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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dog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인데 회귀자들이 나보다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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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5.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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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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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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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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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첫 만남(2)

DUMMY

하루가 지났다.


오랜만에 바닥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조금 뻐근한 거 빼고는 모든 게 나쁘지 않았다.


“바로 시작하자.”


“그런데 꼭 여기서 해야 해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아파트는 여전히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일단은 스킬부터 사용해 보자.”


이유나가 머리통이 깨져 있는 벌레 사체를 가리켰다.


“저거의 영혼을 불러봐.”


나는 시키는 대로 <영혼 소환>을 사용했다.


[영혼소환을 사용합니다.]


시체에서 투명한 형체의 무언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무형의 기(氣)는 내가 처음 봤던 풍뎅이의 형상을 갖췄다.


“이상하군, 나는 분명...”


“죽었지, 저 여자한테 머리가 깨져서.”


풍뎅이의 시선이 이유나에게 쏠렸다.


“안녕?”


“너! 감히 식량 주제에...”


풍뎅이가 발을 들어 여자를 찍어 누르려 했지만, 통과할 뿐이었다.


“말했잖아, 넌 죽었다니까.”


“닥쳐라!”


한동안 풍뎅이의 허튼짓은 계속됐다.


우리를 밟고 뜯어먹어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투명한 풍뎅이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유나랑 내가 통조림으로 밥을 때우고서야 풍뎅이가 지친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느껴진다. 네놈이 날 부른 거지?”


“그래.”


“왜 부른 거냐.”


사실은 나도 몰랐다.


이유나가 부르라니까 불렀지, 나도 부를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유나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계약한다고 해야지.”


“아.”


계약한 영혼이라는 게 직접 하라는 거였구나.


분한지 날개를 파들거리는 풍뎅이에게 말했다.


“나랑 계약하자.”


“계약?”


“네 힘이 필요하다. 너도 이 삶을 끝내고 싶지는 않겠지?”


아까까지는 힘없이 파닥이던 날개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붕붕거렸다.


“조건이 있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태도에 조금은 놀랐다.


웬만한 거라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인정하긴 싫어도 A급 각성자를 보유한 우리 아파트의 사람들을 가볍게 죽여버린 놈이었으니까.


“매일 오십 명의 인간을 경단으로 만들어 오면 특별히 너에게 힘을...”


[영혼 소환을 취소했습니다.]


“뭐하는 짓이야!”


“저런 놈은 그냥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맞아요.”


강자들의 유형은 비슷했다.


그리고 풍뎅이는 흔한 유형 중 하나였다.


강하지만 오만한 전형적으로 쓰레기 같고 피곤한 성격.


지금은 경단이 됐을 에이스 같은 놈이 그랬다.


“더럽게 깐깐하네.”


“그래도 감은 잡히네요.”


잠깐 사용했지만, 내 스킬이 어떤지 조금은 감이 잡혔다.


영혼은 힘을 빌려주는 대신 내게 뭔가를 요구한다.


그것이 뭐냐에 따라 계약을 할지 말지 선택해야 했다.


이유나가 입맛을 쩝 다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네, 그놈 강했는데.”


“아무리 이런 시대라도 시체 경단을 바라는 놈이랑 같이 다닐 생각 없습니다.”


“에휴, 알아서 해라.”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제부터 계속된 내 질문 공세에 이유나가 짜증을 냈다.


“애새끼야? 뭐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욕을 먹어서라도 이 대답은 들어야 했다.


“저번 회차의 저는 어떻게 강해졌습니까?”


“그야 모르지. 널 만난 건 저번 회차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럼, 저번 회차의 제가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이유나가 턱을 매만지며 과거를 회상했다.


“굳이 말하자면, 착한 미친놈?”


“뭡니까 그게.”


“분명히 명분이나 대의는 괜찮은데 그 방식이 한없이 기괴했었지. 그래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놈이기도 했고.”


“그건 그렇다 치고...저번 회차의 저는 어떤 괴물을 주로 달고 있었습니까?”


“종류? 딱히 없었는데?”


“인간도 있었습니까?”


“그래. 그중에는 S급 각성자들도 몇 있었지.”


“사기였네요.”


“그래서 네 능력을 노린 거야. 실패해서 이 꼴이 됐지만.”


이유나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아직 인간은 어려울 것 같고, 쉬운 놈들부터 해보자.”


“쉬운 놈이라면...”


“자주 돌아다니잖아. 지능이 없고 본능만 남아있는 것들.”


대부분의 몬스터가 이유나의 말에 해당하지만, 쉬운 놈은 슬라임밖에 없었다.


