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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고냥 님의 서재입니다.

모든 궤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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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고냥
작품등록일 :
2024.01.16 15:38
최근연재일 :
2024.02.02 14:5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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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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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수 :
143,983

작성
24.01.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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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화 궤적

DUMMY

정훈의 주먹에서부터 시작한 흰색 선은 정확히 태섭의 광대뼈를 겨냥했다.

그 말은 곧 있으면 광대뼈가 가격 당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눈에 뻔히 보이는 궤적임에도 불구하고 태섭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건 머릿속에 각인된 오랜 기억에 기인했다.


“피하면 두 배다.”


정훈이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랬다.

피하면 길어졌다.

그러니 깔끔하게 맞으면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태섭은 그 시절 곧잘 많이 맞는 것 보다 빨리 맞고 끝내는 걸 선호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 궤적이 신경 쓰여서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정훈의 주먹이 저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도 있었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뭐지? 궤적은 광대뼈를 향하는데 어금니 타령은.

태섭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정훈의 주먹은 흰색으로 표시된 궤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따랐다.

마치 레일 위에 올라탄 기차처럼 정확하게 태섭의 광대를 향했다.


퍽~


아~ 오랜만에 맞아서 그런가 아프...

아프나? 뭐지? 왜 아프지 않지?

그 당시에는 한 대만 맞아도 마치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아팠는데.

그래서 더는 고통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의 타격은 솔직히 가소로웠다.

그 당시 태섭은 무엇 때문에 그리 겁먹었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다시 이 몸으로 오기 전까지 인생의 쓴맛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픔의 크기는 육체적인 나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나이를 따르는 것인가?


“태, 태섭아.”


저 무리들에 섞여 쳐다보는 친구놈 둘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쳐다보는 눈빛의 의미를 태섭은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들은 맞고 있는 태섭을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정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안도까지 품고 있었다.

그 정도로 그들의 눈빛은 이율배반적이었다.


으그, 저런 놈들을 불알친구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그러니 한 놈은 보증을 서게 만들었고.

한 놈은 남의 마누라와 눈이 맞았지.


“어때 정신이 드냐?”

“응?”

“이 시키가 맞으면서 한 눈 팔고 있냐?”


태섭을 살피던 정훈은 태섭이 맞은 순간에도 자신보다 지 친구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태섭은 아차 싶었다.

너무 오랜만에(?) 과거로 돌아와서 일까.

맞고 난 뒤에 허리우드 액션에 버금가는 아픔을 호소한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


그제야 손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이 시키 이거 연기하네. 야 이 시키야.”


늦었다.

정훈은 다시 태섭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세웠다.


“아아아~”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 연신 아픔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통하지 않았다.


“똑바로 서. 강냉이 털리고 싶지 않으면.”


그러면서 다시 주먹을 뒤로 뻗었다.

얼마나 세게 휘두르려고 저렇게 동작이 큰지.

그 순간 또 다시 흰색 궤적이 나타났다.

이 궤적 일시적인 게 아니었나보다.

태섭을 향하는 타격에 한해 궤적이 생성되었다.


‘그런데 저건 뭐지?’


아까는 흰색 궤적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몰랐는데.

시야 정면 위쪽에 숫자가 보였다.


0/10


잘못 본 것인가?

잽싸게 눈을 비벼보았다.

먼지인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깜빡인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비빈다고 번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궤적 위험한데.’


저 숫자가 급한 건 아니었다.

정훈의 주먹에서부터 시작한 궤적은 아주 큰 아크를 그리며 태섭의 귀를 향했다.

어금니 타령을 하면서 광대를 맞춘 거보면 영점조준이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학창시절에 정훈은 종종 어금니를 꽉 깨물으라면서 눈을 맞춘 적도 있었다.

그때는 방심을 이용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강냉이 타령을 하지만 영점조준에 실패한 주먹이 귀로 향했다.

광대야 맞을 수 있지만 고막은 나가면 골치가 아팠다.

태섭의 고막이 나간 적은 없지만.

군대시절 동기 하나가 얼차려를 받다가 고막이 나간 적이 있었다.

한 여름에 귀에서 진물이 줄줄 흘러 고생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덴 몰라도 고막은 안 돼지.’


정훈의 주먹이 빠르게 태섭의 고막을 향했다.


“헉?”


태섭을 향한 정훈의 주먹에선 아무런 타격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더 놀랐다.

그들의 표정은 딱 이랬다.


태섭이는 이제 좆댔다.


정훈의 주먹을 피했다.

아이들 못지않게 정훈조차 놀랐다.


“너, 너 미쳤냐? 주먹을 피해?”


얼마나 놀랐는지 정훈이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여리여리하게 생긴 태섭이 주먹을 피할거라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태섭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다.

그건 아까부터 시야의 정면에 박혀있던 숫자였다.


