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8086 님의 서재입니다.

바랑기안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K8086
작품등록일 :
2014.08.01 14:08
최근연재일 :
2014.08.05 01:15
연재수 :
5 회
조회수 :
4,504
추천수 :
80
글자수 :
73,444

작성
14.08.01 14:16
조회
1,252
추천
17
글자
27쪽

1화

DUMMY

내 이름은 루셀. 이것은 내가 살아온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어쩌면 전부이기도 했던 부대와 나와 같이 싸웠던 전우들의 이야기다.




내가 태어난 곳은 스코네 백작령의 작은 마을이었다. 태어날때부터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고 어머니는 철이 들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나는 마을의 사제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내 고향은 대부분의 북부의 지역들이 그렇듯이 바이킹의 전통을


가진 거칠고 강한 남자들이 호탕하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딱히 남들보다 특출나게 싸움을 잘하지도 않고 모험으로 불리는


사고를 치는데도 관심이 없었던 나는 마을에서는 좀 눈밖에 난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함이란 것을 개성이라 부르긴 뭐하지만 나는 소리를 지르며 자기를 과시하거나 호탕하게 술과 고기를 들이키고 싸움이 벌어지면


아무리 사소한 이유라도 생사를 불문하고 싸우는 북쪽 전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좀 모자라게 평범해서 튀는 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점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10살이 되던 해에 남쪽에서 온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고 밝힌 제국의 모병관은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 바랑기안 근위대에 입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다소 고민을 해볼 여지가 있는 제안이었다. 용맹함으로 고향마을에서도 명성을 떨치던 바랑기안 근위대는 마을에 널리고 널린 숙련된


전사들 대신 나에게 손을 뻗었을까? 하지만 최근에 바랑기안은 확실히 명성을 떨치는 어른 전사들보다는 나같은 아직 어린 소년들을


모집하는 관행을 보이고 있단 것을 나를 키워준 사제님에게 듣고 나는 망설이다 외숙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그다지 큰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외숙부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거대한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과


고향과는 비교할수 없는 활기차고 복잡한 도시의 정경과 신들이 세운것이 아닌가 싶은 거대한 마치 예술품과도 같은 건물들의 모습이


나에겐 더 큰 인상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바랑기안 근위대의 예비역이었던 외숙부의 소개로 간단한 신체 검사를 마친 후 부대의 생도로서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거친 북방과 러시아, 잉글랜드의 사나이들을 모아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대로 편성한 우리 바랑기안은 흔히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식하고 거친 근육질 사나이들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교하자면 수도사와 학자와 고행자와 구도자의 삶과 비교하는 것이 더 근접한


철저한 통제와 규율, 그리고 절제의 공간이었다. 나는 도착하자 마자 황제가 사용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속성으로 배워야 했으며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부대내에서 사용되는 북구의 언어와 러시아어, 영어를 익혀야 했고 러시아 출신의 동기생의 기묘한


도치법을 가지고 말장난을 칠수 있게 될무렵에는 적성국의 언어인 아랍어와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프랑크어, 그리고 문자체계조차


생소한 초원의 기마민족들의 언어도 익혀야 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배워야 할것은 산더미 처럼 쌓여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는 체력단련과 무술 훈련 외에도 승마, 궁사,


각종 맨손 전투술, 그리고 무기 정비와 손질법. 아군의 전략과 전술, 적군의 전략과 전술. 각국의 문화와 종교의 특성. 작전계획에 따른


부대 교리와 험지 생존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대로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군율 및 황궁에서 모범을


보이고 실례를 저지르지 않토록 에티켓과 에의범절, 귀족들의 행동방식도 몸에 익히도록 혹사당하듯이 배우고 또 배워야 했다.




