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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앵무의 글공간

다시 돌아온 꼬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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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깔깔앵무
작품등록일 :
2019.08.08 13:47
최근연재일 :
2019.09.16 10:52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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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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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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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0

작성
19.08.0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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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다시 돌아온 꼬마새

DUMMY

나이팅게일 선서.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 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그런 한 간호사는 지금 눈앞의 환자가 죽는 순간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



수술대의 올라간 환자의 영혼이 힘을 잃어갔다.


환자는 마음속으로 '죽고 싶지 않아.'를 연발하며 살려는 의지는 확고했지만, 그의 상처는 심각했고, 그 영혼은 빛을 점점 잃어갔다.


그 빛을 잃을 때마다 난 점점 흥분되었다.

드디어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지 알게 되니까.



내 이름은 안혜진.


오래 전 강도와 맞닥뜨려 둔기로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탓이었는지, 의사의 말론 뇌의 어떤 영역이 열린 것같다고 말했다.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한다던가?


그 탓에 난 사람들의 영혼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같기에 기억과 그와 관련된 모든 기작을 관찰 할 수 있게 된 것이지만. 참 신기한 일이었다.


기억이란 총 두 가지 형태로 저장된다. 한 가지는 시냅스의 연결 형태로, 나머지 한 가지는 세포의 미세소관에 광양자 형태로다. 이건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기억 매커니즘이다.


1차적으로 기억은 전자기 신호가 신경계를 통해 흐르면서 시냅스의 연결로 이어져 저장된다. 이 연결이 세냐 약하냐에 따라 장기기억, 단기기억으로 이어진다. 이 시냅스가 끊어지면 기억이 나지 않거나 건망증이 생기게 되고, 다시 시냅스가 연결되면 기억이 번뜩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한 곳에만 기억을 저장하면 시냅스가 모종의 사고로 끓어졌을 때, 기억에 오류가 생겼을 때 원래 기억으로 보강하여 되돌리기가 어렵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던가? 우리들이 중요한 자료를 보관할 때 이곳저곳에 백업본을 만들어 놓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물론 다른 생명체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에 대한 대책을 만들었는데, 그게 2차적으로 세포들의 미세소관에 저장되는 광양자 형태의 기억이다.


우리의 몸은 시냅스로 기억을 먼저 한 후, 그 기억을 바탕으로 세포의 미세소관에 광양자 형태의 기억을 양자얽힘을 통해 저장하고(이 정보를 양자정보라고 일컫는다), 그 양자얽힘의 기억을 온몸에 동기화시킨다. 그래서 온몸의 세포의 미세소관에 사람의 기억이 동기화되어 저장됨으로서 우리는 한결같은 기억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기억의 매커니즘이 우리 생명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얽혀있는 기억이 바로, 흔히 말하던 영혼인 것이었다.


나에게는 의문이 한가지 생겼다. 그럼 세상에서 말하는대로 사람의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인가? 난 그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능력에서 가장 죽음을 가까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직업,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사의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중환자실의 수술실이니. 그곳의 수술보조가 되고 싶었다. 병실에서 자연사하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타이밍을 항상 놓치게 되기 때문에 수술실에 들어가고자 한 것이었다.


난 간호사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 오랜 노력 끝에 중환자실 수술보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날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들어오게 되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수술실에선 의사 선생님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씩 흥분되었다. 그동안 알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그의 영혼은 힘을 점차 잃어갔다. '삑, 삑, 삑···.'하며 환자 모니터링 장치의 소리 간격이 점점 벌어져갔고, 환자의 세포는 점점 죽어갔다. 죽어가는 환자의 세포들의 미세소관에 있던 기억들을 세포가 더 이상 구속하지 못하고 몸 밖으로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환자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자 의사 선생님은 심장충격기를 들어올렸다. 100J(줄, 에너지의 크기 단위), 200J(줄). 단위는 점점 커져갔고, 심장충격기를 댈 때마다 환자의 몸이 들썩 들썩였지만, 모니터링 장치의 소리 간격은 정상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려는 의지가 굳세던 환자는 의식을 희미해졌고. 그의 영혼은 무수한 기억의 얽힘이 풀려져 사라져갔고, 그 의식은 점점 멀어져갔다. 결국 의사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 모니터링 장치에는 기다란 선 하나만을 비추게 되었다.


