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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익사 님의 서재입니다.

게으른 천재 윙어가 노력을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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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작품등록일 :
2024.03.11 19:14
최근연재일 :
2024.03.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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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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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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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

DUMMY


삐빅.


[아아! 유진 리! 슈퍼 서브답네요! 경기는 순식간에 아약스의 것으로 변합니다!]


바이탈 체크기의 소리가 무감각하게 울려퍼지는 병실의 티비에서 녹화된 축구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온 몸이 마비된 듯 눈동자만 굴려서 티비를 보고 있는 머리털이 다 빠진 남자가 바로 나 이유진.


[유진 리! 득점 3분만에 다시 한번 엄청난 돌파입니다아아아아!]


그래, 저기 녹화본에서 해설의원들이 침이 마르도로 칭찬하는 축구선수와 동일인물이었다.


삐빅.


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겨우 겨우 손가락을 움직여 리모컨으로 티비를 끈 나는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살걸.


슈퍼서브.

악마의 왼발.

게으른 천재.

오른쪽 측면의 지배자.

발롱도르 포디움.

EPL 득점왕 연속 수상자.


등등,

모두 나를 수식해주는 최고의 찬사들이었다.


한때, 나 이유진은 혜성처럼 나타나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천재 윙어였다.


왼수저 또는 왼룡인이라고 불리는 왼발잡이에다가 브라질리언을 떠올리게 만드는 개인기.

3시즌 연속 드리블 돌파 유럽 1위.

거기에 득점력은 어떻고?


한 시즌에 윙어 포지션으로 25골을 넣을 정도로 깔끔한 피니싱 능력 또한 내 장점이었다.

단점은 활동량, 수비 가담과 너무 왼발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점.


그저 재능에 매몰되어 능력을 발전시킬 생각이 없는 축구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단점이었다.


“쿨럭!”


물론,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


지금은 췌장암 말기로 이 촛불 같은 목숨을 항암치료로나마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작은 불꽃.


그리고,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쥐꼬리만 한 생명의 불꽃이 견디기엔 췌장암이라는 바람은 너무 강대했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마지막이 되니 주마등처럼 과거들이 스쳐 지나갔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에 만족하며 노력을 등한시하던 모습.


그리고 이 게으름은 비단 축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지.


가족들과 여자친구에게도 최선을 다하긴 커녕 기본도 못했고···.


결국, 4년의 투병 시간 동안 내 옆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30살부터 34살까지, 이 병원에서 고독을 씹었다.


뭐, 업보다.


지금 와서 피 터지게 후회해봤자, 쌤통이라며 놀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게, 복통과 구토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아···.


이제 진짜 얼마남지 않은 것 같았다.


죽음의 문턱에 도착해서야 제일 후회가 되는 건···.


축구와 가족관계 두 가지에 살면서 단 한번도 최선을 다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보석같은 재능을 다듬어 꽃피워보긴커녕 썩도록 내버려 두고 단란한 가정까지 내 손으로 꾸렸지만, 이조차 내 게으름으로 놓아버렸다.


삐-삑! 삑!


침대 옆에 놓여진 바이탈체크기가 수없이 깜빡거리며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이유진 환자분!”

“제세동기 가져와!”

“유가족들한테 연락해!”

“저기, 그게···이미 연락 안받은지 한참 지나서···.”


주치의와 간호사들에게 신호가 간 듯, 눈앞이 아득해지자마자 앞다투어 병실로 들어왔다.


심장 제세동기가 내 가슴 위로 올려지며 내 몸을 몇번씩 펌핑시켰지만 소용없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이젠 생각할 기운도 떨어져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치료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해지고 싶었다.


이게, 죽음인가?

언제적인가 느껴봤던 요람에 누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는 의식을 잃어버렸고···.


“야, 이유진! 일어나, 안 일어나?”


가장 그리웠던 목소리와 함께, 눈을 뜰수 있었다.


****


“야, 이유진 안 일어나?”


내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발가락으로 간지럽히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몸을 급하게 일으켜도 머리와 다리를 잡고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복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근만근이던 몸은 웬일인지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설마 이건···.


