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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스 님의 서재입니다.

말빨로 길드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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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먹선비
작품등록일 :
2019.11.16 09:12
최근연재일 :
2019.11.22 08:22
연재수 :
8 회
조회수 :
540
추천수 :
0
글자수 :
37,900

작성
19.11.1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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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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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 해피엔드

DUMMY

들릴리 없는 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혹감에 고개를 올려보니 발치부터 성민의 피를 빨아들여 붉게 물들어가는 시체가 보였다. 마치 마른 종이에 잉크가 퍼지듯 시체는 무릎을 지나 어느새 머리끝까지 붉게 물들어 갔다. 그리고 이윽고


화아악

"큿!"


마치 불타는 듯한 광채가 시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성민을 덮고 있던 죽음의 기운조차 몰아낼 정도의 강렬한 빛이 방을 채운다.


"박해 받는 자의 피와 눈물로 존체를 깨운 이가 너이더냐."


"그,그래. 너, 당신은 대체"


"존체는 신과 같았으나 신에게 버림 받고 유폐된 존재. 모든 억압받는 이의 대표자이다."


말라 비틀어져가던 시체 주제에 제법 거창을 말을 한다 싶다.


"그것, 참, 거창...하네..."

그러나 그게 신이든 시체이든 허언증 걸린 괴물이든 성민에게 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잠시간의 이변으로 정신이 돌아왔지만 생명은 착실히 그의 몸을 떠나고 있었다.무거워진 눈꺼풀이 다시 눈을 가리운다. 힘겹게 올렸던 고개도 차갑게 식은 피웅덩이에 다시 떨구어진다.


"이것도 무언가의 인연, 존체에 탄원 할 것이 있다면 들어주겠다."


'탄원, 탄원이라...'


이미 모든것이 늦어버렸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차갑게 식어가는 얼굴에 쓴웃음을 띄웠다. 하지만 미련인걸까. 힘이 없고, 빽이 없고, 돈이 없어 그저 발버둥 치다 의미 없이 죽어가는 인생 끝자락에 남은 한을 뱉어내지 않고는 죽을 수 없었다. 마지막, 한번의 호흡만을 남겨둔 생명을 담아 토해낸다.


"나에게도 힘이, 돈이, 권력이 있었다면..."


그리고, 성민의 의식은 그대로 무의 세계로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죽음이란 이름의 심연으로...


*****


"아저씨, 아저씨!"


"으,으음?"


누군가 몸을 흔든다. 짜증이 잔뜩 묻어나있는 소리. 깊은 잠에 빠져있는 성민을 끌어올리는 소리.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죽어요!"


"으,네,네에?"


눈을 뜨자,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린 군인이 촛점 잃은 시야 한가운데 들어온다.


"여기서 주무시면 죽는다고요! 일어나세요!"


"여, 여긴?"


군인에게 부축을 받아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본다. 밤이다. 군인 뒤편으로는 초소가 보였다.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보는 군인이 하나 보인다. 옆으로는 길게 뻗은 철조망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몇겹의 철조망을 너머 경계를 서는 군인들 앞에는


"던전?"


기분 나쁜 검붉은 기운을 내뿜는 던전이 있었다.


"아저씨 뭘하셨길래 이런데서 주무시고 계세요? 여긴 통제구역 입니다. 위험하니까 빨리-"


콰오오오


던전에서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빛기둥이 세워진다. 주위를 대낮처럼 밝힌 기둥은 이윽고, 처음 나타났을 때 처럼 갑작스래, 신기루 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변에 놀란 군인들과 성민의 시야엔, 이제 불이 꺼진 평범한 싱크홀만이 보일 뿐이었다.


"김뱀! 던전 클리어 된거 같지 말입니다."


"나도 봤어 새키야! 야! 너 아까 지금 던전에 들어가 있는 길드 없다며? 뒈질래?"


"아, 아니지 말입니다. 인수인계 할 때 일지 보셨잖슴까?"


"야이씨! 새키들 진짜! 야! 지통실에 보고, 아니다. 야야! 통화기 내려! 내가 보고한다. 아저씨, 아저씨는 빨리 집에 가세요. 알았죠?"