1/10


정훈의 주먹을 피하자 마치 카운터 되듯 숫자가 변했다.


“미쳤냐고?”


주먹을 날리기 전에 말도 많고 뜸도 많이 들였던 정훈이 정말 열 받았는지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어김없이 궤적이 그려졌다.

그런데 치사한 놈.

열 받았다고 눈을 때리려 하다니.

정훈의 주먹에서 시작된 궤적이 임태섭의 왼쪽 눈을 향했다.

단단히 열 받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맞아줄 순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막과 귀는 너무하지 않는가.


“아~”


두 번 연속 피했다.

그러자 뒤에서 점점 안타까운 탄성을 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아이들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했다.


“개시키. 너 죽여버리고 만다.”


정훈의 주먹이 다시 뒤로 돌아갔다.

이어 궤적이 그려졌다.

이번엔 코였다.

내일 없이 사는 놈이라지만 크게 문제될 곳만 때리려 했다.

아닌가? 어쩌면 영점조준이 엉망이라 우연찮게 눈코귀가 걸린 건가?

여튼 눈먼 돌에 맞아죽는다고.

코를 향하는 주먹조차 곧이 맞을 순 없었다.

그래도 아내조차 인정하던 태섭의 얼굴이었다.

집을 나가기 전, 얼굴 보고 결혼한 지가 바보라고 칭찬했으니까.


“아~~~”


정훈의 주먹 세 방이 그대로 헛쳤다.

세 번째에 이르러서 아이들의 탄성이 안타까움에서 기대로 바뀌었다.

그건 태섭만 느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당황한 정훈이 뒤를 돌아봤다.

마치 원형경기장처럼 에워싸고 있던 애들에게 소리쳤다.


“뭘봐 시키들아. 니들이 대신 맞고 싶어?”


그 말에 마치 어두운 주방 불을 켜자 일제히 흩어지는 바퀴벌레마냥 순식간에 자리로 돌아갔다.

그 중에 제일 빠른 놈들이 소위 태섭의 불알친구란 놈들이었다.


“이, 개시키가...”


아직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정훈이 다시 주먹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야, 쌤 떴어. 쌤.”


밖에서 망보던 놈이 소리쳤다.

선생이 온다는 소리에도 정훈은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씩씩거리며 태섭을 노려봤다.

그런데 너무 씩씩거렸다.

이게 너무 분해서 씩씩거리는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겨우 한 대 때리고 세 대 헛쳤을 뿐인데도 온 힘을 다했다고 진이 빠져 헉헉대던 거였다.

그러면서도 노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에 태섭은 덤덤하게 그의 눈빛을 받았다.

이 무렵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연륜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나보다.

고작 이 나이에 두 배밖에 안 살았을 뿐인데 이 상황을 처연히 받아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었다.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마라.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끝나고 남아라. 내 니 버르장머리 고쳐줄테니.”


나이를 더 먹었다는 건 확실히 유리한 면이 있어 보였다.

정훈의 말에 태섭은 깐족거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도발을 하지는 않았다.

오늘 이 일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훈이 흥 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야, 임태섭. 넌 왜 자리에 안 가고 거기 서있어.”


교실로 들어온 담임이 태섭에게 소리쳤다.


“들어가야죠.”


태섭은 들어가면서 시야의 정면에 박힌 숫자를 확인했다.


3/10


확실했다.

정훈의 주먹을 피한 수만큼 숫자가 올라갔다.

그러자 한편으로 궁금했다.

저 10이란 숫자는 가리키는 의미가.

혹시 목표치가 되는 것인가?

만약 정훈의 주먹을 열 번 피하면 어떻게 될까?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마무리되고 현재로 돌아가나?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방과 후 좋든 싫든 저 수치를 10/10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야, 너 미쳤어?”


미치긴 제 정신이지.

보증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가정이 풍비박산 낸 것에 비하면 덜 미친거지.


“왜 그렇게 노려봐.”


아차, 현생의 일이 갑자기 떠올라 노려본 모양이었다.


“아, 아니 내가 뭘 노려봤다고.”

“그나저나 어쩔 거야. 한 대 맞은 거 그냥 한 대 더 맞고 말지 왜 피해서 일을 크게 만들어.”


지 눈코귀 아니라고 아주 쉽게 말하는 하영이를 보고 있다니 한숨이 나왔다.


“그, 그냥, 나도 모르게.”

“평소에 우리한테는 그냥 한 대 꾹 참고 맞으면 된다고 그러더니 왜 발끈한 거야?”


너도 너 같은 놈에게 마누라 뺏겨봐라 참게 되는가.


“방과 후에 남으라는데 어떻게 할 거야.”


마치 지 일처럼 걱정하는 거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따라 가고 싶지만 나 학원가야 해.”


