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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포가튼

작성자
Lv.5 헤타
작성
17.02.12 11:23
조회
233

전승되어진 힘의 주인 록과 이어받은 권력의 주인 리시아가 만나 서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마족과 신이라 불리는 것들과 싸우는 이야기. 



“죽이지 말고 처참하게.”


 퍽.
 왼손으로 찍어 내려지는 라불라 백작의 손목을 잡아챘다. 별다른 기술도 없이 아주 태연하게 힘으로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고, 그의 팔 또한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흔들리는 것은 라불라 백작의 눈동자 뿐.
 “으윽.”
 압도적인 힘의 차이.
 라불라 백작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어졌고, 이내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 그의 손이 아프게 손목을 죄어오고 있었으니까.
 웅성 웅성.
 연회장은 그 압도적인 광경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까는 압도당했던 것이라 생각했던 장면이 아이를 상대하는 어른처럼, 아득한 강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무료한 그의 표정이, 흔들리지 않는 그의 팔이, 그리고 쩔쩔매는 거인의 모습이, 그의 강함을 의심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어, 어서 이 손을 놓아라!”
 추잡한 저항. 떨어질 명예만큼 더 추뢰한 발버둥.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벌게진 얼굴로 목소리를 떨며 호통치는 라불라 백작의 모습은 정말로 추했다. 역겨웠다.
 “······.”
 처음의 당당함을 잃고 점점 작아져가는 라불라 백작을 멀뚱히 바라보던 록은 아무말없이 그의 손목을 놓아주었고, 라불라 백작은 무너질 듯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용케 쓰러지지는 않았고, 한숨을 돌리는 순간 자신의 추함이 어땠는 가 떠올라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금 이전과 같이 록에게 달려들었다. 아무것도 손에 들고 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록에게.
 휙, 챙그랑.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라불라 백작의 검이 무방비한 록의 몸에 이번에는 닿았다 싶은 순간, 베었다 싶은 순간, 참극이 벌어지리라 예상했던 장내는 혼란에 휩싸였다.
 라불라 백작의 검이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 교차의 순간, 상황은 극적으로 뒤집어졌다.
 날이 서있지 않았던 롱소드가 허리춤에서 뻗어 나와 그 손잡이로 달려드는 라불라 백작의 손목을 찌른다.
 뻗어나간 궤적은 순간의 번뜩임이었고, 찰나의 선율이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멈출 듯한 일격이었고, 멈추어라 명령하는 일갈이었다.
 “윽, 으아.”
 통증조차 멎어있던 라불라 백작에게 둑이 터지듯, 격통이 몰려든다. 팔의 경련이 온몸으로 뻗어가 입에서 터져 나오려는 순간,
 턱.
 록의 왼손이 그의 턱을 덮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미안하지만, 돼지 멱따는 소리 듣는 괴상한 취미는 없다. 그러니까······.”
 라불라 백작을 시리게 쳐다보며, 심장이 멎을 듯한 살기를, 죽음의 공포를 뿌린다.
 “닥쳐.”
 퍽, 우득.
 손잡이가 경련을 일으키는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찌른다.
 퍽, 우득.
 손잡이가 경련을 일으키는 그의 갈비뼈를 파고든다.
 “윽, 으읍.”
 퍽, 우득.
 그리고 역수로 쥔 무딘 날의 롱소드가 그의 무릎을 으깬다.
 “······.”
 조용한 홀을 울리는 파열음 속에, 소리죽인 격통의 메아리가, 사람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시린 온도의 심연의 어둠을 느끼게 한다.
 죽음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는다.
 “명예를 건다고 했나? 결투는 너의 목숨도 거는 행위다.”
 퍽.
 몸의 이곳저곳이 부러져 무너지려는 라불라 백작의 복부에 손잡이를 찔러 넣어 그를 들어올린다. 한 손으로 거인의 다리가 공중에 뜨게 만든다.
 그러며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귀에 속삭인다.
 “난 널 죽인다.”
 “으으······.”
 틀어막았던 입을 놓고, 그를 바닥에 내려놓자, 라불라 백작은 눈물범벅인 얼굴로 호흡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홀을 둘러보던 록은 조용하게 집중된 시선에 아랑곳 않고 라불라 백작의 롱소드를 향해 걸어간다.
 “······.”
 뚜벅, 뚜벅.
 홀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고요했고, 록은 그 사이를 걸어 롱소드를 주워든다. 자신을 바라보는 왕녀만을 한동안 눈에 담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뚜벅, 뚜벅,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공포로 깃든 눈물 투성이의 망가진 라불라 백작에게 걸어간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미소가 입에 걸렸고, 그가 쥔 롱소드가 빛을 번뜩인다.
 “꺄아악!”
 “으아악!”
 피가 솟구치는 환영이 홀을 지배하자, 끝내 참았던 비명의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오로지 숨죽였던 공포의 메아리가.
 털썩, 털썩.
 몇 몇의 이들을 남기고 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고, 왕녀와 록은 꼿꼿이 서 라불라 백작을 내려다본다.
 사라진 미소.
 언제 미소 지었냐는 듯 표정이 사라진 록은, 라불라 백작의 목에 닿은 검을 바라보다 무심히 라불라 백작의 눈을 바라본다.
 “항복하겠나?”

작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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