성민을 남겨둔채 군인은 초소로 뛰어갔다. 철망 안쪽에서도 경계를 서던 군인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는게 보였다. 덩그러니 남겨진 성민은 싱크홀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 검붉은 빛은...내가 있던 던전?"


*****


통제구역에서 한블록 가량 떨어진 골목의 어느 카페. 통제구역 밖이라지만, 근처에 생겨났던 던전 탓인지 카페 안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뉴스를 보며 카운터를 지키는 주인과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성민이 전부. 성민은 식어가는 커피엔 입을 댈 생각이 없는지 무언가를 보며 이맛살을 찌풀리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상태, 그대로인거지?"


탁자 위에는 수첩, 지갑, 핸드폰이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분명 어둠나무늘보의 일격으로 대출혈을 일으켰던 등과 다리의 상처, 찢겨진 양복도 멀쩡하게 원상복구 되있는 상태였다.


"꿈은 아니고, 미친것도 아니고. 그럼 그 시체는? 씨발 머리야"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라도 하듯, 팔짱을 낀채 천장을 올려다보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모르는 이가 보면, 늦은 퇴근길에 카페에 앉아 선잠을 자는 회사원으로 착각 할만한 풍경.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해 못할 일을 생각해봤자 소용 없고. 일단 숨자. 원래대로 따지면 살인교사인데, 내가 살아있다는게 알려지면 마무리를 지을려 하겠지'


판단을 내린 성민이 핸드폰을 집어들고 연락처를 훑기 시작했다.


명색이 사성투자 투자심사역으로 활동했던 그이니 만큼, 연락처에는 2천여개에 가까운 다양한 인맥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쉽지가 않네."


결국 사성투자 소속으로 맺은 인맥들이라, K상무의 입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중에는 성민을 잡아 바치면 떨어질 콩고물을 기대할 사람들도 있으리라. 연락처의 끝자락으로 내려갈 수록, 새삼 성민 자신이 가진 인맥의 한계와, 사성 로열 패밀리와 등돌린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짙어져갔다. 십여분간 인맥을 훑어낸 결과


"하, 씨벌. 좆같네"


의자에 기대 드러누워 버렸다. 막막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


"이대로 노숙자라도 되야하- 음?"


자포자기한 넋두리가 나오던 찰나 한통의 문자가 들어왔다.


- 과장님,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해피엔드 이현규 대표입니다. 날 추워지는데 건강하시죠? 언제 시간 한번 내주시면 커피 한잔 대접하고자 합니다.


"해피엔드, 해피엔드...해피..."


입에 익지 않은 길드명이다. 투자 한번 받아보려고 연락하는 길드가 어디 한두군데인가. 이마를 어루만지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 아아!"


그리고 광명이 비췄다.


*****


"아이고, 과장님 늦은 시간에 이렇게 누추한 곳엘 다 와주시고, 하하"


성민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거한이 황송하다는 듯 연신 굽신거렸다. 그 손길에 이끌려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진짜 누추하네'


말 없이 여직원이 가져다 준 믹스커피를 집어들며, 맞은 편에 앉아 어색한 미소 덕에 안면이 불불 떨리는 남자를 관찰했다.


길드 해피엔드 마스터, 이현규.


나이는 50대 초반이다. 원래는 흔하디 흔한 좆소에 다니던 회사원이었으나, 어느날 각성한 능력으로 사표를 집어 던지고 길드를 차린 인물. 요즘 시대에 그리 드문 케이스는 아니다. 그리고, 묻지마 창업이 대부분 그렇듯이 괴멸적으로 바닥을 기는 실적으로, 겨우 길드 간판만을 유지하는 그 상황 역시 드문 케이스는 아니었다.


"오랜만이군요 대표님, 일전에 사무실로 찾아오시고 나선 처음이죠?"


"하하하, 그러게요. 벌써 한 반년 됐나요? 그때 여러가지 충고해주신 덕분에 지금은 길드도 순항 중 입니다."


'순항? 어디가?'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즈음 되는 애매한 위치. 그 중에서도 다무너져 가는 시장바닥 낡은 4층 건물에 세들어 있는 사무실. 사무실 내부도 단촐하기 짝이 없다. 군데군데 찢어진 소파, 낡은 사무용 책상은 대표와 여직원 자리 두개,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곧 나갈 듯 깜빡인다. 이런게 순항이라면, 침몰은 얼마나 끔찍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러나, 때로는 입발린 말도 필요한 법.


