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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비버 님의 서재입니다.

미친 재능의 냉동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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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비버
작품등록일 :
2023.07.01 03:25
최근연재일 :
2023.07.05 16:32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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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추천수 :
0
글자수 :
20,912

작성
23.07.0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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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DUMMY

창가를 통해 흩뿌려진 저녁노을이 방안을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창문 앞, 그림자로 가려진 곳만을 제외하고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곳엔 그림자의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투명한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남자의 모습이 창밖의 풍경과 겹쳐 보인다.


칠흑을 연상케 하는 새까만 흑발이 창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렸고,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흑요석 눈동자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굳건하던 그의 눈동자가 움직였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남자의 오른손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휘이이잉


한층 강해진 바람에 머리칼이 거칠게 휘날렸다.


바람을 타고 들어온 건 길거리의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이 아닌, 불규칙하게 울려 퍼지는 삭막한 발걸음 소리였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지만, 그저 묵묵히 걸음만 옮길 뿐.


친구끼리의 사소한 잡담도,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속삭임도,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적막만이 내려앉은 거리.


게다가 마치 복사라도 한 듯 전부 동일한 자세로 산소마스크를 쓴 모습은 이 불쾌한 침묵에 기묘함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혹시라도 얼굴에서 떨어질세라 손바닥으로 마스크를 감싸는 건 물론이고, 무언가를 경계라도 하듯 연신 주변을 힐끗거린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까, 하는 의문도 잠시.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든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진 한 사내에게로.


멀쩡히 걷던 사내의 호흡이 일순간 가빠지더니 이내 온몸을 격하게 들썩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허나 사내를 둘러싼 그 많은 시선에는 어떠한 염려나 걱정도 없었다. 오히려 경멸과 무관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꺼억... 꺼억...”


어지러움을 느낀 사내가 두 손을 바닥에 짚고선 주저앉았다.


“으......”


바람 빠지는 소리가 꽉 막힌 목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나왔다. 진정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질식사할 게 분명했다.


그 역시 이를 직감했는지 급히 산소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그제서야 호흡이 원상태로 돌아오며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내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절망에 빠진 공허한 얼굴과 광기를 머금은 입꼬리. 그것은 예정된 파멸을 앞둔, 자포자기한 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고는 냅다 소리쳤다.


“남 일 같지? 다들 잘 봐두라고. 지금 시기에 네놈들 최후 역시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까.”


혼자 조용히 스러져가기에는 외로웠던 걸까. 아니면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그는 저주 비스무리한 악담을 퍼부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똥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을 되짚는, 불편한 진실이었기에.


이를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이 사내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풉, 산소 공급도 제때 못 받아서 뒤지는 주제에 입만 살았군!”


“그러게 말이야. 자업자득이지 뭐.”


“애시당초 이 도시에 천수 누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허튼소리를.....”


하나같이 사람 속을 마구 긁어대는 말들이라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흥분을 금치 못했겠지만. 지금 사내에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끄으으으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내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 순간이었다.


찌직-!


상의가 살짝 찢어짐과 동시에, 심장 부근에서 무언가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찌이이익-!


붉은 실선은 점점 벌어졌고, 그 길이가 한 뼘 정도가 다 돼서야 멈췄다.


그리하여 드러난 건 살갗이라는 지면에 반쯤 파묻힌, 푸른빛 광석이었다. 자세히 본 표면은 울퉁불퉁했으나 그 결만큼은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그것도 잠시.


스며든 혈액이 광석을 새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물감이 번지듯. 한 방울, 또 한 방울.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줌의 푸른빛도 남기지 않고 전부 덧칠된 그건.


심장의 피를 잔뜩 머금고 피어난 한 송이의 붉은 꽃을 연상케 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혈마석’이라 불렀다.


고혹적인 핏빛 자태는 사뭇 사람들의 탐욕을 흔들기에 충분했으나 그 누구도 이것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멀찌감치 떨어져서 걷는 게 아닌가. 시체에 대한 거부감이라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사내아이만이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를 알아챈 아버지가 아이를 다그쳤다.


다만 작게 소곤거렸기에 발걸음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이놈아, 아부지가 얘기한 건 귓등으로 들은 거냐?! 절대 눈길조차 주지 말랬거늘!”


그러자 사내아이는 뭘 겨우 이런걸로 그러냐는 듯 퉁명스레 대답했다.


“알죠, 알아. 근데 보는 건 딱히 상관없잖아요. 직접 만지는 거 아닌 이상 저렇게 ‘마석화’될 일도 없는데.....”


남자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쓰읍! 대체 몇 번을 말해줘야 하는 거냐. 위험한 거 자체에 관심을 갖지 말라 했지.”


““특히 오염의 결정체인 ‘혈마석’에는 더더욱!””


