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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금사 금함보

본기(本紀) 제1(第一) 세기(世紀)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
금(金)의 시초는 말갈씨(靺鞨氏)에서 나왔다. 말갈의 본호(本號)는 물길(勿吉)이다.

勿吉,古肅慎地也。
물길은 옛날 숙신(肅慎)땅이다.

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涅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
원위(元魏/후위後魏) 때, 물길은 칠부(七部)가 있었다. 속말부(粟末部), 백돌부(伯咄部), 안차골부(安車骨部), 불열부(拂涅部), 호실부(號室部), 흑수부(黑水部), 백산부(白山部)를 말한다.

隋稱靺鞨,而七部並同。
수(隋)가 말갈이라 칭(稱)하였는데, 칠부는 역시 같다. 

唐初,有黑水靺鞨、粟末靺鞨,其五部無聞。
당(唐) 초에, 흑수말갈(黑水靺鞨), 속말말갈(粟末靺鞨)이 있었고, 나머지 5부는 들은 바가 없다.



粟末靺鞨始附高麗,姓大氏。
속말말갈은 일찍부터 고려(高麗)에 붙어 있었는데, 성(姓)은 대씨(大氏)였다.

李績破高麗,粟末靺鞨保東牟山。
이적(李績)이 고려를 파(破)하자, 속말말갈은 동모산(東牟山)에 보존하였다.

後爲渤海,稱王,傳十餘世。
후에 발해(渤海)를 다스리고, 왕(王)이라 칭하였으며, 십여세(十餘世)를 전하였다.

有文字、禮樂、官府、制度。
문자(文字)와 예악(禮樂), 관부(官府), 제도(制度)가 있었다.

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5경(京), 15부(府), 62주(州)가 있었다.



黑水靺鞨居肅慎地,東瀕海,南接高麗,亦附於高麗。
흑수말갈은 숙신땅에 거주하면서, 동으로는 빈해(瀕海/해안가), 남으로는 고려에 접(接)하였으며, 또다시 고려에 기대어 붙었다.

嘗以兵十五萬衆助高麗拒唐太宗,敗于安市。
일찍이 15만 무리가 고려를 도와 당(唐) 태종(太宗)에게 대항하였고, 안시(安市)에서 패(敗)하였다.

開元中,來朝,置黑水府,以部長爲都督、刺史,置長史監之。

개원(開元/당 현종조 연호)중에 내조하니, 흑수부(黑水府)를 두고 부장(部長)으로 도독(都督)과 자사(刺史)를 임명하였으며,
장사(長史)를 두어 감시하게 하였다.

賜都督姓李氏,名獻誠,領黑水經略使。
도독은 이씨(李氏) 성을 사(賜)하였으며, 이름은 헌성(獻誠)이라 하여 흑수경략사(黑水經略使)로 임명하였다.

其後渤海盛強,黑水役屬之,朝貢遂絕。
그후 발해가 강해지자, 흑수는 역속(役屬)하여, 조공 보내는 것을 끊었다.

五代時,契丹盡取渤海地,而黑水靺鞨附屬於契丹。
5대(代) 때에, 거란이 발해땅을 진취(盡取/모조리 취하다)하자, 흑수말갈은 거란에 부속(附屬) 되었다.

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
그 남쪽에 있던 자들은 거란에 적(籍)하여, 숙여직(熟女直/거란 흥종을 피휘하여 여진을 여직이라 함)이라 불리웠다.
그 북쪽에 있던 자들은 거란에 적(籍)하지 않아, 생여직(生女直)이라 불리웠다.

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
생여진땅에는 혼동강(混同江)이 있다. 장백산(長白山), 혼동강을 흑룡강(黑龍江)이라 또한 부르는데, 
소위 백산흑수(白山黑水)가 이것이다.


金之始祖諱函普, 初從高麗來, 年已六十餘矣. 
금(金)의 시조의 휘(諱)는 함보(函普)이고, 처음에 고려에서 나올때, 나이가 60여세였다. 

兄阿古乃好佛, 留高麗不肯從, 曰:「後世子孫必有能相聚者, 吾不能去也. 」獨與弟保活里俱. 
형 아고내(阿古乃)는 불교를 좋아하여, 고려에 머물며 따라오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으며, 말하기를
후세자손(後世子孫)이 반드시 서로 모이는 자가 있을것으니, 나는 가지 않겠다.
오로지 동생 보활리(保活里)와 함께 갔다.

始祖居完顏部僕幹水之涯, 保活里居耶懶. 
시조가 완안부(完顏部) 복간수(僕幹水)의 물가에 거(居)하였고, 보활리는 야라(耶懶)에 거하였다.

其後胡十門以曷蘇館歸太祖, 自言其祖兄弟三人相別而去, 蓋自謂阿古乃之後.
그뒤에 호십문(胡十門)이 갈소관(曷蘇館)에서 태조(太祖/아골타阿骨打)에 귀부하였는데,
자언(自言)하기를 조상 형제 3인이 상별(相別)하여 떠났다 하니, 생각컨데 아고내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말한 것이다.

石土門、迪古乃, 保活里之裔也.
석토문(石土門)과 적고내(迪古乃)는 보활리(保活里)의 후예다. 