“여, 여긴?”

“네덜란드에 있는 그 쪽 집이지요. 어디긴 어디야.”


늘어져 있는 나와 다르게, 집안의 분위기는 분주했다.


그리고 통나무처럼 누워있는 나를 발로차는 검은 생머리가 특징인 여자는 바로 내 전부인 김아린이었다.


“어휴, 이 게으름뱅이를 믿고 네덜란드까지 따라온 내가 바보지!”


아린이는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이부자리를 갰다.

암스테르담의 작은 집에서는 맡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네덜란드?”

“그럼 뉴질랜드겠어요? 밥이나 드세요.”


기억속에 남아있는 페퍼민트 향수 냄새. 

항상 촉촉함을 유지하는 검은색 생머리.

분명 육아 스트레스와 나와의 말다툼으로 생활에 찌들기 전이었던 생기가 넘치는 아린이었다.


기억 속에서 제일 돌아가고 싶었던 집 풍경이 보이자 말문이 막혔다.


와-락!


나는 머리를 굴리는 것 대신 아린이의 작은 몸을 품 안에 넣었다.

184CM 79KG이라는 스펙을 자랑하는 축구선수인 나와 160CM 언저리인 아린은 덩치차이가 꽤 많이 났기 때문에 품에 쏙 들어왔다.


“뭐냐, 너?”


이렇게 안아준 게 얼마만이던가···.


그녀도 어색한지, 품 안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나는 소중한 보물처럼 꼭 안아 들어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너, 바람 피웠지! 갑자기 친절해지면 바람핀 거랬어!”


품에서 발버둥치던 아린이 갑자기 눈을 치켜뜨며 빠져나왔다.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4년동안 듣고싶었던 목소리를 들으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조금만 방심해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막기위해 나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아린아, 지금이 몇년도지?”

“허허, 뇌가 회전하는 것도 귀찮아해서 돌아버린 건가?”


옛날에는 짜증만 났떤 이 까칠한 말투도 지금보니 너무 귀여웠다.


끼익.


그리고 화장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있는 방 안에서 이 소란을 견디지 못한 천사들이 튀어나왔고···.


“아빠, 일어났다!”

“아빠는 나무늘보!”


아빠라는 단어를 오물거리면서 나오는 내 팔뚝만한 두 명의 천사들을 보자 눈에서 홍수가 난듯 눈물이 쏟아졌다.


“야, 너 바람핀 거 맞지! 헬레나? 그 옆집에 금발년! 그 년 맞지!”


물론 앞 뒤 사정을 모르는 아린이의 의심은 증폭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


두명의 딸을 안아 들었다.


이제 문장구성이 어느정도 익숙한 올해로 3살 되시는 이지아.

그리고, 슬슬 혼자서 밥을 먹기 시작하게 된 2살 되시는 이채원.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했던가?

아직 어렸지만 이목구비가 나를 쏙 빼닮았다.

특히, 이 서글서글한 눈매가 나를 똑 닮았다.


참고로 왼쪽 오른쪽으로 짝을 맞추든 머리를 묶은 게 포인트였다.


“오오···웬일이야? 아빠 노릇을 다하고?”

“하하, 그냥 뭐···.”


내가 두 딸을 안아들고 볼을 부비적대자, 아린이가 신기한 걸 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 나는 무뚝뚝한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무뚝뚝을 넘어서서 이런 애정표현조차 귀찮아했다.


‘애들은 알아서 잘 크는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말 다했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걸 보니, 달력을 보지 않아도 2023년이라는 걸 알수 있었다.


K리그에서 시즌 30골로 득점왕을 달성하며 네덜란드 아약스의 부름을 받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게 되었다.


잠시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지금 이럴게 아니었다!


내가 암 진단을 받은 게 29살.

주치의가 말하기로는 24살부터 천천히 전이되어 29살에 말기까지 도달했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할 채비를 시작했다.


“잠깐만, 나 오늘 어디 좀 갔다올게.”

“허허, 그럼 그렇지, 우리 유진님이 쉬는 날 우리하고 시간을 보낼리가?”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가시가 명확했다.