슬라임.


시체를 먹고 사는 파리 같은 존재.


행동이 느리고 시체를 먹는 습성을 갖고 있어서 슬라임에 죽을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몸이 강한 산성 젤리로 되어 있어서 만지기라도 한다면 피부가 녹는, 애매하게 위험한 괴물이었다.


“저기 보이네.”


슬라임이 시체라도 봤는지 한 방향으로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이유나가 가까이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슬라임이 맹렬하게 꿈틀거리는 걸 이유나가 발로 자근자근 밟았다.


“해 봐.”


으깨져 있는 슬라임의 몸을 향해 <영혼 소한>을 사용했다.


잘게 조각난 파편 위로 슬라임의 영혼이 나타났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는지, 슬라임은 시체를 향해 다가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계약이 돼요?”


“저번 회차의 너는 잘만했던데?


“말이 통해야 설득을 하던가 하지...”


슬라임을 빤히 바라보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랑도 말이 안 통하지만 훈련은 할 수 있지 않나?


시점을 조금 비틀었다.


저건 조금 물컹거리는 개일 뿐이다.


그러자 내가 뭘 해야 할지 보였다.


“잠시만요.”


나는 슬라임이 향하던 방향으로 달려갔다.


다가갈수록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내가 찾고 있던 냄새.


그곳에는 몇 달은 된 것 같은 시체가 있었다.


시체의 죽음은 호상이었다.


괴물한테 상체가 뜯어 먹힌 거로 죽으면 나쁘지 않은 죽음이다.


하체가 뜯어 먹히면 죽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만큼 고통스럽게 죽으니까.


썩은 시체의 다리를 주워들었다.


“어디 갔다왔...미친거 아니야?”


“슬라임이 가장 필요한 걸 들고 왔습니다.”


역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시원하게 무시하며 슬라임의 앞에서 다리를 흔들었다.


“나랑 계약하면 내가 부를 때마다 이걸 줄게.”


“!”


슬라임은 곧장 반응하며 시체를 삼켰지만, 풍뎅이와 마찬가지로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나랑 계약한다면 이걸 먹을 수 있어.”


원래 말 못 하는 짐승은 밥으로 키우는 게 정론이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덩어리의 몸이 격하게 꾸물거렸다.


“대신 너의 힘을 빌려줘.”


[길 잃은 영혼이 계약을 수락합니다.]이제는 이유나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말을 알 것 같았다.


“받아들인다.”


투명한 슬라임의 몸이 원래의 녹색으로 돌아왔다.


시체를 던지자, 슬라임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는 순조로웠다.


도시에 널린 게 슬라임이었고 시체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수십 마리의 슬라임들과 계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격!”


꾸물꾸물.


오십 마리가 넘는 슬라임이 중형 종의 괴물을 잡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슈슈숙


옆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느껴졌다.


“뭐 하는 겁니까?”


“훈련.”


이유나는 옆에서 신들린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약해진 만큼 더 강해져야지. 이참에 더 빨리 강해지는 루트도 찾고.”


“알겠으니까 조금 떨어져서 해주십쇼. 우리 애들이 겁먹지 않습니까.”


내 옆에 있던 슬라임들이 이유나의 움직임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대부분의 슬라임은 이유나가 죽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어이가 없네, 살아 있을 때는 각성자들한테 잘만 달려들던 놈들이.”


툴툴거리긴 했지만, 이유나는 조금 더 물러나서 검을 휘둘렀다.




중형종이 슬라임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의 머리를 시작으로 온갖 짐승의 형체를 섞어 놓은 놈이었다.


[영혼 소환을 사용합니다.]


[스킬의 숙련도 레벨이 올라갑니다]


하루 종일 괴물을 잡은 덕분인지 <영혼 소환>의 숙련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물론 계약까지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였지만.


음머어어어!


소머리를 한 괴물이 고개를 젓더니 사라졌다.


[계약에 실패했습니다.]


[영혼 소환의 지속 효과가 끝났습니다.]


본능 이상의 지능을 가진 괴물들은 확실히 계약하기가 어려웠다.


먹이를 요구하면 대부분 인간을 원했고, 난 그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유독 아끼는 푸른 빛의 슬라임을 쓰다듬었다.


내가 주인이라 그런지 몸에 닿는다고 피부가 녹거나 하지는 않았다.


“역시 너희들밖에 없다.”


푸른 슬라임이 기분이 좋다는 듯 몸을 출렁거렸다.


“조금 있다가 소환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소환된 슬라임을 전부 돌려보낸 뒤 이유나를 불렀다.