잠잘 시간 외에는 거의 하루종일 공부와 무예단련에만 몰입하는 생도들의 삶을 보면 이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거친 사나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난동을 부리는 바이킹들의 축제보다는 조용하고 현학적인 카파토키아의 수도사들의 삶이 더 근접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삶이었다. 그런 시간들에 대해 내가 느낀 기분을 말하자면... 의외로 적성에 잘맞았다. 난 아무래도 무질서하고 자유로운 북쪽의


전사들의 느낌보다는 이렇게 엄격하고 자기절제를 요구하는 군대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많은 내 또래의 동기들이 생도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고를 치거나 자퇴는 가운데 나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생도생활을 마쳐가게 되었다.




최종 졸업시험에서 내 절친이자 차석인 에기놀프를 적당히 열받게 할만큰 차이나는 점수를 받아 마무리 하고 나는 연대장과의 면담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긴장하고 연대장실의 방문을 두들겼다.



"어서 들어오게."




온화한 목소리에도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방에 들어가 경례를 올리고 허락된 자리에 앉았다. 제국의 근위대장이라는 고위직책에도 불구하고


마치 검소한 수도사의 방처럼 보이는 연대장의 방에 장식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저 황제에게 선사받았다고 가끔 자랑한다는


다기 세트만이 유일하게 금장식이 된 물건이었고, 그 다기에 끓인 차를 연대장이 찻잔에 따르는 중이었다. 그가 차를 내밀며 말했다.




"들게나. 키타이의 물건이네. 황제폐하의 하사품이지."




마시자 그윽한 다향이 입가를 맴돌았다. 나는 연대장을 다시 보았다. 이제 60대를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노전사, 선입견 없이 본다면 바랑기안의


전사들의 우두머리라기 보다는 어느 대학의 그리스 철학 교수로 생각할 풍모의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실제로 포로로 잡힌 왈라키아 반란군


들에게 철학 강의를 한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포로들은 욕지거리를 하며 난리를 쳤고 그는 웃으며 백묵 대신 도끼로 강의를 몇분 진행하자 곧


방항하는 학생들의 소요는 얌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강의가 30분을 넘어가기 전에 모든 포로들이 전부다 불테니 제발 그 짓만은 그만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낸 전설을 가진 분이다. 그는 차를 한잔 음미하며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비잔틴 제국이 적에게 넘져주지 않는 세가지가 있지. 그게 뭐지?"




시험은 아니다. 너무나 쉬운 문제니깐. 하지만 난 정석대로 대답했다.




"황제의 제관, 보랏빛 출생의 공주, 그리스의 불입니다."




그는 웃으며 대꾸했다.




"정답일세. 그러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뭐지?"




이건 강의에서도 풍문에서도 듣지 못했다. 나는 잠시 당황했고 그는 내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물의 현상만 보고 본질은 보지 못하지. 그 익숙한 격언을 보고 사람들은 흔히들 그 세가지가 무슨 제국의 소중한 보물쯤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잘 되새겨 보게. 그건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이라고 문장이 시작되지. 넘겨주지 않는 다는 것은 곧 적의 요구를 거절할 능력


곧 그것을 지키는 힘을 의미한다. 황제의 제관은 제국의 명예와 권위를 지키는 힘을, 자줏빌 출생의 공주는 약한자와 여성을 지키는 힘을, 그리스의


불은 적과의 타협과 협상을 이겨내는 힘을 의미하지.




곧, 황제와 고귀한 여인과 무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다짐이다. 그리고 그 세가지를 수호하는 정점에 우리 바랑기안 근위대가 있다.


자네는 앞으로 이 막중하고도 포기해선 안될 책무를 이행할 의지와 능력을 나에게 보여줄수 있겠나?"




나는 흔히들 관용구처럼 인용되던 말의 숨은 뜻을 알고 잠시 감탄했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숨을 고르고 준비했던 답변을 했다.




"영광스러운 바랑기안 근위대의 일원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로 맹세했습니다. 저는 일생은 바랑기안으로서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갈것입니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믿음직스럽군. 그래... 졸업시합 준비는 잘되고 있나?"



