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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의 서재

아카데미에서 죽는 희생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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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꺽새
작품등록일 :
2021.09.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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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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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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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입학시험(1)

DUMMY

어느 날 행성에 출몰한 게이트,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괴물들.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협회 WSG.


'던전 말살'이라는 뜻을 품었던 것도. 인류가 온 힘을 합쳤던 것도. 이젠 옛날에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던전은 아직 존재했고. 국가는 점차 대의보다 자국의 이익에 눈을 돌렸다.


당연하게도 헌터는 곧 국력이었고. 이를 육성하는 단체는 은연중 어느 나라가 더욱 우수한 인재를 품고 있는지 저울질하게 했다.


「아카데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늘을 수놓은 글자. 헌터를 육성하는 곳이며, 만 17세부터 지원할 수 있다.

아카데미는 지리적으로 함구된 곳이다. 행성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고. 이를 발설하면 중죄에 처한다.


다만, 각 나라 별로 이곳과 연결된 포털이 설치되어 있다. 자동차조차 문제없이 통과시키는 이동 장치.

공인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으며. 나라의 힘이 강할수록 많은 포털을 가지고 있다.


'그런 흔한 설정이다.'


흔하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에서의 이야기였다. 현실에 이런 곳이 있을 리 만무하다.


'마지막에 읽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SSS급 재능을 가진 아카데미의 영웅.」


거절 메일을 보내려고 했던 소설. 그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꿈인가?'


허상을 보고 있다기엔,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히 느껴진다.

이곳으로 오는 길 내내 뺨도 때려보고, 허벅지도 찔러봤다. 하지만 통증만 가중될 뿐이었다.


'진짜 소설에라도 들어온 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다.

실업자에, 단칸방에, 텅 빈 잔고. 무엇 하나 돌아가고 싶은 껀덕지가 없다.


반면, 이곳엔 든든한 부모님이 있다. 자상한 어머니와 엄격하지만 '부자'이신 아버지.


'그래. 가난이랑은 끝이다.'


헤벌쭉 자연히 입술이 올라갔다.


"너 진짜 약 먹었냐?"


옆좌석에 앉아 있던 누나가 그런 김민호의 모습을 보더니.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리곤 앞좌석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속삭였다.


"입꼬리 내려라, 위로 찢어버리기 전에."


'저리 고운 입술에서 어떻게 저런 험악한 말들이 나올까?'


소설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땅을 치고 후회했다.


'설정들 좀, 더 자세히 읽을걸.'


하지만 후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옆자리에 있는 누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에 대한 설정이 악상마냥 떠올랐다.


「이름 권하현. 권수혁의 누나. 한 살 터울. 권수혁과는 사이가 좋지 않음. 다혈질적인···」


'권수혁'이란 '나'였다.

권하현의 정보처럼. 거울을 바라보면 권수혁의 설정이 떠올랐다.


그는 아버지를 뛰어넘을 정도로 고지식했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규칙에 얽매여 고리타분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괜찮을지 몰라도, 가까이하기엔 마냥 친근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탓에 누나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눈 안 깔아?"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수용하길 원한다면, 그럴듯한 설명을 더해보는 게 어때? 짐승마냥 눈깔 뒤집어 까고 협박하는 게 아니라.」


'응?'


본래 권수혁이 했을 법한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확실히, 그처럼 이야기한다면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니다.'


"네! 누나."


밝은 목소리와 함께 시선을 창문 밖으로 돌렸다.

머리를 어딘가에 찧는 소리. 그녀는 이런 호의적인 태도를 더욱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뭐면 어때? 부잣집 남매인데, 사이좋게 지내야지.'


별것 아닌 일로 힘 뺄 이유가 없다. 권수혁은 창문을 내려 기분 좋은 바람을 느꼈다. 이번에도 무언가의 온기가 부드럽게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입학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교육생들은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머물러야 한다.

학부모들은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돌아섰다.


"수혁아."


고개를 돌리자, 진지한 얼굴을 한 아버지가 보였다.


"약속 잊지 마라."