아린이의 말을 들은 나는 우뚝 자리에 설수 밖에 없었다.

실망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옛날에는 이런 투덜거림도 무시하고 그냥 나갔을테였지만···.


“걱정하지마, 금방 올 거야.”


이번에는 무시 대신 미소를 지으며 돌아보았다.

말을 씹고 나갈 거라 생각했는지, 두 아이를 안아든 아린의 표정은 꽤 볼만해져 있었다.


“애들아, 너희 아빠가 뭘 잘못 먹었나 보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갈 때, 아린의 중얼거림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


숙연한 마음으로 앉아있는 대기실에 검사를 해주었던 의사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네···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췌장암 초기입니다. 초기에는 발견이 어려운데 잘 오셨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 진행 중이었다.


“담담하시네요?”

“뭐, 초기니까요.”

“흐음.”


이미 마음을 먹고 온지라 놀라지 않은 나를 보고 주치의는 흥미로운 듯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수술하고 나서도 선수 생활은 가능할까요?”

“어려운 문제군요. 수술 경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전과 같은 기량을 얻기에는 힘들다고 봅니다···.”


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원래라면 치료를 바로 하는 걸 권장해 드릴텐데, 운동선수셔서 뭐라 말씀을 할수가 없군요···.”


주치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암이 번지지 않은 초기로 돌아왔으니, 치료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선생님, 제가 수술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폼으로 축구를 할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잘해야, 3년 못하면 2년 정도입니다.”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내가 몸 상태의 이상을 느끼고 폼이 떡락했을 시점이 3년이 지난 27살이었으니 아직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었다.


3년, 3년이라···.


“선생님. 혹시 애 두명 딸린 20대 중반 여자애가 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살려면 얼마나 필요할까요?”

“네?”

“갑작스럽지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주치의는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내뱉었다.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축구선수 기준으로는 500억정도 있으면 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오백억···.

암 진단 전, 리버풀FC에서 받았던 연봉이 100억 정도인 걸 생각하면 세금을 고려해봤을 때, 3년안에 모으기 아슬아슬한 금액.


대답을 들은 나는 다음 장소로 향하기 위해 감사인사와 함께 서둘러 빠져나왔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픈델파크(Vondelpark).


“자, 우리 딸내미들 아~.”

“아~.”

“앙!”

“입 다물지 말고, 아 하세요.”


유진이 집에서 나가고나서 아린은 이 공원에 아이들을 데려와 산책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오긴 뭘 와.’


혹시나 무슨 날인지 기억하고 있을까.


기다리지 않고 이곳으로 찾아오라는 뜻으로 픈델파크에 나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유진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2023년 7월 9일.


오늘은 유진과 아린의 결혼기념일.


‘기대한 내가 바보지.’


항상 이랬다.


결혼과 출산 육아 모두 항상 자신의 몫.

물론 밖에 나가 그 힘든 경쟁을 펼치면서 축구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남편의 무관심은 아무리 털털한 아린이어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에휴.”


대학도 그만두고 따라온 내가 바보지.


“어! 아빠다!”

“나무늘보 아빠!”


딸내미들이 보지 않게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던 그녀는 저 멀리서 뛰어오는 남자를 보고 들고 있던 아이용 스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미안, 늦었지? 너가 여기 와서 제일 좋아하던 곳이잖아.”


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손에 들려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건···!”


유진의 손에 들려서 존재감을 휘날리던 것의 정체는 바로 아린의 최애꽃, 보라색 리시안셔스였다.

꽃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


“너, 너, 진짜 뭐 잘못 먹었어?”


아린의 눈에 송글송글 눈물이 맺혔다.


“야아, 너 왜 이래 갑자기···.”


왈칵, 감동의 눈물이 아린의 눈에서 쏟아지려했지만, 유진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막혔다.


두 명의 딸과 아내를 안아 든 유진.


‘3년, 3년이다. 게을렀던 과거는 싹 잊고 재능을 개화시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은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가족들을 위해 지금까지 썩히고 있던 재능을 폭발시키로 마음먹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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