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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l
작품등록일 :
2019.08.16 21:43
최근연재일 :
2019.08.18 18:07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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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추천수 :
0
글자수 :
22,334

작성
19.08.1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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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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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쪽

1. 일탈(1)

DUMMY

펄럭-



허공에서 거대한 박쥐날개 한 쌍이 춤을 추듯 퍼덕였다.


날갯짓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 그의 고운 은발이 흩날렸다. 까맣게 물들었던 흰자위는 어느덧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있었다.



남자의 붉은 눈이 즐거운 빛을 띄며 반짝였다. 그는 오랜만에 나온 외출을 즐기고 있었다.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항상 무감각하기만 했던 감정에 파문이 일었다.


매일같이 그 갑갑한 성 안에서,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며, 충동과 욕구를 억눌러 오던 날들이 쌓여 어느덧 수 백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한 없이 긴 나날들을 남자는 그저 새장안에 갇힌 새처럼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의 일탈아닌 일탈이 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성은 겉보기에만 화려하지 사실상은 별 쓸모가 없었다.



성을 지켜야 하는 의무, 그 빌어먹을것만 없었더라면.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 거대한 성은 자신의 발목을 채우는 족쇄였다.

뜰 수만 있다면, 그는 진작에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성이 없어진다면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인가?'


계획을 실행하기까지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후로부터는 정말 온갖 짓은 다 해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능력을 사용한다던지, 투석기로 구멍을 뚫는다던지.

하지만 고급스럽고 귀한 흑요석으로 정성스레 지어진 단단하고 견고한 성의 벽면은 무슨짓거리를 해봐도.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 날 이후로 성을 부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시원한 밤공기가 몸 안 한가득 차올랐다가, 숨을 내쉬며 빠져나갔다.


사방이 탁트인 이곳에서 남자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나는 '지상'으로 향한다. 네놈들, 조금만 기다려라."



남자의 친우들은 이미 모두 그곳으로 떠난지 오래였다. 이곳에 더이상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지상,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하늘 아래 생명력이 범람하는 곳. 또는 '양지'라고도 불리우는 곳. 그곳으로 간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남자가 이곳을 버릴 차례였다.





* * *





두개의 초승달 중 하나가 하늘 꼭대기를 지나갈 무렵, 남자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도착했다. 절벽의 중심부에는 적어도 수십미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랏빛의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문. 그것은 이곳과 지상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통로였다. 그저 평범한 생물이나 피라미들은 이 문의 허용범위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온몸이 타 바스러져 내렸겠지만, 남자에게 이런것쯤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때였다.



쉬쉬식-!



남자가 문 앞에 착지하려는 순간, 문의 주위에서 이리저리 엉켜있던 가시덩쿨들이 먹잇감을 노리려는 듯이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영혼을 탐하는 저주받은 식물, 가시덩쿨은 한 번 걸려든 먹이는 죽을때까지 절때로 놓지 않는다.


생물의 영혼이 다 해 밑천의 밑천을 보일때까지 계속해서 빨아들이는, 탐욕스러운 '마'의 집념체였다.



남자는 허릿춤에 메어 있던 검을 빼어내 다가오는 것들의 줄기를 모조리 베어냈다.


날카롭게 빠진 칼날이 큰 원을 그리자 굵고 단단한 줄기들은 한낱 잡초가 잘리듯이 속수무책으로 싹뚝싹뚝 떨어져나갔다.


힘을 잃은 덩쿨 무더기가 절벽아래로 투둑투둑 떨어졌다.


먹잇감을 공격할 무기가 사라진 가시덩쿨들이 갈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그는 가시덩쿨이 한 군데 뭉쳐있는 곳에 검을 꽃아넣었다.


가시덩쿨이 고통스러운듯 꿈틀거리며 남자에게로 더욱 과격하게 돌진했다.


그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사방으로 날아오는 가시덩쿨을 유연하게 베어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네놈들이 문지기구나."



그는 팔을 한껏 치켜올렸다가 그대로 땅에 검격을 박아넣었다.

손목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서 내질러진 검격은 땅에 부딪쳐 크고 긴 균열을 만들어냈다. 균열 사이로 가시덩쿨들의 뿌리가, 그것들의 약점이 훤히 드러났다.


남자는 가장 굵은 뿌리에 검날을 꽂아넣으며 낮은 목소리로 읆조렸다. 동시에 그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블러드 파운틴.」



지면에서 세찬 진동이 일더니, 검날의 끝에서부터 검붉은 무언가가 터져나왔다.


비릿한 향이 코끝을 맴돌고 그의 몸을 감쌌다. 뿌리가 폭발한 곳 부터 시작해 주위의 뿌리들이 점점 붉어져 가더니 끝내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빨간 액체를 흩뿌리며 터져나갔다. 조각조각난 가시덩쿨의 부스러기와 흙덩어리가 공중으로 높게 튀어올랐다.



문 주위는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듯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낱 사념체 따위가 나에게 도전하다니."


자존심이 상하는군.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피가 묻은 검을 털어냈다.


가시 덩쿨을 모조리 척살하자 육중한 문은 낡은 쇳소리를 내며 천천히 아가리를 드러내었다. 그 안은 온통 환한 빛으로 채워져있었다.



몸풀이를 끝낸 그는, 더이상 주저할 것 없이 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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