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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르츠 님의 서재입니다.

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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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르츠
작품등록일 :
2020.01.27 23:33
최근연재일 :
2020.02.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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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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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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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다이버 곽운랑

DUMMY

치이익-, 가벼운 바람 빠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여태껏 귀에 익을 만큼 들었던 소리. 방문 앞에 도착했나 보다.


상념에 젖어들었던 정신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코앞에, 차가운 쪽빛의 기미가 보이는 회색 문이 좌우로 갈라지며 열린다. 열리는 문 틈새로 15평정도 되는 넓은 방풍경이 보였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은 옥빛을 띠고 있어 언뜻 딱딱할 것 같지만, 막상 발을 디뎌보면 고급 카페트 위에 있는 것 마냥 푹신하다. 처음 레아크에 왔을 때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을 녹여준 푹신함이었다. 인테리어 또한 왠지 모를, 내 집 같은 정겨움에 절로 웃음이 나온 기억도 있었다.


옛날···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약 4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추억이라고 칭하려고 해도 그리 오래된 기억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소소한 웃음거리가 되는 생각에 다시금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문 앞에서 구두를 벗고 놓아두었다. 몇 번의 기계음과 함께, 구두가 벽 안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여기가 이제 집 같네.”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다가 퍼질러 잘 거 같아, 일어나서 방 한 켠에 나뒀던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충 정리를 끝나자, 갈증이 일었다.

왼쪽 벽면을 바라봤다. 벽면 가운데에 얕게 벽을 파서 그 안에 놔둔 커피 머신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정수 기능과 더불어 커피 머신의 기능을 겸비한 다용도 기계지만.


머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아메리카노가 나오게 세팅해 놓은 후 커피가 따라지기를 기다렸다.


탁.


손에 쥐기 간편한 형태의 컵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그 위로 아메리카노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빠르게 잔을 채운다. 마침내 삑하는 소리와 함께 아메리카노가 나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있다가 넘기며 방 중앙에 있는 하얀색의 별다른 무늬 없는 테이블에 앉았다.


“아휴, 지친다.”


어째 짐꾼으로 있을 때보다 지친다. 그저께에 끝났던 다이브의 여파가 아직도 몸 곳곳에 남아 있다. 베네딕트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전신이 근육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커피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놓았다. 나름 뜨거운 느낌이 입안을 달구었지만. 뭐 어때, 나도 각성자인데.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며 그런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멍하니 방안을 훑고 있다가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능력 등급이 올랐댔지?”


분명 베네딕트가 그렇게 말했었다. 확인해봐야겠다. 훈련실이 4층에 있었던가? 저번에 본 연구소의 배치도가 머릿속을 흐릿하게 맴돌고 있었다. 젠장, 기억 안 난다.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침대 위로 몸이 닿는 순간, 부드럽고 편안한 감각이 몸을 엄습했다. 베개를 얼굴에 가져다 댔다. 적당히 온기. 어쩐지 이 베개를 베고 있으면 금방 잠이 쏟아질 것 같다.


효과 없는 커피 대신,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리는 베네딕트의 말을 곱씹었다.


‘확정 S급 사용자’.


확정 S급 각성자라는 신비의 말이 주는 마법 같은 울림. 그 울림은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베네딕트와의 만남도 어찌 보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계 간섭 능력. 통칭 다이브(Dive). 세간에선 빙의라고도 불리고 있지만, 실상은 빙의와는 다르다. 아주 약한 다이브 능력 같은 경우, 뚝뚝 끊기는 소음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기도 하고, 빙의처럼 다이브한 대상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이 능력은 엄청나게 희소성이 있으며 또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희소성이야 따지자면 무려 몇 억분의 1의 확률. 그것도 워낙 통계 자료가 부족하기에 제대로 낸 수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추측이다. 애초에 능력이라는 게 있기도 하고 때론 없기도 한지라, 무각성자라는 타이틀에 실망하며 하루하루를 그런저런 일들로 풀칠하며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일어나보면 고 등급의 능력을 얻어 떼돈을 버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좌우지간, 사실 이 희귀성보다야 가치가 더 중요하다.