사내아이는 하도 많이 들어서 뒷말은 아예 외워버린 듯 이어질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맞췄다.


“똑같죠? 아주 잘 알고 있다고요.”


괜히 무안한지 남자는 헛기침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크흠, 아는 놈이 그리 행동하더냐. 그만 가자.”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행인들 사이에 파묻혀 사라졌다.


잠시 후.


-저벅 저벅


묵직한 군홧발 소리와 함께 근처 골목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반투명한 일반 산소마스크 말고 새까만 방독면을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다. 다만 건장한 체격으로 보아 둘 다 남성임이 분명했다.


그중 한 명이 시체 앞에 쭈그려 앉더니 검정 장갑 낀 손을 심장에 그대로 쑤셔 넣었다. 특수한 처리를 통해 오염을 막아주는 장갑이라 행동에 거침없었다.


그는 그렇게 끄집어낸 혈마석을 허리춤에 있는 가방에 챙기며 투덜거렸다.


“요즘 따라 왜 이리 일이 많냐. 이러다 진짜 과로로 쓰러지겠어, 젠장!”


다른 한 명 역시 동의하는지 맞장구치며 시체의 양발을 들어 올렸다.


“다른 구역 놈들 얘기 들어보니까 다 매한가지더라. 지금까지 일하면서 이 정도로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간 적은 없었잖아.”


“읏차, 들리는 말로는 시장에 유통되는 산소가 거의 없나 봐. 누가 사재기하는 건 아닐 테고. 이게 대체 뭔 일이람.”


그리 말하면서 둘은 힘없이 축 늘어진 시체를 질질 끌고서는 나왔던 골목으로 사라졌다.


행인들은 그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꽤나 익숙한 광경인 듯했다.


그 말은 즉슨, 마석화 또한 이 도시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


그런 그들이 아까 사내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아마. 타인의 불행을 위안 삼아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버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모두가 무관심한 가운데, 창가의 남자만이 그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과도한 호기심은 그가 현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이 의혹을 진실로 바꿨다.


“생각보다 더 미친 세상이네, 여긴.”


말로만 들었지 직접 겪는 건 처음이라는 반응.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평온한 어투였다. 그렇다는 건 그가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빠르게 적응했다는 것이었다.


“음... 권유는 받아들이는 게 낫겠군. 이곳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방금 사내의 죽음은 그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람이 저런 식으로도 죽을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대충 생각이 정리되자 그는 활짝 열렸던 창문을 닫았다. 바람에 휘날리던 머리칼 역시 차분히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어이, 페힐!”


방 밖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쯤.


-똑똑


“페힐, 설마 아직까지 자는 거야?”


아까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


그제서야 남자는 알아챘다. 본인이 페힐이고, 페힐은 자신의 또 다른 이름임을.


그는 이 사실을 되새기려는 듯 읊조렸다.


“그래, 페힐. 여기서 나는 페힐이었지. 박해일이 아니라. 정말이지 익숙지 않단 말야. 본명이었으면 몸이 먼저 반응했을 텐데.”


박해일.

이제는 불러줄 이 하나 없는,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빛바랜 이름.


다시 눈을 뜬 순간, 원래 알고 지내던 이들이 곁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리란 건 예상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담당 의사만큼은 내 이름을 불러줄 줄 알았다. 아니, 원래 예정대로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기억 속 흔적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지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 정도로 내가 맞이한 세상은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본래 알던 상식들이 전부 뒤틀려 있는 건 물론이고, 새로운 개념이 홍수처럼 범람해 있는 상황.


오염된 대기와 산소마스크, 마석화, 혈마석 등.


덤으로 산소목까지. 그게 저 밖에 있는 사내가 나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설마 외출했나...?”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진짜 없는 줄 알고 가버릴 터.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이제 일어났어. 금방 나갈게.”


문을 열기 전, 들고 있던 산소마스크를 얼굴에 착용했다. 창문을 열기 전부터 쭉 내 손에 들려 있던 것이었다.


‘혼자 있을 때면 몰라도 누군가와 만날 때는 필수지.’


이곳의 대기는 오염된 상태라 그걸 그대로 들이마시는 순간 인간은 마석화되어 죽는다. 그렇기에 마스크 착용은 상식을 넘어선, 일종의 생존본능이었다.


하지만 난 다르다. 나는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멀쩡하다. 물론 그게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다.


잠깐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곳의 인간은 지나칠 정도로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다. 법과 규범의 제약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일까.


인간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가진 자를 시기하며 질투하고, 이러한 감정은 손쉽게 추악한 본성을 끄집어낸다.


인간은 미지를 두려워하여 배척하기 마련이고. 이곳에서 배척은 곧 죽음이었다.


무엇보다.


비밀이란 건, 감출수록 더욱 예리한 칼날이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산소마스크를 써야만 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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