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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지웅의 서재

신빨로 아포칼립스 씹어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박지웅
작품등록일 :
2023.11.30 09:18
최근연재일 :
2023.12.09 21:32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2,732
추천수 :
58
글자수 :
89,363

작성
23.11.30 09:42
조회
416
추천
10
글자
17쪽

1. 환청

DUMMY

세상은 곧 멸망한다.

불덩이가 비처럼 쏟아져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울 거다. 

살아남으려면 산으로 떠나라. 

산에 자리를 잡아라. 

마지막 때 신의 전사가 되어 싸우리라.


산의 위치까지 정확히 짚어준 환청. 

한 달씩이나 집요하게 자길 괴롭힌 환청을 참다못한 청룡은 결국 동네에 있는 작은 정신 의학과를 찾았다.  


청룡은 병원이라면 질색을 한다. 


그가 병원, 그것도 내과, 외과와 달리 문턱이 높다는 정신 의학과, 흔한 말로 정신병원을 찾았다는 것은, 환청으로 인한 고통이 상당했음을 의미했다. 


“처음 오셨어요?” 

“네.”

“어디가 불편하세요?” 

“귀에서 환청이 들려서요.” 

“이거 적어주세요.” 


퉁명스러운 접수대 간호사는 청룡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적는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이름: 유청룡

주민등록번호: 951215-


“여기요.”

“잠깐 앉아 계세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삼십 분, 길면 한 시간 정도 걸려요. 더 걸릴 수도 있구요.” 


‘하아.’ 


인상을 구긴 청룡이 접수대 앞, 대기 좌석에 앉았다. 


대기 중인 이는 고작 두 명. 

청룡의 뒤에 있는 안경 낀 남자와 구석에 자리 잡은 여자가 전부였다. 


“상태창, 상태창.” 


뒤에서 들리는 희미한 목소리에 청룡은 고개를 돌렸다. 

청룡의 시선에도 아랑곳 앉고, 

작은 소리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남자. 


“상태창, 상태창.”


남자의 번뜩이는 눈은 접수대 간호사를 향했고, 

낌새를 느꼈는지 간호사가 고개를 들자, 


“호감도 업! 호감도 업!” 


다급히 외치는 남자. 

남자는 이번엔 제법 큰 소리를 냈다.

접수대 간호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미친놈.”


입술만 뻐끔거리는 혼잣말. 


‘정신 병원은 정신 병원이구나... 저 정도면 큰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새삼 자신이 있는 곳이 정신병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청룡은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유청룡 씨, 유청룡 씨.” 


청룡이 병원에 도착한 순간을 기점으로 시계는 한 시간 십분이 흘러 있었다.


“청룡 씨!” 


남은 대기자는 오로지 유청룡 한 명.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청룡은 어찌나 이어폰 볼륨을 높였는지, 간호사의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안 들려요?” 


짜증스러운 표정의 간호사가 다가와 어깨를 툭 건들고 나서야 간호사를 쳐다봤다.


“아, 제 차롄가요?”

“네. 진료실로 가세요.” 


간호사가 손을 뻗은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청룡. 

진료실 문을 열자, 흰색 가운의 무표정한 의사가 청룡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청룡의 인사에 고개를 까닥 거리는 의사. 


‘똑같네.’


정신과라고 뭔가 다른 분위길 기대했던 걸까? 


등받이 없는 환자용 의자,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가 올려져 있는 갈색 책상.

청룡의 눈에 여느 병원 진료실과 별반 차이 없어 보였다. 


“환청이 들린다구요?”

“네.” 

“지금 하시는 일이?”


‘어떤 환청이 들리는지 묻는 게 우선 아닌가?’


“건축업하고 있습니다.” 

“건축업이라면?”

“노가다꾼입니다.” 

“아.”


헝클어진 머리에, 나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얼굴. 

노 의사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들겼다. 


“최근에 마음에 충격을 받을만한 일이 있었나요? 이를테면 가족이 명을 달리 했다던가.”

“아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지금 가족 관계가?”


‘왜 묻지? 환청이 들린다니까? 가족관계가 무슨 상관이야?’


“혼잡니다.”

“자세히 말해주세요. 증상 발현 원인을 파악하려면 필요한 내용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릴적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떠난 뒤 1년 정도 지났을 때, 절 버렸습니다. 형제자매는 없고, 고아원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있었어요.” 

“고아원 출신.”


의사는 청룡의 말을 읇조리며 모니터로 옮겼다. 


“그럼 가족이라 부를만한 사람이 있나요? 먼 친척이라던가?”

“없습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한 청룡은, 


“아, 있습니다. 백호라고,”


곧바로 대답을 바꿨다. 


“백호가 누구죠?” 