나는 그가 그제서야 오늘 나를 부른 본 주제로 돌아갔음을 짐작했다. 바랑기안 생도의 졸업시합. 그것은 바로 모의 전투였다. 그리고 그 상대는 바로...




"캐타프랙터... 강한 친구들이지. 지난 2년간은 그 친구들이 우승을 가져가서 아쉬움이 컸다네. 자네는 어떤가?"




캐타프랙터 기병대의 졸업생도들간에 두 부대의 명예를 건 모의전투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프랑크 인들이 좋아한다는 토너먼트 만큼이나


유명하고 화제가 되어 매년 수많은 관람객들 까지 모이는 콘스탄티노플의 명물 행사였다. 하지만... 우리 바랑기안은 지난 2년간 우승을 그들에게


빼았겼다. 그건 마치 과거 10년간 황궁밖으로 나오지 않는 황제폐하 덕분에 전장에 나서지 못한 우리 바랑기안에 비해 각지에서 제국의 깃발을 확대시키고


있는 그들의 기세와도 비슷했다. 특히, 작년에 졸업생도 아닌 주제에 선배들의 지휘관으로 나선 한 생도덕분에 우리 바랑기안 선배들은 최악의


패배를 맛보았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의지를 담아 그에게 대답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필승의 계책도 연구해두었습니다. 그 녀석들에게 우리 바랑기안이 만만치 않음을 뼛속 깊이 새겨주겠습니다."




갑자기 부대간 자존심 싸움이 되자 마치 내가 북쪽의 친척들이 된것 처럼 거친 말투로 말하고 있단걸 깨닭았다. 근위대장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무리 하지는 말게나. 알고 있겠지만 피를 보는 것은 금지인 행사야. 그래도 지나치게 흥분하며 피를 보거나 큰 부상을 입는 친구들이 종종 있단


말이야. 부디 차가운 물처럼 냉정함을 잃지 말도록 하게나.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네."




나는 그의 충고를 새겨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놈들을 두들겨 눕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듯 합니다. 외람되지만... 근위대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 합니다만..."




"하하하... 이것참... 세월이 무섭구만. 50년전에 내가 생도이던 시절에 면담에서 자네랑 별반 다르지 않은 질문을 할때 근위대장님께서 수십년 후에


네놈도 같은 질문을 들을거라고 놀리셨는데... 정말 그랜드 바자에 점술관이라도 차리셔야 할 혜안이시로군. 그래 난 딱히 이 승부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자네들도 그렇지만 그 친구들도 훌룡한 제국의 동량들이야. 아마 나중에 자네가 전장에 나서면 언젠가 서로 등을 맏대고 싸울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러니 그들과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승부하되 그리 적대하지는 말길 바라네. 혹시 아나? 그들 중에 한명과 자네가 생사를 함께하는


친구가 될지."




나는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제가 생사를 같이 하는 것은 오로지 황제폐하와 바랑기안 전우들 뿐입니다. 귀족 나으리들의 의장용 기병들은 저희 임무와 무관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전장에서 서로 낯붉히는 일은 없도록 감정을 실지 않고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건투를 비네."




나는 근위대장의 방을 나오며 앞으로 상대할 적에 대해 생각했다. 캐타프랙터 기병대, 아나톨리아의 유서깊은 군사귀족들이 만든 제국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들중에 하나이다. 근본적으로 황제의 사병이고 이민족이며 천한 출신들인 우리 바랑기안들과는 달리, 그들은 제국의 상비군이며 수백년의


전통을 가진 군사 귀족들의 자제들이며 앞으로 제국을 이끌어나갈 지도자들의 집단이다. 그들과 우리의 오랜 라이벌 관계는 굳이 주변에서 일부러


조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서로를 '폭군의 개', '반란애호가' 등으로 매도하는 우리들은 임무의 특성상 사실 전장에서 마주칠 일은 드물다.


그래서 공식적인 생도 졸업시합은 두 세력간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중요한 승부이다.