원준은 행여 따라가 달랠까봐 선수를 쳤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알아서 어떻게? 아까 정훈이형 보니까 단단히 열 받은 거 같던데. 전화하는 거 보니 한두 사람 모을게 아닌가 보더라.”


정훈이형은 얼어죽을.

나이로만 따지면 태섭이 배나 많은데.


“정말 괜찮겠냐? 같이 노는 형들 부르는 거면 복싱부 형도 올 수 있다.”


아, 그랬지.

그제야 생각났다.

정훈이 저렇게 미쳐 날 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동급생에 비해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것도 이유지만.

복싱부에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와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오늘은 엄마가 일찍 오래서...”


하영이 마저 손절했다.

예전이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들지도 않았겠지만.

설사 방과 후에 남게 되었다면 같이 가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을지 몰랐다.

아니면 용돈을 털어서라도 이들을 섭외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젠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태섭도 쿨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태섭의 말에 놀란 건 화영과 원준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들의 심보를 알만 했다.

태섭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어떻게 할지 궁금하지만 따라가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고.

그렇기에 태섭은 더 알려주지 않았다.

궁금해 죽으라고.


“자, 얼른 자리에 앉아. 종친지 언젠데 아직까지 돌아다니고 있어.”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전엔 방과후학폭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했겠지만.

지금 태섭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다.

태섭은 정면 시야에 박혀 있는 숫자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주먹을 쥐고 때릴 듯 자세를 취해봤다.

물론 그 정도에 궤적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 악의를 품고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때리려 하면 생기는 모양이었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났다.

궤적의 원리를 알아내려했지만 허사였다.


드드드드~


화가 잔득 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태섭의 앞이 어두워졌다.

정훈이 태섭의 앞에 섰다.

담임이 나간 지 얼마 지났다고 옆반에 있던, 정훈을 따르는 놈들까지 에워쌌다.


“조용히 따라와라.”


혹시나 도망갈까봐 미리 손을 쓴 모양이었다.

하긴 남을 괴롭히는데 있어서 부지런할 정도로 솔선수범하는 아이였다.


“태섭아.”


미안한지 이름을 부르는 하영과 원준이지만.

그들은 끝내 따라 오지 않았다.

그들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평소 학원가는 날보다 째는 날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꼭 가야하는 날일테고.

부모와는 툭하면 싸워서 말도 안하고 지내면서도 오늘은 엄마와 대화를 해야 하는 날일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불알친구였기에.


정훈은 태섭을 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이 당시에는 옥상이 열려 있었다.

이 문은 내년에 잠가지는데.

그건 옥상에서 여자 애 하나가 뛰어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돌아와도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왔다.

3학년이었다면 최소한 옥상으로 끌려오지는 않았을 텐데.

옥상이냐 아니냐는 큰 차이였다.

지상은 오가는 사람 눈이 많기에 구타가 길지 않지만.

옥상은 한번 끌려 올라가면 답이 없다.

거의 죽어야 내려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퍽~


순간 태섭은 아찔함을 느꼈다.

굳이 태섭을 앞장세워서 간다했더니.

도망 못 가게 뒤에서 쫓아오는지 알았는데 뒤통수를 노린 모양이었다.

태섭이 크게 휘청거렸다.


“크크크크, 시키 당황하기는.”


아, 뒤에서 때리는 건 궤적이 보이지 않는가보다.

그렇다는 건 정면에서만 궤적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이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갑작스런 뒤통수 가격에 눈알이 빠질 뻔했다.


인상을 쓰며 태섭은 올라온 사람들을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복싱부 친구란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온 놈들은 다 정훈을 따라다니는 태섭의 동급생들이었다.

즉 평소 껄렁하게 다니며 침 좀 뱉는 놈들이었다.


“야, 이 시키 이거 내가 죽여버릴 테니까. 니들은 손 대지마.”

“형, 그럴 거면 그냥 형 혼자 데리고 오면 되지. 우리는 왜 데리고 와.”

“이 시키가 정말.”


한 놈이 우리도 놀게 해주라며 깐족거렸지만 심기가 불편한 정훈은 욕만 해댔다.


“여튼 이 시키는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니들은 나서지마. 나서는 놈은 내가 조져 버릴 테니.”


정훈이 얼마나 열 받았는지 피아구분이 없었다.

정훈의 속셈을 알게 되자 따라온 놈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태섭을 쫄게 만들기 위해 병풍으로 이용했으니.


“아까는 잘도 날 욕보였겠다.”


아니, 겨우 몇 대 때리지 못한 걸 가지고 욕보였다고 하다니.

이상한 단어 선택을 따지려했지만 정훈의 주먹이 먼저였다.

또 다시 생성되는 궤적.

이번엔 턱이었다.

이번엔 이빨을 제대로 노린 듯 보였다.

물론 태섭도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태섭은 시야에 사라지지 않는 저 숫자의 의미를 빨리 알고 싶었다.