약속. 그건 정확히 김민호가 아닌 권수혁이 한 약속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여러 것들을 배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입학하는 인원들도 있고, 인지도를 높이거나, 인맥을 위해 들어 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해서 모두가 목숨을 걸고 괴수와 대치하는 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최전선 헌터의 역할일 뿐이고. 게이트와 관련된 사업은 무궁무진하다.


그의 아버지는 게이트의 부산물과 관련된 사업을 하신다. 아버지는 권수혁 또한 그 사업을 물려받길 원했다. 아니, 꼭 그게 아니더라도 위험한 일은 삼가길 바랐다.


하지만 권수혁의 생각은 달랐다.


「의사는 환자가 있는 곳에 필요하고. 헌터는 게이트가 있는 곳에 필요합니다.」


권수혁은 졸업 후 본격적인 헌터 일을 하길 원했다. 지원을 끊겠다는 으름장이나, 던전에서 죽은 끔찍한 헌터들의 모습을 보여줘도 꿈쩍하지 않았다.


「집안에 도움은 진즉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다. 저런 죽음이 있기에 헌터가 필요하다. 실력 없는 자에 객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 자신이 수석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인정해달라.」


마침내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수석이지 세계에서 주목받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권수혁의 아버지는 생각했다.


"아버지."


권수혁의 고집은 분명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그는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는 항상 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으름장을 놓던 태도가 일순 꿈틀댄다.


"그런 말로···"

"저 아카데미 수석 할 거예요."


'그럼 그렇지.' 아버지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거예요."


게슴츠레했던 눈이 다시 한번 벌어진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커지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꼭 1등 해서 존경하는 아버지처럼 될게요."


얕은 탄성이 들렸지만. 휙 뒤를 돌아 앞으로 나아갔다.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권수혁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꼭, 꼭, 꼭! 다 물려받을 거야! 다!!'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아카데미 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유독 가벼웠다.



*



아카데미의 이튿날. 교육생 숙소 A동 2215호.


"여기까진 좋다. 여기까진 좋은데···."


「SSS급 재능을 가진 아카데미의 영웅.」


설정집에 가깝긴 했지만 그건 엄연히 시놉시스였다. 그렇기에 굵직한 스토리는 알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상황에서 주인공이 점차 성숙해지는 이야기다.

시험이나 과제 같은 가벼운 위기부터, 목숨을 위협하는 돌발 이벤트까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인복이 많았고, 타고난 재능으로 이겨내고 만다.


'운까지 좋다고 설정되어 있으니까.'


실수조차 이득으로 변해 돌아올 것이다. 굉장히 편협한 세상이니까. 해피 엔딩은 정해져 있다. 주인공은 결국 세상을 구해내고 말 것이다.


그저 물 흘러가듯 상황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어디까지나 주인공 이야기지만.'


"후우-"


고개를 들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낯선 얼굴.


'잘 생겼네.'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멋있다.

권수혁. 이 캐릭터는 주인공과 라이벌 구도로 나온다. 후반으로 갈수록 주인공과 케미를 맞추며 조력자가 됐을 포지션.


안타깝게도 작가는 권수혁이라는 캐릭터를 초반에 죽여버린다.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서.'


작가님 본인의 성격을 투영한 건지. 소설 초반의 주인공은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졌다.


'힘숨찐? 아니, 그냥 힘찐인가?'


재능이 뛰어나서 성적은 탑을 달리는데, 우유부단함 때문에 사건에 끌려만 다닌다.

주인공은 자기 일을 할 뿐인데. 주위에서 대단하다며 자꾸 모여드는 느낌. 와중에도 주인공은 '별것도 아닌데 뭐.'라며 옅은 미소를 흘린다.


작가님은 그런 주인공의 태도를 전환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제물이 얘다. 권수혁.'


다행히 아직 권수혁이 죽는 시점까지 시간이 있다. 묘수가 있을 것이다.


'대처하고 만다. 꼭. 반드시!'


졸업만 하면 끝이다. 그 뒤로는 탄탄대로인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G-25. G-25 시합 참가자. 대기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시작인가.'


입학식은 일주일에 걸쳐 진행된다. 아카데미를 소개해 준다는 느낌이 아니다. 신입생들의 역량을 측정하고자 시험이 치러진다. 테스트는 총 두 가지다. 여기서 성적이 미달되는 인원은 입학이 취소된다.