괜히 베네딕트가 내게 확정 S급이란 말을 쓴 게 아니었다. 음, 뭐였더라. 무슨 상호작용이란 말을 쓴 것 같았는데, 분명 듣기로는 한국어였는데 해석되기로는 외계어 같아서 조금 밖에 못 알아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내용은 알아듣기 쉬웠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문제였다. 다이브한 대상의 육체 능력치나 능력을 다이브 능력의 효율이나 다이브한 시간에 따라 점차적으로 「복사」해 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다이브 대상의 고유한 능력,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능력이라고 해도, 그 어떠한 규칙이나 제약을 불구하고, 복사해올 수 있다.


‘닥터 베네딕트라고 불러주십시오, 곽운랑님.’


나는 아직도 그 웃음을 잊지 못한다. 내게 내밀어지던 손도, 눈앞에 아른거리던 상태창. 모든 게 낙인처럼 뇌리에 새겨진 채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 그건 평생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터이다.


*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난 직후라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간신히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화면에 뜬 시각은 어느덧 4시였다.


아, 씨발. 자그마한 분노. 그 뒤를 이은,

그래도 편히 잤다라는 압도적인 상쾌함.


몸을 풀 겸, 기지개를 피니 등에서 투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몸을 타고 흐르는 상쾌한 느낌에 결리던 어깨를 몇 번 움직여보니 어깨가 좀 풀렸다는 게 체감됐다. 침대에 걸린 마법과 방 자체가 방에 들어온 사람의 피로도를 풀어주게 설계된 탓이리라.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무의식적으로 훑어보다가 문득 방 한쪽 벽면에 있던 전신거울에 시선이 닿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이 차림으로 잤나 싶었다.


“뭐 어때.”


문 앞으로 걸어가니 구두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생겨나 있었다.

구두를 신으며 문 앞에 서자 문이 의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린다.


그때, 문틈 사이로. 무언가 희끄무리한 게 왔다 갔다 스쳐댔다. 반사적으로 마력을 일으키려다가 그것이 베네딕트의 가운 끝자락이라는 것을 얼핏 깨닫고는 마력을 가라앉혔다. 자칫 잘못했다가 베네딕트가 크게 다친 상황으로 이어질 뻔했다. ······이것도 다이브 여파인가? 아니면, 짐꾼 시절 남아있던 습관인 걸까. 전자든 후자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여기며 굳었던 인상을 폈다.


문이 완전히 열리며 상쾌하게 웃고 있는 베네딕트를 마주 볼 수 있었다.


“자고 있었나 보네요?”


베네딕트가 내 머리로 시선을 옮기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난 머리를 정돈하려 손을 들어 머리를 대충 다듬었다.


“나름 괜찮죠?”


베네딕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피했다. 저렇게 대답을 회피하면 할 말이 무색해진다.


베네딕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그 옷 입고 잠들었나 보네요?”

“네···. 워낙 졸려서.”

“음, 그렇겠네요. 운랑님은 효율이 좋으니.”


당최 효율이 좋은 거랑 이 피곤함에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베네딕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육체와 정신의 괴리? 그런 건가요?”

“뭐, 비슷한 거죠. 좀 더 말하자면 「동기화」 과정이랄까요?”


베네딕트가 흘깃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곤 등을 돌렸다.


“가요, 측정도 하고 겸사겸사.”


겸사 겸사라는 말에 신경 쓸 새도 없이, 터벅터벅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는 베네딕트의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빛이 들어온 복도는 언제나 똑같이 때 한 톨 없이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가 고개를 돌려 유리창을 봤는데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풍경이 이상했다.


초록색 들판과 그 중앙을 관통하는 거대한 강.

