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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복수는 주말농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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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9.02 18:10
최근연재일 :
2024.09.02 18:12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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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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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5,766

작성
24.09.02 18:12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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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해야 할 일을 찾다.

DUMMY

엄마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신경질적이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것들에도 빠르게 반응하곤 했다.


난 철이 들기도 전에 아랫층에 피해가 가지 않게 걷는 법을 배워야 했고, 다른 아이들보다 세 배는 더 씻어야 했다.


엄마에 비해 아버지와 난 무던한 편이었다.

다만, 나와 아버지가 달랐던 건 아버지가 엄마의 예민함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과 달리 그렇게 자라난 난 엄마와의 삶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난 예민한 엄마에게서 ‘불편을 끼치지 않는 아이’로 자랐고, 습관이 돼야 했던 타인을 위한 여러 배려에 숨 막히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라서인지, 아니면 내 성향이 그래서인지 난 매우 얌전하고 예의바른 그냥 보통 아이였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얼굴이 잘생기거나 운동을 잘하지도 못했지만, 난 어디서나 환영받는 아이였고 무엇보다 안전한 아이였다.


가끔 시끄럽게 떠들거나 갑자기 소리를 치거나 하는 반 친구들이 이해가 되질 않을 때가 있었지만, 난 그런 일에 엄마처럼 예민하지 않았다.


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훈남이 아닌 흔남이지만, 늘 인기가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학교라는 복잡한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 * *


“강민아. 잠깐 나와라.”


수업 중간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담임 선생님이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불렀을 때, 나뿐만 아니라 반친구들 전부가 무슨 일인지 알았다.


난 말없이 책상을 정리하고 가방을 멘 채 교실을 빠져나와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예민한 성격처럼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던 엄마는 오래 아팠고,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 벌써 오랫동안 입원하고 계셨다.


언제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전화왔다. 어머님도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선생님은 수업 마치고 저녁에 찾아갈게. 고생많았다. 얼른 가 봐.”

“네. 선생님.”


세상이 무너지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신 지는 벌써 3~4년이 지났고, 아버지도 나도 엄마와의 이별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시려나.’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건 아버지였다.

중환자실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그래도 본인부담금이 많다.

아버지는 중환자실 입원료만으로 하루 12만 8천 원씩을 내고 계셨다.


한 달에 엄마 병원비로만 적어도 450만 원이 들었다. 크지 않은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집 형편으로는 쉽지 않은 비용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450만 원도 엄마가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오히려 줄어든 액수였다. 그 전까지는 꼼짝없이 개인 간병사를 써야 해서 간병비로만 한 달에 400만 원이 들었었다.


아버지도 나도 최소한의 소비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간신히 빚을 쌓진 않았지만, 엄마가 아픈 후로 우리 집은 34평 자가 아파트에서 전세 8천만 원짜리 빌라로 이사해야 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나야. 뭘. 엄마에게 인사하고 와. 옷 갈아입고.”

“네.”


쓸쓸한 영안실이었다.

크지 않은 방을 빌렸지만, 근처 상가의 사장님들과 아버지 분식집 거래처 사장님들, 외가 친척분 몇 분과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과 친구들 정도만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용한 영안식장이었지만, 문상객들이 신기하게 생각했던 게 있다.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이 장례식장을 찾아 조용히 조문하고 돌아갔다는 거였다.


같은 반 친구가 아니어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중학교 동창이나 초등학교 동창들도 꽤 많이 참석했다.


엄마가 내게 남겨준 마지막 유산 같았다.


고 2 기말고사를 2주 남겨뒀을 때였다.

엄마와 헤어지고 난 아버지와 단 둘만이 함께 하는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 * *


“씨팔. 강민아. 그거 사실이냐?”

“뭐?”

“강주형 새끼 말이야. 정말 빈소에 찾아가지 않았냐?”

“그랬던 것 같은데. 그게 왜? 바쁘면 못 올 수도 있지.”

“사람 새끼면 어떻게 그러냐? 강민이 네가 강주형에게 어떻게 했는데?”


응?


강주형은 우리 반 반장이다.

