라도 서방국에서도 아름답고 깨끗하기로 이름 높기로는 제국 못지않은 샬롯 백작령에서 저런 얼굴이라니···.’


비록 내가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고 해도 백작령 자체에 나쁜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아버님과 영지민들이 만들어 낸 샬롯 백작령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이유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온 곳이라 그런 것인지, 혹은 내가 소속된 곳으로서 자긍심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내게서 시선을 돌리게 만들 정도로 우울하게 지내게 둘 수는 없었다.


‘타국의 사람이라면 귀족이 아니면 관광객일 테지만, 도저히 귀족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부모와 떨어진 건가? 뭐, 가보면 알겠지.’


나는 그 우울해 보이는 소년의 곁으로 다가가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역시나 내 아름답고 고고한 분위기를 눈치챈 건지 그 소년도 내 쪽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니, 꼬마야? 길을 잃었니?”


느닷없이 소년 쪽에서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오히려 나에게 길을 잃었다니, 아니 그것보다 꼬마라니?!


“내, 내가 어딜 봐서 꼬마라는 거야?!”

“···아니, 내 어쩐지 앉은키랑 비슷해 보여서.”


다시금 충격적인 말이다.

안 그래도 내가 평소에도 신경 쓰고 있던 점을,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키가 작다는 것을 면전에서 지적하다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에둘러 좋게 돌려 말했던 걸 귀족 자재들에게서 들었던 적은 몇 번 있어도,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처음이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길을 잃었으면···.”

“너야, 너라고!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건 너라고! 이 바보천치야!”


그렇게 지적하고 나서야 분위기를 파악한 것인지 소년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내 쪽에서 보면 오히려 네가 더 눈에 띠는데 말이지.”


내가 눈에 띤다고?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단지 빼어난 외모나 아름다운 옷만이 아니라 귀족 영애로서 가져야 할 소양과 분위기마저 겸비한 샬롯 백작령 최고의 여자니 말이지.

오히려 내 존재를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했던 소년 쪽이 이상했다.


“···아무튼 길을 잃은 게 아니라면 나에게 상관하지 말아 줘.”


또 다시 충격이었다.

아무리 타국 사람이라 내 얼굴을 모른다고는 해도 이 정도로 아름답고 고귀한 미인이 말을 걸어주었으면 그에 마땅한 태도를 보이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거리를 지나가는 영지민들조차 나의 고귀함을 알아보고 애써 시선을 돌리려고 갈 길을 서두르는 마당에 이 소년은 어쩜 이렇게 불손함의 극치를 보이는 걸까.

이건 귀족 영애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수치스러웠다.


“후후후··· 그럴 순 없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나의 눈에 띤 순간부터 너의 불행한 운명은 새롭게 바뀌어야 할 테니까!”


나는 샬롯 백작령의 영주, 바론 드 샬롯 백작의 딸인 엘리자베트 샬롯이다.

비록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상은 버려두고서라도, 설령 타국의 사람이라고 해도 샬롯 백작령에 발을 들인 이상 귀족으로서 영지민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이 귀족으로서 태어나고 자라온 나의 의무다.


“···혹시 대낮부터 술이라도 마신 건 아니지?”

“또 반대야, 반대! 당신이야말로 술을 마시고 늘어져 있던 게 아니야?! 그렇게 우울하고 음침한 분위기는 샬롯 백작령에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나는 소년의 손을 붙잡고서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소년의 말을 생각하면 술을 마실 정도로 우울한 게 아닌 거라는 건 알겠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먹고 마신다는 행위가 의외로 치유가 될 때도 있다.

실제로 나도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성의 주방장에게로 달려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는 했으니 말이지.


“이, 이봐··· 대체 어딜 데려가려는···.”

“당신은 잠자코 나만 따라와, 이렇게 된 이상 나와 어울려줘야겠어!”


그렇게 소년과 도착한 곳은 내 기준에서 한참 못 미치는 저급한 식당이었다.

비록 내가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생각도 들지 않았던 곳이지만, 이 소년의 우울한 분위기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수준의 저급한 식당의 식사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자, 앉아!”

“으, 응···.”


마침 점심 시간대라 그런지 식사를 위해 모여든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역시 품위 없게 먹는 사람이나 예의도 모르는 듯 기운차게 떠드는 점은 불쾌해도 참아내야 했다.