及太祖敗遼兵於境上, 獲耶律謝十, 乃使梁福、斡荅刺招諭渤海人曰:「女直、渤海本同一家. 」蓋其初皆勿吉之七部也.
태조를 뒤쫓아 경상(境上/국경)에서 요(遼) 병사를 패배시키고, 야율사십(耶律謝十)을 포획하고,
이내 양복(梁福)과 알답자(斡荅刺)를 사신으로 보내 발해인(渤海人)을 초유(招諭)하며 말하기를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 대개 처음엔 모두 물길의 7부였다. 


始祖至完顏部, 居久之, 其部人嘗殺它族之人, 由是兩族交惡, 哄鬥不能解
시조가 완안부에 이르러, 오랫동안 살면서, 그 부(部)의 사람이 타부족 사람을 죽인 일을 겪었는데,
이일로 말미암아 두부족 사이에 미워함이 있었는데, 크게 싸워 해결이 가능하지 않았다.

完顏部人謂始祖曰:「若能爲部人解此怨,使兩族不相殺,部有賢女,年六十而未嫁,當以相配,仍爲同部。」
완안부사람이 시조에게 이르러 말하길
「만약 부족인(部人)을 위하여 양부족(兩族)으로 하여금 서로 죽이지 않게 이 원한을 해결할수 있다면,
   부(部)에 60세의 시집가지 못한 현녀(賢女)가 있는데,
   마땅히 서로 짝이 되게 하여, 같은부족(同部)으로 따르겠다. 


始祖曰:「諾。」乃自往諭之曰:「殺一人而鬥不解,損傷益多。曷若止誅首亂者一人,部內以物納償汝,可以無鬥,而且獲利焉。」怨家從之。
시조가 말하길「승락하겠다. 」
이내 스스로 왕유(往諭/회유懷柔)하여 말하기를
한사람이 죽음으로서 싸움이 해결되지 않으니, 손상(損傷)이 거듭 크다. 
   어찌 난자(亂者) 한사람의 머리를 베어 그치지 않겠는가?
   부족내(部內) 물건으로 당신에게 갚는것을 받아 들인다면,
   이에 따라 싸움이 없어지고, 이로서 이로움을 획득하지 않겠는가?
하니 원망을 가진 집이 이를 따랐다.


乃爲約曰:「凡有殺傷人者,征其家人口一、馬十偶、牸牛十、黃金六兩,與所殺傷之家,即兩解,不得私鬥。」
曰:「謹如約。」
이내 약속하여 말하기를
 「무릇 살상(殺傷) 당한자가 있을경우, 그집에 한사람을 취하게 하고, 
    말 10마리와 더불어 암소 열마리, 황금(黃金) 6량(兩), 더불어 살상당한 집에 살게하여, 
    만약 양쪽이 해(解/동의,해결)하면, 사사로운 싸움이 멈출것이다 
말하길 「근여약(謹如約)」이라 한다.

女直之俗,殺人償馬牛三十,自此始。
여진의 풍속에, 사람을 죽일 경우 마우(馬牛/말과소) 30마리로 갚는것이, 이로서 비롯 되었다.

既備償如約,部衆信服之,謝以青牛一,並許歸六十之婦。
이윽고 이 약속대로 모두 갚자, 부중(部衆/부족무리)이 신복(信服/믿고 복종함)하여,
푸른소(青牛/흑소) 한마리를 사례하고, 겸하여 60세의 신부와의 혼인을 허락하였다.

始祖乃以青牛爲聘禮而納之,並得其貲產。
시조는 이내 푸른소를 빙례(聘禮/혼례품)로 받아 들임으로서, 나란히 그 자산(貲產)을 획득하였다.

後生二男,長曰烏魯,次曰斡魯,一女曰注思板,遂爲完顏部人。
후에 두아들이 태어 났는데, 장자는 오로(烏魯)라 불렀으며, 차자는 알로(斡魯)라 불렀으며,
1녀는 주사판(注思板)이라 불렀으며, 드디어 완안부 사람이 되었다.

天會十四年,追諡景元皇帝,廟號始祖。
천회(天會/금 태종 연호) 14년 [1136년], 경원황제(景元皇帝)로 추시(追諡)하고, 묘호(廟號)는 시조(始祖)이다.

皇統四年,號其藏曰光陵。五年,增諡始祖懿憲景元皇帝。
황통(皇統/금 희종 연호) 4년 [1142년], 그 장(藏/묘墓)을 이르되 광릉(光陵)이라 불렀다.
5년 [1143년], 시조의헌경원황제(始祖懿憲景元皇帝)라 증시(增諡/시호를 더하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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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구려 멸망후 속말말갈은 발해, 흑수말갈은 여진이 되었는데, 

고려인 함보가 동생 보활리와 여진땅으로 들어왔고, 형 아고내는 고려에 남았음.

함보는 여진땅 완안부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았음.

60세까지 부족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다른 부족과의 싸움을 대화로서 해결하여 

결혼도 하고 부족민으로 인정받았음.

후에 아골타가 금을 건국하자, 아고내의 후손 호십문이 아골타를 찾아왔음.

보활리의 후손 석토문과 적고내도 아골타를 따라 요군을 무찔렀음.



-본기 제1 세기 1편 시조 함보편 끝-

-본기 제1 세기 2편에서 계속됩니다-

-2013.09.02 길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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