무엇이든 앞에 서고 싶어하는 병원장집 도련님이라 반장 자리만 따내고 실제 반장 일은 하지 않아 잔뜩 욕을 먹고 있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상필이가 화를 낼 정도로 내가 강주형에게 뭘 해줬던 기억은 그다지 없었다.


“내가 강주형에게 뭘 해줬는데?”

“어? 너, 그걸 몰라?”

“응?”


상필이도 나도 서로를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상필이는 나를 딱하고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반에서 강주형 새끼랑 말 섞는 거 너 하나잖아.”

“진짜?”

“진짜 몰랐냐?”

“어. 그런데, 유치하게 무슨 왕따냐?”

“왕따는 애지중지 도련님이 왕따 당할 리 있냐?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건 우리 쪽이지. 넌 강주형이 누군가에게 말 거는 거 본 적 있냐?”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은 없었다.

강주형은 늘 쫓기고 있어서 여유가 없었다.

그건 강주형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압박 속에서 살고 있어서였다.


“좀 봐줘야지. 의대 가야 하잖아. 우리 학교 같은 곳에서 의대 가려고 정신 없이 사는데 이해할 수 있지 않냐?”

“너도 참 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냐? 병원이 멀긴 하냐? 30분이면 충분한데.”


상필이 말이 맞다.

더구나 내가 엄마를 보낸 영안 참병원은 강주형의 아버지 강형원 박사가 원장으로 있는 곳이다.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강주형이 내 친구였다면 학교로 돌아온 내게 떠난 엄마의 명복을 비는 인사 정도는 했어야 했다.


이상하게 서운했다.


강주형을 인생의 절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는데도, 강주형의 몰인정함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렸다.


하지만, 그래도 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냥 상필이에게 조문오지 않은 걸 어떻게 따지냐면서 나도 앞으로는 강주형에게 딱히 일 없으면 말을 걸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 이후로 강주형의 존재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이해가 가능할 정도의 서운한 행동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 뿐이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스칠 때마다 강주형의 스킨 냄새가 거슬려 얕게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역시 난 엄마의 아들인가?

평생 무던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내 안엔 엄마의 예민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슬리는 강주형의 존재가 엄마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아 애써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강주형이 싸가지가 없었던 건 사실이기도 했으니 미안하지도 않았다.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우리 학교는 영안에 하나뿐인 인문계 고등학교 였지만, 본격적으로 서울권 대학을 준비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절반 정도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20% 정도는 지역의 국립대인 경북대나 멀지 않은 충남대에 진학하려 했고, 공부를 아예 놓진 않았지만 대학에 큰 관심이 없는 아이도 20% 정도는 됐다.


난 190명 정원의 우리 학교에서 대략 2~30등 정도였다.

운이 아주 좋으면 경북대 좋은 과에 진학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 난 대학진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엄마의 오랜 투병으로 경제적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내 스스로가 공부를 좋아한다거나 잘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서였다.


난 그럭저럭 공부를 잘했지만, 전교 등수 권 안에 드는 최상위권을 기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버지와 분식집에서 같이 일하거나 일찍 군대를 다녀오는 게 내 계획이어서 난 공부나 성적에서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상위권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런 나에 비해 강주형은 어떻게 보면 불쌍한 놈이었다.

병원집 아들로 태어났고 당당하게 전교 1등을 지키고 있었지만, 강주형은 자기 부모의 기대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실패만 거듭해 온 인생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당연한 듯 전과목 만점과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강주형의 첫 실패는 경북권 특성화고등학교인 구미 경주외고로의 진학 실패였다.


아깝게 특목고 입시에 실패한 강주형은 영안고에 입학했다가, 위장전입까지 해서 서울의 학군 고등학교로 전학했지만, 거기서도 형편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고작 한 학기 만에 돌아온 강주형은 대외적으로 향수병 때문에 다시 재입학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신이라도 최상위권으로 따서 끄트머리 의대라도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강민아. 너 기말고사는 어떻게 할 거냐?”

“뭘 어떻게 하긴 그냥 보는 거지. 어차피 대학갈 것도 아니고.”

“대학을 안 간다고? 왜?”