“제가 키우는 개입니다. 제겐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아니, 가족보다 더한 존재죠.”


잠시의 침묵. 


“애인은요?”

“없습니다.” 

“사귄 적은?”

“없습니다.” 

“친구는 있어요? 1년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친구.” 

“없습니다.”

“한 명도?”

“네. 전 사람이 싫습니다. 부모도 절 버렸는데, 누굴 믿을 수 있겠어요?” 


청룡과 문답을 주고받는 의사는 어떤 답이 흘러나오든 무표정을 유지했다. 


“하고있는 일은 할만한가요??”


‘막일이 할만할 리가.’


“그럭저럭이요.”

“본인이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폭력적이 성향이라...’


초, 중, 고. 

자길 고아라 놀리는 친구들을 일방적으로 팼던 일,

온몸에 문신을 두르고는, 현장에서 툭하면 틱틱 시비 거는 패거리를 묵사발로 만들었던 일. 

그래서 조용한 놈, 재미없는 놈에 이어 무서운 놈이라는 별명이 생긴 일. 


“없습니다.” 


먼저 날 건드리지 않는 이상...


청룡은 뒷말을 흐렸다. 


“종교는요?”

“없습니다.” 

“술 담배는 해요?”

“술은 먹을 줄만 알고 즐기진 않습니다. 담배는 안 합니다.”

“삶 전반적으로 불만이 있나요?”


‘불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자기를 진짜 부모라 여기라면서, 툭하면 주먹을 휘둘렀던 고아원 원장, 

기분 나쁜 놈, 싸한 놈, 재수 없는 놈.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높은 벽을 세운 철저히 고립된 삶.  


“전엔 가득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음.” 


필요한 건 다 파악됐다는 그런 표정. 

여전히 사무적인 태도. 

의사는 청룡이 뻔한 케이스 중 하나라 여기는 것 같았다.


“환청의 내용이 뭐죠? 청룡 씨한테 뭐라고 속삭이던가요?” 


그제야 환청에 대해 물어보는 의사. 


“세상이 멸망한다, 온통 불바다가 될 것이다. 살려면 산으로 떠나라. 뭐 그런 내용입니다.” 


망상병까지 더해질라, 청룡은 자기가 신의 전사가 된다는 부분은 빼고 말했다.


반짝였다.

시종일관 사무적인 태도, 무표정했던 의사의 눈빛이 반짝였고, 자세까지 고쳐 잡았다. 

의자에 등을 기댄 자세에서 청룡에게 한껏 몸을 기울인 자세로.


“사도? 청룡 씨는 자신이 사도라고 생각하나요?”

“사도라뇨?”

“신의 계시를 받는다는 사도 모르세요? 한창 이슈인데.” 

“네··· 처음 듣습니다.”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신에게 계시 받은 지구 종말 예언을 떠들어대는 사도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사도들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 신의 계시를 전하며,

종말에서 함께 살아남을 이들을 끌어들인다고 의사는 청룡에게 짤막히 설명했다. 


“전 세계적인 이슈죠. 전 재산을 사도에게 바친 피해자들, 자기가 사도라 주장하며 추종자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이들, 문제입니다, 문제. 나이가 젊은데··· 인터넷을 잘 안 하시나 봐요? 시끌벅적한 지 꽤 됐는데...”

“네. 가십거리에 관심이 없어서.” 


일. 

일하는 시간 외엔 백호와 놀아주기, 

영화 보기, 

책 읽기. 

그것이 청룡의 일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 청룡 씨도 모르는 사이 사도에 대해 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뉴스에도 심심찮게 나오니까요. 전 사도 사태를 세기말적 흐름에 편승한 일종의 신드롬이라고 봅니다. 전염병 같은 거죠.”


경제난, 나라와 나라 간의 크고 작은 분쟁, 환경 오염, 기상 이변, 바이러스 창궐 등.

알게 모르게 세기말적 상황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침투해 왔다. 

무언가 등장해 트리거를 당긴다면, 

언젠가 세상의 끝,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잠재의식이 표면 위로 불거져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사도가 그 트리거를 당긴 겁니다. 아직은 홀리지 않은, 합리적인 사람이 절대다수라 다행이긴 합니다만.” 


‘쓸데없는 소리를 길게도 하네. 사도인지 오도인지 내가 알 게 뭐야.’


“그래서요?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낮이고 밤이고 틈만 나면 귀에서 속삭이는 데 미칠 지경입니다. 환청을 안 들리게 할 방법은 없나요?” 

“우선 무시해보십쇼. 뭐라고 하든 안 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무시해보십쇼. 짜증 난다 무섭다 성가시다 이런 생각 자체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아니, 들리는데, 어떻게 안 들리는 것처럼 해요. 환청을 멎게 하는 약 같은 건 없나요?” 