'삐이이이익―.'


마침내 환자의 영혼은 육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기억의 얽힘을 유지할 수 없어 형태가 점점 사라지고, 영혼을 이루던 기억들은 허공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광경은 마치 하늘에 은하수가 뿌려지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듯, 그 기억의 파편들은 정보를 잃고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람의 영혼은 죽으면 우주의 근원, 에너지의 형태로 다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나는 이내 허무함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죽음의 끝엔 그저 아무것도 없는 공허뿐이었다.


이게 진실이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진실···.


이게 현실이라니 참으로 착잡하다. 천국이나 지옥으로 나눌 만큼, 세상엔 선악이란 게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단지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맞물려 돌아갈 뿐인, 그런 더러운 세상이었다.


이런 씁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그 꼬마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건 그 일이 있고 이틀 뒤였다.



@@@


오늘, 그날 죽은 환자의 장례식을 찾아갔다.

난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인연이 닿은 환자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둘째날에 간 이유는 첫째날은 아직 근무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결국 환자를 위해 진심을 담아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장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가길 비는 것인데, 이미 명복을 받아야할 환자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갈 수도 없는 곳에 가라고 기도하는 것은 모순이었으니까.


난 이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와 병원 4층에 있는 하늘정원에 왔다.


난 하늘정원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고 힘없이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난 따스한 햇볕을 내리쬐며 캔 뚜껑을 타고 하늘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곤 고개를 떨궈 내 마음을 표현하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였다.


"왜 그렇게 한 숨을 쉬세요?"


갑작스럽게 들린 꼬마의 목소리에 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벤치 오른쪽 뒤에 웬 항암모자를 쓴 꼬마가 공을 들고 서있었다. 꼬마는 지금이 여름인데도 환자복에다가 다소 따뜻하게 입고 있었다.


"뭐 고민 있어요?"


꼬마가 물었다. 혜진이는 꼬마에 대한 경계심은 온데간데없이 이내 감상에 젖어 한숨 섞인 말로 대답했다.


"허무하달까.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하고 더러웠거든. 착하게 살든 나쁘게 살든 죽으면 그걸로 끝이었고. 선악이란 것도 애당초 없었고···. 후···. 그래서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중이야."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기가 쉽다던가? 환자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혜진이는 처음 보는 꼬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잠깐. 내가 꼬마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거람. 알아듣지도 못 할텐데.'


그런 내 말을 들은 꼬마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어떻게 되었든, 오늘 열심히 살았다고 만족할 만큼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되지 않아요?"

"!"


순수한 꼬마의 말은 그 순간 혜진이의 마음을 꿰뚫었다.


"너, 되게 어려 보이는 데 어른스러운 말을 잘 하는구나. 꼬마야, 이름이 뭐니?"

"전 꼬마가 아니고 태민이에요."

"그래, 태민이구나."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안혜진이야. 여기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꼬마는 반갑다는 듯 말했다.


"어? 반갑네요. 저도 여기서 입원하고 있어요."

"어, 정말이니?"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하여 꼬마의 신상을 알아보았다. 순간 태민이의 기억이 마치 한편의 파노라마가 스쳐지나가듯 보였다.


이름은 한태민, 나이는 이제 9살. 정말로 이 병원에 1년 전부터 입원 중이었다.


'나도 여기서 꽤 오래 근무했는데. 이런 환자도 있었었나? 아직 부족하구만, 나도.'


태민이가 앓고 있는 병명은 백혈병과 후천성 면역 결핍증, 다른 말로는 에이즈였다.


'아, 따뜻하게 입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지만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병원에 다니기 직전, 다시 말해 1년 전 기억 중간에 거대한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세소관은 물론이고 시냅스에도 저장조차 되지 못한 기억의 공백. 어떤 사고로 당시의 기억이 저장되지 않았던 것 같다.


'혼수 상태였던 건가?'