아직도 강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유나가 고갤 돌렸다.


“잠깐 어디 좀 같이 가시죠.”


“어디?”


“제가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가능 동안 호위 좀 해주세요.”


아무리 슬라임이 많아도 내가 가진 가장 강한 칼날은 이유나였다.


“귀찮게 하네.”


이유나를 데리고 도착한 건 내가 살던 아파트였다.


세상이 멸망했음에도 당당히 버티던 그 건물엔 지워지지 않은 피 냄새가 낙인처럼 남아있었다.


“여긴 왜?”


“보시면 알 겁니다.”


이제는 익숙한 <영혼 소환>으로 백 마리의 슬라임을 소환했다.


슬라임이 갓 태어난 애벌레처럼 아파트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다들 집합!”


슬라임들이 한데 모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꽤 쓸만한 곳이었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치우지 못하는 시체 경단 때문에 못 가고 있었지만, 어느덧 계약한 슬라임만 무려 백 마리.


이 정도면 치우고도 남는다.


“이 근방의 시체들을 죄다 먹어 치워줘.”


슬라임들이 건물을 돌아다니며 시체 경단을 녹였다.


“이 건물 안이면 아는 사람들 아니야?”


“그렇죠.”


“장례 같은 건 상관없어?”


“그 정도로 좋은 사이는 아니었어요.”


슬라임들은 좋은 청소부였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많은 시체 경단과 핏물을 먹어 치웠다.


깨끗해진 아파트 안을 둘러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젠 여기서 살죠.”


“넌 찝찝하지도 않냐.”


“그런 거 신경 쓰면 못 버팁니다.”


이유나도 아파트를 슥 둘러보더니 고갤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이유나와 같이 방을 둘러보는데 아파트 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가 확인해 볼게요.”


슬라임을 한 마리 소환해 내려다 보냈다.


[계약 이행이 취소됐습니다.]


“어라?”


슬라임을 내려보낸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죽은 거 같은데요?”


“몬스터는 슬라임을 잘 안건드리니까...”


이유나가 검에 손을 갖다 댔다.


“사람이겠네.”


“혹시 모르니까 슬라임좀 소환해 둘게요.”


“그럴 필요 없다.”


계단 아래서 남자가 올라왔다.


“드디어 찾았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는 알루미늄으로 된 야구 배트에 피 묻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살모사!”


이유나는 방금 나타난 남자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자?”


“그 이명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살모사라 불린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흐르는 마나를 보니 당했나보군.”


“...방심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가 대신 죽여줄 테니까.”


야구 배트를 휘두르려는 살모사를 이유나가 가로막았다.


“잠깐만!”


“네 사정이야 내 알 바 아니다.”


“이 미친...”


둘의 싸움은 내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살의를 담은 검과 알루미늄 베트가 서로를 노렸다.


왜 그의 이명이 살모사인지 단박에 깨달았다.


인상도 뱀처럼 날카로웠지만, 예측조차 불가능한 방향의 공격은 뱀이 먹이를 사냥할 때와 비슷해 보였다.


먼저 무너진 건 이유나였다.


“씨발, 힘만 안 뺏겼어도.”


“내가 졌겠지. 대인전은 네가 최강이었으니까.”


야구 배트가 머리를 노렸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야! 나 지금 죽으면 진짜로 죽어!”


“여전히 거짓말은 잘하는군.”


“잠시만요!”


살모사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어라. 너도 먼저 죽을 거니까.”


“당신은 왜 나를 죽이려는 거죠?”


“저번 회차의 너는 멸망의 원인이었다.”


“개소리야. 그 정도 까지는...”


“네가 죽고 난 뒤의 일이다. 여행자.”


야구 배트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서늘했다.


“너는 수많은 괴물의 영혼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버린다.”


“제가요?”


시대가 이렇게 됐지만,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억울합니다!”


“닥쳐라.”


살모사는 마치 죄인을 대하는 판사처럼, 나를 심판하듯이 말했다.


“너는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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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하부세렌(2) 24.05.24 21 1 12쪽
15 하부세렌(1) 24.05.22 2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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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귀자들(4) 24.05.20 27 1 12쪽
11 회귀자들(3) 24.05.18 39 1 13쪽
10 회귀자들(2) 24.05.18 42 2 12쪽
9 회귀자들(1) 24.05.16 41 1 13쪽
8 티탄 사냥(2) 24.05.15 36 1 13쪽
7 티탄 사냥(1) 24.05.14 44 2 11쪽
6 재앙 대비(3) 24.05.13 51 1 12쪽
5 재앙 대비(2) 24.05.12 5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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