“도움이 될 수 있는 약은 있는데, 의존성이 있어서. 일단은 제 말대로 해 보세요. 제가 볼 땐 신드롬에 의한 가짜 증상일 확률이 높으니. 한 달 뒤에 다시 보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청룡. 


“그게 끝입니까? 그 있잖아요? 머리에 뭐 붙이고 검사하는 거나, 아니면 머릿속을 찍는다던가 그런 것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의미 없을 겁니다. 정하고 싶다면 진료 의뢰서를 써 드리죠. 큰 병원에 가보세요.”


한창 바쁜 현장.

반장한테 부탁해 겨우 하루 뺀 건데, 

고작 의사가 하는 말은

환청을 무시해라, 자기 말 듣기 싫으면 큰 병원에 가봐라가 전부. 

동네 병원이 아닌 처음부터 규모 있는 곳으로 갈 걸 싶은 청룡이었다. 


“써드려요?”

“네.”

“접수대에서 받아 가시면 됩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청룡은, 

진료실 문을 제법 거칠게 열어 재꼈다. 


***



“야! 제발 그만 좀 하자. 잠을 못 자겠잖아. 넌 잠도 안 자냐?” 

“어흐응”


좁은 방안. 


청룡의 옆에 누워 있던 백호는 자기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벌떡 몸을 일으키곤 범상치 않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너 말고 인마.” 

“흐으응”


백호를 안고 부비적거리는 청룡은 그 순간에도 계속되는 환청에 미간을 찌푸렸다. 


진료 의뢰서를 들고 차로 두 시간을 달려 대학병원에 갔었다. 

뇌 MRI 촬영, 혈액, 뇌척수액, 심리 등, 이틀에 걸쳐 다양한 검사를 했고. 

결과는 이상 무. 


신체적 이상, 심리적 문제는 전혀 없었다. 

지극히 정상인 상태. 


약을 처방받아 아침, 점심, 저녁 꼬박 챙겨 먹고 있는데, 졸음만 쏟아질 뿐 환청은 그대로. 

동네 의사가 말했던 대로 환청을 무시하려 무던히 애도 써봤다. 


이건 실체 없는 소리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다. 

요즘 일이 바빠서 몸이 허해졌나 보다.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귓가 속삭임은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 새벽 네 시다, 네시. 언제까지 떠들 거야? 나 두 시간 뒤에 현장 나가야 한다고!”


더 심해졌다. 


“좋아.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근데 산 가서 뭐 어쩌란 말이야? 그냥 맨몸으로 멍하니 있으리? 불덩이가 떨어진다며? 세상이 다 불탄다며? 그 뭐냐, 방공호? 하다못해 컨테이너라도 박아 넣어야 할 거 아니야! 근데 어쩌냐?”


피식 웃고는 말을 잇는 청룡. 

눈은 컴컴한 천장에 고정된 채였다. 


“나 돈 없다. 네가 말한 산으로 갈 테니 돈을 줘. 계좌번호 알려줄까? 금덩이를 뚝 떨어트려 주던가. 너 신 뭐 그런 거라며? 신이면 그 정도 기적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러니까 돈을 줘봐!” 


듣는 이라곤 백호뿐인 방 안에서 미친놈처럼 소리친 유청룡. 


‘?’


“뭐지?” 


일순간, 거짓말처럼 환청이 멎었고, 청룡은 고요해진 귓속이 되려 낯설게 느껴졌다.


***



다음 날. 


“청룡아, 간만에 야리끼린데 요 앞 쭈꾸미 집에서 한 잔 할텨?”

“아니요.”

“알지. 알아. 어련하시겠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청룡인데. 그냥 물어본 거야. 얼른 집에 가서 색시랑 놀아라.” 

“색시는 무슨, 그럼 반장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휴, 재미없는 놈.”


오후 세 시. 


고작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서 고된 노동을 했음에도 경쾌한 발걸음. 

평소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끝나서가 아니었다. 


‘이제야 살 것 같다!’


근 한 달 동안 청룡을 집요하게 괴롭힌 환청이 새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아서였다.


‘백호 녀석이랑 고기 파티나 해야겠다.’


새벽에 자신이 허공에 대고 뭐라 지껄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 지겨운 귓속 울림이 그쳤다는 것. 

그것이 청룡을 들뜨게 했다. 


한 달간 끊임없이 환청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어흐응.” 


외형에서 폐가 느낌이 풍기는 구축, 백호 때문에 선택한 1층짜리 단독주택. 

청룡이 현관문을 열자, 큰 덩치의 백호가 이른 시간 퇴근한 주인을 온몸으로 반겼다. 