아무튼 태민이는 병 때문에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고,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안 그래도 가난했는데, 거기에 태민이의 병원비 때문에 태민이의 부모는 맞벌이 중이라 병문안도 잘 못 오고 있었다.


태민이에게 병문안 오는 사람도 없고 같이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밝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난치에 시달리고 있어도 살아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꼬마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태민이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런 꼬마의 순수한 모습에 조금씩 호감이 갔다.


"누나는 병원에서 무슨 일을 하세요?"

"난 간호사야. 환자들을 간호하는 사람."

"아, 간호사 누나구나."

"그나저나 혼자서 공놀이 하러 왔어?"

"네. 다른 사람들에게 같이 하자고 했는데, 아무도 안 해줘서 혼자 하러 왔어요. 운동하면 몸이 건강해지잖아요? 심심하기도 하고요···."


난 아무도 꼬마와 놀아주지 않는 이유를, 내 눈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간호사들에게 놀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한 모양이네. 일이 바쁜 탓도 있겠지만, 아마 에이즈 감염을 걱정하는 거 겠지. 잘못해서 자신이 감염되는 건 웃길 테니까. 그리고 혹시나 애가 다치면 책임을 져야하고···. 요즘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많지 않으니.'


난 안타까움에 내심 한숨을 쉬었다. 꼬마의 사정을 알게 되니 같이 놀아주고 싶었다. 나라면, 여차할 감염도 피하기 쉽고, 다양한 상황을 예측할 수 있으니 이 애를 돌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같이 놀아줄까?"

"네!"


꼬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대신 여기 담장 넘을 정도로 세게 던지면 안 돼. 아무리 고무공이지만, 공이 아래에 있는 사람 머리에 떨어지면 큰일나니까."

"네! 그럼, 시작할게요, 누나!"


그렇게 우리 둘은 한동안 하늘정원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공을 던져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혜진이는 이 날을 계기로 꼬마와 사이가 가까워졌다.


나는 메마른 사막에서 한 송이의 꽃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태민이를 보는 것이 내 삶의 낙이 되었다.


다음 날, 나는 태민이의 부모를 만났다.




@@@


나는 그 날 이후로 꼬마의 병실을 찾아와 자주 놀았다.


일을 해야 해서 잠깐씩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거였지만, 보드게임도 하고, 핸드폰 게임도 하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난 태민이의 부모님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저녁에 시간을 내서 태민이의 기억의 공백에 대해서 그의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요?"

"예, 그것도 이제 1년이 지났죠. 그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사건은 1년 전, 태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꼬마는 평소처럼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집근처 횡단보도에서 그만 차에 치이고 말았던 것이었다.


꼬마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충격으로 기절하고 말았고, 출혈상태도 심각했을 것이다. 그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이 119에 신고해 태민이는 무사히 응급실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태민이의 어머님도 빠르게 응급실로 달려왔고, 아버님도 어머님께 연락을 받고 빨리 병원으로 찾아왔었다.

수술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술하기 전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혈액이 부족했습니다. 우리 태민이는 희귀 혈액형(Rh- AB형)이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제 시간에 혈액기증자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직감했다.


"그런데 그 사람, 에이즈 보균자였죠?"

"예···."


어머님은 힘없이 말했다. 그럴 만했다.


태민이 어머님은 태민이를 살릴 생각에 혈액기증자에게 감사했었지만,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 원망으로 바뀌었다. 살았지만, 큰 병을 얻고 말았으니.


꼬마는 그렇게 병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님의 사업까지 망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고, 거기에 태민이가 백혈병에도 걸리자 두 분 모두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맞벌이 전선으로 나왔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생활도 그만 끝내고자 합니다."


나는 직감했다, 태민이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유는 그저 순수하고 밝고 긍정적인 꼬마의 모습을 계속 보기 위해서인데, 그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수 있단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 어째서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어 혜진이는 어머님께 묻자, 어머님이 확인사살 해줬다.


"태민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이제 가족여행이라도 하면서 추억이라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함께 해주지 못했으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머님께 물었다.


