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 나와 대군은 무슨 사이였느냐? 아니... 무슨 사이처럼 보이느냐? 네 눈엔.”
개돌이 미간을 찌푸려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자는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개돌의 답을 기다렸다.
“솔직한 대답을 원해?”
“그렇다.”
“언니를 위해 돈 바치고 인생 바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대군마마를 언니가 뻥뻥 차면서 튕기는 사이로 보여. 그 쯤 되면 고만 튕기고 좀 받아 주지?”
등신도 이런 상등신이 따로 없었다. 차라리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면 퍽이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조롱을 하면서도 이해라도 했을텐데... 설마 대군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던 건가?
그러나 그런 세자의 의문은 개돌의 다음 설명에 일거에 해소되었다.
“더 웃긴 건, 그렇다고 언니가 대군마마한테 마음이 없느냐. 근데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이거지.”
“... 내가 그랬느냐?”
“응! 만날 그렇게 문전박대해놓고는, 대군마마 왔다 갈 때마다 언니 눈 벌개져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아... 그래?”
상등신에서 상은 빼도 될 것 같다. 그냥 등신.
“언니 방에 대군마마 준다고 만든 손수건만 몇 개야, 대체? 그래놓고 하나도 못줬지? 대군마마 선물은 죄다 돌려보내면서, 그래도 어떻게 편지는 꼭꼭 챙겨 놓더만?”
“하아...”
아주 대단한 연모 납셨다. 내가 역모 처결한답시고 그 고생하는 동안 둘이 아주 야무지게 조선상열지사를 만들었구만.
“언니. 대군마마는 진심이야. 그니까 언니한테 혼인하자는 말까지 한 거지.”
“미친 놈... 그런 말까지 했단 말이냐?”
“미친 거지. 그리고 그 말을 언니한테 했다는 것 좀 기억해. 남의 일처럼 묻지 말고.”
“대군과 역적의 딸의 혼인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
“절대 불가능이지. 근데 그렇게 하겠다고 했대매. 대군이고 지위고 다 버리고 몰래 숨어살아도 되니까, 언니랑 같이 가겠다고 했대매.”
아이고, 아바마마... 이 녀석을 대체 어찌해야 된단 말입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의정대군이 역심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삼 년 전의 그 날에 이미 역모에 가담해 있던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워했던 세자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역심은 개뿔, 오히려 본인이 호적에서 파이고 싶어 안달을 내는 꼴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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