4/10


고개를 뒤로 젖혀 주먹을 피했다.


“어쭈 이 시키가 정말 사람 열 받게 하네.”

“캬캬캬캬. 형 지금 헛친 거예요?”

“아니, 저 비리비리하게 생긴 놈도 하나 제대로 못 때리냐고요.”


뒤에 있는 놈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조용히 안 해 시키들아.”


정훈이 열 받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름 한 성깔들 하는 놈들이 입을 삐죽거렸다.


“오냐,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보자.”


연이어 주먹이 날아왔다.

눈, 다시 턱, 그리고 광대뼈.


5/10

6/10

7/10


정훈의 숨이 점차 거칠어졌고.

점점 더 주먹은 위협적이었다.

태섭도 가까스로 피할 정도였다.

태섭은 피할 뿐이지 자세를 따로 취하거나 반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뒤에 있는 놈들을 자극하게 될 터였기에.


씩씩씩~


정훈은 벌써 지친 모양이었다.

연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노려봤다.


“이 시키가 정말 사람 열 받게 하네.”

“아, 형 언제 끝나는 거예요. 오늘 중으로 끝나는 거 맞아요.”

“시끄럽다고 시키야.”


태섭은 오늘에서야 저들과 정훈의 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정훈을 따라왔지만 그닥 정훈을 무서워하거나 절대적으로 따르는 거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기회에 더 놀리려고 했다.


“아씨, 너무 오래 걸려서 전화 왔네.”


심지어 저 멀리 가서 전화를 받는 놈까지.

산만한 놈들은 어서 끝내라고 정훈을 재촉했다.


“알았다고 시키들아.”


다시 주먹을 뻗었다.

흰색의 궤적이 정직할 정도로 정면을 향해 들어왔다.

코를 노렸지만 태섭은 뒤로 세 걸음 빠지면서 피했다.

정훈의 주먹을 피하면서 태섭도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아마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그대로 맞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궤적 하나 보일 뿐인데.

신기할 정도로 침착해지며 차분하게 피할 수 있었다.

이건 마치 정답을 알고 문제를 푸는 기분과 같았다.

순발력만 충분하다면 맞지 않을 자신까지 생길 정도였다.


8/10

9/10


열 번까지 마지막 하나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는데 정훈이 뜻밖의 전개를 펼쳤다.


“야, 이 시키 에워싸봐.”

“아니, 그냥 혼자서 처리하면 돼지.”

“우리까지 나서야 하는 거였어?”

“시끄럽다고 에워싸라면 에워싸.”


태섭이 피하지 못하게 할 심산이었다.

정훈이 소리치자 뒤에 있던 놈들이 마지못해 태섭을 에워쌌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그닥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미꾸라지 같은 시키. 언제까지 피하나보자. 야, 거기 벌리지 말고 좀 더 좁게 서봐.”


그렇게 말하며 마치 방심을 유도하는 척했지만 그렇다고 궤적을 숨길 순 없었다.

꽉 쥐고 있는 주먹에서 궤적이 발생했다.

즉 차렷자세에서 기습적으로 치겠다는 뜻이었다.

나름 머리까지 쓰는 걸 보니 안쓰러워졌다.

이쯤 몇 대 맞고 끝낼까 했지만 이제 와서 저 숫자의 의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훈은 마치 다른 곳을 보는 척했지만 이내 주먹을 뻗었다.

궤적을 보고 있던 태섭은 위험하긴 했지만 가까스로 피했다.


10/10 이 되자마자 사라지고

0/20 이 나타났다.


숫자가 변한 거 말고 큰 변화는 없었다.

초기화가 된 듯 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끝을 보겠다고 피했는지.


“아, 형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거야.”


뒤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어, 이게 도대체 뭐지?’


시야 위쪽에 보이던 숫자 밑으로 반투명한 직사각형의 틀이 생겼다.


‘아니, 어떻게 저런 게 보일 수 있지?’


태섭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각틀 안에 뒤에 있는 학생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보이는 궤적.

한눈에 봐도 성질 더러워 보이는 놈이 주먹을 꽉 쥐고 있고.

궤적은 그의 주먹에서 시작해서 태섭의 뒤통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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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 또 다른 궤적 24.01.26 106 2 18쪽
10 10화 - 반대항 시합 24.01.25 115 2 17쪽
9 9화 - 영입 24.01.24 119 2 17쪽
8 8화 - 패스 24.01.23 133 2 18쪽
7 7화 농구 24.01.22 146 1 20쪽
6 6화 다구리 24.01.21 143 1 16쪽
5 5화 새로운 궤적 24.01.20 175 1 16쪽
4 4화 뒤통수 24.01.19 157 1 17쪽
3 3화 주먹 24.01.18 179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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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화 회귀 +1 24.01.17 278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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