"태민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태민이가 그나마 건강해 보이는 건 그저 긍정의 힘 아래 감춰진 눈속임뿐이었다.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님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뇨. 모릅니다. 태민이에게는 병이 나아서 이제 내일 모래 퇴원한다고 말했습니다. 태민이에게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든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알 권리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게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요?"

"선생님은 태민이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요. 그래서 아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로서 마음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나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럼 태민이는 마음의 준비 안 해도 되나요?"


어머님은 말이 없었다.


"태민이에게 알려야겠어요."


그 때 꼬마의 어머님이 돌아서던 내 손을 붙잡았다.


"안 돼요. 제발 말하지 마세요."

"왜요?"

"태민이의 미소를 잃는 게 두렵습니다···.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어머님의 부탁에 못 이겨 한숨 쉬며 어머님의 손을 내려놓았다.


"후···. 정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말은 안 할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러곤 부모님이 완전히 가실 때를 기다려 태민이의 병실에 들렸다. 꼬마는 친구인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누나, 퇴근 안 해요?"

"병문안 차 온 거야. 할 말이 있어서···."

"그게 뭔데요?"


나는 차분히 태민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돌려 말하기로 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거니 어머님과의 약속은 지키는 셈이다.


"어제 안 좋은 꿈을 꿨어."

"무슨 꿈이요?"

"너 죽는 꿈."

"에이, 저 다 나아서 내일 모래 퇴원해요."


태민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왠지 꿈자리가 불길해서 와봤어. 다시는 못 볼까봐."

"여행 갔다 와서 얼굴 비출게요. 여행할 때 메시지도 보내줄게요."

"응. 하지만 꿈에서 본 것처럼 병이 갑자기 악화되면 어떡하지?"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나, 네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죽고 싶을 거야."


태민이는 간호사 누나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만일 제가 죽는다면 제가 천사라도 되서 계속 같이 있어줄게요. 기도해 주실거죠?"


나는 침묵한 채 생각을 곱씹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해.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으니까.'


나에게 있어서 우스운 꼬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태민이는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뜸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응. 기도할게.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그럼 난 가볼게."


혜진이는 잠깐 뜸들이다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대로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퇴원 축하해."

"고마워요, 누나."


난 복도로 나와 걷다가 발길을 멈춰 벽에 몸을 기댔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


얼마 후, 마지막 작별인사로 태민이는 퇴원했다.


「저 오늘 놀이공원에 왔어요!」- 19:08


간간히 휴대폰으로 오는 메시지를 보니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놀이공원도 가고, 바닷가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나름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거 같아 보였다.


한편으로는 흐뭇했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태민이의 수명은 병에 갉아 먹히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태민이의 긍정의 힘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긍정의 힘은 그저 일종의 진통제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 사실에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적적했다. 내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달이 지났을 때 쯤, 우리 둘은 다시 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꼬마가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헐레벌떡 병원으로 찾아갔다.

내가 도착해 발을 들인 곳은 햇볕이 잘드는 임종실이었다.


이제 꼬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도착했을 때 병실 침대에서 많이 쇠약해 보이는 태민이가 몸을 조금씩 가누고 있었다.

그 영혼도 쐬약해져 있었다.


건강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마치 사신이 자신의 목숨을 거둬가길 얌전히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태민이는 나를 보며 힘겹게 눈을 떠 말했다.


"오셨···어요?"

"응. 나 왔어."

"누나 꿈이···, 사실이었나 봐요."


난 말이 없었다. 태민이는 이미 부모님이 거짓말 했단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런데도 싫은 내색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태민아, 미안하다."


태민이 부모님이 눈물을 흘렸다.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니 이제 괜찮아요."


태민이의 목소리는 힘없이 가늘었지만 기운내며 말했다.


"근데 경찰이 되어서 효도는 못 할 거 같아요. 엄마, 아빠 미안해요."

"아니야. 못난 엄마라 미안해."

"아빠가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


태민이의 부모님은 태민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태민이는 부모의 등 너머로 내 얼굴이 보였다. 나는 금방 울 것 마냥 울상을 짓고 있었다.


"누나···, 힘들어?"