"사업 순항 중이시라니,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하하, 감사합니다. 헌데, 늦은 시간에 내방해주신건 뭔가...일이라도? 아! 혹시 저희 투자 검토?"


'진짜 여전하네'


반년전 성민이 아직 사성투자에서 쫓겨나기 전, 어디서 연락처를 구했는지 얼기설기 만든 길드 소개자료를 들고왔더랬다. 그때도 의례적으로 해준 말에, 곧이라도 투자를 받을 듯 헤벌쭉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표님 요즘도 하청 뛰십니까?"


"아, 뭐, 네, 그, 겸사겸사...하하하"


업계에서 하청이라 부르는 일은, 막말로 '몸빵'이다. 던전 공략을 위해 투입되는 길드 인원들의 몸값은 결코 싸지 않다. 기본이 억대 연봉인 귀하신 몸들. 때문에, 여유가 되는 길드들은 프리랜서 각성자 등을 고용해 어그로를 끌고, 몸빵을 때우게 하는 식으로 정직원들의 위험을 경감시킨다. 해피엔드 같은 바닥권 길드는 단독 공략이 사실상 불가능 하기 때문에, 일당을 받고 이런 하청을 뛰는걸로 근근히 살아가는게 현실이었다.


'뭐 어차피 그럴 줄 알고 온거니'


성민이 해피엔드를 찾아온건 두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너무해도 너무한 실적으로, 사성은 물론 다른 GC하우스에도 네트워킹이 안되있을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시에 날 지켜줄 수 있는 무력이 있을 것...이지'


사실 해피엔드의 현실이 처참하긴 하지만, 대표인 이현규의 실력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종이잔을 홀짝이며, 소매와 옷깃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묵은 상처는 그가 꽤나 치열한 현장에서 살아남아온 증표였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도 각성자로서 이현규 대표의 능력은 중견급 정도로 평가 할 수 있었다. 다만, 육체강화계 능력자 답게 머리까지 근육으로 차있어서 괴멸적인 회사 운영 실력을 보여준다는게 문제의 근원이었다.


"대표님, 단도 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 넵. 말씀하십시오."


"돈 좀 만져보시겠습니까?


"네? 돈이요? 아이고, 그럼요. 하하, 돈 벌자고 이 짓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투자를 해주시는?"


"아아, 대표님 투자 얘기는 일단 접으시고요."


"어...투자가 아니면 그럼?"


"대표님, 해피엔드에 지금 필요한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돈, 돈이죠?"


"그렇죠. 돈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거야 투자..."


'이 투자무새 새키가!'


성민은 슬슬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네, 투자...좋죠. 헌데 대표님, 투자를 받을려면 실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번에 찾아 오셨을 때도 말씀 드렸을텐데요."


"아, 네, 그렇긴 하죠."


"선후 관계를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투자가 있고 실적이 생기는게 아니라, 실적이 있고 투자가 생기는 겁니다. 그럼 실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 그, 던전에 열심히 도전해서..."


"대표님하고 여직원분 단 둘이서요? 그렇게 해서 클리어 해보신적 있으십니까?"


문득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본인 얘기가 나오니 여직원도 주의를 기울여 듣는 듯 하다.


"없, 없지요."


"그렇죠? 클리어 만이 돈 버는 수단은 아닙니다만, 실적이 없다는건 길드의 기업가치에 치명적입니다. 대표님께, 해피엔드에 지금 필요한건..."


결론을 말하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며 간을 본다. 다년간 업계에서 딜을 진행해오며 쌓은 성민의 스킬 중 하나. 자신 만만한 미소와 함께 뜸을 드리며 대표를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려 여직원을 한번 둘러본다. 둘다 목을 빼고 경청 중. 표정으로 다음 얘기를 재촉하고 있다.


"인재입니다. 적은 인원으로도 효율적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도울 인재가 필요하십니다."


"아, 인재...인재요...헌데, 그런 인재가 저희에게 올지...사람을 채용하기엔 솔직히, 그, 저희 상황이..."


'좋아 물었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대표의 손을 잡았다.


"그 인재 여기 있지 않습니까 대표님"


"네?"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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