하지만... 근위대장의 저런 여유로운 태도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그분의 부탁과는 무관하게 생도시절 수년동안 선배들과 교관들에게 주입식으로


들어온 그 녀석들의 아니꼬움을 잘 갈무리해 녀석들을 엿먹일 작전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시합 당일은 화창한 날씨였다. 그리고 마치 축제의 한마당처럼 북적였다. 어떤 의미로 마차경주보다 짜릿한 우리 두 생도들의 시합을 보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많은 구경꾼들과 노점상들과 호객꾼들이 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동기들과 새벽에 도착해서 시합장을 재점검하고 작전을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했다. 경기장은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경기장이었고 안에는 모의전장으로 작은 건물, 나무, 바리케이트등의 구조물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정오가 되자 느즈막히 입장한 근위대장님과 고참 장교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준비는 잘되어 가나? 생도대장은 나와 같이 상대편에 인사를 하러 가도록 한다. 따라와라 루셀."




나는 근위대장을 따라 경기장의 가운데로 걸어갔다. 이윽고 상대방에서도 두 사람이 걸어왔다. 한명은 30대 후반의 아나톨리아인 특유의 특성을 보이는


귀족 장교 였다. 그리고 동행한 사람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옆의 장교의 아들임은 얼굴만 봐도 알수 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오만한


귀족의 모습은 아니었다. 긴장된 얼굴로 전면을 경계하며 그을린 수려한 얼굴에는 훈련의 흔적으로 보이는 작은 흉터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느낄수 있었다.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 오늘 내가 쓰러뜨려야 할 상대다. 그리고... 그 녀석 역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를 보고 있다. 곧 다섯걸은 거리까지 다가가자


그쪽도 우리도 멈추어섰다. 근위대장께서 먼저 투구를 벗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바르다스 콤네누스공. 트라페조스 전투 이후 처음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드미트리 공. 그렇군요. 벌써 10년이로군요. 저는 여전히 애송이인데 당신은 더 강해지신것 같군요."




그는 내가 고향에서 배운 선입견처럼 생각하던 비잔틴의 음험하고 오만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는 정중하며 친절한 말투로 대화했고 강자에 대한 존경과


자신을 낮추는 행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의외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던 캐타프랙터 연대장의 인식을 상당히 수정할수 있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이번 졸업생 대장이로군. 만나서 반갑네. 나는 제 1 캐타프랙터 연대장 바르다스 콤네누스라네."




나는 본심을 담아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했다.




"바랑기안 졸업생 대장 루셀입니다."




그는 조용히 나를 보고 근위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드미트리공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친구로군요. 같이 다니면 아들이나 손자로 오해받으시겠습니다. 이런 든든한 청년이 생도대장이라니 든든하시겠군요.


자, 인사드려라. 요하네스. 이 녀석이 제 졸자, 요하네스입니다."




"요하네스 콤네누스가 근위대장님을 뵙습니다."




"흐음... 졸자라. 겸손이 지나치시군요. 작년에 이 녀석 선배들을 묵사발로 만든 천재 소년 지휘관이 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직접 만나게 되는 군요. 이런


촉망받는 아들을 두셨으니 콤네누스 가에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신 듯 합니다."




몇가지 인사가 더 오간 뒤 근위대장과 바르다스공은 시합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 진지로 돌아오는 길에 근위대장이 물었다.




"어떤 인상을 받았느냐?"




"안짱다리더군요..."




"흐음? 그래서?"




"종자의 도움없이 혼자서 기마연습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증거입니다. 명가의 자제라길래 시종의 등을 밟고 말을 타는 멍청이길 기대했는데, 승리를 위해서라면


신분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노력하는 천재로 인식하고 상대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쪽도 북쪽에서 온 야만스러운 근육질 전사가 아니라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체구의 시야를 넓게 보고 관찰하는 전략가로 인식을 바꾸고 있을꺼다. 나는 이제


관중석에 올라가 경기를 지켜보마. 후회없는 승부를 하길 바란다."