“우리 집 형편 알잖아.”

“이제 병원에 들어가는 돈도 없잖아. 너 대학가도 되는 거 아니냐?”


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학이라.

대학이 필요한가?


아픈 엄마 때문에 하루하루를 사는데 익숙해서 그런지 난 내 인생의 긴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상필이의 말에 뭘 하고 살고 싶은지를 잠시 생각해봤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라.

그때 문득 강주형의 불쾌한 스킨 냄새와 복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좀 당황스러웠다.

강주형이 내게 한 일은 딱히 복수를 꿈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복수라는 말을 떠올리자 뭔가 강한 호기심이 샘솟는 게 느껴졌다.


이게 뭐지?

그러다 작은 돌이든 무거운 돌이든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라는 올드보이의 명대사도 함께 기억났다.


멀찍이 공부에 열중하는 강주형의 옆 얼굴이 보였다.


병원집 도련님의 인생을 망쳐볼까?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씩 하고 웃고 말았다.


“뭐냐? 이강민. 지금 완전 무서운 미손데? 뭔 생각했냐?”

“그냥 대학도 대학인데, 여태까진 정신 없이 살았잖아. 뭘 해 먹고 살까 그 생각을 했더니.”

“뭘 해 먹고 살 거냐?”

“아직은 잘 모르겠어. 일단 아버지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진 분식집 일을 좀 더 해야지.”

“대학엔 진짜 안 갈 거냐?”

“모르지. 아직은 되고 싶은 게 없네.”

“공부도 잘하는 놈이 편해서 좋네. 야자 끝나고 너희 분식집에서 모여서 스터디 같이 할까? 재성이랑 경민이도 데려갈게. 매상 좀 올려야지.”

“너희한테 돈 받을까. 10시에 가게 닫으니까 그 이후면 언제든지 와. 전화하고. 기다릴 테니까.”

“오케이.”


수업을 마치고 난 자습 대신 분식집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반갑게 날 맞으셨지만, 곧 바쁜 시간이 지나자 날 테이블에 앉히고서는 상필이와 똑같은 말을 했다.


“강민아.”

“네.”

“내일부턴 가게에 나오지 마.”

“네?”

“그동안 나도 죽을 것 같아서 가게 와서 도와주는 널 모른 척 했지만, 너도 이젠 공부해야지. 그 뭐냐? 인강도 끊고. 학원도 다녀.”

“네?”

“네 엄마 아픈 걸 쭉 보면서, 아는 의사가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 지금부터 공부해서 의대는 어렵겠지만, 간호사나 방사선사 공부 같은 건 할 수 있잖아.”


간호사나 방사선사라니.

조금도 끌리지 않았다.


띠링.

그 순간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희 떡볶이랑 참치김밥 주세요.”

“주희 학생이랑 경주 학생 왔네. 저기로 앉아. 얼른 만들어 줄게.”


손님이 들어와 대화가 끊겼다.

물은 셀프지만, 내가 있는데 굳이 손님들에게 일을 미룰 필요는 없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물과 김치, 단무지를 먼저 가져다줬더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꾸벅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응. 혹시 더 필요한 건 없니?”

“아니요. 고맙습니다. 오빠, 마음고생 많으셨겠어요. 아주머니는 분명 천국에 가셨을 거에요.”

“날 아니?”

“아니요. 가게 앞에 며칠동안 상중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어서요. 저흰 단골이거든요. 저희 기억 못하세요?”


아버지가 이름까지 아는 걸 봐서는 단골이라는 게 분명했지만, 거의 매일 나온 가게의 단골을 난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손님을 하나하나의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손님으로만 여겨왔던 거다.

뭔가 미안하고 창피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미안.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주희? 네가 경주랬지. 앞으로는 꼭 기억할게.”

“아니요. 정말 괜찮아요. 오빠 웃는 걸 처음 봐서 저도 좋네요.”


강주형의 무신경함을 탓할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사람에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당분간 내가 할 일은 ‘단골들의 얼굴을 익히는 것’과 ‘강주형에 대한 들키지 않는 복수를 계획’하는 일이었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오랫동안 고민했고, 많은 글을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달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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