“야야, 형 더러워, 씻고 나서 놀자.” 


폴짝 뛰어 안긴 백호를 쓰다듬어준 뒤, 청룡은 곧장 욕실로 향했다.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환복을 한 청룡.


“백호야 산책 가자. 오는 길에 고기도 사고, 오늘은 너 좋아하는 고기 파티다.”


고기라는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주인의 기분을 알아챘기 때문이었을까. 


“어흐응.”


청룡을 따라나서는 백호의 꼬리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어흐응, 어흥.” 

“백호야 조용히 좀 가자. 너 짖으면  또 몰려든다고. 오늘 차고 넘칠 만큼 산책시켜줬잖아. 이거 봐. 네가 먹을 소고기도 세근이나 샀다. 그러니까 형 좀 봐줘라 응?” 


차우차우와 진돗개가 믹스된 백호. 

두 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몸집이 큰 대형견.

큰 몸과 흡사 호랑이와 닮은 울음소리 때문에 산책 때마다 관심이 쏠리기 십상이었다. 

사람을 싫어하는 청룡은 그때마다 곤욕이었고. 


“흐응.”


백호는 주인을 봐주겠다는 듯, 청룡의 종아리에 머리를 문댔다. 


“안녕하세요.” 


청룡과 백호가 집으로 향하는 길.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통닭! 뿅간다 통닭입니다!”


산적 같은 남자가 청룡에게 전단지를 건넸다. 


청룡이 무시하고 가려는데. 


“어흥, 어흥.”


코를 간지럽히는 고소한 통닭 튀김 냄새 때문인지, 백호는 가게 앞에서 멈춰서서, 


“어흐응.”


청룡의 얼굴과 매대에 있는 통닭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고기 많이 샀잖아. 그리고 어차피 너 통닭 먹지도 못해.” 

“어흐응!”


망부석이 되어 꿈쩍도 하지 않는 백호. 

난감해하는 청룡. 


“어우야, 이게 개에요 황소에요? 울음소리도 독특하네? 그러지 말고 통닭 하나 들여가세요. 오픈 기념 한 마리 9,900원으로 할인해드려요. 토요일 저녁, 통닭에 맥주 캬아! 좋잖아요?”

“··· 한 마리 주세요.”

“굿 초이스! 잠시만요.” 


싱글벙글한 사내가 잽싸게 초벌 된 통닭을 튀겨 정겨운 갈색 봉투에 담아 청룡에게 건넸다. 


“뿅간다 통닭 나왔습니다.”

“여기요.”

“오, 현금 감사합니다! 자, 거스름돈 100원. 어? 잠깐만요. 그냥 가지 마시고 룰렛 돌리고 가세요. 통닭 한 마리당 한 게임! 1등 하시면 통닭 30마리 무료 제공입니다!” 

“됐어요. 수고하세요.”

“에이, 한 번 돌려보시라니까.”


남자는 기어이 청룡의 팔을 끌었다. 


‘거참 귀찮게 하네.’


성의 없이 룰렛을 돌린 청룡. 


1등 통닭 30마리 이용권 (1명) 

2등 통닭 10마리 이용권 (2명)

3등 통닭 1마리 이용권 (10명)

4등 로또 복권 한 장. 


힘없이 돌아가던 룰렛, 바늘이 멈춘 곳은 4등 로또 복권. 

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렇지.’


“혹시 모르죠, 통닭 30마리보다 더 큰 행운이 찾아올지.”


로또 복권을 받아든 순간 멈칫한 청룡.


청룡은 어차피 당첨 확인을 하지 않고 복권을 버릴 생각이었다. 

불우한 시절을 보내며 자기 인생에 행운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다고 청룡은 늘 생각해왔다.  

일확천금을 바란 적 없는 그였으니, 천 원짜리 로또 복권 한 장에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9, 5, 12, 15, 11, 2, 3


자동이라는 글자 다음에 이어진 숫자가 청룡의 시선을 붙잡았다. 

모르는 이에겐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이겠지만,

청룡은 그 숫자를 보고, 


95년 12월 25일. 


자신의 생년월일과,


11월 23일.


백호를 데려온 날짜의 조합이라는 걸 대번 캐치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청룡은 어렴풋이 짐작했는지 모른다. 


관심도 없던 로또 추첨 일과 추첨 방송 시간을 확인하고, 

연신 침을 꿀꺽이며 방송을 시청하게 되리란 것을.


1등 당첨 번호가 9, 5, 12, 25, 11, 2, 보너스 번호는 3, 


팔린 만큼 당첨자 수가 나오는 로또 통계상,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정말 오랜만에 단 한 명의 일등이 나왔다는 것, 


그 한 명이 200억이 넘는 거금을 독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리란 사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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