나는 근위대장에게 목례를 하고 동기들을 소집시키고 경기장의 한쪽 벽에서서 최종 무장을 점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녀석에 대해 생각했다.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과 훈련, 그리고 노력하는 품성까지 있는 적수다. 싸울 상대로는 최악이다. 하지만 질수는 없다. 나는 바랑기안이다. 작년에 이미


한차례 선배들을 개망신 시킨 상대에게 다시 한번 망신을 당할수는 없다. 나는 용기를 내기 위해 부대의 금기를 소리쳤다.




"그래, 우리는 황제를 제외한 그 누구의 엉덩이도 걷어차줄수 있는 바랑기안이다. 그 녀석의 엉덩이를 반드시 걷어차 주겠어!"




그리고 그때였다.




"푸흐흡...."




벽 위에 고위층을 위한 관중석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햇살속에 빛나는 한 소녀를 보았다. 소아시아풍의 옷을 입고 있는


피부가 하얀 소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억지로 참으면서도 계속 웃음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난간에서 몸을 빼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이예요? 오늘 오빠가 캐타프랙터 생도 대장의 엉덩이를 걷어차줄꺼예요?"




웃는 포인트가 그거였던가? 나는 13-4살 정도 되보이는 아직 어린 소녀를 보며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귀족석에 있는 걸 보니 캐타프랙터 부대원의 친척인가 보군요. 그럼 웃을게 아니라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어쩌면 아가씨의 오라비나 삼촌이


엎드려 잘수 밖에 없게 만들어 줄수도 있어요. 나는 야만스러운 바랑기안 대원이거든요."




"푸하하하..."




그녀는 제대로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너무 웃기네요. 볼수 있다면 그걸 꼭 놓치지 않고 보고 싶어요. 아마도 귀족원에서 두고두고 화제거리가 될꺼예요."




나는 여전히 웃으며 그녀에게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서쪽에서는 기사들이 시합에 나가기 전에 아가씨들에게 승리의 약속을 하고 이긴 뒤에 그 영광을 받치죠. 이곳에는 그런 풍습이 없어 생소하겠지만


내가 아가씨를 위해 약속하죠. 승패를 떠나 멋지게 상대의 엉덩이를 걷어차주고 그 영광을 아가씨에게 바치죠."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기대할께요. 엉덩이의 기사 오라버니!"




나는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모처럼 긴장된 기분을 풀고 동기들과 함께 경기장에 나섰다.






경기는 문자 그대로 모의전투였다. 생도 100명이 동수로 참석하여 각각 대장을 한명씩 지명한다. 그리고 경기장의 양 끝에 깃발을 세우고 그 깃발을


지키게 된다. 상대의 깃발을 빼앗거나 부러뜨리면 100점, 상대의 대장을 쓰러뜨리면 50점, 상대의 사망판정자 1명당 1점으로 계산해서 많은 점수를


얻은 팀이 이긴다. 무기는 목검과 목방패, 목창 등의 살상력이 없는 무기이고 가격도 중간에 서있는 판정단에 의해 사망으로 판정되면 멈추고 사망자는


행동불능으로 경기장에서 이탈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리하게도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부대를 전개시켰다. 무질서하게 대거 몰려간 우리 바랑기안은 적의 진형에 입구에서 좁은 길을 막고 길 양쪽에서 공격하는 상대의 저항에


부딪쳐서 공격의 기세를 잃었다. 그리고 서서히 기세를 잃자 나는 곧 바로 후퇴 명령을 내렸다. 물론 그 와중에 우리측의 상당한 사망판정자가 나와


손실이 컸지만 그 손실이 미끼였다. 상대방에서는 우리의 손실을 입은 후퇴를 좌시하기 힘들것이다. 기병의 특성은 그런 경거망동에 있다. 나는


2할의 부대원을 잃고 퇴각하는 길에 6할의 병력은 본진으로 그리고 미리 지시해둔 2할의 정예들은 나를 따라 경기장 외곽의 샛길로 숨어들었다.