초목인 듯 듬성듬성 보이는 나무들 사이로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응? 저 창에 비치는 풍경이···?”


말끝을 흐리며 슬쩍 베네딕트를 바라보자 베네딕트가 걸음을 멈추곤 몸을 돌렸다.

유리창을 마주 본 상태로 선 베네딕트는 가만히 유리창을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모르시겠어요? 「이룬나일」의 세계에요, 운랑님이 몇 번 다이브 했었던.”


그 말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묘하게 익숙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으로 다이브 했긴 했는데, 죽도록 넓은 초원에서 먹을거리만 찾아 나다니다가 어느 날 누적된 굶주림에 픽 하고 죽어 나자빠진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저렇게 유리창 너머로 이계의 풍경이 보였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자, 베네딕트의 말이 들려왔다.

묘하게 톤이 높았다. 베네딕트를 쳐다봤다. 베네딕트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더니, 묘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 옆에 장치, 보이시나요?”


베네딕트가 여태껏 가운에 찔러 넣고 있던 손을 빼 손가락으로 유리창 위, 새하얀 벽면에 부착된 장치를 가리켰다. 꼭 예전에 얼핏 봤던 공유기 같은 모양새였다. 그것보다 조금 작고 외관이 좀 더 간결화되어 있지만, 대강 그런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말하자 베네딕트가 이어서 말을 이었다.


“저건 「관측 신호 변환기」라고 하는 거예요.”


말을 끊은 베네딕트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연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차원 관측기구- 레아크」를 통해 관측한 차원을 저 「관측 신호 변환기」로 변환해서 영상으로 유리창에 투영한 거예요.”


베네딕트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니 지평선 위로 둥근 해가 걸리고 있었다. 멍하니 어둠이 적셨던 들판에 빛이 머무는 장관을 보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베네딕트의 말이 들려왔다.


“비교적 최근에 만든 거예요. 하하, 저희가 괜히 레아크겠습니까?”


베네딕트가 쿡 쿡, 대며 웃고 있다가 다시 몸을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있는 손이 이번에도 다시 「관측 신호 변환기」를 가리키며, 변환기가 없는 쪽의 유리창이 비추는 건 평소처럼 지구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이룬나일」의 세계를 보다가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베네딕트를 뒤따라갔다. 또각, 또각. 복도 가득 구두 굽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해졌다.


어느덧, 엘리베이터 앞에 선 우리는 이미 원반이 둥둥 떠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라본 풍경도 3층이랑 똑같았다. 배치된 시설만 빼면.


“측정실이 어딘 줄 아시죠?”


베네딕트의 말에 슬쩍 고개만 뒤로 돌리자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는 베네딕트가 보였다.


“4층 맨 왼쪽에 있지 않나요?”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의문 조로 물어보자 베네딕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본다. 일말의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게 복도의 조명과 어우러져 무슨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 잘생김에 면역이 생기려면 아직 한참 남았나 보다.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베네딕트를 바라보자 베네딕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렇게 뚱한 얼굴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그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은 발언에 동심을 지켜 주고자 나도 모르는 사이 바뀐 표정을 갈무리하며 얼굴에 철판을 덧댔다.


“아니요. 그나저나 측정실이 맨 왼쪽 끝에 있어요?”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흘깃 쳐다보던 베네딕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맨 왼쪽에 있어요.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그런데, 측정실에 있는 측정기는 그냥 운랑님만 가도 측정할 수 있어요. 따로 보조 같은 건 필요 없고요.”


응? 보조가 필요 없다고?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모습을 본 모양인지 베네딕트가 피식 웃었다.


“사용자 협회에 있는 측정기하고는 비교하지 마라주세요. 엄연히 메이드 인 레아크 랍니다.”