나는 그 말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누나, 걱정하지 마요. 나 착하게 살아왔으니까··· 천사가 되서, 계속 같이 있어줄 테니까···."


그리고 꼬마의 마음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잠깐 헤어질 뿐이니까. 너무 슬퍼서 죽으면 안 돼요. 보고 싶을테니까요.'


태민이는 그렇게 부모님과 손을 잡은 채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임종실 안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태민이의 영혼을 이루고 있던 기억의 얽힘은 조금씩 육체에서 이탈해 힘을 잃고, 그 기억의 파편들이 흩어지면서 창밖으로 사라져갔다.


그 광경은 마치 하늘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는 듯 했다.


'안녕···. 꼬마야.'


나는 사라져가는 태민이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하늘 위에는 자그만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


며칠 후, 태민이의 장례식이 끝나고 화장한 태민이의 시신을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해 이동했다. 내 기분은 사막에서 발견한 유일한 꽃이 시든 것만 같았다.


'그래. 세상은 이랬지. 현실은 더럽기 때문에 현실이었지.'


태민이가 이 세상에서 없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텅 빈것만 같았다.


나는 태민이 장례식에서도 혜진이는 태민이의 명복을 빌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었으니까.

태민이의 시신을 납골당에 안치할 때까지도 내 마음은 공허할 뿐이었다.


'만일 제가 죽는다면 제가 천사라도 되서 계속 같이 있어줄게요.'


나는 문득 태민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례식을 끝내고 밖으로 향했다.


'태민아, 네가 근처에 있다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주렴.'


태민이 부모님들은 그렇게 납골당을 나오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나는 '이미 영혼은 산산이 흩어져 돌아올 수 없는데, 기도해봤자···.'라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은 알고 있었다.

누구나 희망을 품고 싶은 법이니까.


그런데 납골당을 나오자 웬 꼬마 새 한 마리가 주변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 새는 천천히 날아와 태민 어머님의 어께에 올라탔다. 꼬마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사람과 가까이 있고 싶은 듯 보였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어? 신기하네. 새가 어머님 어께에 올라탔네요."


그러자 태민이 어머님의 눈망울이 맺혔다.


"태민이예요. 태민이가..., 태민이가 다시 찾아왔어요."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어.'라 생각했지만 그때, 한 순간이었지만 들리지 않아야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보고 싶었어요.'


태민이의 목소리였다


'말도 안 돼···.'


그 말소리를 듣자마자 태민이 어머님 어께에 앉아있던 꼬마새가 혜진이에게 날아와 그녀의 손가락에 앉았다. 나는 내 능력을 통해 꼬마새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무언가가 내리꽂힌 듯 충격을 받았다. 꼬마 새에게서 태민이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태민이가 꼬마천사가 되어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태민이의 생명이 다한 날, 하늘로 흩뿌려진 그 기억의 파편들 중 일부가 새의 눈을 통해 들어가 꼬마의 영혼이 새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것이었다.


태민이는 그렇게 천사가 되어 그들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돌아올 수도 있는 거였어?'


혜진이는 한 손으로 스스로의 입을 막고 감격에 겨누어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말한 대로 돌아왔죠? 그러니 울지 마세요, 누나.'

"태민아···."


현실은 더럽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절망이 있으면, 이렇게 희망도 있는 법이었다. 그저 이런저런 일들이 맞물릴 뿐인 평범한 세상이었다.


우리의 영혼은 우주의 근원, 에너지로 돌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간혹 다른 자의 몸에 들어가 이렇게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듯. 우리의 영혼도 우주로 돌아가 다른 탄생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제야 진심으로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니까.


"어서와, 꼬마. 많이 기다렸잖아!"

'미안!'


사막의 꽃은 시들면 씨앗을 남긴다고 한다.

험난한 사막의 뜨거운 열기마저 이겨낼 씨앗을.

태민이는 이 진실을 나에게 전해주기 위해 만나게 된 걸 지도 모른다.


작가의말

단편소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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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기 19.09.16 25 1 2쪽
» 다시 돌아온 꼬마새 19.08.08 96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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