나나 아버님이 샬롯 백작령의 영지민들이 가졌던 고통을 전부 헤아려 줄 수 있는 게 아니니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이 기분을 풀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겠지.


“어서 오세요~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조금 기다리니 가게의 종업원이 찾아와서 내게 물었다.

성에서의 식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저급한 품질의 싸구려 음식을 내놓는 만큼 뭘 내놓든 간에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눈앞의 소년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할 것이다.


“우선 이 정도로, 이 식당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식사를 만들어 줘.”


나는 주머니에서 1고르를 꺼내서 종업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종업원의 영업용 미소가 단번에 무너지고, 내가 얼굴과 내놓은 1고르를 번갈아 보면서 힘겹게 대답했다.


“1, 1, 1··· 1고르?!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영업용 표정이 무너진 종업원이 1고르를 갖고서 주방 쪽으로 뛰어가는 게 한심해보였다.

고작 해야 음식을 주문할 뿐인 일에 저렇게 당황하다니, 급사한지 얼마 안 되는 신입이었던 걸까?

이곳이 어떤 음식을 취급하는지는 여전히 불명이지만,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최고의 식사를 만들어달라고 했으니 분명 최고의 식사를 만들어줄 것이 틀림없다.


“자, 그러면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자기소개를 해볼까, 난 엘리자베트라고 해.”

“···그 전에 대체 무슨 목적이야?”


소년이 말하는 의문, 이런 일에 대한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

내가 기세 좋게 성을 뛰쳐나온 건 좋지만, 본 적도 없는 타국의 소년에게 음식을 대접해주는 목적을 묻는 걸까.

그런 단순무식한 질문이야 뻔하다.


“그냥 기분 전환이야, 안 좋은 일이 있으니까 먹는 걸로 기분을 푼다. 그거 말고 뭔가 그럴 듯한 게 더 필요해?”


그건 소년이 묻는 게 아니었으면 대답할 가치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마치 어떻게 숨을 쉬는 것인지 설명하거나 앞으로 걸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설명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샬롯 백작령에서, 혹은 타국에서 무슨 일을 겪고서 우울한 건지는 모르는 일이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지만,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방금 전과 같은 우울하고 음침한 분위기는 당신이나 주변에게나 좋지 않았을 뿐이야.”


성에서 생활하는 나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힘들면 아버님도 힘들다.

내가 투정을 부리면 주변도 투정을 부린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사용인들도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것이 나라는 중요한 인물에게서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곧 샬롯 백작령의 명예에 금이 가버린다.

그러기 전에 먼저 내가 바뀌는 것으로 서서히 주변을 바꾼다.

적어도 내가 이곳을 나가기 전까지는 샬롯 백작령은 자랑스러워 마땅할 만큼 뛰어나고 우수한 영지여야 하니까.


“나라면 그럴 때는 맛있는 걸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으로 잊어버리려 해. 몸과 마음에 어딘가 안 좋거나 부족한 점이 있으니 기분이 나쁜 거니까, 좋아하는 것으로 새롭게 채워버리면 나아지잖아?”

“···그, 그런 거 그냥 현실도피잖아.”


내가 기껏 훌륭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지간히도 부정적인 녀석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 녀석이 없었던 만큼 왠지 모르게 흥미가 솟구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또래의 소년을 상대로 이토록 대등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소년에게 반박당한 불쾌함보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호기심을 우선했다.


“어떻게 보면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안 좋은 일에만 매달려서 본인과 주변에게 민폐를 끼칠 거라면 차라리 먹는 걸로 푸는 현실도피가 더 낫다고 보는데?”


과거를 아무리 후회한들 현재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인생 최대의 오점이라고 해도 이미 벌어진 것은 설령 문장력을 쓴다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풀이 죽을 바에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하고,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현재를 바꾸어야 한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현재를 살아가면서 언젠가 샬롯 백작령을 탈출할 기회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시우, 난 이시우라고 해.”

“이시우? 이상한 이름이네?”


그렇게 이시우라는 이름의 소년과 만난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생겨났고,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경험에 흥미마저 솟구치는 게 새삼 즐겁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은 과거에 기억을 잃고 나서 처음이라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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