몸을 숨기고 적정을 관찰하자 곧 상대방의 자중지란이 목격되었다. 기세를 몰아 쳐들어가야 한다는 동기들의 요구에 요하네스는 만류하다가 못이겼는지


2할의 병력을 남기고 남은 7할의 병력으로 추격을 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본진에 남아 깃발을 사수했다. 쳇, 좀 귀찮게 되었지만 상관없다. 나는 추격하는


상대방 부대가 본진과 멀어졌을때 쯤에 내가 인솔한 부대원들을 데리고 적의 본진을 들이쳤다. 숫자는 둘다 20여명이지만 개인개인의 보병전력은 우리가


위다. 나는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고향의 전사들처럼 거칠게 돌격을 외쳤다.




나의 거짓 퇴각 전략에 말려들어 부대의 주력을 내보낸 적진은 당황했다. 20여명이 달려드는 우리들을 보고 3열로 서서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래봤자


상관없다. 순식간에 1열과 2열을 붕괴시키고 대장과 그 뒤의 깃발을 꺽어주지. 하지만 그 순간 그 녀석은 생각치도 못한 명령을 내렸다.




"트리아리가 상대한다!"




아뿔싸! 순식간에 다소 약해보이던 1열과 2열이 양옆으로 산개해서 3열의 대장을 비롯한 정예 7명이 우리를 막아섰다. 그리고 양옆으로 산개한 1열과


2열이 우리를 둘러싸고 방패로 벽을 쌓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건, 자마 전투에서 스피키오가 사용했던 전술... 나는 우리 정예들을 이끌고 상대의


대장을 쓰러드리려 했지만 양옆에서 짓쳐들어오는 방패와 창에 신경쓰며서 도저히 집중해서 싸울수가 없었다. 나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나는


함성을 크게 지르며 도끼를 마구 휘두르며 상대의 대장, 요하네스에게 돌격했다. 요하네스가 검으로 내 방패를 막았다. 여기서 한방에 쓰러뜨리면


참 좋겠지만 요하네스도 만만치 않은 실력으로 버텼다. 나는 밀리는 척 한발 물러나다 도끼를 던지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순간 던진 도끼를 쳐내고 나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사망판정을 받은 요하네스가 멈칫했다. 그리고 등뒤에 깃발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사망해서 뒤로


넘어지면서 멋지게! 그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주었다. 그리고 빈틈이 발생했다. 그 틈으로 내 동기 애기놀프가 빠져나가 상대방의 깃발을 집어들었다.


호각소리가 경기장에 울리고 경기가 종료되었다. 아아... 이름모를 아가씨, 나 약속 지켰어.




결과적으로, 경기는 우리측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는 상대방의 깃발 100점, 그리고 사망판정자 14명으로 114점을 얻었고 상대방은 대장 사망으로


50점, 사망판정자 58명으로 108점으로 패배하였다. 하지만 나는 바랑기안 최초로 대장 사망자로 기록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근위대장실에 찾아갔다.


작년의 패배는 설욕했지만 대장으로서 판단실수와 어처구니 없는 만행으로 불호령이 떨어질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반응이...




"자네는... 푸흡... 우리 바랑기안의... 큭큭큭... 영과...큭큭큭 나 웃겨서 더 못하겠다!"




"졸업시합이 무슨 광대놀... 큭큭큭... 음도 아니고 영광스런 황... 킬킬킬... 아! 나도 더 못하겠다."




뭔가 생도대장중에 최초로 사망한 것에 대해 훈계 한마디는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합의 한듯 하지만 고참 장교들은 아무래도 경기장에서 엉덩이를


부여쥐고 바닥에 나뒹군 캐타프랙터 생도대장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도저히 참을수 없었던 듯 하다. 뭔가 이겨도 이긴것 같지 않고 잘못했지만


혼나는 것 같지도 않은 불편한 자리에서 날 구원한건 근위대장님이었다.




"잠시 나갈까?"