첫 번째는 대련 시험. 시험이라기보단 신입생끼리 하는 시합에 가깝다.

대진표는 랜덤이다.


'공식적으로는.'


참 희한하게도. 무작위로 추첨했다곤 하는데 거의 비슷한 수준끼리 붙게 된다.


'아카데미도 받는 외압이 많겠지.'


다들 은연중 아는 사실이지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수준을 공공연하게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니까.


"하아-"


그렇기에 암만 피하려고 해봐야, 만날 수밖에 없다.

발걸음을 옮긴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스태프처럼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떤 무기를 사용하실 건가요?"

"검이요."


스태프가 검집 하나를 열어보더니, 체크한 후 건네줬다.


"혹시 경보기가 작동 안 하면 기권이라고 소리쳐 주세요."

"네?"


담담한 표정으로 스태프가 팔찌를 채워줬다. 몸을 보호해 주는 아티팩트. 충격이 일정치를 넘어가면 깨지면서 붉게 반짝인다.


"작동 안 하면 소리치라니···."


그땐 이미 어디 하나라도 잘려나갔을 텐데.


"이상 없을 겁니다."


조금도 안심되지 않는 말이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괜스레 안전장치를 더 신경 쓰게 된다.


'침착하자. 아직 죽을 때는 아니니까.'


권수혁은 주인공을 위해 죽는다. 그러니 지금은 아닐 것이다.

터벅, 터벅. 복도를 따라 쭉 걸어 나가자 넓은 경기장이 보였다.


'크다.'


야구도 할 수 있을만한 크기에 실내 경기장. 고개를 들자 전광판에 비친 권수혁의 모습이 보였다.

치러지는 경기는 모두 녹화된다. 아카데미 밖으로 송출될 일은 없다. 반대로 아카데미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경기를 돌려볼 수 있다.


'이런 게 몇 개나 있는 건가.'


활자 몇 자를 읽는 것과 실제로 그 장소에 있는 건 차이가 컸다.

멍하니 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경기장에 다른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고개를 떨궈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최우승. 이 소설의 주인공.


'딱 기생오라비네.'


길쭉하게 뻗은 칼에 지지 않을 훤칠한 키. 단순히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묘한 무게감이 전해져왔다.


「G-25. 20초 후 시작합니다.」


전광판에 떠오르는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최우승이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날에 스미는 푸르스름한 기운. 그의 눈동자에도 같은 색이 일렁였다.


개화한 사람들은 이능을 사용할 때, 고유의 색을 띤다.

「체질. 좀 더 자세히는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고 연구진은 추측한다.」라는 설정이 있었다.


'살벌하네.'


글로는 전해지지 않던 날카로움이 최우승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자세를 잡았다. 매서운 눈빛은 마치 '매' 같았다.


'우유부단하다며···. 왜 저렇게 진지해?'


검집에서 검을 풀어내, 최우승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권수혁의 색은 누나와 같은 붉은색이다. 주인공과 대비되는 색. 시놉시스에도 입학식 대련은 중요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섞이지 못하는 두 개의 색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춤췄다.'


주인공 버프로 인해, 결국 지는 건 권수혁이었다. 하지만 그 수준이 교육생을 까마득히 넘어섰다. 대전 영상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핫이슈가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유명 인사가 되고. 주인공과 권수혁은 서로를 더욱 의식하게 된다.


'어차피 지는 거, 다치지라도 말···'


일순 불안한 감정이 스몄다. 어정쩡하게 흉내만 내고 있는 자신. 당연하게도 붉은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권수혁은 검을 제 몸처럼 다뤘지만, 김민호는 아니었다. 살아생전 검이란 걸 쥐어본 적도 없다.


'망했다.'


전광판의 숫자는 어느새 '0'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권···"


무어라 외치기도 전에. 푸른빛 섬광이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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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찬란한 참새 21.09.21 106 4 12쪽
5 첫 수업 21.09.20 116 5 11쪽
4 로얄 호텔 21.09.17 125 6 13쪽
3 아카데미 입학시험(2) +2 21.09.16 156 6 13쪽
» 아카데미 입학시험(1) +2 21.09.15 202 8 12쪽
1 첫 만남 +2 21.09.14 265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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