대단했다. 레아크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별개고, 이건 진짜로 대단했다. 자동으로 처리된다니 그런 건 상상조차 못 해봤다. 앞으로 협회에 측정하러 갈 일은 없을 거다. 음, 그런데 등급 확인증 갱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간절한 심정을 담아 베네딕트의 푸른 눈망울을 쳐다보자 베네딕트가 당황스러운 듯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하다가 탄성을 지르며 다시 나를 봤다.


“혹시, 확인증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사용자 협회 네트워크랑 연결돼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측정하고도 또 확인하고 증명하랴 왔다 갔다 고생할 뻔했다.


다시 베네딕트를 바라보자 베네딕트는 측정실로 향하려는 듯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급히 발걸음을 옮겨 베네딕트의 옆에 따라붙었다.


“···힘든 거 있음, 썩히지 말고 얘기하세요.”

“···네?”


들려오는 자그마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베네딕트는 얼굴을 숙인 채 걷고 있었다.


“가죠.”


나는 말 없이 그냥 베네딕트를 따라 걸었다.

근데, 이거 은근 심쿵 대사네. 그리고 마음이 찔리기도 하는 대사고. 알면서 했다면 이건 연기대상감인데. 속으로 피식 웃으며 잘 생겼다고 욕한 거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계속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힘을 줘서 막으며 슬쩍 베네딕트를 보려 옆으로 시선을 줬다. 베네딕트는 평소대로 돌아와 평범하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 뒤론 유리창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 떡하니 보이는 거리가 펼쳐져 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왠지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을 다시는 재고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냥 맘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다시 꺼내기 싫은 그런 것 같았다. 젠장, 내 맘이다.

하아, 그러고 보니 베네딕트. 키도 180이네. 그러고 보니, 머리도 좋겠지. 이런 엄친아 같은 자식.


그때, 문득 베네딕트의 고개가 돌아가며 나랑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빙그레 웃는데, 웃는 게 뭐랄까,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시 썩 괜찮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지금 베네딕트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뭔 일 있는 거 맞죠, 운랑님.”


베네딕트가 잔뜩 굳은 낯으로 심각하게 입을 연다.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닌지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할 듯이 온몸이 긴장돼있었다.


그런데 걱정은 고맙지만 그런 일 없다. 아니,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잖아. 이놈아!


삐걱거리는 목 근육을 이완시키며 억지로 입꼬리를 움직였다.

차마 두 눈 뜨고 지금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질투에 눈이 먼 자의 말로를 지켜 보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거의 억지로 젓다시피 하며 뻐근한 눈동자를 움직여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안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며 손을 뻗어 안심하라고 휘휘 저었다.


“일 없어요.”


하하,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아니 들어간 후에도. 쭈욱.


“···이리 와봐요. 식은땀까지 나는데.”


아, 제발. 땀은 생리적 작용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제길. 억지로 눈을 질끈 감으며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최대한 생각하며 머리를 있는 힘껏 돌렸다.


“음, 근육통인가. 계속 땀이 나네요. 하하하.”


툭 하고 간신히 내뱉은 말이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극히 안정적인 말이었지만 목소리 톤이 영 아니올시다다. 억지로 베네딕트와 시선을 맞췄다. 그런데 베네딕트는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몇 번 무겁게 끄덕이더니 이내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불편하신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요.”


···왠지 마음에 돌이라도 단 느낌이었다. 돌이 무슨 100톤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베네딕트의 옆에서 같이 걸었다. 차츰 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몸에 체온도 그대로 돌아가고 있고. 한숨 놓으며 고개를 돌리자 옆엔 파리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보였다.


파리의 시내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후광을 받는 베네딕트 또한.


“와아, 운랑님 이렇게 보니까 잘 생겼는데요?”


어느새 나를 바라본 베네딕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감응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보니까는 또 무엇인가.


남몰래 한숨을 쉬며 겉으로는 씩씩하게 응수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측정실까지 가는 거리는 멀고도 험한 걸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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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이버 곽운랑 20.01.27 29 0 18쪽
1 prologue 20.01.27 51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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