연병장에서 나는 산책을 하는 근위대장님을 따라 걸었다. 그분이 말했다.




"뭐, 형식적인 훈계나 칭찬은 관두지. 잘했다. 좀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좋은 결과였다."




"제 전략 미스였습니다. 일부 별동대를 예비대로 두고 돌격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를 굳이 모욕하면서 까지 이긴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황제외에 그 어떤 녀석의 엉덩이도 차줄수 있다. 좋은 격언이지. 그안에 담긴 의미를 아나?"




"그거 농담아니었나요?"




"농담이지만 의미는 있지. 다른 두개의 농담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전장에서 황제의 속옷까진 갈아입혀 주지 않는다. 우리는 노상에 수음하는 동료의


뒷통수를 도끼로 쓰다듬어줄수 있다. 이 세가지가 우리 부대의 유명한 농담이지. 하지만 그 가진 뜻은 깊다네.




첫번째 격언은 우리는 황제 외에 그 어떤 권력도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다는 의미를 담는다. 우리는 황제에게 떳떳하기만 하다면 설령 주님이


보낸 천사들이라고 해도 엉덩이를 걷어찬다. 귀족이든, 사제든, 대부호든 그건 아무 상관없다. 그것이 우리 바랑기안이다.




두번째 격언은 전쟁터에서 황제의 수의를 입히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즉, 우리는 절대 전쟁터에서 황제가 우리보다 먼저 죽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지




세번재 격언은 개인적인 욕망으로 부대의 위치를 이용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 다는 우리의 규율을 의미한다. 우리같은 무력을 가진 자에게 달콤한


유혹이 없으리라 보나? 너무도 많지.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면 우리는 우리로 있을수 없지. 그래서 우리에게 금욕과 규율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지.




이 교훈을 명심하게. 부대원들의 농짓거리 같아도 우리의 정체성과 의무를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규율이지. 그걸 무시한 자는 다들 비참한 결과를


만났지. 그것은 비단 자신뿐이 아니라 우리가 모시는 황제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났다네.




뭐 하지만... 그 교훈을 실제로 수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있는 그대로 실행한 친구는 우리 바랑기안의 수백년 역사상 자네가 처음이기는 하군."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근위대장은 역시 아까전의 고참장교들처럼 웃음을 참으며 어께를 들석였다. 김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래저래 소문만 안좋아 지겠군요. 그리고 콤네누스 가문에서 절 좋아하지 않겠군요. 가문의 인재에게 그런 망신을 줬으니..."




근위대장은 의아한 눈빛으로 말했다.




"응? 난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바르다스 콤네누스 공은 딱히 화난것 같지 않더군.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주변에서 정색하거나 억지로 웃음을 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더구나. '웃으십시오. 졸자의 모양새가 아비인 나 또한 우스우니 여러분이야 오죽하겠습니다. 제 눈치 보지 말고 웃으세요.


저 녀석이 그 웃음을 조롱으로 받아들인다면 이곳이 종착이지만 자성으로 받아들인다면 이곳이 시작일겁니다. 전 그게 비웃음이라 생각치 않습니다.'


...라고 했다던가."




"무서운 분이시군요. 제국 최고의 명가의 귀족께서 그런 말씀을..."




"겨우 그걸 가지고 무섭다고 해서야... 이걸 보면 놀라 자빠지겠군."




그는 소매속에 작은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정말 놀라자빠질뻔했다.




"콤네누스 가문의 연회 초대장일세. 자네와 나를 꼭좀 와달라고 하더군. 내일 의장용 예복을 입고 나를 수행하도록 하게나. 아무래도 바르다스 공은


자네에게 관심이 많은것 같나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랑기안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 5화(완) +5 14.08.05 987 20 53쪽
4 4화 +2 14.08.04 776 14 30쪽
3 3화 +2 14.08.03 756 15 29쪽
2 2화 +1 14.08.02 733 14 20쪽
» 1화 +2 14.08.01 1,253 17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